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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산행 336차 운문산
대상산 운문산(雲門山)1195m 경남 밀양시 산내면 경북 청도군 운문면
날짜 2013년 11월27일
산행 거리 및 시간 12km 7시간
산행 만남 장소 27일 07시50분 구포역
교통기관 구포→밀양 기차(통일호). 밀양↔원서리(석골사 입구) 버스
밀양→덕천교차로 버스
산행 들머리 경남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석골사 입구) 버스정류소
산행 날머리 경남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석골사 입구) 버스정류소
참석자 5명 임판개 김경이 조정선 김태영 김철우회원
아침 버스 기차 타기 08:05 구포역서 기차 탐, 08:30 밀양역서 버스 탐, 09:05 밀양시외버스터미널서 얼음골 행 시외버스 탐
산행코스 09:45 원서(석골사 입구) 버스정류장서 산행시작-10:10 석골사 입구 석골폭포-10:25 석골사-10:30 억산 운문산 갈림길-10:40 팔풍재 갈림길-10:45 큰바위 밑 삼거리 우측 계곡 건넘-10:55 범봉 억산 갈림길-11:00 딱밭재 갈림길-11:15 선녀폭포-11:30 정구지 바위 우측길 운문2.5km 상운암1.7km 석골사1.7km-11:50 제2얼음골 유희태 굴-12:20 고드름 달린 바위밑에서 식사-12:45 식사 후 출발-13:15 운문 서부능선 길합침-13:50 1017봉 삼각점 동곡317 1990년복구-14:05 함화산1107.8m-14:25
운문산(호거산)1188m-14:25 상운암 갈림길 딱밭재1.5km-15:00 딱밭재-15
:40 딱밭재 상운암 갈림길 석골사1.4km-15:45 범봉 갈림길-15:55 팔풍재 갈림길-16:05 억산 갈림길-16:10 석골사-16:45 원서리 버스정류장
목욕 저녁 식사 밀양시외버스 터미널 옆에서 목욕 식사
산행 이모 저모
운문산은 부산 산꾼들은 거의가 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2얼음골과 유희태 굴이 운문산에 있다는 이야기나 그곳을 찾아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천황산 북쪽 계곡 얼음골은 전국에서 이름을 떨치는 명소. 밀양시에서는 얼음골 위쪽 계곡에 유희태가 제자인 허준에게 자신의 시신을 남겨 해부하라고 한 바위굴이 이곳일 것이라고 추정해 동의굴이라는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하지만 실제 이 굴은 우선 몸을 누일 자리가 시원찮고 또 그렇게 메숲지거나 그윽한 곳이 아닌데다 굴안에 돌침대 비슷한 것도 없어 해부를 하기엔 알맞지 않다. 물론 유희태 해부 이야기도 소설 동의보감에 나온 허구이지만.
운문산에도 제2얼음골과 과 그 곳에 굴이 있고 그 안에는 몸을 누일 네모꼴 자연 돌침대가 있다. 햇살이 어디로 부턴가 굴안으로 들어와 환해 이곳이 진짜 소설동의보감에 나오는 굴이라고 일부 산꾼들은 믿고 있다. 이 굴을 유희태 굴이라 한다. 오늘은 운문산 산행이 목표이지만 이곳 현장을 가보는 게 첫 번째 목적이다.
햇볕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가 오는 것도 아닌 우중충한 날씨다. 기차를 타고 밀양역까지 가는 것은 참 좋았다. 우리가 탄 무궁화호는 난방도 잘돼 있고 복잡하지 않았다. 더구나 철길과 함께 하는 낙동강의 물 흐름소리가 귀전을 맴돌아 즐거움과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밀양역에서 택시를 타려고 했더니 5명이라 안된다고 해 버스를 탔다. 아침부터 버스가 만원인데다 정류장마다 내리는 손님이 많아 오래 멈췄다. 밀양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니 9시5분. 터미널 버스 출입구에 얼음골 가는 버스가 머리를 내밀고 신호를 기다린다. 시내버스를 내리자마자 달리기를 해 간신히 시외버스를 탔다. 그런데 일행 중 한사람이 늦어 버스 기사에게 잠시만 잠시만을 연발해 겨우 함께 갈 수 있었다. 아침부터 황급히 버스를 타느라 심장이 쿵쾅 댄다.
