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방에 불이 꺼져있어
묵은 일기속에서 한 토막 글을 올려 불 밝힙니다.
그 당시에 저는 울산에 살았었고,
경주 코오롱호텔에는
퍼브릭 가든 골프장(9홀)이 있습니다.
아이고, 님들!
제 얘기 좀 들어 보세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창피해서 죽는데는 없나 봐요.
창피해서 죽을 수도 있다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어제, 아니 그러고 보니 그제 이네요.
아침부터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몸은 온 전체가 안 아픈곳이 없지 뭐예요.
'아이고, 죽겠다. 오늘은 하루종일
방글라데쉬나 하면서 굴러야지.'
요렇게 생각 하고는 세수도 하지 않은체로
쇼파에 들어누워 T-V 체널을 고정 시키고는
보다말다 자다말다를 반복하고 있었답니다.
"알랄라 알랄라" ☜우리집 벨소리
"(다 죽어가는 소리로)여보세요"
"내다. 니, 뭐하노?" 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20년을 하루같이 테니스를 치던 친구였습니다.
대답 할 틈도 없이 " 내 너거 집 앞이다."
"아니 왠 일이니?, 무슨 일이고? "
"퍼뜩 내려 오너라. 경주에 사우나 가자."
"올라 오너라. 커피 한 잔 줄게"
시간을 좀 벌어 볼 심산으로 커피를 준다고 하였건만…
"내 커피 마셨다. 그냥 내려 오너라."
"나는 아직 세수도 않했는데…"
"세수는 무슨… 사우나 할낀데, 그냥 내려와라."
세수도 안한 얼굴에, 집에서 입던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그렇게 친구따라 경주를 갔었답니다.
가는 중에 비는 다 그치고 해가 나오려고 하데요.
경주 하고도 코오롱 호텔에 도착을 하니 날씨는
말끔히 개어 이루 말 할 수 없이 상쾌 하였습니다.
아픈데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기지개를 켜며 "아이고 좋다!"
내 친구曰 "야, 우리 골프 치자."
"아니! 이 모양을 하고?… 채는 어떻게 하고?..."
"뒷 트렁크에 내 채랑, 우리 신랑 채 있다."
그리하여 나는 얼떨결에 친구 남편 채로 골프를 치게 되었는데…
같이 쪼인이 된 두 사람은 부산에서 왔다는 老신사 분과
서울에서 포항에 출장 왔다는 젊은 오빠야…
그런데 내 꼴 좀 보소… 사우나 간다는 친구의 말만 믿고
세수도 안한 얼굴에 눈꼽은 더렁더렁하고,
옷차림은 영락없는 식순이에다가, 테니스화를 신고,
남성전용 골프채로 골프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속을 왔다갔다 하는데
공이 맞을리가 있나요? 헛 스윙에, 생크볼에, 뒷땅이나 치고...
아이고 창피하고, 속 상하고, 민망하고, 망신스럽고...
창피해서 죽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저는 그자리에서 죽었을 겁니다.
그러면 아마도 이런 글을 쓰고 있지는 않겠지요?
'아는 사람 만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울고 싶었답니다.
친구는 공 치라 하고, 저는 사우나나 할 걸... 때 늦은 후회를 해 봅니다.
첫댓글 향님이 쓴 먼 옛날 글 읽어보고 혼자 웃어봅니다.
그래서 일기를 쓰고 옛날 일기장 넘겨보고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