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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일 금방 비가 내릴 것처럼 날이 잔뜩 흐리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은 아들이 내 차를 타고 학교에 가겠다고 먼저 말한다. 공부로 인하여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거실을 나오면서 엄마께 인사하라고 하였더니 쳐다보지도 않고 아내도 말한마디 없이 바라만 본다. 학교에 내려주고 노량진 교무실에 도착하니 여기도 우중충하고 침체된 분위기다.
2일 오늘은 중간고사 첫날 수학, 사회, 한문시험이다. 일찍 일어나 한문을 함께 정리했는데 어려운 문제가 있어 만점 맞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노량진 수업마치고 집으로 와서 안산초교 대표로 운동화에 지도와 나침반을 붙여 제출한 딸의 발명품대회 장소인 창천초등학교에 갔다. 내 생각으로는 지도나 나침반은 그냥 들고 다니면 되는데 운동화에 부착한다니 만들기가 더 복잡하고 또한 우리나라 지형에서는 거의 필요가 없어 수요도 많지 않을 것이다. 서대문 관내 초등학교 40여명의 출품 아이디어 전시품 중 크레파스타워, 다기능책상 등은 현장에서 내가 본 것 중 창의력이 돋보이는 발명품이다. 저녁에는 광화문에서 영어수업 마친 딸을 태우고 서울역 롯데마트 쇼핑하고 10시에 돌아오니 집에서는 아내가 아들의 수염을 깍아주고 있다. 애완견도 아니고 처음이라 우습기도 했지만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가는 아들이다. 오늘 시험에서 한문은 난이도가 있었는지 84점이고 수학, 사회 점수는 쉬워서 100점이라고 아들은 자랑한다.
3일 국어시험이라 새벽애 아들은 책상에서 공부하고 아내도 옆에서 정리하며 가르치고 있다. 성적에 대한 기대와 초조함이 모두 일찍 일어나게 했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아들을 지도하지 못하는 미안함이 있었는데 저녁에 국어는 100점(과학100점. 도덕 92점)을 맞았다니 위안이 되기도 한다.
사실 초등학교 연장선인 중학교 1학년은 만점자가 많아 변별력이 없는 이유로 부모들은 실력의 자녀라고 착각에 빠지는 수가 많다.
4일 새벽에 깨우면서 아들이 가장 자신있다는 영어시험이니 마지막 힘내라고 얼굴을 쓰다듬고 격려했다. 학교에 내려주고 오후에 전화를 하니 시험을 마친 아들은 친구들과 바비엥으로 가서 점심식사하고 축구하고 PC방까지 갔다가 늦게 들어온다고 한다.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 실시한 시험이 끝났으니 마음도 가벼울 것이다.
5일 토요일 어린이 날에 시험 마친 아들을 위해 가족이 지리산 여행을 갔다. 시간이 많지 않고 딸도 어려서 등반은 못해도 차가 닿는 곳까지 가보고 화엄사도 구경하고 고향 어머님도 뵙고 돌아올 계획이었다.
남원 운봉대교를 지나 지리산 중턱을 돌아 노고단 아래 성삼재까지 몇 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고 내린 계곡은 인간세상이 아닌 것 같았다. 옛날부터 신선이 살고 시간이 멈춘 청학동의 전설이 있어서인지 바라보는 곳마다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주차장에서 약 40분쯤 걸으니 노고단 정산이고 멀리 천황봉이 우뚝 솟아 위용을 자랑한다. 노고단에서는 25킬로 거리로 10시간은 걸린다는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산 아래 섬진강이 흰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유유히 흐르고 중턱에는 5월임에도 진달래가 만발해 아직도 봄은 여기에 있다. 몇 걸음 이동하여 이끼가 낀 정상 돌탑에 손을 얹으니 풍파에 맞선 흔적이 역력하고 처음으로 이 곳에 온 나에게 지난 세월을 말해 주는 듯했다.
