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노총에 걸려온 전화 두 통 이야기. 며칠 전 한 노인네가 민주노총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신은 지금 정부가 검거령을 내린 한혁 어머니라고 밝히고, 분당 재래시장에서 좌판에 반찬을 만들어 파는 노점상을 하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수배된 아들을 찾는다며 사복경찰 세 사람이 좌판 앞에 죽치고 앉아 장사를 할 수 없어 생계가 어렵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이 노인네 아들 한혁 씨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조직부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경찰이 지난 3월1일 연대 앞 집회시위와 관련해 500만원 현상금에 1계급 특진을 걸고 전국에 수배령을 내린 사람입니다.
그 보다 하루 이틀 앞서 걸려온 전화. '저는 성북구에 사는 사람입니다. 동네에서 내보내는 유선방송에 강간범·강도와 함께 단병호 위원장이 수배자로 함께 나오더군요. 현상금 500만원이라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너무 지나친 것 아닙니까? 군사정권도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았을지언정 강간범 잡범 취급은 안 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이럴 수 있습니까?" 전화 거는 사람은 차분하기만 한 목소리에 생각할수록 이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른 듯한 말투였습니다.
2. 정부가 민주노총 지도부와 간부들에게 500만원 현상금에 계급특진을 걸어 검거하라고 한 뒤부터 별의 별 일이 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식 현상금이 500만원이지만 일단 잡고 나면 경찰청장 포상금부터 시작해서 실제 받는 돈이 얼마가 될지 모르고, 더 경찰들을 흥분하게 하는 것은 몇 천만원의 효과가 있다는 계급특진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에서 강력계, 마약전담반을 포함해 모두 361명을 차출해 검거반을 짰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할 일이 마땅하지 않거나 현상금과 계급특진에 눈 이 먼 검거반 아닌 검거반 경찰 수백 명이 이 일에 나선 듯 합니다. 마치 동해바다에 오징어가 떼지어 몰리니까 어부가 아니더라도 너도나도 한 몫 잡으려 나서는 꼴입니다.
3.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 주위는 한마디로 가관입니다. 사무실 앞에는 이상한 덩치들이 건물 출입자들을 눈이 뚫어지게 쳐다보고, 드나드는 차량 번호를 일일이 적질 않나, 지하 다방과 식당에도 낯선 얼굴들이 몇 주일 째 서성입니다. 사무실 인근 골목골목마다 각 경찰서에서 나온 승용차들과 그 안에 하염없이 머무는 장정들이 즐비하고, 옆 건물인 현대자동차 매장 앞에는 몇 주일 째 그대로 주차해있는 기관 차량들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보안수사대, 정보과, 강력계, 기동대, 마약전담반, 경기도에서 온 차량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민주노총 바로 뒤는 제법 큰 공원이 있는데 얼마 전부터 공원에 머무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많아졌고, 웬 일인지 '노숙자'도 갑자기 불어났습니다. 새벽 2시가 넘으면 경찰 백차가 사무실 주위에 불빛을 비추며 뭔가를 찾는 일이 잦습니다.
4. 단병호 위원장은 이번 검거령이 총 다섯 번 째 수배생활입니다. 이미 네 번의 수배와 네 번의 징역살이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면회를 한 번이라도 갔거나 수배 중인 단위원장을 잠시라도 집에 머물게 했던 사람들은 지금 큰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면회를 한 번이라도 갔던 사람들 집에는 어김없이 형사들이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한 노조에서 전에 사무국장을 했던 간부 충청도 시골 집에 경찰이 들이닥쳐 단병호가 이 집에 없느냐고 묻고 갔습니다. 평택에 집이 있는 어떤 면회자 집에도 한 밤중에 경찰이 들이닥쳤습니다. 심지어 면회자 친정집에 불쑥 경찰이 찾아옵니다. 동네 슈퍼, 아파트 경비실 할 것 없이 쑤시고 다니는 통에 집집마다 난리가 나고 있습니다.
