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고 세계 정복기 1 숫자로 본 몽골정복. 1279년 몽골정복지(북미대륙+중남미), 몽골 25년 정복지 > 로마 400년 정복지, 징기스칸 당시 몽골 인구 100만, 피 정복국 인구 2억명, 13세기 지구상 가장 인구밀도가 높았던 지역 모두 지배. 몽골인 시력 3.0, 100M 25초가 걸림, 몽골군대는 수전과 보병전을 못함. 11~12세기가 되면 지구가 살짝 빙하기가 됨. 고비사막이 추워지니까 초원으로 변하고 말 생산량이 10~15배가 늘어남. 임진왜란때는 일본이 보병으로 20일이 걸려서 서울 진입, 정묘호란, 병자호란때는 산성에서 지키고 있었는데 기병은 열흘만에 한성에 도착함. 몽골의 수수께끼. 변방의 유목민족이 어떻게 그 넓은 땅을 정복할 수 있었나? 문명도 제대로 없던 어떻게 150년을 유지할 수 있었나? 을지(여진어 : 큰) 을지문덕이 여진족으로 추정됨. 신라와 고구려 전쟁 때는 통역을 대동하고, 고구려와 여진이 전쟁을 하면 통역이 필요없었고, 독립운동 때 만주사람이랑 6개월이면 언어소통을 했다고 함. 우리 언어가 만주어와 상당히 유사함. 당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고구려는 청야 전쟁을 벌임. 이 당시 고구려 인구가 150만명으로 추정함. 고구려는 산성에서 농성하는 전략을 택함. 서양의 성은 뽀족하고, 우리의 성은 평탄함. 서양성은 좁아서 기사와 영주만 버티는 것이고, 고구려는 주민들과 함께 농성이 가능함. 군대가 100만이면 전투부대 20-25만명, 나머지는 보급부대임. 이세민이 수나라 전쟁때 보급을 담당. 몽고군의 첫번째 특징은 보급병이 없음. 항상 전쟁은 보급전에서 끝남. 삼국지에서도 관도대전에서 오소를 불태움으로써 승리함. 샤브샤브(징기스칸이라고 부름, 양고기, 말고기로 만듬, 몽고음식). 한 명이 말을 7마리 정도를 끌고 갔음. 몽고는 유목민족으로 전쟁하는 목적이 다름. 농경민족은 농지확보와 노예를 확보하는 목적. 몽고는 약탈과 목초지가 목적임. 몽골이 직접 통치했던 땅은 제주도와 개마고원만 직접 통치함. 몽골이 고려에 들어와서 처음 설치한 기관이 다루가치(약탈전담기관)였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약탈 품목은 여자와 송골매였음(고려 여자 피부색이 하얗고, 손이 부드러움, 기황후). 러시아 한 도시를 점령한 이후 사흘동안 불태우고 풀을 심고, 마유주를 먹고 모두 죽임. 몽고에는 손님을 학대하지 않고 의형제 문화가 강함. 징기스칸은 자무카를 제외하고 태워죽임. 몽고는 포를 떠서 육포를 만들어서 식량으로 사용. 포로를 잡으면 무조건 앞장세워서 싸움. 유럽의 기사들은 창을 들고 있었고 말을 잘 탔기 때문에 활을 들고 전쟁을 함으로 전략으로 이길 수가 없음. 몽고말은 키가 130cm로 작아서 순발력도 떨어지지 않고 지구력이 좋고, 몽고 병사들은 갑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유리함. 몽골군은 갑옷을 입지 않고 비단옷을 얇게 겹쳐서 입어서 회전하는 화살촉이 말려들어가고 깊이 뚫지를 못함. 2. 몽고세계정복기 2 몽골의 군사원칙. 10진법 체계(아르반 10명, 자군 100명, 밍카트 1000명, 투멘 1만명), 과정은 필요없다. 오직 결과만, 기습, 후퇴, 도주 등 모두 가능. 인력 손실 최소화, 백병전 최소화, 원거리 무기 선호, 선전전으로 항복권유, 약탈의 체계화, 선점령 원칙, 비전투원 배분. 비스마르크의 관료제는 그 당시에 획기적인 제도없음. 관료제는 대규모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고, 관료제는 충성과 무조건적인 명령을 바탕으로 함. 충성과 명령은 신분-성과보장, 능력-선발제도가 이루어져야 함. 기병이 혼란스럽게 되기 쉽기 때문에 군사조직 안에서 관료체계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 징키스칸임. 기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전투가 이루어진 적이 얼마되지 않았음. 정묘효란, 이괄의 난, 병자호란으로 인조는 성을 3번 비움. 농경민족은 성을 비우면 안되었지만 유목민은 그렇지 않았음. 이 당시 전쟁의 장교는 도망가는 병사를 죽이는 게 임무. 한족이 흉노족을 이긴 적이 없음. 정사에서는 여포는 무장이 아님. 항우를 이긴 유방이 군대를 총동원해서 흉노를 침공했지만 비단을 상납하고 후퇴함. 백병전은 이겨도 상처뿐인 영광으로 중공군의 전술임. 징기스칸은 약탈을 체계화하여 점령하고 집단적으로 약탈하여 배분함. 바이킹의 뷔페처럼. 몽골도 형수취수제. 비전투원 과부도 배분. 송나라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동시에 두 곳에서 전쟁을 함. 몽고의 적(유목민족, 타우치이드, 메르키트, 나이만, 타타르 등. 전쟁방식은 기마병 중심의 포위전 동일, 몽골 기마병의 우수한 훈련, 철저한 정복 후 약탈 방식의 확립이었음, 자무카 등 다른 유목민족의 전술 적극 수용). 징기스칸의 최대의 적은 안다(친구) 자무카였음. 자무카에서 3번을 패하고 마지막에서 승리함. 3. 임진왜란 1 김덕령 의병장 선조가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사형시킴. 선조가 2번, 인조 3번 도성을 비움으로써 정통성이 끝남. 