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등회 201회 (중원계곡, 도일봉) 산행기
제12호 태풍 ‘나크리’가 서해안으로 북상한다더니 서울에서는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인 8월 3일 새벽까지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새벽녘에 깨어보니 앞 뒤 베란다의 창문을 흔들면서 비바람이 계속되고 있었다. 옆에서 “태풍 때문에 비가 계속 오는데 그래도 산에 가요?”하고 묻는다. “아침에 비가 주룩 주룩 내리면 못 가는 거고… 상태를 봐야지.” 어제 저녁에 조리 준비하여 7시간을 굽는 맥반석 계란은 ‘오쿠’에서 거의 구워져 냄새를 풍기고 있는데, 갈지 말지 판단이 안 섰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내다보니 비가 그친 듯 하고 바람만 분다. 약간의 비가 오거나 흐린 여름 날씨는 산행에 큰 무리가 없고 오히려 따가운 햇살보다는 좋을 듯한데 … 차량 3대를 준비했다는 총무의 공지를 생각하면 가능한 한 참가 해야지.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비오는 날의 산은 싱그러운 녹음속의 골안개와 함께 나름의 멋이 있고, 눈이 오면 눈에 덮힌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어 좋지 않았던가?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날씨를 가릴 것 없이 언제나 참여해야 된다던 신성철 전 회장의 이야기에 생각이 미치자 후다닥 배낭을 챙겼다. 그래도 태풍이 온다고 하고 비가 내리는데 나처럼 고민하다가 주저앉는 친구들이 많겠지? 한 열 명이 나오겠거니 하면서 15개들이 계란판 하나만 채워서 넣고 나섰다. 차려준 아침 밥상으로 뱃속도 채워서 든든하겠다 바로 나서니 8시다.
버스정거장으로 나가는데 비가 다시 내린다. 에궁~ 북한산 밑의 친구에게 전화를 해 보니 지금 막 나서려고 한단다. 대방역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보니 철인 이종율이 참가 못해서 아쉽다면서, ‘바람이 살살 부니 산행하기는 좋겠다’는 카톡 문자가 왔다. 용산역에 내리니 8시 35분에 떠나는 용문행이 막 들어오고 있다. 늘 승차장을 가득 메우던 산꾼들이 거의 없고 썰렁하다. 그렇지. 비를 맞으면서 미끄럽고 불편한 산행을 나서는 사람들이야 별로 없겠지…
용산발 용문행 9시 5분 차를 타고 가면 집합시간에 딱 맞는데 30분 먼저 출발하였으니 한산한 차안에서 카톡 문자를 많이 날리면서 갔다. 중간 중간 바람에 구름이 벗겨져 푸르거나 맑은 하늘이 보이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체로 흐린 날씨였다.
용문역 2층의 대합실에서 배낭을 벗어 놓고 아랫 층의 주차장을 살펴봐도 분당팀의 차량과 친구들은 보이지 않는다. 명진호에게 “분당 팀이 도착했는지? 나는 2층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문자를 보내놓고 창밖을 향해 서서 『경기도자(京畿陶瓷)이야기』 라는 책자를 읽고 있다가 낌새가 이상해서 돌아보니 어? 내 배낭(背囊)이 없어졌다. 주변에는 몇 명의 남녀 등산객들이 커피 한잔하면서 앉아 있었는데… 가까운 곳부터 스캔하다가 눈을 들어 멀리 보니 명사장이 소리없이 내 배낭을 둘러메고 내려가다가 놀란 모습을 보고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역 앞에는 벌써 명진호, 유성대, 고윤영이 준비한 쏘렌토와 벤츠, 스타렉스가 대기하고 있으며 분당팀과 전희일 총무 등 8명이 와 있었다.
