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성경지명
성경지명(83):수라구사-레기온 -보디올 - 압비오 광장 - 삼관
사도행전 28:11~15
※ 멜리데(몰타)이후?
수라구사(사흘) -레기온(하루)- 보디올(이레) -(아피아가도) -
압비오 광장 -트레이스 타베르네 - 로마(이태를 자기 셋집에서)
1.수라구사(현; 시라쿠사;Siracusa)
➀시칠리 섬의 동쪽 해안의 도시로 당시 시칠리에서 가장 큰 도시로 시칠리 무역의 중심 항구
○시칠리:에트나 활화산 / 이오니아해의 절경 / 시칠리아 밀가루와 빵.
➁수학자 「아르키메데스」(Bc 287?~212?)의 출생지
○「아르키메데스」는 평생을 수라쿠사에서 보냈다.
-「유레카」(ευρηκα;찾았다) - 부력의 원리 ⇨ 옷을 벗은 채 수라쿠사 거리를 달렸다는....
(수라쿠사의 왕 「히에론2세」의 왕관)
-지렛대 원리 - 서 있을 자리와 충분히 긴 지렛대를 주면 지구라도 들어 올려 보이겠다.
(도르래와 지레의 물리적 법칙 체계화)
-구(球)와 원기둥 - 구의 부피는 그것에 외접하는 원기둥 부피의 ⅔다.
(원뿔(1):구(2):원기둥(3)의 비율)
(아르키메데스는 이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묘비에 구와 원기둥 그림을 새겨 달라고 했다.)
○2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 군에 대항해서 고향을 지키는 무기들을 발명했다.
(「포에니 전쟁」(Bc 264~Bc146) - 카르타고와 로마의 3차에 걸친 고대 지중해 주도권 전쟁.
포에니? - 로마인들이 카르타고인들을 부르던 「포에니쿠스」(페니키아)에서 유래.
2차 전쟁(Bc 218~201) -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의 코끼리 부대
Vs 로마의 스키오 아프리카누스 장군.
로마는 이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고 동쪽으로 진군을 한다.
- 「아르키메데스의 갈고리」 - 해안에 접근하는 로마군함을 갈고리로 걸어 올린 뒤 뒤집어 버림.
- 청동 거울
- 사거리를 자유자재로 조절 할 수 있는 투석기
⇨ 이것으로 로마는 2년 동안 수라쿠사를 점령하지 못하고 포위만 하고 있었다.
○아르키메데스의 죽음
- 결국 Bc 212년 로마군에 함락
/ 로마 사령관 「마르셀루스」는 아르키메데스는 절대로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고 명령.
/ 그 때 「아르키메데스」는 땅에 기하학 도형을 그리고 있었는데 모르는 병사가 그것을 밟았다.
/ 「내 도형을 밟지 말라」- 화가 난 병사는 아르키메데스를 칼로 찔러 죽였다.
➂철학자 플라톤(Bc 427~347)이 자신이 구상한 이상국가를(哲人政治) 실현하기 위해
3차례 방문하였으나 음모와 「디오니시우스2세」의 변절로 실패하고 탈출하기도 한 도시.
2.레기온(Rhegium)(현;레조디칼라브리아)
➀이탈리아 최 남단 (장화 모양의 앞 코 부분) 항구로 시칠리아 「메시나(Messina)」 항구와 맞은 편
(메시나 해협; 두 항구의 거리는 약 4km)
○ 1908.12.28 대지진과 쓰나미로 도시 인구 27%가 사망.
➁바울은 여기에서 하루를 지낸뒤 남풍을 타고 「보디올」로 올라간다.
3.보디올(현;포추올리(Pozzuoli)
➀이탈리아 나폴리만 북쪽 해안 도시.
○「보디올」 (포추올리)?
- 물속에서도 굳는 화산재 콘크리트의 이름.(로마의 많은 건축에 사용)
- 나폴리 서쪽 11km.
- 현재도 활발한 화산과(솔파타라 화산) 마그마의 압력에 따라 움직이는 지반.
1970~1980년대 지반이 갑자기 2m 솟아 올라 항구 기능 상실.