5. 민주노총 간부들은 예외 없이 두 개조 세 개조로 짜여진 미행조에 뒤를 밟히며 죄인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총무부장 집에 방배서에서 불쑥 전화를 걸어 '단병호 없느냐. 나도 이번에 계급특진 한 번 해보자', 정보통신 차장 집에 홀로 계신 노모를 찾아가 '단병호 안 왔느냐, 우리가 찾아왔다는 얘기 아들한테 하지 마라' 협박하고, 사무처 한 간부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 '단병호 위원장 모시고 있는 데 오늘 작전하기로 해놓고 왜 연락이 없냐' 이상한 말 해서 발신처 전화 돌려보니 영등포 경찰서 수사계였습니다. 교통사고로 넉달째 병원에 있는 금속산업연맹 문화국장 집에 전화가 와서 동생이 받았는데 '통장인데, 무슨 차 몰고 다니느냐, 차량번호가 뭐냐, 위장전입자 찾으려 한다' 알 수 없는 얘기를 했다 합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통장 집에 가보니 전화한 적 없다고 해 발신인 전화번호로 전화 걸어보니 강서 경찰서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민주노총 사무실 근처 단위원장이 치료받으러 다니는 이○○ 재활의원에도 경찰이 전화를 걸어 꼬치꼬치 캐묻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모든 전화를 합법 도청하고 이 통화내용은 증거자료로 쓸 수 있게 됐습니다. 휴대전화 도청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6. 민주노총 간부들 휴대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립니다. 낯선 음성, 대부분 현상금과 계급특진에 눈 먼 형사들입니다. 한 마디라도 뭔가 단서를 찾으려는 듯, 다짜고짜 단병호 위원장 이야기를 꺼내면서…. 식당에 밥 먹으러 가도 따라오고, 아침 출근 할 때마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낯선 건장한 어깨들의 눈빛…. 하루종일 미행하는 사람들…. 신창원 검거작전을 방불케 하는 단병호 검거작전. 밀려오는 자괴감을 참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려 10년씩 20년씩 노동운동하고 정권교체 이루려 밤을 낮 삼아 싸웠나…. 이 일을 김대중 대통령 정부에서 겪고 있는 게 맞는가….
7. 민주노총은 26일 김대중 대통령 면담을 공식 요청했습니다. 모양 갖추기식 대화가 아니라 단병호 위원장 등 민주노총 지도부 검거령을 풀고 강경탄압과 총파업의 대치국면을 변화시킬 실질대화를 요청했습니다. 청와대와 노동부 분위기는 대화는 좋다, 단 단병호 위원장 등 지도부 검거령은 풀 수 없다는 반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해봅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정권이 민주노총을 탄압해서 정권 입맛에 맞추겠다는 것인데, 가히 공작이라고 이름 붙일 일을 국민의 정부가 벌이고 있는데…. 올해 들어 구속노동자가 136명이고 김영삼 정권이 5년간 구속한 노동자수 507명을 김대중 정부 3년6개월만에 가뿐히 즈려 밟고 575명을 구속했는데…. 외환위기를 감안해도 이건 너무나 지나친 데…. 거기다가 부부구속은 가정파탄이라 피하는 게 상식인데, 위원장 사무총장 동시 검거령도 모자라 조직실장 구속에 이어 대협실장 체포영장, 사무차장 체포영장 수순 밟기, 교선실장 조직1국장 출두요구서에 이어 핵심 연맹 지역본부 지도부 간부 검거령, 핵심 단위노조 무차별 검거령에 구속… 부부 구속은 물론 자식들까지 다 잡아 가두는 일을 벌이고 있는데…. 말로는 노든 사든 불법은 엄단한다지만 사용주는 단 한 사람도 구속된 사람이 없어요. 이런 가공할 탄압은 그대로 하면서 대화라? 문제를 풀려는 진지한 고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8. 한겨레 인터넷 독자란에 어떤 사람이 'DJ는 단병호를 만나라'는 글을 올렸다는군요.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만나면서 단병호 위원장을 이런 저런 구차한 이유를 들어 만나려 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입니다. 정부에게 문제를 풀려는 자세를 가지라는 뜻인 듯 했습니다.
여러 차례 밝혔듯이 우리는 지금 정부의 민주노총 전면탄압을 이성을 갖고 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국자본과 재계가 민주노총 탄압해야 대선자금 준답디까?'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도 이성과 상식을 벗어난 정부 탄압에 대한 조직의 명운을 건 특단의 총파업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정부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이성의 세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눠보자, 그 출발은 이성을 잃은 전면탄압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 모습은 일단 단병호 위원장 등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검거령을 풀어 누구 말대로 'DJ는 단병호를 만나라'는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화는 좋지만 전제조건은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면 '참으로 한가로운 사람들이구나'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9. 탄압해서 민주노총을 길들이자, 어느 세력 누가 시작해 이 지경까지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발상 자체가 무모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성공할 수도 없고 성공한다 해도 순간의 기쁨 말고는 성과가 없는 불장난입니다. 대통령이 단병호 위원장을 만나는 일은 정부가 광기 어린 이 불장난의 세계를 벗어나 이성의 세계로 돌아오는 것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이 길 말고 다른 길을 걸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정부의 선택에 따라 민주노총도 갈 길을 잡을 것입니다. 정권말기 정세가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이라는 나름대로 힘을 갖춘 저항세력의 존재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닙니다. 탄압해서 길들여보겠다, 이 '공작'은 그 대가를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모한 불장난입니다. 이런 식의 '공작'을 시작한 것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자행행위입니다만, 늦더라도 계속 자해하는 것보다는 낮습니다.
