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寺刹(한국사찰)의 柱聯(주련) -2-
첫 번째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글의 대해 살펴보면 대웅전(大雄殿)이나 지장(地藏殿),
극락(極樂殿) 등에는 그 전각에 모신 부처님을 찬탄하기 위한 글이 적혀 있다.
대웅전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이 많이 적혀있다.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十方世界亦無比(십방세계역무비)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유아진견)
一切無有如佛者(일체무유여불자)
천상천하 어느 곳에도 부처님같이 거룩하신 분 없나니
시방세계 어디에도 비교할 데 없네
세상천지 온 누리 다 돌아보아도
부처님같이 존귀하신 분 다시 없도다.
사찰의 지장전에 서는 다음의 글귀를 흔히 볼 수 있다.
地藏大聖威神力 (지장대성위신력)
恒河沙劫說難盡(항하사겁설난진)
見聞暗禮一念間(견문첨례일념간)
利益人天無量事(이익인천무량사)
지장보살님의 위대하신 신통력이여
억겁을 두고 설명해도 다하기 어렵도다
보고 듣고 예배하는 잠간 사이에도
인천(人天)에 이익 된 일 무량하여라.
그리고 극락전에서는
極樂堂前滿月容(극락당전만월용)
玉毫金色照虛空(옥호금색조허공)
若人一念稱名號(약인일념칭명호)
頃刻圓成無量功(경각원성무량공)
극락당 앞에 둥근 달과 같은 아미타 부처님 용모
옥호의 금색광명 허공을 비치네
만약 사람들이 일념으로 명호를 부르면
잠깐사이에 무량 공덕 원만히 이루리다.
라는 글귀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밖에도 부처님을 찬탄하는 내용의 주련은 한없이 많다.
예로 몇 사찰을 들어보자.
계룡산 동학사 대웅전에 모셔진 주련의 내용도그 중의 하나로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변시방중)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汪洋覺海妙難窮(왕양각해묘난궁)
부처님은 시방세계에 두루 계시니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 한결 같으시네
넓고 크신 원력 구름같이 다함 없고
한없이 넓은 깨달음의 바다 아득하여 끝이 없네
조계산 선암사의 주련은 다음과 같다
巍巍堂堂萬法王(외외당당만법왕)
三十二相百千光(삼십이상백천광)
莫謂慈容難得見(막위자용난득견)
不離祗園大道場(불리기원대도량)
높고 높아 당당하신 만법왕 부처님
32상의 백천 광명 눈부시구나
자비로운 그 모습 뵈옵기 어렵다 말하지 말라
기원정사 떠나지 않고 항상 이 대도량에 계시네
이상과 같이 각 전각마다 다 그 전각에 알맞은 글을 주련으로 선택하지만
이것은 모두 주련을 만들 당시 그 절 스님의 결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일정한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주련은 다양한 공부거리가 되나보다.
두 번째로는 깨우침을 주는 내용을 찾아보자.
미리 공부를 하여 성불한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가르침을 주신 내용의 주련 글이
여러 곳에 있다. 수없이 많은 내용들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한다.
금산사(金山寺)는 주련이 없는 사찰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누문(樓門) 밑에 작은 판자로 아래의 글이 적힌 글만이 달랑 걸려 있다
(필자가 취 재 한 약 20년전)
若人欲了知(약인욕요지)
三世一切佛(삼세일체불)
應觀法界性(응관법계성)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할진댄
응당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지은 것이니라.
이 글을 남긴 분은, 무명에 쌓인 우리들을 일깨우고자 한 뜻으로 보인다.
해인사 일주문에는 다음 글이 있는데
이 글을 보면 불교의 오묘한 시간관(時間觀)에 깊은 감명을 받을 것이고,
현재가 바로 과거의 거울이요, 미래의 상이라는 것을 잘 알려주는 심오한 내용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
천 겁을 지나도 옛날이 아니요
만세를 뻗어도 항상 오늘!
또한 해인사 법보전 입구에는, 수행의 도량이 바로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려주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자문자답하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이 글은 생활불교의 중요성을 일깨우 주기도 한다.
圓覺道場何處(원각도장하처)
現今生死卽是(현금생사즉시)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도량은 어느 곳인가?
여기 생사가 있는 바로 이 자리!
그리고 중왕산 대전사에 가면 사람으로 태어난 현세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라는 면학의 교훈이 있다.
한시의 일반적인 형식은 7언절구나 7언률, 5언절구나 5언률 등이 통상이고,
정해진 격에 맞는 韻字(운자)를 써서 넉줄 내지 여덟 줄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주련은 다섯 줄로서 일반 漢詩(한시)의 격에 벗어나며 韻字(운자)도 잘 맞지 않는다.
한시를 짖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외도(外道)이다.
그러나 생사까지도 초탈한 선승(禪僧)의 경지에는 이까짓 하잘 것 없는 격식이나 운자등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다섯 기둥에 다섯줄의 글귀를 거침없이 적어 둔 것이다.