몸이 나른해 잠시 눈을 붙였던지 석골사 입구인 원서리 버스정류장이다.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석골사를 올라가는 도로 옆 과수원은 이른 아침인데도 사과를 따고 한편에선 고르기를 하고 있다. 도로 옆 사과 집하장 건물에는 사과 등급을 매겨 팔고 있다. 잠시 들린 회원들은 약간 상처 난 사과지만 값싸고 싱싱하다며 나중에 내려올 때 사야겠다고 야단이다.
석골사는 일주문이 없지만 오른편 계곡에 석골폭포가 있어 눈길을 끈다. 냇가로 내려가 폭포소리를 듣는다. 사진을 찍었다. 물이 많이 폭포가 한결 위엄을 갖추었다. 석골사는 들어가지 않은채 바로 앞에서 카메라에 건물만 담았다.
포장 안된 산길은 임도처럼 넓지만 돌이 많아 걷기 불편하다. 왼편으로 억산, 팔풍재, 바위 밑 갈림길이 나오고 계곡을 건너서도 범봉 딱밭재 갈림길이 왼편으로 갈라진다. 길도 점차 험해 쇠줄을 잡고 바위를 오르기도 한다.
아직 12월이 되지 않았지만 이곳은 벌써 겨울이 굳게 성을 쌓았다. 계곡물은 얼지 않았지만 음지는 고드름이 송곳처럼 아래로 늘어졌고 길바닥엔 서릿발이 밟혀 뽀드득 뽀드득 비명을 지른다. 양쪽에 굉장히 급하게 산줄기가 치솟아 고개를 뒤로 젖혀야 보일 정도로 높다. 좁은 산줄기 틈새로 젖히며 실핏줄 같은 계곡이 급하게 흐른다. 이 계곡 오른편으로 산길이 이어진다. 운문산 고스락 서쪽 바로 아래에 있는 상운암으로 가는 길이다.
계곡에서 점차 멀어지더니 앞에 바위가 떡 버티었다. 그런데 계곡으로 길 같잖은 길이 쏟아진다. 계곡은 바위가 얽혔고 주변은 바위 절벽이다. 계곡으로 내려갔더니 바위 사이로 폭포가 비말(飛沫)을 뿜으며 떨어진다. 바위 사이로 작은 못이 이물을 받으며 물이랑을 새긴다.
이곳에서 조금 전 우리가 걸었던 산길은 보이지 않는다. 숨은 폭포지만 크지 계곡을 곽 채운 물이 폭포에 생기를 더하고 옆에 있는 바위들을 흔들어 보려는 기세다. 낙차20m 안팎으로 물소리가 귀전을 울린다. 너무 사방이 조용하면 어떤 소리라도 그리울 때가 있다. 이 계곡을 들어 와서 너무 조용해 어떤 소리라도 이 침묵을 깼으면 했는데 폭포소리는 소리를 넘어 감칠 맛 나는 선율이다.
이 폭포 이름은 선녀폭포다. 폭포 물이 모이는 못은 선녀 2-3명이 목욕하기 안성맞춤이고 바위속에 숨어 있어 몸을 숨긴 농촌 젊은이가 선녀 옷을 훔쳐가기 알맞다. 바위와 폭포가 꾸민 소박하고 멋진 풍경이다.
폭포에서 산길까지 5분 거리지만 내리막도 오르막도 참 까다롭다. 산길을 올라서 얼마가지 않아 정구지 바위다. 펀펀한 바위에 잔풀이 많이 나 있어 정구지 바위라 이름 붙인 것 같다. 정구지는 부추의 경남 사투리로 일부지방에서 소풀이라고도 한다. 우리들이 즐겨먹는 채소를 하필이면 이 깊고 깊은 산골 바위, 전혀 재배가 불가능한 곳에다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동물들이 자신의 삶터를 여러 방법으로 표시해 알리듯 사람들도 자신들의 생활 방식과 형식을 마치 이곳이 내땅이요 하듯 스스럼없이 알리는데 익숙해 져 있다.
정구지 바위에서 길이 갈린다. 맞은편은 상운암(1.7㎞)을 거쳐 운문산(2.5㎞)
로 가고 오른편 오름길은 이정표도 없이 급경사 기슭을 힘들게 가르며 오른다. 길이 무척 험하다. 밧줄에 매달려 오른다. 얼음골임을 알리는 표시가 시원찮지만 냉랭한 분위기가 얼음골임을 알려 준다. 진짜 얼음골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그 반대인데 이곳은 겨울도 여름도 아니 사철 내내 겨울 일 것 같은 느낌이다.