시험을 마친 아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먼 거리를 왔는데 아내와 딸의 즐거운 표정과는 다르게 정작 아들은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여행도 재미가 없다며 불만이 가득하다. 노고단을 뒤로하고 말만 들어도 불심이 생길 것같은 화엄사로 향한다. 입구의 깨끗한 계곡과 도로, 석탄일을 보름 남긴 연등의 행렬이 우리를 환영하는 듯 울긋불긋 장관이다. 경내를 돌아보고 대웅전 뒤쪽으로 웅대하고 장엄한 적멸보궁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둘레가 6미터는 넘을 듯싶은 주변 소나무는 오래 전 꿇어 엎드려 참배하던 고승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불만에 쌓여 있는 아들은 가족 기념사진조차도 외면하며 멀리서 혼자 어슬렁 돌아다닌다. 대웅전 부처님 앞이라 소리도 지를 수 없고 참 답답한 심정에 극락전 뒤에서 종아리를 뒷발로 걷어 찼다. 폭력을 사용한 나와 말 안듣는 아들 모두가 극락세계에서 멀어지는 중생들이다. 화엄사를 나오면서 입구에서 산채비빔밥 저녁을 먹고 몇 시간을 달려 전주를 지나 고향집에 들어가니 밤 9시가 되었다.
6일 서울에 올라와 피곤하여 누워 있는데 아내는 딸과 함께 독립문공원 연주회 구경가고 아들은 축구하러 나간다. 엊그제 청주에 아내의 핸드폰을 놓고 왔는데 장모께서 퇴계원까지 가져다 두고 다시 아들이 밤에 가서 가지고 왔다. 한 사람의 부주의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
7일 월요일 학교에 가는 아들이 오늘 새벽까지 축구경기 시청하느냐고 거의 잠을 안 잤다기에 꾸짖었는데 오후에 학교서 돌아온 후 다시 PC방으로 가 있다. 날마다 공부만 할 수 없고 특별히 놀이문화도 없으니 충분히 이해는 간다.
8일 어버이 날, 거동이 불편하신 시골에 계신 어머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염려 된다. 이틀 전 시골에서 올 때 파김치를 가져 와서 식사할 때마다 맛있게 먹는데 음식 솜씨가 좋은 어머님이 감사하기만 하다. 아침에 스쿨버스를 놓쳐 아들은 시내버스로 등교하고 나는 저녁에 교보문고에서 책 2권(어려운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 10대에 꼭 해야 할 일)을 사서 아들 방에 놓았다. 저녁에 세종문화회관 음악회 마친 아들을 태우고 집에 오니 어버이 날 꽃을 사 두었고 딸은 아빠 엄마 사랑한다는 편지까지 써 두었다.
9일 비가 내리는 아침 허둥지둥하는 아들이 스쿨버스 못 탈까 걱정하며 내려 보내고 학교 가는 딸에게도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니 잡은 손부터 뿌리친다. 아들이나 딸이나 언제까지 내 뜻대로 할 수는 없다.
10일 미역국이 깊은 맛이 없어 내가 추가로 김치를 넣어 다시 만들었는데 오히려 이상한 맛이 되었고 아내는 아들과 딸이 먹지 못했다고 인상쓰고 나를 타박한다. 노량진 학원에서 5월 말일까지 신고해야 하는 종합소득세 자료를 받아보니 과거에 비해 소득이 많이 줄었다. 돈은 학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서라도 만들 수 있기에 일단 긍정의 마음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아침 신문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30억을 기부한 남대문 안경집 사장이 나왔는데 나도 노력을 하여 사회에 기부하는 자선가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저녁에 집으로 가서 삼겹살로 저녁식사 하는데 아들과 딸이 앙숙이 되어 다툰다. 아들이 귀찮게 하니 딸이 스트레스가 많아 덤비는 상황이 되는데 화목한 남매로 잘 지내야 할 것이다.
11일 일찍 일어나 아내에게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넋두리처럼 이야기하고 거실에 나오니 아들이 과제를 하고 있다. 방으로 들어가 머리를 쓰다듬고 열심히 공부하고 학교에서도 더 듬직하라고 당부했다. 딸은 무슨 이유인지 엄마한테 야단맞아 불쾌한 표정으로 등교한다. 그늘이 가득한 요즈음 딸의 얼굴이다.
12일 비오는 아침 자율 토요일이라 아들은 봉사활동 가고 아내는 1달 전에는 시 전시회를 하더니 오늘은 논술교실 수강생들을 데리고 파주에 위치한 출판단지 견학을 간다. 피곤하고 경비는 들어도 40대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은 행복한 일이다. 봉사활동 마친 아들은 안산 초등학교에서 놀다가 와서 친구들과 함께 피자 먹는다고 해서 5만원을 주니 감사하다며 좋아한다.