조선시대에는 적자-적자 혈통인 왕은 아무도 없었고, 중국역사에서도 왕조가 500년을 가지 못하고, 보통 200년에 끝났음.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명가도'가 목표였으며, 전진기지로 오사카에 성을 쌓아 30만명을 모집하여 16만명을 출전시킨 16세기에 가장 큰 전쟁이었음. 한산대첩, 행주대첩, 진주성 전투를 3대 전투로 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 3대 전투는 벽제관 전투, 울산성 전투, 칠천량전투를 본다. 서울-부산간 400km 20일 도착. 부산진성-동래성-밀양성-상주-탄금대-한양입성에 20일 걸림. 보병은 한시간에 4km를 걸음. 그 당시 도로가 안 좋았으니 하루평균 8시간 진군. 병자호란때는 훨씬 먼데도 기병으로 7일만에 한성에 진입함. 말이 하루에 50km씩 진군함. 조총은 비싸고, 활보다 사거리가 발사속도, 명중률 떨어짐. 조총부대의 최대 장점은 궁병, 기병은 3~5년은 훈련을 해야하지만, 쉬운 훈련으로 대규모 조총부대 조성이 가능하고, 기마대, 보병대열 붕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숙련병 1명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농업을 포기한다는 의미였지만, 조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조총은 활보다 갑옷을 뚫을 수 있음. 귀를 잘라왔을 때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하는 방법은 우리의 귀걸이였음. 또한 우천시 사용불능. 동학농민 전쟁때 1600명(기관총)/100,000명(화승총) 비오는 날 동학군이 괴멸됨. 오다 노부나가가 조총부대를 조성해서 일본을 통일하게 됨. 병자호란때는 남한산성에 의병들이 쌍령에 4만명이 모였으나 여진족 300명에게 전멸당함. 의병들이 조총부대였는데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지휘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 방탄복은 솜으로 만들어서 총 맞으면 안 죽는데 칼 맞으면 죽음. 얇은 갑옷은 뚫지만 나무판자는 뚫지를 못함. 청나라가 목책방패로 막으면서 괴멸을 시킴. 조총 때문에 졌기 때문에 라는 논리는 선조가 만들어 낸 논리. 조총부대 옆에는 창부대가 있어야 함. 일본군은 접근전에 강함. 우리의 무기는 보병과 총통류가 있었음. 이 당시의 포는 쏘을 때 터지면서 쇠구슬이 파편으로 날아가는 포임. 벽제관 전투 : 선조가 명나라에 도망가는 것을 포기한 이유가 명나라의 의심 때문이고, 호송 인원을 100명만 데리고 오라고 해서 가지 못함. 명군의 원조와 평양성 탈환. 조승훈 부대(3천 명군) + 3천 조선군으로 평양성 공격->유인전술에 말려 전멸. 이여송부대(5만) 병력으로 평양상 포위->평양성 탈환. 이여송의 벽제관 패전. 왜군 평양성 패패로 한양에 집결. 후방에 보병부대 남기고, 정예기병 몰고 추격전진, 일본군 조총부대 매복에 걸려 기병부대 전멸. 임진왜란은 1592년, 1597년, 1599년 세 번 싸운 전쟁인데 벽제관 패배이후 명나라가 평양에서 내려오지를 않음. 임진왜란에서 결정적인 순간은 한성을 점령한 일본이 의주에 진군하다 며칠을 멈춘 이유가 한산대첩으로 보급로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침공할 때는 항상 수륙병진 전법을 사용함. 이때 소서행장이 의주로 진군해서 왕을 잡았으면 역사가 바꿨을 것임. 평양성에서 깨진 이후 일본의 목표는 점령을 포기하고 4도 할양을 주장하기 시작함. 일본의 모든 전쟁은 왕은 영주이기 때문에 성을 장악하면 끝이 났는데 우리는 왕이 도망가서 황당하게 생각함. 일본 본진은 한성을 버리고 부산진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6년간 전쟁이 없었음. 초창기 일본부대는 정예군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약탈이 없었는데 전쟁이 길어지고 보급로가 끊어져서 약탈이 시작된 것임. 이 전쟁으로 인하여 전쟁이 7년 장기전쟁으로 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됨. 4. 임진왜란 2 울산성 전투 : 울산이냐? 순천이냐? 가등청정이냐? 소서행장이냐? 경상도냐? 전라도냐? 정유재란(1597년) 때도 칠천량에서 승리하여 수륙병진 전법을 사용했는데 명량에서 패배이후 노량이전까지 해전이 없었음. 육지에서는 직산전투에서 패한 이후 장기적으로 4도를 할당 받으려고 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목적은 명나라의 황제가 되어 영지를 할당하는 것이 목적이었음. 일본은 남해안에 23개의 성을 쌓아 놓고 장기 농성전을 함 순천(소서행장, 상인출신, 온건파), 울산(가등청정, 무관출신, 강경파, 임해군을 포로로 삼았음). 조명 연합군이 울산성을 포위하게 됨. 일본에서는 100만석을 넘는 영지를 가지고 있는 영지가 최고였음.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들이 죽고, 다시 아들을 낳음(히데요리). 오다 노부나가의 미관 말직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의 신발을 품고 있었고, 심부름 시킬 때 싸게 해 주었음. 