/ 옛날 도시 절반 가량이 바다에 가라 앉아 투명보트로 바닷속 조각상과 모자이크 관람.
- 이탈리아 동쪽에서 오는 선객들은 일반적으로 「보디올」에 상륙하고,
곡물선은 로마와 가까운 「테베레」 강 하구의 「오스티아」에 정박했다.
○나폴리 만 ⇨ 북쪽부터 보졸리 -(약20km) 나폴리 (28km)- 폼페이 -(29km) 소렌토
○소피아 로렌의 고향
➁바울은 여기에서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 7일을 함께 한다.
➂여기서부터 「아피아 가도」를 걸어 로마에 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4.아피아 가도(Via Appia)
➀로마가 건설한 도로 중 모든 도로의 여왕이라 불리는 가장 귀중한 도로
※빌립보를 지나는 길: 비아 에그나티아)
(콘스탄틴노플-네압볼리-빌립보-달마디아 디라키움 까지(현;알바니아, 두레스);800km
※비시디아 안디옥을 지나는 길: 비아 세바스테(앗달리아-비시디아-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➁Bc 312년 로마 집정관이자 재무관이었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에 의해 건설.
○로마 ~ 「브린디시」(Brindisi)(구두 굽) 항구까지 총 560km 포장도로.
로마 -보디올(뽀졸리) -바리 - 브린디시
-직선의 설계
-다층구조; 땅을 깊게 파고 자가, 모래, 점토를 다져 넣고 그 위에 배갯돌로 포장.
-가운데 부분이 약간 솟은 아치행으로 배수 완벽.
-1마일(약 1.48km)마다 거리를 표시하는 이정석과 일정 거리마다의 주막 배치
○Bc 71년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을 진압한 로마의 「크라수스」 장군은 아피아 가도
양 옆에 포로로 잡은 6,000명의 노예 포로를 십자가형으로 매달았다.
(로마에 대항하는 자들에 대한 공포심 야기)
○무덤의 길: 고대 로마법상 위생과 종교적인 이유로 도시 내부에는 무덤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아피아가도 시작점(로마 성문 밖) 양 옆으로 거대한 공동표지를 만들었다.
-기독교인들의 지하 무덤인 카타콤도 이 아피아 가도 시작 점 주위에 집중되어 있다.
-영화 쿼 바디스(Quo Vadis)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Quo Vadis Domine」의
물음도 아피아가도의 시작점에서이다.
5.압비오 광장(Appii Forum)
➀로마로 남동쪽 70km 위치, 삼관보다 20km 더 먼 곳.
➁아피아 가도를 건설한 로마 집정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 」의 이름에 유래
○아피아 가도를 따라 올라 오던 사람들이 이 곳에서 운하를 이용하는 배를 갈아타기도 했다.
○데첸노비움 운화(Decnnovium Canal) 혹은 아피우스 운하(Canal of Appius)
○압비오 광장 있는 곳에는 거대한 폰티네 습지가 있었다.
-이 습지로 말라리아 모기가 많고 진흙탕이어서 사람이 걸어서 통과하기 힘든 구간이었다.
-로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이해서 아피아 가도를 평행하게 달리는
인공운하를 만들어서 늪지대의 물을 빼내고 배로서도 이동할 수 있게 했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Horace)」의 기록?
이 운하 배는 돛이나 노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귀(말)이 육지를 달리면서 배를 끄는 행식.
밤새 배가 움직이면서 배를 모는 선워들과 나귀를 끄는 마부들의 소리가 요란했다.
늪지대의 지독한 악취와 모기 때문에 잠을 청하기도 힘든 매우 시끄럽고 불편한 여정이었다.
6.트레이스 타베르네(Tres Tabernae) = 삼관(三館)
➀아피아 가도에(Via Appia) 있던 로마 남쪽의 약 50km 지점 여관
➁로마로 들어가기 전 하루 거리에서 쉬고 다음 날 로마에 도착할 수 있는 지점.
➂로마 군인들은 이 곳에서부터 정렬을 하여 로마까지 개선 행렬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