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차권의 변화」
역사교육과 97230284 이현주
▣ 들어가면서...
교통은 사람과 사람의 왕래부터 모든 인간사회 조직의 기초가 되고 있다. 사람이 사회적 활동이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동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먹을 것을 찾아 다니거나, 현대인의 이동까지 교통은 우리의 역사와 함께 발전한 인간의 생할사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사전에서 찾은 교통의 의미 역시‘교통은 인간생활 중에서 어떤 목적행위를 완결 짓고자 하는 파생적인 행위’라고 설명되어지고 있었다. 대중교통수단이 우리나라에 도입·운행되게 된 것은 100년 미만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버스와 전차 등에서 출발하여 오늘날에는 매우 다양한 수단으로 발전되어 있지만 날로 증대되는 교통수요를 효과적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 심각한 교통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회상황 또는 한 인간이 삶을 살면서 변화가 생기면 교통에도 변화가 보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나, 그리고 내 가족, 우리의 이웃의 삶 속에 묻어서 분리해낼 수 없는 대중교통의 가격 변천이라는 주제를 이번 과제에서 다루고자 한다.
▣ 들어가서...
그는 1975년 대전 선화동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물론 그 당시에도 버스가 존재하였을 것은 분명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필요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3년이 지난 1978년 대전 유천동으로 이사를 하였는데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대전의 시내버스 요금은 어른이 50원이었고, 학생이 35원이었다. 1980년 배제대 부속 유치원에 입학을 하였으나 유치원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이용하였으므로 평상시에는 시내버스를 이용하지 않았으며, 그가 기억하는 시내버스의 이용 기억은 가끔 유성으로 1번 버스를 타고 온천으로 목욕을 가던 것 그게 다란다.
드디어 1981년 성모초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유천동에서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 타야했던 버스는 당시 5번과 2번(현재는 851번)이며, 승차 요금은 60원. 그게 그에게 얼마나 큰 돈이였는지 모르겠지만 오락실에서 오락 1게임하는데 50원이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건 분명히 굉장히 소중한 돈이였나 보다. 그는 오락하느라 차비를 쓰고, 걸어왔던 적두 있다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1983년 유천동에서 비래동(당시 비래리)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비래동에서 성모초등학교를 갈려면 8번(현재 310번)·6번(현재 860번)버스를 타고 30∼40분을 족히 가야하는 꽤 먼 거리였다. 그렇게 힘들었을텐데도 왜 전학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당시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추첨을 통해 입학을 하고, 교복을 입고 다니던 꽤 특별한 학교였던 탓이라고 대답을 한다. 여기에 덧붙여 이 시기 즈음하여 차장이 사라졌다고 말을 했다. 안내양이 차비를 걷고, 또 '오라이' 라는 말을 해야만 버스가 간다고 생각했던 당시로서 그것은 굉장히 획기적인 일이었고, 버스 요금을 직접 요금통에 넣어야 한다는 것은 대단한 경험이기도 했다.
그렇게 어렵게 초등학교를 다니고 1987년에 동명중학교를 입학하게 된다. 산 넘으면 또 산이라고.... 동명중학교는 대전 끝으로 6번을 타고 나와서 25번·45번·50번으로 버스를 갈아 타야만 하는 노선이였고, 근처에 인접한 중·고등학교가 많아서 꼭 콩나물 시루 속 같았다고 한다. 거기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요금이 70원으로 오르기까지 한다.
1990년에는 명석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버스로 3정거장 정도 되는 가까운 거리라 입학 초에는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하였으나, 시간이 좀 더 지나자 그것마저 귀찮아 버스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1991년에는 승차권 요금이 120원으로 오르게 되는데 그는 이것이 걸프전의 영향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후, 1년밖에 안 지나서 다시 버스 요금은 120원에서 150원으로 오르게 된다.
음대를 지망했던 그는 1993년 목원대학교 피아노과에 입학한다. 동구 끝에 있는 비래동에서 목동에 있던 목원대를 가기 위해서는 860번을 타고 다시 510번으로 갈아타야 했다. 당시 일반인 요금이 250원이였으니 4명 이상이 가까운 거리를 움직일 때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더 저렴했다고 얘기하며, 그는 89년까지 있었던 대학생 할인제가 이때까지 운영되었으면 좋았을꺼라는 얘기까지 덧붙였다. 94년에는 요금이 290원으로 올랐고, 현금으로 승차할 시에는 300원이였다.
1995년 6월 8일 군입대... 이때 버스 요금이 320원으로 인상되었지만 그에게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버스 요금은 1996년 360원, 1997년 IMF를 맞아 400원으로 불가피한 인상을 하게 된다.
1998년 복학을 하게 되고, 그가 자주 이용한 버스는 통학을 위한 860번으로 요금은 500원이었다. 1999년에 목원대는 도안동으로 이전을 하게 된다. 도안동이 아직 발단하지 못한 탓으로 교통 역시 불편했는데 특히 배차 간격이 넓고, 좌석 버스만 운행을 했었다고 한다. 특히 이 시기에는 학원에서 수업을 했기 때문에 132번 버스를 이용해야 했는데 배차간격이 1시간에 1대여서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한다.
현재 2000년 그는 목원대에서 교학조교로 일을 하고 있는 덕에 아침이면 여전히 7시에 일어나야 한다. 107번 좌석버스를 이용하는데 얼마 전에 요금이 인상되어 요금이 1200원이나 하며 동구∼서구간 연계가 비합리적이라 많이 불편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요금 인상과 더불어 대중교통의 수준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매해 오르는 요금에 따르는 질의 향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 도래한 My car 시대,,,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대중교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여러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 나가면서...
이번 과제의 주인공은 26살로 목원대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현재 목원대학교 교학조교로 있다. 막막하기만 한 과제를 해야하는데 업친데 덥친격이라고 지난주에 소개팅을 했던 그와 약속까지 되어 있었다. 주제만 정해 놓고, 대상이라든가 자료 조사가 전혀 안 되어 있던터라 점심시간을 맞추어 만나 우선 간단하게 사정 얘기를 하고, 부탁을 했고, 점심을 먹은 후에 시청에 가서 조사한 여러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커피숍에서 한참을 앉아 아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나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내 과제에 임했다.
주제에 충실하기 위해서 들었던 많은 이야기 중에서 그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느꼈던 점이라든가 사실 중심으로 과제물을 작성하기는 했지만, 성장과정이라든가 대학생활,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 등 아주 많은 얘기를 들었다. 대화하면서 서로 우스갯소리로 얘기한 것이기도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끼리 이런 과제를 한다면 서로에게 아주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물의 역사를 알기 위해 이제 막 알려는 사람의 과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였고, 흥미로운 일이었다.
【대전지역 시내버스 요금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