13일 한강에서 아들과 딸과 학교사랑 마라톤 하는 날이다.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마라톤에 나와 함께 처음 참가했고 다시 3년만에 달리게 된다. 당시 11살 나이 최연소 참가자로 완주하고 그것도 57분만에 10킬로를 달려 왔으니 대단한 기록이었다. 오늘 처음으로 5킬로에 참가하는 딸에게 학교에서 100미터 하는 것과는 다르니 천천히 무리하지 말고 달리라고 조언했다. 안산초교에서 모였다가 승용차로 여의도 현장에 도착하니 서울시내 학생과 선생님들이 출발준비를 하고 있다. 배번을 갖고 있는 안산초교 체육부장이 도착하질 않아 번호표도 없이 기다리다 총성이 울려 출발했다. 아들이 맨 먼저 튀어나가고 나도 달리는데 왼쪽 동작대교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을 오른쪽 마포대교 방면으로 방향을 잡은 바람에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 정신없이 혼자만 1등으로 가는 아들을 쫓아가 불러 세워 다시 돌아 반대로 30여분을 달리니 5킬로 반환점 동작대교 아래가 보인다. 아들이 먼저 돌고 나오면서 나와 손을 마주치며 파이팅을 외쳤다. 7킬로를 넘어서니 참가한 학생들이 뒤로 쳐지고 대다수 인내심이 강한 장년들의 지구력이 돋보인다. 앞서가는 아들을 따라 잡을 양으로 속력을 냈는데 골인을 하니 51분, 아들은 50분이다. 3년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아들이 나를 앞섰다. 초반 방향만 엉뚱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기록이었을 것이다. 잠시 후 나중에 출발하여 5킬로를 달린 딸이 들어왔고 우리는 완주의 즐거움으로 메달을 걸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저녁에 아들과 텔레비전 앞에 앉아 20년 전 강원도 사북탄광 아이들의 일기를 재구성한 프로를 재미있게 보았다. 탄광촌의 가난과 편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현실감 있는 내용과 감정처리다. 학원에서 수업하는 아내가 전화가 와서 모두 완주하고 메달을 받아 왔다고 하니 별 의미가 없다고 한다. 땀의 결실을 무시하다니 5킬로든 10킬로든 달려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의미와 가치를 모를 것이다.
14일 아침 아들은 다리가 조금 아프다고 하고 나는 감기 기운이 있어도 몸은 가뿐하다. 4월 간부 수련회에 이어 오늘은 인창중 전체 수련회라 학교까지 태우고 가면서 회장으로서 어려운 일을 솔선수범 하라고 했다.
15일 아들과 딸의 담임 선생님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문자를 보냈다. '아들 딸 맡아 고생 많으시다' 아들 담임은 문자가 왔고 딸 담임은 소식이 없다.
16일 아침에 생선구이 식사를 하면서 딸에게 가시를 발라 주고 있노라니 나의 어린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베푼 사랑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오후에는 라면을 먹는 딸이 아빠 월급이 얼마냐고 처음으로 묻기에 약 1천만원 정도라고 하니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이내 흐믓한 표정이다. 밤에 아들이 돌아와 반가움으로 안아 주니 키가 나만한 놈이 밀쳐 내기만 한다.
17일 나는 모의고사일이라 강의가 없고 아들은 수련회 다녀와서 임시휴일이다. 오후에 아들은 이발하고 영화도 보고 입 부분이 돌출되었다고 치과에 가서 상담도 했다. 내가 보기에는 잘 생긴 아들인데 치료를 하면 더 반듯한 모습으로 변한다니 아버지로서 마다할 수가 없다. 숙제를 못하고 학교에 간 딸은 선생님한테 야단맞았다며 시무룩하게 집에 돌아왔다.
18일 아들은 일찍 일어났고 나는 침대에 누워 있는 딸을 등을 긁어 주면서 깨웠다. 비가 많이 내려 아들을 태우고 갔다가 교문에 들어서는 뒷모습을 보며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마음으로 빌며 내가 사는 날까지 사랑하리라 생각했다. 오후에 나의주장 통일 염원을 작성한다기에 도와주었더니 학교에서 발표를 한다며 암기를 시작한다.
19일 새벽에 일어나 아들에게 원고발표 억양, 동작 등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웅변을 한 적이 있고 강의를 오래한 경험으로 지도했는데 어제 늦게 들어와서 20분 정도밖에 못했다. 오후에 발표대회 동상 받았다고 전화 받고 부족한 가르침의 결과인가 싶어 아들한테 미안했다.
21일 딸이 상암동 하늘공원 자연학습장에 엄마랑 김밥을 주문하여 함께 간다. 안산초 소풍 형식의 야외 현장학습으로 아름다운 5월의봄날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22일 어제 저녁에 아들과 딸이 서로 다투더니 아침에 ‘김경목 바보 출입금지’라고 방문에 크게 적혀 있다. 한 집에 살다보면 가족간 남매간 대립과 갈등이 종종 생길 수 있는 법이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말도 안하던 아들이 어제 시내에서 내가 사 온 청진동 해장국을 저녁에 맛있게 먹고 있다.