오다 노부나가가 죽었을 때 죽인 놈을 제일 처음에 죽인 사람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였음. 오다 노부나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얻었기 때문에 죽기 전에 100만석 이상을 가진 5명의 영주와 관료 5명을 불러서 아들한테 충성을 서약시킴. 관료 미쓰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관계가 안 좋아서 미쓰나리와 세기기하라 전투(1600년) 일본군 30만명이 투입. 미쓰나리의 최대 결점은 가등청정과 사이가 안 좋았음. 가등청정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붙었고 소서행장은 미쓰나리와 붙었음. 소서행장은 카톨릭 신자여서 자살을 거부했고 일본 역사책에서 개 취급을 당함. 가등청정은 영지를 선사받고 임진왜란의 최대 영웅이 됨. 이때 가등청정이 이에야스를 도운 명분이 히데요리를 지키겠다는 것이었음. 1616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히데요리를 오사카 성에서 죽임. 이산해(동인)와 정철(서인)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시키기로 해 놓고 이산해가 먼 산을 봄. 정철을 귀양보내게 되고 여기서 관동별곡을 쓰게 됨. 정철이 돌아와서는 동인들을 다 죽임. 정철에게 술 그만 먹고 붕당정치 그만하라고 타일렀던 사람이 이이였음. 그래서 광해군이 집권해서 영창대군과 왕비를 죽임으로써 나중에 엄마를 죽였다는 명분으로 서인이 반정을 하게 됨. 조명 연합군이 울산성을 공격하게 됨. 이순신이 처벌을 받게 된 것도 가등청정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을 치라고 했는데 공격을 하지 않았기 때문. 13일간 5만명이 1.6만명을 포위 공격. 왜군 8만명 구원병. 조명 연합군 퇴각. 가등청정은 500명이 살아 남았음. 성 안에 물이 다 떨어졌지만 마지막 날에 비가 오고 지원군이 옴. 평양성에서는 졌지만, 축성술(가토 기요마사, 구마모토성을 쌓음, 우물 120개를 만듬)에 좋아서 버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죽고, 울산성 전투 승리 이후로 왔던 병사의 희생없이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전투임. 칠천량 전투 : 말이 안되는 전투. 부산(1000척)에 일본군이 집결된 있는 상태에서 부산 원정(판옥선 150척)을 갔다가 대패함. 가토가 대마도로 간다는 정보를 받고 이순신을 보냈는데 가지 않음. 이순신의 탁월함보다는 조선 수군이 탁월해서 이긴 줄 알고 원균을 보낸 것임. 일본은 달이 밝으면 야습을 하기 때문에 잠이 안 와서, 수루에 앉아서, 뿔피리 소리에 애간장이 녹는다는 시. 원균도 출정을 하지 않고 버티고 육군(권율)에게 가라고 했지만, 권율이 명령을 내림. 임진왜란 초창기에 56척이 150척으로 규모가 크짐. 칠전량에서 일본 육군한테 야습을 당하면서 학살을 당함. 5. 제1차 세계대전 : 지옥의 참호전 1000만명이 죽었음. 1차대전이 끝나고 국제연맹이 성립되고, 2차대전 이후로 UN이 성립함. 1차(오스만투르크와 오스트리아), 2차 대전(일본, 이탈리아)은 독일이 전세계를 상대로 싸운 전쟁임. 공통점은 독일이 영국(유럽 최고의 해군), 프랑스(유럽 최고의 해군), 미국(1차 세계대전이후 GDP 1위), 러시아(전세계 최고의 영토)와 싸운 전쟁. 처음에 프랑스 이기고, 러시아를 이기고, 영국을 못 이기고 있다가 미국이 참전하면서 패하는 전쟁이 1,2차 세계대전임. 1차 대전의 역사적 쟁점. 1.전쟁은 왜 발생했나? 2. 독일은 어떻게 전유럽을 상대로 싸웠나? 3. 참호전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참호전은 수비가 강함. 보병이 돌격하면서 포병이 지원하는 전투가 19세기 전투의 전형. 여기서 새로운 방어 무기인 기관총이 등장하게 됨. 1883년에 맥심에서 최초로 개발. 이 기관총으로 유럽이 아프리카를 학살하였고, 일본군이 동학군을 학살하게 됨. 시가전에서 기관총이 다시 한번 위력을 발휘함. 탱크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옴. 탱크는 시가전에 사용하지 못함. 기관총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무기임. 현재 인류(60억)가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인구의 7% 차지. 인류의 15%가 싸워서 죽음. 1차 2차 세계대전에서 3%가 죽음. 기관총 때문에 곡사포가 나옴. 참호전을 4년을 하는데 용변, 시체가 난무하는 지옥임. 1914년에 독일군과 영국군이 크리스마스때까지 신사적이 남아 있었음. 참호전을 이기기 위해서 독일이 염소가스(인류최초의 화생방전)을 사용함. 염소가스로 인해 죽을 확률은 3%지만 진격을 위해서 사용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히틀러가 가스전에 피해자였기 때문에 유태인한테만 가스를 사용하고 전쟁에서는 사용하지 않음. 영국과 프랑스에 식민지가 많았고, 독일은 식민지가 없어서 식민지를 쟁탈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쟁. 1.