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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5년 3월 넷째 주 일요법회
법문: 혜담 스님, 사회: 혜안, 인례: 자광, 헌향: 명문, 헌다: 명조, 연오행,
현안보고: 법회장, 발원문 낭독: 보현 1구 명등 법운 거사님, 촬영: 원광, 방역 및 안내: 대원 3구, 법회팀
법당 정리: 보광당 청정팀, 새법우 안내: 새법우 안내팀, 주보배부: 송파17구 법회, 재일법회 재물공양물 준비: 재 의전팀
지난 주는 석가모니께서 깨달음을 찾아 집을 떠난 날을 기리는 '출가재일' 어제는 오랜 수행을 통해 진리를 깨달으신 석가모니께서 열반 드신 날을 기리는 '열반재일' 어렇게 하나 하나, 불교의 4대 명절 중 또 하나 석가모니 탄생을 기리는 '부처님 오신 날'이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광 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 상황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올 해에도 정법수호의 의지를 담아 한 마음 한 뜻으로 투명한 법회 및 사찰 재정 운영을 위한 '광명의 등' 모연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지금까지 힘을 모아 여기까지 온 것처럼, '광명의 등'으로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좀 더 깊게 생각해보는 2565년 초파일을 맞이합니다. 그리하여 내년에는 기필코 불광 정상화를 이루어 예전처럼, 축제 마당으로 즐기는 초파일을 맞이하기 바라는 우리 모두의 발원을 담아 봅니다. ('광명의 등' 모연 참여하는 방법은 아래에 기재해 놓겠습니다.)
제 2143호 불기 2565년 3월 28일(일) 법회지, 보현행자의 서원 : 수희분
현관 입구에 불광 법회를 안내하는 표시판, 법회지를 나누는 봉사자님들의 밝은 모습에서 불광의 본래 모습을 봅니다.
요사채 앞 바라밀 염송 기도 및 법회 준비하시는 혜안 거사님, 자광 거사님.
법회를 위해 변함없이 1층 로비에서부터 보광당 곳곳마다 각각 할 일에 집중하고 계신 보살님, 거사님. 감사합니다.
금주의 법문 : 혜담 스님
금주의 법어: 방거사(龐居士)의 선사상(禪思想)
[법문 내용]
존경하는 불광 형제 여러분 한 주일 평안하셨습니까? 또한 유튜브를 통해서 법회를 함께하시는 전국의 사부대중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어제가 부처님 열반하신지 2565년이 되는 열반재일이었습니다. 열반재일을 광덕 스님께서는 열반시현일(열반을 보인 날)이라고 명명하셨습니다. 이날을 열반에 드신 날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또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그 상태를 열반을 증득했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연도 수를 계산할 때 주로 서력기원을 많이 씁니다. 서력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로부터 2021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부처님 열반 자체를 몸 전체로 보이신 열반일을 기준으로 하여 불기 2565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서양의 종교와 동양의 종교에서는 큰 차이를 보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그 열반은 깨달음을 증득한 것이고, 열반시현일의 열반은 깨달음의 증득과 달리 표현해서 몸을 버린 회심멸지(무여열반)이라 말을 합니다.
불교의 사상학적으로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150년~250년 사이에 대승불교가 발생하게 됩니다. 대승불교가 일어난 것은 중생구제에 대해서는 등한시 했던 소승 상좌부(上座部) 불교에 대행해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은 스님들이 자기 수행을 위해서 사찰에 앉아서 수행하는 그것에 있지 않고, 모든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오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실천하여야 하는 것이 스님들의 할 일이라는 캐치플레이스 걸고 일어난 것이 바로 대승불교이다. 대승불교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반야경의 공(空), 그리고 유식불교가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대승불교인 반야경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공(空)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공(空)이 무엇이냐. 근본적으로 모든 중생들은 불성을 가지고 있고 흔히 내 마음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 내 몸에 있는 것이니까 그 불성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전재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는 것은 불성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불성(佛性)이 나라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지탱하고 있는 불성이 공이라 했지만 또 다른 유식에서는 다른 의식이 있는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요즘 서양사회에서 일고 있는 마음을 찾자고 하는 심의식(心意識)이라 하여 인식이라는 것이 있으며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끝없는 유무대립이 있습니다.