汝得人身不修道(여득인신불수도)
如入寶山空手來(여입보산공수래)
憂患苦痛欲何爲(우환고통욕하위)
如今自作還自受(여금자작환자수)
諸法不動本來寂(제법부동본래적)
네가 사람으로 태어나 도를 닦지 않으면
마치 보배 산에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오는 것과 같도다
왜 우환과 고통만 취하려 하는가
오늘 네가 지은 것만큼을 스스로 돌려 받는다.
모든 법은 변함 없고 본래 고요하니라.
韓國寺刹(한국사찰)의 柱聯(주련) -3-
세 번째, 선열(禪悅)을 나타낸 내용
깨달은 분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그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과 너무나 다를 것이다.
무심히 부는 솔바람, 흐르는 물, 육중한 바위· 그 모두에 불성(佛性)이 보이고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희열을 느낄 것이다.
그러한 심정을 적은 선승들의 글을 접할 때, 그분의 마음을 통해서 본 세상의 아름다움을 주련(柱聯)글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보기로써 알아본다.
一住寒山萬事休(일주한산만사휴)
更無乾坤卦心頭(갱무잡념괘심두)
閒於石壁題詩句(한어석벽제시구)
任運還同不繫舟(임운환동불계주)
한 번 한산에 들어오니 만사가 한가롭구나
마음에 거리낄 잡념 전혀 없네
석벽에 시구나 끼적이며 한가로울 뿐
되는 대로 맡겨 마음대로 가게 한 뜬 배 같구나.
위의 柱聯은 운달산 김용사 해운암에 있다.
曹溪山月照澹寒(조계산월조담한)
滿月乾坤无寸草(만월건곤무촌초)
聖賢尊貴非我親(성현존귀비아친)
大地眞金未是珍지진금미시진)
조계산에 뜬 달 사무치게 비치어
둥근 달 온 천지를 밝히니 번뇌망상 사라지네
성현이니 尊貴(존귀) 따위 내가 알 바 아니며
대지가 진금이라도 이 깨달음의 보배만 못하네.
달은 심월(心月)을 뜻한다.
조계산에 달이 떴다는 말은 "조계산에서 수도하신 스님 마음이 깨달음을 얻어 환히 열렸다" 라는 뜻일 것이다.
그렇게 깨닫고 보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돌 한 개 모두가 황금보다 더 귀하고 값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깨달음에 비하면 세속의 부귀영화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깨달은 스님의 환희(歡喜)로운 마음이 물씬 풍겨 나오는 조계산 송광사 주련에 실린 소중한 시이다.
靑山塵外相(청산진의상)
明月定中心(명월정중심)
山河天眼裏(산하천안리)
世界法身中(세계법신중)
終日無忙事(종일무망사)
焚香過一生(분향과일생)
聽鳥明聞聲(청조명문성)
看花悟色空(간화오색공)
청산은 티끌 밖의 맑은 세상이요
명월은 선정 중의 마음일세
산하는 하늘 눈 속에 있고
세계는 그대로가 法身(법신)일세
온 종일 바쁜 일 없이 한가로우니
향 사르며 일생 보내네
새 소리 듣고 자성(自性) 자리 밝히고
꽃을 보고 색과 공의 도리 깨치네.
위의 영취산 통도사 대광륜전의 글을 조용히 읽으면 내 마음에도 한없는 기쁨이 넘쳐난다.
'산하는 하늘 눈 속에 있고 세계는 그대로가 법신일세...' 라는 대목에 이르면 알 수 없는 환희로움이 온 몸을 비단같이 감싸줌은 내 마음이 이 글을 쓰신 선승과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때문일까?
정말 감명 깊은 시이다.
백운사 해운각의 주련을 더 알아보기로 한다.
이 시를 읽으면 아름다운 백양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높은 바위 아래에 묵묵히 앉아 좌선하시는 스님의 마음이 바로 한 점 티 없는 하늘의 맑은 구름이요, 밝은 달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스님의 마음 속에 무슨 근심과 걱정이 있으리오.
今日巖前坐(금일암전좌)
坐久煙雲收(좌구연운수)
一道淸谿冷(일도청계냉)
天尋碧璋頭(천심벽장두)
白雲朝影靜(백운조영정)
明月夜光浮(명월야광부)
身上無塵垢 (신상무진구)
心中那更憂 (심중나갱우)
오늘 바위 앞에 닮으려 앉았더니
홀연히 구름 연기 걷히어서
한 줄기 푸른 계곡 오늘따라 더욱 차고
천 길 높푸른 봉우리가 제 모습 분명하네
아침나절엔 흰 구름 그림자도 고요하고
한 밤에는 밝은 달빛 드리우네
이내 몸도 한 점 티끌 허물조차 없으니
마음 속에 어찌 다시 근심 걱정 있을손가!
네 번째로는 기타 재미있는 주련을 알아보자.