경제적 배경 : 식민지 쟁탈전. 영국 3C(캘커타, 카이로, 케이프타운), 독일 3B(베를린, 바그다드, 비잔티움) 2. 정치적 배경 : 범슬라브주의(러시아의 세르비아 지원), 프랑스의 복수심(프로이센 전쟁 패배와 로렌지방 복구), 범게르만주의(독일과 오스트리아 제국 연합) 유럽과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영국과 프랑스가 모두 식민지로 가지고 있었음. 미국을 제외하고 브라질(포르투칼), 남미(에스파냐)가 가지고 있었음. 더 먹을 독일의 식민지가 없음. 식민지 쟁탈전이라고 1차 대전을 배웠지만 러시아와 독일이 싸운 것을 보면 제대로 설명이 안됨. 이 당시는 독점자본주의였기 때문에 이 당시는 공급이 많아 수요처가 필요했음. 식민지는 원료의 공급처인 동시에 수요처가 되었음. 미국이 전쟁에 참여한 이유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양쪽에 무기를 다 팔아먹음). 이 당시는 미국에 록펠러 같은 재벌이 등장하고 독점자본주의가 발전하고 20세기 초반에 미국에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함. 600km를 참호를 파고 전쟁을 함. 이 당시는 젊은 남자는 다 군인이고 가장 힘든 것이 군인들의 파업이었음. 이 시대는 상대적 빈부격차가 가장 큰 시기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대립이 가장 큰 시기임.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빈부차가 급격히 줄어들게 됨. 즉 이 당시의 전쟁은 빈부격차와 같은 안쪽의 모순을 바깥쪽으로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것임. 전쟁은 노인들의 욕구에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이다. 미국도 군인들이 개입해서 노조의 파업을 해결하는 시기였음. 선발 자본주의 조차도 소수의 독점재벌들과 대다수의 인민들과의 격화된 문제가 있어 모두 반공주의 국가여서 민족주의적 문제로 전환한 것이 전쟁임. 사라예보 사건과 대전 발발. 1914년 사라예보,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 암살범에게 피격.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 선전포고. 독일 벨기에 침공. 영국 독일에 선전포고.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 선전포고. 1917년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 이때 러시아와 프랑스는 동맹상태. 1차 세계대전 직전 철강생산량에서 영국을 추월함. 비스마르크는 독일(게르만)이 프랑스(라틴)과 러시아(슬라브) 사이에 있기 때문에 절대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을 택함. 비스마르크가 죽은 이후 빌헬름 2세때 독일에서는 사회주의자가 득세하고 있었음. 그래서 독일느 슐리펜 계획을 세움. 1. 프랑스-러시아 전선분리 방지. 2. 독일 7/8 병력 프랑스 침공으로 6주내 파리 점령. 3. 북부에서 파리를 향해 낫질하듯 프랑스 침공 4. 최후로 알자스 로렌 포위 섬멸. 모든 나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전쟁을 하지 않음. 독일은 러시아를 막는 사이에 프랑스를 점령하는 전술을 택함. 이 당시는 프랑스는 육군이 막강했지만, 러시아는 땅이 넓기 때문에 프랑스를 택함. 독일의 8개 군단중에서 1개 군단이 러시아를 방어함. 낫질작전을 위해서 벨기에를 공격하면서 돌아서 감. 벨기에와 영국이 동맹이기 때문에 프랑스는 벨기에를 침공하지 못할 것으로 봤고 빌헬름 2세는 영국왕과 사촌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 영국이 전쟁에 개입함. 단기전에서는 약소국이 강대국을 이길 수는 있지만 장기전에서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이기는 법이다. 독일군도 파리 앞에서 이틀을 쉬게 되고 통신이 발달되어 프랑스 군이 정비하게 되는 계기가 됨. 이 당시 전쟁에서 가장 잘하는 것이 포위전술이었음. 참호전의 시작. 마른 전투 : 독일의 불운, 프랑스의 기적. 1군 파리 진격 멈추고 2군과 합류. 측면 노출된 독일군, 프랑스 포격전. 1군과 2군 사이 50km 거리노출. 1,2군 사이로 프랑스군 진입시 후퇴, 우연히 들어온 영국군 발견한 독일군 자진 후퇴. 5년간의 참호전 개시. 독일과 프랑스 사이로 600km의 참호(서부전선)를 팜. 참호전이 형성되면서 독일이 지게 되는 계기가 됨. 참호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독가스와 탱크, 화염방사기, 곡사포가 나오고 1차세계대전 마지막에 등장하지만 크게 사용하지 못함. 2차 세계대전에서는 탱크가 나오면서 참호가 무력화됨. 탱크는 기관총을 방어하기 위해서 기갑을 세웠음. 원래 탱크는 보병을 돕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히틀러의 기갑사단이 존재함. 참호전은 물자가 떨어진 나라가 지는데 5년만에 독일의 물자가 떨어져서 패하게 됨. 