특히 뉴페이스로 미국에서 온 Thomas Ahn, 요리사가 필요할 때만 나오던 ‘아다리’ 김태균선생이 나와서 반가왔고 새 얼굴들이 끼었으니 인사들이 요란하였다. 친구들에게 나누어줄 자외선차단 보냉효과의 기능성 타올을 한 아름 실어온 이완준 사장은 양평역에 잘 못 내려서 다시 택시를 타고 왔다. 약속한 10시 35분에 모두 16명이 모여 준비된 차량을 이용, 중원계곡 입구의 사설 주차장으로 이동하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일주차비 10,000원인 사설 주차장 앞, 임준규, 김경배, 이진식 그리고 남의녀]
[ 중원계곡 등산로 입구로 들어서는 친구들, 김인기, 고윤영, 유성대의 뒷모습]
심장마비에 의한 사망사고가 발생한 곳이니 수영을 하지 말라는 붉은 색 경고 플래카드가 걸려 있지만 '다이빙 폭포'라는 별명을 가진 이곳에서 주변의 절벽위로 올라가서 물에 뛰어드는 재미를 포기하기는 어려운가 보다.
사람이 없을 때 중원폭포의 물줄기와 주변 경관을 깨끗하게 찍어 올린 다른 블로거들의 사진을 몇장 옮겨다 함께 보기로 한다.
중원계곡에서 도일봉으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차돌성분인 규암(硅巖) 산지인 까닭에 각진 바윗돌이 대부분으로 눈길 닿는 곳마다 바위요, 발길 닫는 곳마다 각력 돌덩이가 마치 너덜지대처럼, 경사진 곳에서 밀려내려와 있어 걷기 불편한 산길이다. 다만 그런 덕분에 물은 아주 맑고 깨끗하다.
좌우로 깨끗한 물이 계속 함께 하는 완만한 중원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궂은 날씨임에도 벌써 습기 가득한 꿉꿉한 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팀들을 2~3팀 만났다.
치마폭포를 지나고 상폭 가까이 가자, 신영남이 앞장을 선 바닥조는 알탕 장소로 좋은 곳을 물색한 뒤, “물 좋은 곳을 찾았으니 정자를 지어야지.” 하면서 앉을 자리를 찾는다. 오늘 산행의 목적이 더위를 피할 겸 계곡 물놀이였으므로 Base Camp를 쳐야지. 아까 역 광장에서는 도일봉을 올라갔다가 올 친구들이 별로 없는 듯 하였지만, 코스가 너무 짧다고 느꼈는지 LA대표 안동진 선수까지 나서니 모두 7명이었다. 결국 9명은 계곡에서 놀고 7명은 산을 올라 갔다가 내려오는 것으로 나누어 졌다.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계곡 거의 막바지까지 올라 좌측의 중원산과 앞쪽의 싸리재, 우측의 도일봉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닿으니 최현용이 “내게는 딱 이만큼이 좋아. 더하면 무리할 것 같으니 난 여기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6명이 급경사 절벽 길을 돌아서 치고 오르기 시작했다.
숲길은 무성했고 경사는 점점 가팔라졌는데 앞세운 안동진이 자꾸만 미끄러진다. 알고보니 고놈의 독일제 등산화가 문제였다. 바위에 착착붙는 국산 릿지화가 아니라 흙길을 걷는 딱딱한 밑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비가내려 젖은 바위에서도, 더러 나타나는 흙길에서도 트레드에 진흙이 잔뜩 묻어서 떡이 지니까 비탈에서 자꾸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보슬비가 계속 되는 가운데 가끔은 굵은 장대비 줄기가 쏟아지기도 했지만 무성한 숲이 가려주어서 다행이었다.
전희일 총무와 이완준은 앞장서서 가볍게 올랐고 나는 김경배, 박한우, 안동진과 함께 오르는데 힘든 산행이 오랜만인 안동진이 "이제 얼마나 남았나?" 하고 자꾸 묻는데 “저기 하늘이 보이니까 거의 다 올라 온 거야.” 하고 추스러면서 끌고 올랐다.
싸리재에서 오는 능선과 만나는 곳, 하늘에서 밝은 빛을 고스란히 받는 안부삼거리에 닿았다. 아침에 주차장에서 경배가 알려준 ‘나들이’앱이 제대로 작동하여 우리가 해발고도 800m 지점에 도착해 있으며 도일봉(864m)의 코앞에 닿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내려오던 한 쌍의 중년 남녀가 이 앞에 남아있는 200m가 매우 험하다고 하면서 지금 올라 온 것에 비하면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코스라고 겁을 주는 바람에 하늘이 빠꼼한 그 자리에 앉아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자고 한 것이 끝이 되고 말았다.