반야경의 수행법인 공은 깨닫고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광덕 큰스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반야경의 마하반야바라밀은 바로 내 생명이고 일체를 다 가지고 있는 그 마하반야바라밀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 간다는 것이 있지만, 전통적인 수행법에는 화두를 관해서 내 본성을 본다는 간화선이 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불교에서는 내 불성을 찾기 위해서 화두를 관하는 것을 으뜸으로 하고 있고 그 외에도 미얀마등에서는 화두를 관하면서도 호흡을 관하는 수식관이 있습니다. 물론 염불법도 있고,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는 수행법도 있지만 니르바나에 도달하기 위해서 화두를 관한다는 것은 한국불교의 주된 수행법입니다. 그렇다면 마하반야바라밀을 믿고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을 내어 쓰면 되는 것이지 왜 화두를 관해야 되는지에 대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70억이 넘는 사람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이런 수행과 관계없이 그냥 현 상태 그대로 놓여있는 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일까를 생각할 때, 우리들의 삶에서 고통이 없다면 종교가 있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느 사제 스님과 이야기 중에 그 스님은 어려서부터 죽음이 너무너무 두려웠다는 말을 듣고 그 사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출가를 하게 된 것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인간에겐 두려움과 고통이 있기 때문에 수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왜 수행이라는 것을 하면서 어렵게 사는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삶이 쉽게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무언지는 모르겠으나 명백하지 않다는 호남지역의 속어 같은 껄적지근하다 라는 말처럼 이 껄적지근한 내 삶을 좀 더 그렇지 않은 본래상태로 돌리자 라는 목적을 가지고 화두를 관하는 간화선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퍼진 전염병 코로나 발생지라고 알고 있는 우한이란 도시가 간화선이 전성기를 이루던 곳이며 출발점이라고 합니다. 우한의 동정호를 중심으로 하여 호남과 강서를 중심으로 선불교가 일어나게 되고 선불교를 일으킨 큰스님들과 더불어 유명한 재가신도인 방거사가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강원에 있을 때 “신통병묘용 (神通逡妙用) 운수급반시 (運水及搬柴)로다. 신통묘용이 별것이던가 물 길고 나무 나르는 것이 그대로 신통이다“라는 방거사 깨달음의 말을 보고 방거사야 말로 제가 찾던 선지식이라는 생각이 있었고 그 후에 저는 2006년도에 ‘방거사 어록 강설’번역 출간했습니다.
방거사의 삶 자체가 중국 선불교를 등장시키는데 재가신도로서는 큰 역할을 하신 분이고 중국의 유마거사라고 칭송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방거사 어록이 선서(禪書)에 많이 나오는데 ‘벽암록’ ‘종용록’ ‘무문관’등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도움을 많이 준책이 ‘벽암록’이었으나 특히 우리나라 석지현 스님의 ‘벽암록’이 가장 정확하고 핵심을 찌르는 그런 책이라 한국 불교에 큰 족적을 남기셨다는 생각을 합니다.
방거사가 약산스님 절에 가서 몇 개월 수행하다가 약산스님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떠날 때, 약산스님은 선객(禪客) 10인에게 분부해서 해탈문(解脫門)까지 전송케 하였다. 문밖에 이르자 거사가 공중에 휘날리는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참 멋진 눈이다. 한 송이 한 송이가 다른 곳에는 떨어지지 않는구나!” 이 말을 받아 전(全)이라고 하는 선객이 말대꾸를 했다. “어느 곳에 떨어집니까?” 그러자 거사는 손바닥으로 한번 때렸다. 그러자 전 선객이 말했다. “이렇게 함부로 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이에 거사가 말했다. “이러고도 선객이라고 우쭐대면 염라대왕이 스님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전 스님이 “거사님은 어떠합니까?”하니, 거사는 다시 손바닥으로 한번 쳤다. 그리고는 말했다. “눈으로는 보아도 소경과 같고, 입으로는 말하여도 벙어리와 같다.”
여기서 문제의 소재는 두 곳에 있다. 첫째로 거사는 무슨 까닭에 그냥 내리는 눈을 ‘하나하나가 다른 곳이 아닌 마땅히 떨어져야 할 곳에 떨어지고 있다’고 했으며, 둘째는 전 선객이 어떻게 응수를 했더라면 거사에게 손바닥으로 얻어맞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벽암록의 42칙은 이 일단을 다루고 있다. 그냥 내리는 눈을 보고 거사는 왜 ‘편편불락별처(片片不落別處)’라고 했으며, 그 스님이 무엇이라고 대답했더라면 거사가 따귀를 후려치는 법령을 피할 수 있었을까? 이것이 간화선(看話禪)에서 말하는 화두이다. 그렇다면 법사인 너 혜담(慧潭)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혜담이라면 “아랫마을 이서방 집 누렁이가 좋아하겠습니다!”라고 하겠다.
벽암록42칙 방거사 어록 이 부분에는 화두가 다섯 개가 나오고, 하나하나가 깨달음을 익혀가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를 파악했을 때 견성했다는 말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수행의 근본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제 열반시현일을 지내고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믿음의 문제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을 믿어서는 그 믿음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놓쳐버립니다. 그렇다면 내생명 무량공덕 생명이라는 것을 뼈 속까지 믿게 되려면 직접 눈으로 봐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노력하면 이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불광사에 처음 왔을 때, 큰스님께서 어록들을 보라고 당부하셨지만 그때 저는 조사어록을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절의 일도 있고 마하반야바라밀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에 한가하게 조사록을 볼 수 있겠냐고 등한시 했다가 어느 날 문득 조사록을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벽암록, 종용록, 무문관등 책을 파고들었고 화두를 가지고 했을 때 비로소 니르바나를 증득하는 그 자리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고 막연하게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라는 것만 믿어서는 그 믿음이 언제 끝날 줄 모릅니다. 형제 여러분들도 뜻을 세우고 깨달음을 얻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 때 추천하고 싶은 책이 <벽암록>입니다.