독일은 영국의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서 잠수함을 만들어서 배를 침몰시킴. 미국이 영국에 보급을 하기 때문에 카리브해(쿠바)에 까지 가서 미국 배를 침몰시킴. 전쟁이 끝나자마자 독일체계가 붕괴됨. 탄넨베르크 전투(동부전선) : 러시아 30개 보병사단 + 8개기병사단(40만) / 독일 11개 보병사단 + 1개 기병사단(16.6만) 마수리아 호수->부대 분리. 8군단의 기적. 8군단이 러시아를 막아냄. 1차 세계대전은 6500만명이 참전하여 930만 사망, 2300만 부상. 6. 제2차 세계대전 ; 서부전선 이상없다. 1차 대전의 역설은 독일(빌헬름2세에서 바이마르 공화국)과 러시아(짜르에서 레닌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소비에트공화국)가 둘 다 공화정으로 바뀌게 된다. 2차 대전의 역설은 식민지 전쟁이었지만 2차 대전 이후 대부분의 식민지 국가들이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39년 독소 불가침조약. 서구 지성인(좌파, 공산당원들이 많았음)에게 준 영향은 상당히 컸음.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과 소련은 서로 지원을 하면서 대립관계에 있었음. 엄청나게 많은 서구 지식인들이 스페인 공화파를 위해 싸웠고, 스탈린도 공화파를 도와주고 있었음. 조지 오웰(카탈루니아 찬가)란 책을 보면 공화파와 스탈린 파에 의한 알력을 그린 소설임. 공화국과 프랑크 총독(히틀러)과의 스페인 내전에서 히틀러의 마을 포격을 보고 울면서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피카소가 그리게 됨. 폴란드 점령전. 8월 독소불가침 조약 체결이후 9월 폴란드 침공, 소련 폴란드 침공, 폴란드 95만, 독일 180만 + 소련 80만, 폴란드와 독일 축구에서 열광하는 이유. 폴란드 20만 전사, 70만 포로. 카틴 숲 학살사건(2.5만, 사회지도층 인사를 스탈린이 학살). 전격전 용어 최초 사용(기갑부대+공군지원). 폴란드는 프랑스와 영국을 믿고 전쟁을 하지 않고 영국과 프랑스는 선전포고만 함. 철벽 대독전선 ; 마지노선. 프랑스 육군장관 마지노. 1927~1936간 참호전 대비 건설. 스위스 ~룩셈부르크 간 총 750km. 벨기에 거부로 벨기에 라인 무방비. 2차 대전은 탱크가 있기 때문에 콘크리트로 제작함. 원래 이 당시의 생각은 보병들이 오고 탱크가 지원하는 전략이었으며, 탱크와 포격전을 생각해서 만들게 됨. 독일은 1차 대전 패배이후 베르사유조약 때문에 무기를 만들 수가 없는데 러시아에서 기술을 배워 무기를 만들었음. 프랑스가 100만명의 군대로 마지노선을 지킴. 마지노선을 설치하는 바람에 프랑스의 공군력이 약화됨. 프랑스와 독일은 공군전이 없었음. 1차 대전 낫질작전을 생각하여 프랑스는 백만 대군을 보냈고, 중앙은 아르덴숲이 있어서 독일의 기갑부대가 못 올 줄 알았지만, 독일은 나무를 베면서 진격하게 됨. 뒤를 돌아서 100만 대군을 포위 섬멸하게 되고 34만명이 덩케르크(영국 프랑스 34만명 구출작전, 프랑스 2개 사단 철수지원, 영국의 덩케르크 정신)로 도망을 갔는데 히틀러가 추격을 하지 않아 그 부대가 나중에 프랑스를 재건하는 바탕이 되는 전쟁사의 미스테리임. 전격전으로 공군 폭격기가 방송, 통신, 물류를 차단, 수송기가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교란, 탱크 기갑부대 진입, 보병이 진군하는 전략. 이 전략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독일은 전쟁 경험이 많아서 전격전을 사용하게 됨. 독일이 프랑스 점령 이후 무솔리니 이태리 군 50만명이 프랑스 군 2개 사단에게 전멸함. 독일의 영국 항공전.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소수에게 빚을 진 적은 없었다 ? 처칠. 바다사자 작전-> 항공전 패배로 포기. 독일 1389대 격추, 영국 792대 격추. 이 당시는 항공기보다 조종사가 더 중요함. 독일 괴링(공군참모총장)이 실패한 이유는 영국 상공에서 싸웠기 때문이고, 이 당시 비행기들은 장거리 능력이 없었음. 이 전쟁으로 독일이 처음으로 위축됨. 7. 제 2차 세계대전 ; 독소전에 들어서는 이, 모든 희망을 버려라(단테의 신곡에 적힌 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 중에 하나. 히틀러가 300만을 처음 투입하여 600만 명으로 쳐들어가고, 소련은 1000만 명으로 맞서는 전쟁. 러시아 600만 명 사망, 500만 명 포로. 2차 세계 대전의 실질적 승리자는 소련임. 히틀러는 왜 소련을 침공했나? 1. 히틀러 ‘ 나의 투쟁’ 독일인을 위한 넓은 생존권이 필요하니, 이를 위해 동쪽의 영토가 필요하다. 2. 서부전선의 대성공에 힘입은 자신감. 3. 공산주의와 유태인에 대한 극도의 반감. 4. 미군 참전시, 동서 양전 수행의 곤란함-> 소련 조기 정복의 전략적 필요성. 우크라이나 곡창지대와 우즈베키스탄 석유자원을 확보하여 미국과의 장기전을 대비하기 위함. 미국이 중립을 하고 있지만 미국이 100% 참전을 하기 때문에 소련을 먼저 공격하고자 함. 그것이 히틀러의 결정적인 패착이 됨. 농업 후진국 소련과 선진 공업국 독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편견임. 1917년 레닌 혁명이후 1927년 죽고 신경제정책으로 전격적인 공업화가 시작됨. 