[ 도일봉 아래의 해발고도 800m지점에서 배낭을 내려 놓고 앉았다. 모두 4.37Km를 걸어 왔고 정상까지는 210m가 남은 지점이다.]
[사이다 같은 막걸리와 따로 없는 진수 성찬을 앞에 놓고 즐거운 환담 ]
막걸리와 소주 한병, 떡국과 김치, 참외와 복숭아, 자두, 커피 등의 음식, 과일을 나누어 먹고, '토마스'가 된 친구의 재미있는 '미쿡 이야기'와 함께 수다를 떨다가 보니, 당분과 알콜이 들어가서 추위를 떨치고 원기를 회복했다. 그러나 벌써 2시니까 아무래도 시간이 늦어졌고 아래에서 기다리는 친구들도 생각해서, 무리하지 말고 여기서 그만 내려가자고 결론이 났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날씨가 좋으면 도일봉에서 건너편의 중원산이나 멀리 '한국의 마테호른이라는 별명을 가진 백운봉, 유명한 용문사를 품고 있는 용문산 정상의 장관을 볼 수 있겠지만 이렇게 비가 오고 시야가 가려진 궂은 날, 굳이 정상을 밟으면 뭐 하겠나.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토마스에게는 하산 길마저 힘들고 미끄러지기는 마찬가지였다. 힘든 티를 안내려고 용감하게 걷지만 진흙 덩이가 묻어 무겁고 미끄러지는 등산화로는 경사진 암벽에 설치한 로프 길도, 쓰러진 고목 등걸을 넘는 것도 모두 유격 코스처럼 친구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 씩씩하고 용감한 토마스안, 박한우, 이완준]
[이날 산행 길은 절대로 걷기 쉬운 길이 아니었다. 물맑은 중원계곡에서 쉰 친구들, 좋은 선택을 했지.]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까, 캠프에서 명진호가 몇차례 호출을 했는데 우중 안전 산행에만 신경을 쓴데다가 배터리가 방전이 다 되었으니 전화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비교적 간 덩이가 큰 박한우 세무사]
[ 빗길에 미끄러워서 고생한 안동진, 조심 조심 했는데도... ]
[ 이렇게 고생을 했다니까. 미군의 레인져 코스도 잘 탔던 친구가... 나이 드니 어쩔 수 없는가 봐.]
[ 벼랑 끝에서 포즈까지 취하는 여유있는 싸나이 ]
[ 손까지 흔드는 차돌 같은 젊은이, 이완준 사장 ]
[바위 좀 탈줄 아는 친구 - 이완준은 몸을 돌려서 아주 가볍게 절벽길을 통과하고 있다.]
[ 도일봉의 용사들 - 전희일, 이완준, 안동진, 김경배, 박한우 ]
그리고 계속 내려오는데 우리가 이렇게 많이 올라 왔었나? 하면서 ‘이 길이 아까 올라 왔던 길 맞나?’하는 친구가 있다. 가는 방향이 반대 방향이니 한번 본 길이 낯설 수밖에 …
상폭에 이르니 물이 두 갈래로 나누어져 흐르는 쌍폭의 절경이라 사진을 두 장 박은 뒤 모두들 큰 보폭에 빠르게 걷고 걸어서 바쁘게 내려왔건만 3시가 넘었으니 친구들이 기다리다가 다 철수해 버렸다.
[ 중원계곡의 상폭 ]
먼저 내려간 친구들이야 잘 쉬다가 갔을테고 아무리 바빠도 땀은 씻어야지. 우리끼리 알탕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배낭을 내려 놓고 모두 벗고 뛰어 들었다.
“그래. 이 맛이야!” (알탕 맛?)
땀과 함께 산행의 피로를 다 씻어내고 좋아하는 중에, 책임감이 큰 전희일 총무는 먼저 입고 출발했다.
나머지도 복장을 갖추고 하산 길을 재촉하는데, 올라 갈때는 멀더니 내려가는 길은 가볍고 빠르기도 하다고 하면서 룰루랄라 하는데 갑자기 2명이 되돌아서 쏜 살같이 올라간다. 아니 갑자기 왠 일이래? 했더니 "조금 전에 벗고 씻으면서 안경을 두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나머지 3명은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한 오분 남짓 내려 온 것 같은데 10분이 넘어도 내려오지를 않는다. 올라가는 길은 더 힘들고 멀겠지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거의 20분쯤 되어서 아마도 어둑한 산 계곡인데다 혹시 물속이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우리도 올라가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려온다.