간화선을 할 때는 선지식을 찾아 대면을 해서 문답을 해야 하지만 한국 선불교에서 화두 점검 해 주실 스님들이 많지 않습니다. 다행히 몇몇 스님들께서 벽암록을 잘 해설을 해놓으셔서 이것만 보고도 자신의 공부상태를 점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은 계속 마하반야바라밀을 믿으라는 법문을 했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이것을 더 정확히 믿기 위해서는 화두선이나 아니면 호흡을 하는 실천적인 수행을 권하지만 그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 믿음은 보다 확실해지고 그런 믿음이 있을 때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스님들이나 선각자들의 삶에 서도 원하지 않아도 수행하고 있으면 저절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옵니다. 내 본성을 깨닫기 위해 노력했을 떼 부수적으로 건강과 재물과 명예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깔적지근한 삶을 없애겠다고 ‘나는 누구인가’를 추구해 나가면서 이런 자세로서 공부했을 때, 부처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 감사함이 생겼을 때 내 주변에서는 유유상종으로 감사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무조건 반야바라밀을 믿는다는 것에 멈추지 말고 한 단계 뛰어 올라서 ‘내 생명 무량공덕 생명을 본다.‘ 즉 방거사가 말한 ‘편편불락별처(片片不落別處)가 무엇일까. ’눈으로는 보아도 소경과 같고, 입으로는 말하여도 벙어리와 같다.’는 그 말이 무엇일까 이것을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놓지 않을 때 우리들에게 다른 삶이 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열반이 반열반이 아니고 니르바나를 얻기 위해서 노력할 때 ‘내 생명 무량공덕 생명’은 저절로 내 주변에서 전개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쪼록 믿음이라는 것도 있지만 실천을 통해서 내 생명 자리를 보아주기를 바라면서 법문을 마칩니다.
일요법회에 참석한 불광 바라밀 불자들의 모습입니다.
찬탄곡은 마하보디 동영상으로 올립니다.
♬ 찬탄곡 : 내가 없는 이름의 노래(대행스님 작시, 김동환 작곡) ♬
내가 없는 허공 길에 봄이 왔건만 수많은 공심들은 공체로서 봄이 온 줄 모르는가
나뭇가지 뿌리마다 육 통안을 벗어 나서 온갖 중생 연결되어 끊임없이 화하는데
고정된 게 하나 없이 찰라 찰라 나투면서 여래의 한 생각이 우리들의 마음하고 연결되니
여래의 공심으로 한 손 튀기는데 온갖 중생 공기 자루 안을 벗어나 자유권을 얻으리라.
내가 없는 허공 길에 봄이 왔건만 수많은 공체 몸은 공용으로 여여한 줄 모르는가
제 나무에 제 뿌리가 둘 아니게 벗어나서 우주 삼세 만물만생 근본마다 집결되어
서로 서로 통신되니 찰라 찰라 나투면서 공심에 한 생각이 앞뒤 없이 둘 아니게 돌아가고
한 겨울 나뭇가지 봄을 기다리며 한마음같이 공체로서 자유권을 얻으리라.
발원문 낭독 : 보현 1구 명등 법운 거사님
법회장님의 주간 현안보고
오늘도 법회에 이어서 금강경 독송이 보광당 구석구석 울려퍼집니다. 모든분들 감사합니다.
*광명의 등 모연 참여하는 방법
- 각 법등으로 접수 가능
- 법회사무국 직접방문 접수
- 온라인 접수 : 우리은행 102 096301 02 012 임향이(정법수호위원회 부위원장,
초대 사무국장, 현재 송파 32구 명등 문수혜보살)
우 리 는 횃 불 이 다. 스 스 로 타 오 르 며 역 사 를 밝 힌 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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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법회 현장의 여러 모습들과
혜담 스님의 법문을 녹취 기록하여
흡사 법회에 동참한 듯한 분위기에 젖도록 잘 편집해주신 마음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제 밤도 글 쓰시느라 잠못이루었겠어요. 보살님의 노고가 불광을 밝게 이끌고 있습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임을
믿음으로만 그 치지 않고
그 자리를 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천할 때
우리의 삶이 바뀐다는 법문을 해주신
혜담스님께 감사드리옵니다.
밤 늦도록 법회일지를 써주신 마음님께
수희찬탄드리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마음님 이번에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벚꽃도 예쁘게 봄이 찾아오듯이 불광에도 이제 봄이 오리라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컴퓨더가 말성부려 이제 들어왔습니다.
항상 느끼지만 이렇게 이해하기쉽게 편집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온 삼라만상이 화려한 봄이 찾아 왔는데
우리 불광사에도 정상화의 봄이 찾아오길 기도 합니다.
마하반야 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