경제발전을 제일 빨리 한 사람이 스탈린이었다. 스탈린 시절에 연 평균 경제성장률 12%를 20년 동안 유지함. 그 발전 전략은 철저한 농민희생을 바탕으로 함. 어떤 국가도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경제를 발전시킴. 1.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 공업의 획기적 발전 2. 개전 당시 러시아의 경제력은 세계 2위 3. 항공기, 전차 등 무기수준 독일에 비해 우수. 적백내전으로 우수한 실전 경험 4. 스탈린의 대숙청작업으로 고참장교 전멸(히틀러가 유태인을 600만 학살하였고, 스탈린이 독일 간첩혐의로 600만 명을 학살함. 스탈린이 우크라이나 인들을 대부분 학살하였고, 독일을 환영하였으나 히틀러가 학살함. 이것이 핀란드 대패 및 독소전 초기 대패배의 원인이 됨). 1930년대가 되면 우리 독립투사들을 포함해서 전세계가 소련의 사회주의를 배우고자 함. 핀란드 600만, 소련 인구 3억과의 싸움에서 핀란드 스키부대 게릴라전에 괴멸 당하다가 봄이 되어서야 소련이 이김. 바르바로사 작전(1941년) 독일군 390만(레닌그라드, 모스크바, 키예프로 침공, 전사 25만, 부상 50만). 소련군 320만(포로 330만, 부상 300만, 전사 80만). 이때 소련군의 탱크가 6.25때 사용되던 T-34였음. 독일군이 포로를 전부다 죽였기 때문에 러시아가 결사항전을 하게 됨. 소련이 초기 괴멸되는 이유는 스탈린의 오판 1. 스탈린은 독소불가침 조약을 맹심->독소국경(스탈린 라인)에 병력 배치, 전쟁 전날까지 소련이 독일한테 전쟁물자를 판매함. 2. 독일 침공에 대한 반응. 괜히 독일을 자극하지 말라(공군 전멸) 3. 기갑부대 해체->스페인 내전 당시 소련 탱크의 참패->기갑부대 전술 무용론, 대두. 탱크는 부대가 되거나 보병을 지원을 받아야지만 효과를 발휘함. 소련의 전쟁영웅. 주코프의 반격. 남부 키예프 독일에 함락(주코프 포기 주장) 2. 모스코바 공략적->극동군 보강으로 방어 성공 3. 스탈린그라드 전투 지휘->승리. 모스크바 공략전 ; 태풍작전. 1. 가을비로 도로 진흙탕->진격속도 늦춤 2. 스몰렌스키 전투->소련군 저항으로 2달간 소모 3. 히틀러의 키예프 우선론->구데리안군 키예프 이동 4. 총전투 참가자 : 700만명(스탈린그라드의 2배) 5. 소련 190만 사상, 독일 60만 사상 6. 독일 전격전 최초의 패배. 탱크 부동액이 날씨가 추워서 얼어버림. 전쟁 초기에 공군력과 탱크가 괴멸 당했기 때문에 주로 소련이 시가전을 함. 시가전의 장점은 소총과 기관총전이기 때문에 소련군이 시가전을 하게 됨. 시가전은 전선이 없음. 미군이 이라크전에 시가전에서 다 죽었음. 극동에서 군대가 계속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독일이 패함.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년). 독일군 85만 사상, 9만 포로 1. A군단 코카서스 진출 2. B군단 스탈린그라드 점령 3, 시가점령전 돌입 4. 포위 후 히틀러 옥쇄 명령. 소련군 112만명 사상. 1. 병력 축차투입으로 시가전 2. 남쪽과 북쪽에 대규모 병력투입->천왕성 작전 3. 루마니아군, 헝가리군 등 북부군 포위 섬멸. 볼바강은 바다 같은 강으로 30분을 건너야 함. 스탈린그라드 근처의 우크라이나와 우즈베키스탄이 있기 때문에 중요했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독일은 희망을 잃게 됨. 독일 전체 군대의 80%가 소련에 들어왔는데 주코프에 의해서 괴멸됨. 2차 세계대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노몬한 전투(1939년) 1. 몽골-만주국 경계선에서 일본군 몽고기병대 사살 2. 상호원조조약상 소련 교전 시작 3.초기 일본 공격으로 소련 전투기 100대 파괴 4. 소련 대반격->주코프 장군 지휘로 일본군 괴멸. 일본, 이 전쟁으로 독일의 대소련 전투요청 무시, 주코프 전쟁영웅으로 등극, 일본 태평양 전선으로 이동하는 계기가 되고 미국의 참전계기가 됨. 몽고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사회주의 국가가 됨. 소련은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됨. 산업혁명 이후 황인족이 백인족을 이긴 최초의 전쟁. 윤치호가 이 전쟁으로 친일을 하게 되고 해방 이후 목숨을 끊음. 일본은 기갑부대가 없음. 소련 주코프가 기갑부대로 보병을 전멸시킴. 8. 제2차 세계대전 ; 진주만에서 히로시마까지 제로센 전투기는 선회반경이 짧아서 꼬리를 잡기가 유리함. 세계 최대의 전함 야마토 전함. 미드웨이 해전(1942년) 1. 루스벨트 진주만의 복수로 도쿄 공습(둘리툴 특공대) 2. 항공모함의 공습에 놀란 일본, 항모전 돌입.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 경제동향을 보면 소련이 GDP 2위, 독일은 소련과 비슷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적었음. 2차 대전은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는 전쟁으로 부조리한 전쟁임. 히로시마에 리틀보이. 원자탄이 터짐. 원래는 고베를 폭격하러 갔는데 날씨가 흐려서 보이지 않아 히로시마에 떨어뜨림. 