23일 요즘 커서 그런지 학교생활이 피곤한지 아들의 말 수가 부쩍 줄었다. 활달하고 말 잘하는 아들이 차라리 좋은데 시간을 내어 대화도 해보고 격려도 해야겠다. 24일 불기 2551년 공휴일이라 조카 유진이가 와서 집에서 딸과 함께 자고 일찍 일어나 약수터를 다녀오더니 교보문고까지 나가 하루를 보낸다. 나이도 같고 4촌간이니 가깝게 지내면서 서로 위하고 살아가면 좋을 것이다.
저녁에 아들 중간고사 성적표를 보게 되었는데 284명중 60등으로 기대를 한 나는 실망이 컷다. 새벽에 성적표 때문에 아내와 아들이 다투면서 거실이 시끄럽다. 나도 화가 가시지 않아 거실로 나가 아들의 성적표를 찢고 목소리를 높였다. 점수로 치면 별 차이가 없고 기말고사 때는 더 잘하겠다는데 성격이 급한 나도 문제다.
26일 친척 결혼식으로 가족들이 청주에 내려가고 나 혼자 지내다가 오후에 아들에게 전화를 하니 말 한마디 없이 엄마를 바꿔 버린다. 서운했지만 아직 어린 아들이니 어쩔 수 없다.
27일 일요일 북한산에 다녀와서 아들 하복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책도 사 주고 옷도 사 주고 부모로서 당연히 할 일이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집안이 가난하여 여러가지 불편했는데 부모님은 새벽부터 일터에 나가 고된 농삿일을 하시면서 자식인 나를 대학을 마치게 하셨다. 그 희생과 사랑을 이제 아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저녁에 집에 오니 딸은 우리 아파트 11층에 사는 민정이네 가족과 주말 농장에 다녀 왔다.
28일 월요일 아침에 어제 내가 가져 온 하복을 입고 아들이 등교한다.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은 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고 있는데 인사도 없이 나가버린다. 학원수업 마치고 밤 10시에 집에 오니 아들은 독서실에 보내 달란다며 방에서 두문불출이라고 아내가 하소연 한다. 또 모자지간 위기인가 싶어서 사춘기 때는 독립된 시간을 갖기를 원하며 부모의 영역을 벗어나고픈 호기심이 많을 때니 원하는 대로 보내주라고 했다.
29일 하루에 아침식사는 가장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를 해 온 터인데 아들은 오늘도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나가고 조금 늦게 가는 초등학생 딸을 깨웠는데 짜증만 내니 마음이 편하지 않고 오후에도 아들과 딸이 학교에서 왔는데 잔소리만 늘어놓는 내가 불편한지 모두 외면하고 쥐죽은 듯 기척도 없다. 자랄수록 자신들의 생각이나 영역이 있을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어린 날 목마를 태워주고 안아주고 했던 살가운 시간들이 멀어지는 것같아 아쉽기만 했다.
30일 아들이 독서실을 간다. 하루 이틀은 괜찮지만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평소 활동성이 많은 아들이 적응하지 못 할까 걱정스럽다. 아침에 음악 숙제 때문에 엄마와 함께 컴퓨터에 매달려 있는 걸 보고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는데 드라마 ‘쩐의 전쟁’ 주인공이 나를 닮았다고 아내 문자가 온다. 아마 그가 나를 닮았을 것이다.
31일 말일이다. 지나온 14년 동안 나는 아들을 염려하고 사랑하며 살아왔다. 아들 한 살쯤에 행운목을 직접 구입하여 가급적 함께 살아가자고 리본에 글씨까지 써서 왕십리 거실에 둔 적도 있다. 내가 공부한다고 초등학교 때 부모를 떠나 오랫동안 생활을 해 보니 아쉬움이 많았고 가족간 가까이 지내는 것도 명예나 부를 얻는 것 못지 않게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가치가 있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시 아들이 독서실에 가는지 말도 없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나간다. 학교나 집이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성적도 신통치 않으니 답답함도 많을 것이다.
저녁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하고 통화를 한 정란이 여동생이 서운하다며 나에게 하소연하는 전화가 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르지만 어머니의 성격이나 상황을 생각해서 우리가 이해하고 살아가는 동안 잘 모시자며 여동생을 위로했다. 고향의 어머니는 변함없이 당신의 딸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