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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와 빈천에 초연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었다 해도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함께 논의할 상대가 되지 못한다.” 子曰: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자왈 사지어도 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야 사람이 진정으로 수도修道에 뜻을 두고서도―여기에서의 수도는 출가하여 승려가 되거나 신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유가의 도, 즉 홍진 속세를 벗어난 정신으로 속세에 들어가 사람들을 구하는 사업을 말합니다―잘 입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는 것을 걱정한다면, 다시 말해 수도에 뜻을 세운 사람으로서 물질적으로 누리고 사는 것을 탐낸다면 더불어 말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심지心志는 이미 물질적 욕망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사상을 가지고 유물주의唯物主義 사상을 비판하는 데에 있어서, 이는 더할 수 없이 적절한 문장입니다. 이렇게 보면 유가․불가․도가 어느 것이든 모두 서양 문화의 유물 사상보다 훌륭합니다. 여기에서는 자세히 토론하지 않겠습니다. 공자의 이 말은, 사람의 의지가 물질적 환경에 끌려 변한다면, 그 사람하고는 학문을 말하고 도를 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천하의 일에 대하여 꼭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고, 꼭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으며, 의義에만 견주어 할 따름이다.” 子曰: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자왈 군자지어천하야 무적야 무막야 의지여비 여기서는 인仁을 세상사에 적용하는 일을 말하고 있는데, 큰 정치가가 국가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스스로 고집하는 선입견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적야”無適也는 결코 자신이 꼭 큰 돈을 벌거나 큰 관리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비록 이렇게 선입견이 없다 할지라도, 무엇이나 다 괜찮다는 것도 아닙니다. “무막야”無莫也는 곧 할 바가 있고 하지 않을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 길을 걸어야 할까요? “의지여비”義之與比의 ‘의’義는 바로 인의 용인데,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만 물어서, 즉 도덕을 위해서 해야 될 것은 하고, 해서는 안 될 것은 하지 않되 의義로써 비교대비를 삼는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입신 처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도리가 됩니다. 이는 인의 수양조건을 말한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나 소인은 토지 같은 재부만을 생각한다. 군자는 법을 생각하나 소인은 혜택이나 생각한다.” 子曰:君子懷德, 小人懷土。君子懷刑, 小人懷惠。 자왈 군자회덕 소인회토 군자회형 소인회혜
공자는 여기에서 군자와 소인의 인仁에 구분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군자는 사상중심이 도덕에 있기에 도덕을 위반하는 일을 하지 않지만, 소인은 도덕이고 뭐고 상관하지 않고 토지만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옛날의 토지는 오늘날의 재부財富에 해당합니다. 돈이 있는 것은 좋은 것이므로, 소인은 재부나 이익만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군자회형”君子懷刑, 군자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스스로의 덕성을 위반하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법을 위반하는 일입니다. 법률은 문을 잠그는 자물쇠와 같아서 군자를 막을 수 있지만 소인을 막을 수는 없어서, 좀도둑이 진짜 훔치려고만 하면 자물쇠로도 어찌 할 수 없습니다. 법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법을 어기려는 사람은 모두 법률에 정통하며, 법률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은 감히 법을 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도덕을 기초로 삼아야 법률의 부족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형법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지만, 소인은 복이나 혜택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디서나 이해만 따져서 좋은 점만 찾으려고 하는 것이 소인입니다. 옛날 중국의 상인들 사이에, “목숨 날아갈 장사는 하는 사람이 있어도, 밑지는 장사를 하는 사람은 없다.”(殺頭的生意有人作, 蝕本的生意沒有人作)는 말이 있었는데, 바로 이런 이치입니다. 공자는 여기에서 인의仁義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하기는 쉬워도 진정한 수양은 참으로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이어서 한마디 보충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익을 따라서 행동하면 원망이 많아진다.” 子曰:放於利而行, 多怨。 자왈 방어리이행 다원 여기서의 放(방)은 ‘전개하다․방임하다’의 뜻입니다. 사람이 이해利害에 바탕을 두고 행동하고 일을 하면 최후에 초래하는 것은 극도의 증오입니다. 친구도 이해 관계로 사귀면 이해 타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며, 마지막에는 원한으로 끝난다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