거꾸로 민간인도 죽여야 하는 전쟁임. 민간인은 공습으로 많이 죽음. 공습은 무기를 만드는 시설을 제압하기 위함. 2차 대전이후 모든 전쟁은 진정한 총력전이 됨. 옛날 전쟁에는 국력과는 상관이 없었음. 일본의 경제력이 미국에 비해서 경제력이 게임이 안되었음.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자 처칠은 만세를 불렀음. 일본의 광기, 임팔전투 1. 무다구치 렌야 중령, 인도 임팔 공략 주장 2. 인도 반군 원조 약속 + 영미 무기루트 봉쇄 3. 보급문제(일본인은 채식민족, 몽골군처럼 물소를 끌고감. 적의 무기 노획) 4. 10만 일본군, 15만 영국군.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재성이 연기했던 전쟁. 가다가 3만 명 전사하고 전멸함. 종전 후 전범재판에서 렌야 중령은 무죄 석방을 받게 됨. 미드웨이 해전 승리 이후 미군은 일본군을 섬멸하는 전쟁을 함. 1910년 한국 식민지로 일본 독점자본주의(제품의 판매처, 원료의 공급처)로 토지조사령을 명령한 것이 쌀을 가져가기 위함이고, 회사령을 명령한 것은 우리의 독자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막음. 1919년 문화통치를 하는 이유는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10%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고, 이후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터지면서 일본도 공황으로 돌입. 영/프는 식민지가 있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었고, 미국은 재정이 튼튼해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일본과 독일은 군국주의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음. 이 바탕으로 31년 만주를 침공하고 37년 중국을 100만 명으로 침공함. 이때 일본은 남면북양 정책을 사용함. 남쪽에는 면화, 북쪽에는 양화를 공급하게 됨. 보급전을 위해서 하게 됨. 중국과의 전쟁이 생각보다 길어지게 되면서 고전을 하게 됨.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두 가지가 목재와 석유이다. 목재와 석유가 동남아시아에 많았는데 미국이 일본에 수출금지령을 내렸고, 중간에 필리핀이 끼어 있음. 필리핀은 미국 식민지였고 맥아더가 지키고 있었음. 미국 전투기가 필리핀에 오기 전에 공수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진주만이었기 때문에 일본이 공습을 함. 일본식 선전포고(먼저 때리고 싸우자고 함, 청일전쟁, 러일전쟁, 미일전쟁, 약하니까 이런 식으로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다). 군사적 기반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본군의 광기가 나온 것이다. |
출처: 가포선생의 꿈꾸는 것에 관하여 원문보기 글쓴이: 가포선생
첫댓글 최진기님 강의는 정말 명강입니다 많이들 시청하세요
http://wookiz.tistory.com/27
말할 때마다 하면 좋은말 25가지 참 내용이 좋네요.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세요
레옹
마틸다 "사는건 언제나 힘든가요? 어리기 때문인가요"
레옹 "아니 언제나 그래
*고속주행 시 2시간 마다 20분 휴식해야 합니다.
고속도로 주행 시에는 2시간 마다 20분 정도 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고속도로에서 주행하면 타이어 내부의 온도가 올라가는데, 보통 15분 이내에 최고 온도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때 고온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무가 경화되면서 내구성과 수명이 단축된다고 하는데 따라서 타이어의 안전을 위해서는 2시간 주행마다 20분씩 휴식함으로써 타이어 열을 식혀주는 것이 사고 예방에 큰 도움이 됩니다.
출처: http://infotong3.tistory.com/13 [정보통통]
"그러나 네가 나를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돼.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고 난 너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테니까."
"나를 길들여줘...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그러나 만일,
네가 무턱대고 아무 때나 찾아오면
난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러나 네가 나를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돼.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고 난 너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테니까."