나중에 기다리던 친구들이 누가 안경을 두고 왔더냐고 묻는데, 산행팀 중에서 안경 쓴 친구는 2명이었고 누구라고는 밝히지 않겠는데 안경이 굳이 미제라서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니고 당장 눈앞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었다는 것만 적어둔다. ㅎㅎ
중원폭포를 지나면서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다. 아침에 올라가면서 다 모아서 한 장 찍었어야 하는데 몇 명씩 나누어 올라가는 바람에 모으지도 못했지만 오후에는 비가 그칠 수도 있으니 그때 찍으면 되려니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 내려가 버렸을 줄이야.
산행 친구들만이라도 중원폭포가 나오도록 세워 놓고 보니 내 스마트폰이 완전 방전되어 죽어버렸구나. 김경배의 스마트폰으로 찍기로 했는데 며칠전에 동해안으로 휴가 다녀온 이 친구 아직 방수비닐을 씌워둔 채로다. 카메라를 작동하려니 전총무가 부르는 전화를 했다. 빨리 오라는 재촉일테니 끊고 우선 사진이나 한 장 찍고 보자고 끊었다. 그래놓고 다시 카메라 기능을 열어서 찍으려니까 또 전화를 해서 벨이 울리니 찍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받으려고 했으나 비닐카버 때문에 들리지를 않네. "에라 모르겠다. 주인이 답해라.”하고 주었다.
우리 뒤편에 폭포를 즐기는 많은 피서객들을 비키도록 조정하여 폭포 물줄기가 나오도록 찍었지만 나중에 경배가 카톡으로 보내 온 사진을 보니 비닐카버를 벗기지 않고 찍어서 화질이 영~ 안 좋다.
주차장에 닿으니 평창에서 차를 몰아온 고윤영의 스타랙스가 외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차 밖에서는 전총무가 손수건을 머리에 쓰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청승맞게 서서 기다리고 있고…
다른 친구들도 이 주차장에서 기다리다가 조금 전에 용문역 앞의 식당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기약없이 사람 기다리는 것이 제일 지루한 일인데… 미안도 해라.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이나마 친구들 얼굴을 보려고 따박따박 나오는 살가운 친구들인데 오늘 이한주 회장은 장인 제사 때문에 전주에 가서 못 나왔고 박용익, 이종율도 사정이 있어서 못 나온다는 연락은 왔는데, 벌써 몇 번 연속해서 빠진 친구들의 얼굴이 떠 오른다. 신성철, 황재원, 이창민, 김의현, 남승우, 김남국, 김계호, 신대선, 권오창 등등… 친구들아 이완준이 가져 온 타올이 많이 남았다. 빠지지 말고 나와서 받아 가도록 해라.
[ 송월타올의 이완준 사장이 준비한 선물 ]
용문의 이름난 전통 음식점인 ‘용문막국수’에서 일행이 모두 재회하니 다시 인사가 시끄럽다. 맛있는 비빔 막국수와 따뜻하고 고소한 특제 수육으로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면서 한바탕 회포를 풀고 5시 반 용산행 열차를 탔다. 다음 달 산행은 추석연휴와 겹치는 까닭에 그 다음 주 일요일, 즉 9월 14일로 미루기로 했다.
분당팀은 승용차편으로 분당으로 떠났지만 서울팀은 청량리 역에서 아침에 독일 맥주 30캔을 보내려다가 인편이 마땅치 않아 못 보내고 맡겨두었다는 김근배와 ‘씨름’을 위하여 청량리에 내리기로 했다.
열차 안에서 돌팔이 경배는 동진의 손바닥에 난 상처를 소독해 주었고, 신영남은 임산부석 옆좌석에 앉아서 가기 민망하니까 '임산부 동반석'이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아다리 선생은 자녀들 혼사가 걱정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으며 긴장이 풀린 총무는 깊은 잠에 빠졌다. 아니 고래들의 야간 전투를 위한 휴식시간을 가지는 듯 했다.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