의문을 던져주는 주련, 스님들의 원을 담은 주련, 계율을 지시하는 내용의 주련 등등 너무나 많지만 모두를 소개할 수 없어서 그 많은 주련 가운데 특히 감명 깊은 몇 가지만 더 알아보기로 한다.
화산 용주사 누문(樓門) 아래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주련이 있다.
이 글은 네 분의 서로 다른 스님들이 풍류를 즐기면서 한 분이 한 줄씩 지은 듯하다.
그래서 4개의 판에 낙관이 모두 다르다. 보통으로 알고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龍蟠萬雲(용반만운)
珠得造化(주득조刻
寺門法禪(사문법선)
佛下淸泉(불하청천)
용은 만리 구름 속에 서려 있으니
구슬을 얻어서 조화를 부리도다
사문의 법은 선종이요
부처님 아래 맑은 샘물이로다.
그러나 이 글을 ↓ 방향으로 읽으면 궁색하나마 다음과 같은 뜻이 된다.
(읽는 방향을 달리 했을 때)
龍珠寺佛(용주사불)
蟠得門下(반득문하)
萬造法淸(만조법청 )
雲化禪泉(운화선천)
용주사 부처님
문 아래 엎드려서
만 가지 법 깨끗하게 하시고
구름을 화하여 선의 샘 만들도다.
곧 이 시를 쓸 때 스님들은 가로 세로 어느 방향으로 읽어도 뜻이 통하도록 작문을 한 것일 것이다
허허로운 마음으로 네 분의 고승들이 한 자리에 앉아 어디로 읽어도 뜻깊은 이 게송을 쓰면서 얼마나 즐거운 법담을 나누었으랴! 자못 감동 깊은 시구이다.
이 글을 서로 주고받으며 즐거워하시는 고승들의 티 없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끝으로 동학사 길상암의 주련을 알아본다.
길상암에는 기둥이 여섯 개이므로 6행으로 된 글을 주련으로 해야 하는데, 6행으로 된 한시는 없다. 그래서 다음 두 게송에서 6행을 골라서 주련으로 한 것이다.
山堂靜夜坐無言(산당정야좌무언)
寂寂寥寥本自然(적적요요본자연)
何事西風動林野(하사서풍동임야)
一聲寒雁淚長天(일성한안루장천)
산당에 고요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고요하고 고요하여 본래의 자연인데
무슨 일로 서쪽 바람 임야를 흔드는고
외로운 기러기 울음소리 온 하늘에 흩어지네.
刹塵心念可數知(찰진심념가수지)
大海中水可飮盡(대해중수가음진)
虛空可量風可繫(허공가량풍가계)
無能盡說佛功德(무능진설불공덕)
세계에 가득한 티끌, 마음으로 헤아려 알고
큰 바다 가운데 물 다 마셔버릴 수 있고
허공을 헤아리고 바람을 붙들어 맬지라도
부처님의 크신 공덕 다 설할수 없네.
위 두 게송을 합해서 길상암 기둥에 다음과 같이 하였습니다.
山堂靜夜坐無言(산당정야좌무언)
寂寂寥寥本自然(적적요요본자연)
何事西風動林野(하사서풍동임야)
一聲寒雁淚長天(일성한안루장천)
虛空可量風可繫(허공가량풍가계)
無能盡說佛功德(무능진설불공덕)
게송에는 고승의 오도송이나 전법송 등 보통의 상식으로 알 수 없는 格外句(격외구)도 있는데
그러한 게송의 참 뜻은 게송을 지은 스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난해한 글들이다.
다음은 송광사 법흥 스님 처소에 있는 효봉 스님의 오도송이다.
글자(문자)의 뜻은 해석해도, 그 글이 시사하는 참뜻은 효봉 스님의 경지에 다다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글이다.
海底燕巢鹿抱卵(해저연소녹포란)
火中蛛室魚煎茶(화중주실어전차)
此家消息誰能識(차가소식수능식)
白雲西飛月東走(백운서비월동주)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타는 불 속 거미집에 물고기가 차 달이네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
횐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다음은 우리들이 잘 아는 서산 대사의 세사시이다.
이 글도 글자대로만 읽으면 인생의 무상을 뜻하고 너무나 염세적인 글이다.
그러나 그 글이 진실로 시사하는 내용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생사(生死)가 뜬구름 일어났다가 지는 것같이 아무것도 아닐진대, 생사보다 못한 다른 모든 것 즉 재물, 명예, 사랑 등등에 마음 쓰지 말고 태평한 마음으로 잘 살라고 하는 아주 긍정이고 적극적인 가르침이라고 해석된다.
生也-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생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멸하는 것이로다
뜬구름 자체가 본래 실이 있는 것이 아니니
나고 죽음도 역시 이와 같아 실이 있는 것이 아니로다.
이상으로써 주련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았다.
이 글이 주련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며,
또한 함께 이 주련 연구에 하는 동지가 많이 생겨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주련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으신 분은 본인의 저서 「한국사찰의 주련」(전원문화사 발간) 1집 ,2집 3집을 참고하기 바란다. (andongkwon.pe.kr권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