"나를 길들여줘...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그러나 만일,
네가 무턱대고 아무 때나 찾아오면
난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니까..."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어서는 안돼.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을 지어야 하는 거야.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난 나의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이다.
4.제조 일자가 빠를수록 좋다?
- 알려진 상식중에 가장 잘못된 부분이라고 본다.
타이어는 고무와 카본, 스틸벨트와 원단및 와이어로 이루어져 있다.
원부 재료만 70여가지에 생산과정도 까다롭고 굉장히 정밀하다.
그런데 주 재료가 고무이다보니 약품에 민감하다.
유황이나 노화 방지제,가류 촉진제와 같은 화학 약품은
제품 생산 후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타이어도 숙성이 된다.
기본형 타이어는 평균 6개월에서 1년, 고급형은 거의 1년,
스노우 타이어도 1년정도 필요하다.
금방 만든 떡을 누르면 푹 들어가지만 굳으면 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생산한지 3년 이내에만 끼우면 주행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타이어 상식]
보통 20,000km/1sus 정도를 탄다고 가정했을 때 자동차 타이어는 한 번 구입하면 3년에서 4년 정도를
사용하는게 적당합니다. 즉 타이어 교체 시기는 60,000 ~ 80,000km 정도입니다.
위의 내용이 원칙은 아니며, 운전습관과 정비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스팔트 도로보다 시멘트 도로를 많이 주행하거나, 급출발, 급제동을 자주 사용하게 되면
타이어의 마모는 빨라집니다.
또한 적정 공기압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휠얼라인먼트가 맞지 않았을때도 수명이 단축됩니다.
1.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에서 실패로 걸어가서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2. 늘 하던대로 하면 늘 얻던 것만 얻는다.
그러니 변화하라
3. 기다리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지만
찾아나서는 사람에게는 더욱 좋은 일이 생긴다.
그러니 게을러지지 마라!
4. 추구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우리의 모든 꿈은 이뤄질 수 있다.
출처: http://backmoney.tistory.com/28 [[흑질백작] 백만장자의 마케팅이야기]
마음이든, 물건이든 남에게 주어 나를 비우면
그 비운 만큼 반드시 채워집니다.
남에게 좋은 것을 주면 준만큼 더 좋은 것이
나에게 채워집니다.
좋은 말을하면 할수록 더 좋은 말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을 쓰면 쓸수록 그만큼 더 좋은 글이 나옵니다.
우연한 행운을 기대한다면 당신은 행운을 기대한 시간만큼 성공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특히여름철은 낮과 밤, 새벽의 일교차가 크다는 것은
아시죠?.
사람도 느끼듯이 자동차 타이어 내부의
공기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해 여름철 타이어
관리를 해주지 않는다면 공기가 빠지기 쉬워질
수 있어요.
장마철에는 타이어의 공기압을 평소보다 10% 정도
높여주는 것이 좋은데, 타이어 표면의 배수성능을
향상시켜 수막현상에 의한 미끄러짐을 줄여주기
때문이죠.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 이상 고속주행 할
때는 타이어 공기압이 적정수준보다 10~20%
높아야 해요. 타이어 공기압이 낮으면
타이어와 도로가 닿는 면적이 넓어져 마찰열이
상승하고 타이어가 파손되는 요인이 됩니다.
낫또 효능으로는 풍부한 영양과 함께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유익한 영양소가
만들어지는 건강식품 중 하나입니다.
발효과정에서 나오는 영양소 중에는
아미노산 조각들을 만듭니다.
아미노산은 변비와 설사를 예방하는데
좋고 혈압을 상승시키는 효소의 생성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더불어 낫또의 끈적거리는 부분에
함유된 단백질 분해 효소는 혈전의
원료가 되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작용을 해
심혈관 질환 예방에 탁월합니다.
상처가 없는데 아프다. 상처가 있는데 아프지 않다. -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말 : 네 생각은 어때?
든든한 위로의 말 : 내가 뭐 도울 일 없어?
상대의 자신감을 하늘로 치솟게 하는 말 :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출처: http://wookiz.tistory.com/27 [우기즈닷컴]
나 자신이 소중한 것처럼 남도 소중히 생각한다면
극단적인 말귀에 거슬리는 말보다는
곱고 고운 말 아름다운 말
희망을 심어주는 말을 하지 않을까요?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
기분 좋고 밝고 맑고 희망의 말을 한다면
서로 환한 미소짓고 힘든 세상
육체는 힘들어도 편안한 마음과 함께
좋은 인연으로 살지 않을까요?
내가 만일 가치있는 발견을 한 것이 있다면, 다른 능력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다 참을성 있게 관찰한 덕분이다.
If I have ever made any valuable discoveries, it has been owing more to patient attention, than to any other talent.
아이작 뉴턴
[민사]온라인 게임을 하던 중 피고가 원고의 게임 미숙을 이유로 같은 팀 대화창에서 원고에게 심한 욕설을 한 사안에서 피고가 1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판단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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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13세의 피해자를 차량으로 충격하고도 5만 원과 명함만을 건네준 채 어떠한 구호조치도 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한 피고인에게 특가법위반(도주치상)죄를 유죄로 인정한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