간신히 바위를 타고 올라 왼편 오름길을 두고 맞은편으로 어렵게 내려가니 왼편에 굴이 입을 떡 벌렸다. 유희태굴이다. 선뜻 들어서기가 까다롭게 펀펀한 바위가 비스듬히 누워 있다. 이 바위를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 쓰면서 내려가 들어가니 굴 안은 예상보다 넓다. 그러나 오늘은 매우 우중충한 날씨라 무척 어둡다. 햇살이 나면 굴에도 직간접으로 햇빛을 받아 환하다고 하는데 오늘을 마치 영화 상영 직전의 극장 안 같다. 그러나 어둠에 점차 익숙 해 지자 굴 가운데 사각형 번번한 돌이 침대같이 놓였고 굴도 꽤 넓다. 또 은신하기에도 적당하고 밖은 무척 추운데도 이곳은 온기가 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유희태 굴이 얼음골 위쪽 동의굴 보다는 소설 동의보감에 나오는 스승 유희태가 제자 허준에게 자신의 시신을 남겨 은닉하기 알맞고 또 해부하기도 적당한 곳이다. 하지만 한 가지 흠은 460여 년 전 조선 중기 선조 때 이 깊은 골짜기, 지금도 밧줄을 붙잡고 오르는 험한 길을 의사인 유희태가 어떻게 올라갔으며 이런 곳이 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물론 종복들의 부축을 받아오를 수 있겠지만 그랬을 경우 유희태의 의도를 간판한 종복들이 그대로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어쨌든 이곳이 동의굴보다 유희태 굴이 소설속의 굴로서 더 적당하다. 하지만 동의굴이든 이곳이든 모두가 소설 동의보감을 쓴 작가의 상상이므로 여기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전설은 전설로 놓아두는 것이 전설을 지키는 예의다.
석골사로 들어오는 도로 옆에는 ‘석동(石洞) 임란 창의 유적지’ 안내판있다. 향촌수호를 위해 밀양에서 최초로 창의(倡義 국난 때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킴)한 손기향이 부모를 모시고 난을 피했던 굴이라고 하여 손가굴이라고 했다. 손가굴 위치가 유희태굴과 같은 곳이라 추정된다.
또 함께 의병을 일으켰던 이경흥 경선형제가 노모를 모시고 난을 피했던 형제굴 흔적도 그 부근에 남아있다고 했는데 그 위치는 아마 계곡 건너편일 것으로 여겨진다.
굴을 나와 내려왔던 바위를 올라가 오른편 바윗길을 간다. 내려가는데도 밧줄, 올라가는데도 밧줄에 매달린다. 왼편 급경사를 타고 올라가 큰 바위 아래서 왼편으로 둘러간다. 여기 바위 아래 좁은 공간에서 점심을 먹었다. 고드름이 길고 긴 얼음송곳으로 아래쪽으로 달려 있다. 손이 실려 장갑을 끼고 먹기도.
적어도 10회정도는 밧줄에 의지해야 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밧줄 없으면 오를 수 없는 곳이 여기저기다. 손이 시려도 장갑을 벗고 바위 틈새를 잡고 올라야 한다. 등에 진땀이 흐르는 곳도 더러 있다.
운문산 서부능선을 오르내리는 산길과 합쳐진 뒤에도 밧줄을 타는 등 어려움은 계속된다. 오른편 마루금 봉우리로 희미한 길이 마른 풀 속에 열렸다. 이곳이 1017m봉으로 삼각점(동곡 317 1990년 복구)이 있다.
이젠 운문산고스락도 한결 가깝고 건너편 간월-신불-영취-시살등을 잇는 능선이 우람하게 펼쳐진다. 발 아래로 얼음골 남명리 일대를 포함한 산내면 지역이 한 눈에 드러난다.
해발1107.8m인 함화산이다. 한자로 含花山이든 含華山이든 含和山이든 드물게 좋은 이름이다. 여기서 운문산 고스락은 5분거리.
운문산은 해발1188m이고 표석엔 호거산(虎居山)이란 이름도 함께 새겼다. 구름의 문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이름이다. 반면 호거산은 호랑이가 살았다는 의미로 보볼 때 맹수 중의 맹수인 호랑이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 너무 현실적이다. 구름이 만든 문과 호랑이가 살았던 봉우리. 이 이름을 생각하면 할수록 선계와 속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로써 팔풍재 부근에 있는 범산도 호랑이산임을 뒷받침한다. 그 아래쪽 능선에 있는 호거대도 마찬가지로 호랑이가 능선을 바라보며 천하를 향해 으르렁 거리던 바위 전망대임을 증명한다.
