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萬福대 산행일기(24)
-전북남원시,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 만복臺를 다녀와서-
기상대의 오늘아침 일기예보는, 전국적으로 구름이 많이 끼는 날씨로 한때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비의 양은 많지 않아 5mm 이내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오후 늦게 서쪽지방부터 구름이 개이고 온도는 20도c를 약간 상회하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계속 될 것이라고 기상예보를 했다.
그래서일까? 산행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하늘은 흐려있고, 구름사이로
보이는 하늘도 그렇게 맑지를 못하다.
광주역에서 산행버스에 오르니 지난주에 보이지 않던 양동매씨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또한 산악회 최 연장이신 화순 매씨도 참석을 하셨다. 그러나 차내 분위기는 예전처럼
활기차지가 못해 왼 일인가 알아봤더니, 양동 매씨 중에 한분이 며칠 전에 喪을
당해서 우울한 분위기라고 한다.
차내 분위기는 그렇고, 산행버스는 88고속도로를 달려 남원휴게소에서 잠깐 쉰 뒤,
인월 요금소를 빠져나가 마치 어머니 품속 같이 깊숙한 지리산 성삼 재에서 우리를
내려주고 山行 하산지점인 정령치주차장으로 떠났다.
오늘 산행할 지리산 萬福대는 전라남도 구례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사이의 道界를
이루는 山으로, 높이는 1,437m이고, 전남 구례군 지리산국립공원으로 불린다.
노고단(老姑壇:1,507m), 반야봉(盤若峰:1,732m)과 함께 지리산 국립공원의 西部를
구성하고 있으며, 마치 지리산속살을 보호하듯 북으로 길게 감싸고 있는 형상으로
소백산맥 중에 높은 山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풍수 지리적으로 볼 때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해 萬福대
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山 전체가 부드러운 구릉으로 되어 있어, 산 높이에 비해 山勢가 부드러운 편이며,
고리봉(1,305m)까지 3km에 이르는 南 능선에는 지리산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억새
군락지가 있어 주변의 정경과 대조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정상에서는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1,915m) 등 지리산 主능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을 뿐 아니라.
북쪽에 있는 정령 치(1,172m)와 남쪽에 있는 성삼 재(1,090m) 고개에는 도로가
나 있어, 이곳 두 고갯마루를 잇는 萬福대 당일 종주산행코스가 개설 돼있다.
섬진강의 지류인 서시천(西施川)이 만복대의 서사면(西斜面)에서 발원해 흐르고 있다.
인근 구례군 산동면(洞面)에 있는 온천관광지와 연계한 등반지로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 산행할 코스는:-
성삼 재에서 출발 -작은 고리봉 -묘봉치 -萬福대 -정령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약 9km로 4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호남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광활한 평야를 연상한다. 그러나 전라도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곡창이라는 호남에도 山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967년 우리나라 제1호 國立公園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넓이가 440.5제곱km로
한국의 육상국립공원가운데 가장 넓다. 단순비교를 하면 한라산국립공원의 3.3배,
설악산국립공원의 2.4배 규모다.
지리산 만복대(1437m)능선은 지리산 최고의 억새능선으로 유명하다. 억새뿐 아니라
겨울설화로도 유명하다. 만복대는 지리산 서부 끄트머리에서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기에 북서풍을 정면으로 맞는다.
때문에 겨울이면 맨 먼저 설화가 만발하는 것이다. 이르면 11월초에 화려한 백색
雪花의 잔치를 볼 수도 있다. 여름이면 푸른 초원, 가을에는 억새, 겨울이면 화사한
눈꽃이 만발한다.
萬福의 근원은 편안함에 있는 것일까?
성삼 재에서 시작한 산행은 계속해서 오르막길이다. 그러나 경사가 급하지 않아
산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묘봉치에서 萬福대 정상까지는 길이 곧게 뻗어있고,
능선줄기를 따라 나 있었다. 그러나 날씨는 우리들의 산행을 도와주지 못했다.
물안개가 짙게 끼어 주변경관을 볼 수가 없었고,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등 지리산
주능선도 볼 수가 없었다.
만복대 정상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도중 주변을 감싸고 있던 물안개가 비로 변해서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 복장을 갖추고 하산을 서둘렀다. 10월의 山 온도는
급격히 떨어져 겉옷을 착용하기도 했다, 비는 생각처럼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계속
해서 내리는 비의 양 때문에 겉옷과 배낭이 젖기 시작했다.
“만복대 산행은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었다.”고 산행이사가 말했다.
억새꽃은 아직 피어나지 못해 푸른 잎과 줄기가 산죽과 어울려 숲 터널을 만들고
있을 뿐, 새하얀 억새꽃을 볼 수가 없었다.
가을단풍도 들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만복대 억새와 산죽 길은 어머니의 품처럼 깊고 아늑해 어린
아이 마냥 칭얼대며 파고들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시인 도종환의 “처음 가는 길”이란 詩를 암송해본다.
처음 가는 길
-시인 도 종환-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길은 누가 만들었을까?
숲 속의 작은 오솔길 하나도 처음부터 길이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며 누군가 먼저 한 발자국씩 걸어간 후에야 뒤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이끄는 길이 되었을 것이다.
고승 서산대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땐
발걸음을 함부로 내딛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이 발자국은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그대 어디로 가시는가.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삶은 갈수록 막막하기만 하다.
하늘 들어가는 문을 몰라 새들은 늘 나뭇가지에 앉는다던가.
중생들은 늘 산문 밖 저잣거리에서 “길 없는 길”을 찾아 헤맨다.
안거를 마치고 속세로 떠나는 스님들은 이 글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野生 花(야생화)
-팡팡-
정처 없이 길 떠나던 날
나는 보았다, 너를
어리어 연약한 그나마 이름도 모르는
너! 노 오란 산꽃 옆에서
지난날을 생각하듯 돌아서있다.
하늘에 땅거미는 바위 언저리로 기어들고
먼 길을 가야하는 나그네의 마음에도
차마 너를 두고 떠나기 어려워
나는, 네 곁에 가만히 주저앉는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소리도 없이
오늘 만복대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나비보다 더 가벼운 몸짓으로 춤을 추고 있는 양동매씨가 며칠 전에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낸 분이라고 총무한테서 들어 처음 알았다.
눈가에 머문 슬픈 미소가 한 없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한평생을 몸과 마음을 섞고 살아온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사람을 떠나보낸 저 매씨의 심정을 이 세상 누가 알아줄 수 있을까?
뒤 늦게나마 삼가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8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