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insidious'.
'서서히 침투하는'이라는 단어가 몇해전의 '그해의 단어'였다.
시든 잎색깔과 새로 나는 잎색깔이 똑같다.
화분을 관찰할 여유가 생긴 한나는,
햇살이 비쳐드는 창가에 눈을 돌린다.
햇살은 한나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코로나가 휩쓸고 간 한나의 장기가
쉬이 나아지지 않는다.
폭풍처럼 한나는 아팠다.
조금씩 종말을 향해 다가가는게,
중년이후의 삶이 아닌가.
한나는 '다 알고 있으니, 그만 나의 장기를 흔들어대라'고,
코로나 감염후, 삼십육시간뒤에 외쳤었다.
사람의 몸이 깊이 물속에 몸이 잠기고,
수면위로 솟아오를 기운마저 떨어질때,
'익사'가 시작된다. 산을 오르기 시작할때,
산을 내려갈 힘이 남았는지 측정이 시작된다.
밤길을 걸어갈때, 사방 오십미터 반경에,
위험요소를 파악하며 걸을 수 있을 상태까지만,
친구와 술을 마신다.
어떤 타인이 하는 말이 한나의 신경을 긁기 시작한 최초의 사건 이후로,
타인은 어느날 다시금 한나의 신경을 긁는다.
몸이 하나씩 아프기 시작할때 이미 그 장기는 쇠락을 시작했다.
한나가 몸을 돌려 체육관을 걸어나올때,
잠시 그 단어가 떠올랐다.
그 단어가, 사람이 어떤 집단에 가입하고 나서,
그 집단의 지도자가 말하거나,
지도자의 보조자가 말하는 생각들에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가는 경우에도 적용이 될까.
체육관에서 오십분동안 운동하고는,
사우나에서 사람들이 말을 하고,
그 근처에 앉아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말을 듣는다.
그들이 '진지한 경청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경청자는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도 모르게,
사우나에서 들었던 얘기를 '보편적지식'으로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텔레비젼에서 건강상식을 마치 새로운 지식인 것처럼,
의사도 아니면서 의사주변인들이 말한다.
그 건강식품을 끼니때마다 가루로 뿌려서 먹는 것보단,
의사협회에서 승인한 알약 한알을 하루에 한번 먹는게,
더 효과적이고, 더 편하지 않을까.
나이들면서 약의 갯수가 늘어나는건 당연하다.
생명체는 유한하다.
사람은 그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에 나이들수록 더 많은 고독에 시달린다.
한나가 두수에게 점심으로 '김떡순세트'를 사가겠다고 문자를 날린다.
탄수화물을 가끔씩 먹으면,
생로병사의 과정중에 행복을 선사한다.
새로 나는 잎들이 광포하게, 혹은 삐죽하게 위로 솟아있다.
한나는 아마존이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
더 큰 아마존은 길을 걸야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