이곳 전망은 참 대단하다. 청도 운문면과 밀양 산내면 일대, 가지산에서 뻗은 영남 알프스와 천황산, 정각산을 잇는 산줄기, 억산-구만산을 비롯한 운문지맥 모두가 사방에서 열병하듯 질서 정연하다.
날씨가 일을 벌인다. 싸락눈이 내린다. “회원들이 서설이다”라며 외치는 목소리에 참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반들거린다. 펑펑 내리지 않는 게 섭섭하지만 그래도 11월에 맞는 눈은 기쁨 덩어리다. 하지만 추위가 하산을 재촉한다. 아래재 반대편 운문지맥 산줄기로 서둘러 내려간다.
갈림길에서 왼편 상운암으로 가지 않고 딱밭재1.5km인 운문지맥을 따른다.
딱밭재 삼거리에서 이번엔 운문지맥이 아닌 석골사로 가기위해 왼편으로 90도 꺾는다. 싸락눈은 좀 더 내리지 않고 쌓일 사이도 없이 그만 그쳤다. 비탈길은 가랑잎이 수북하게 덮여 미끄러운 길을 더 미끄럽게 만든다. 발을 조심조심 놓아도 자신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쏟아지고 휘청댄다. 참 힘든 내림길이다.
아침에 지났던 상운암과 운문산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났다. 이제부터 오전에 올라왔던 그 길을 내려가지만 내려가는 길도 만만찮다. 석골사란 이름답게 마치 바위나 돌이 마치 우리 몸의 뼈처럼 불거져 나와 하산을 괴롭힌다.
어떤 곳은 올라올 때 몰랐지만 천 길 낭떠러지도 있다. 오른편 기슭에서 내려오는 범봉, 팔풍재, 억산 갈림길을 차례로 만난 뒤 마침내 석골사에 도착했다.
석골사란 이름이 하산하면서 절실하게 마음에 닿는다. 石骨寺가 이곳 지형을 가장 잘 표기한 것 같다. 돌 뼈가 덩어리지거나 홀로 선채 산과 계곡을 빚어놓은 심산유곡. 그 아래 자리 잡은 석골사. 몇 번을 음미해도 너무나 자연과 걸맞는 이름이다.
다시 아침에 버스에서 내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오후4시45분, 11월 말 우중충한 날씨는 어둠을 재빨리 안고 온다. 내려오다 사과 집하장에서 사과를 샀다. 길가 버스정류장은 칸막이를 했지만 칸막이 아래쪽을 막지 않아 바람이 마구 비집고 들어와 추운 공기를 채촉해 옷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한기가 전신을 감싼다.
시골 버스정류장은 외로운 섬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다. 버스가 몇 시에 올지 알려주는 안내판이나 종이알림판 등 아무 것도 없다. 사람도 다니지 않아 버스 시간을 물어볼 수 없다. 차들은 싱싱 소리 내며 달리지만 우리에겐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다. 완전히 우린 버려진 사람이다. 밀려오는 어둠도, 몸을 후벼파는 추위도 우릴 힘들게 하지만 조금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자동차의 그 질주가 우릴 더 외롭게 한다.
이렇게 30분을 무작정 기다린 끝에 저 앞에서 시외버스 표시 글자 불빛과 헤드라이트가 보인다. 아 이 감정을 무엇으로 표시할까.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알피니스트 우메무라 나오미 쓴 ‘안나여 저게 코즈뷰의 불빛이다’라는 책이 문득 생각난다.
버스 차창에 비친 산내면 일대
석골사 입구 도로가 갈라지는 산내면 원서리 버스정류장
석골사로 들어가는 길
도로변 사과 과수원에서는 사과를 따고 고르는 작업이 이른 아침인데도 한창이다.
집 울타리를 장식한 이름 모를 나무의 빨간열매가 겨울을 잠시 잊게한다.
석골사 들어가는 길에 있는 계곡. 이 물은 멀리 팔풍재와 억산 운문산 등 운문지맥에서 물길을 모은다.
길을 뒤덮은 은행잎이 떠나가는 가을과 찾아온 겨울을 엮어놓았다.
석골사 바로 아래편에 있는 석골폭포와 석골폭포 물이 모이는 소(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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