부디 이성의 세계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그 출발은 단병호 위원장 검거령을 풀고 대통령이 만나는 것입니다. 'DJ는 단병호를 만나라' … 이성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대다수 사람들이 공감하는 얘기입니다. <끝>
# 참조 - 인터넷 한겨레 토론방에 실린 [김대중은 김정일보다 먼저 단병호를 만나라] 전문
민주노총에서 대통령을 만나잔다.
'현행법 위반으로 수배 중인 자들이라 만날 수 없다' 소리 아직 안나왔지만 나올 게 뻔하다.여지껏 노는 꼴들이 그 정도 수준을 벗어난 적 없으니까.
국토를 무단 점령한 '괴뢰집단'인 '북괴'의 김정일을 만나도 되는 '현행법'은 무엇일까? 형식에 매여 헤매지들 말고 대통령과 단병호가 직접 만나 작금의 어지러운 노동문제를 풀 수 있길 기대한다.
하기야 만나본들 별 수는 없지 싶다. 단병호가 아무리 호소하고 설득한들,
"조금 더 기다리면 윗목도 따뜻해질텐데 왜 그리 성급하냐?"
"우리의 노동자들이 거칠게 투쟁하면 외국의 자본이 다 빠져 나가고 결국 그 피해가 너희들에게 간다."
"앞으론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해서도 법에 따라 엄중 대처할테니 너희도 자중해 달라."
"울산 효성의 폭력사태도 너희가 먼저 시작했고 회사로선 어쩔 수 없었다."
대통령의 말은 안들어도 이미 상상된다. 자신의 과오는 인정하는 법 없이 그 때, 그 때 얼른 둘러대고 남을 설득하는 데는 아주 뛰어난 재주가 있는 걸 그 동안 많이 보아왔으니까.
잘하면 "지금은 장마 중이니 장마가 끝날 때까지 단체행동은 자제를 해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말 믿었다간 '상황 끝'이다. 가뭄 때문에 소장파들만 닭 쫓던 개가 된 걸 보면 안다.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라면 민주노총이 면담하고자 하는 상대는 대통령이 아닌 '노동부장관'이 되어야 맞다.
장관을 허수아비로 만든 장본인은 대통령 자신이다. 담당자는 '가문의 영광'만으로 만족한 채 앵무새소리나 하도록 만들어 놓고 자신이 스스로 일을 만들어 욕먹을 짓까지 골라가며 하니 저 양반이 왜 저럴까? 답답하고 안스럽다.
지금 저 정도 맥없이 헛소리나 하는 장관이라면 내가 단병호라도 장관 만날 시간 있으면 차라리 '골프'를 치겠다.
김대중은 단병호를 만나 사과부터 해야한다. 그 건 대통령이기 이 전에 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다.
잘하려 했으나 여러가지 여건으로 인해 결국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준 점을 사과하고, 이제라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래도 선생님 뿐이라며 노동자의, 약자의 입장에서, 모질게도 오랜 세월 당신만을 믿었던 그들을 무참히 배신한 데 대한 사과와 반성없이, 또 들으나마나 뻔한 '교육'을 하려고 한다면 우린 김대중이라는 한 인간에 대해 그 인간성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 '의심'은 이미 시작된 지 한참이다.
장삼이사들도 누구에게 작은 은혜를 입으면 그에 대해 보답은 못할지언정 어려움이 있어도 그를 남보다 더 괴롭히진 않는다. 정치가 아무리 어렵다 하나 결국 사람이 하는 사람끼리의 일이다. 정치를 이유로 사람들이 사람의 구실조차 못하는 듯해서 아쉽다.
전북지역 10여 개 단체까지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김대중정권의 퇴진에 나선단다. 그 단체들의 이름이 마음을 어둡게 하고 '전북'이라는 지역 자체가 일없는 나까지 부끄럽게 만든다.
'자유연맹'이나 '한국논단'이 아니다.'부산','대구'가 아니다.
잘하고 못하고, 이유 있고 없고를 떠나 당신이 나이깨나 먹어 이 무슨 망신이더냐? 이 것이 망신이 아니고 그저 저들이 욕심 많고 무식한데서 오는 오해더란 말이냐?
단병호를 빨리 만나라. 그래도 답은 그 속에 있을 수 있다.
누가 이 문제를 풀랴? 그래도 현재 당신은 우리들의 고통을 덜어 줄 책임과 권한이 가장 큰 이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