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흥덕교회 안세환 목사
아름다움을 누리는 교회
시편 16:1-11
다윗의 믹담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말씀>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라고 한 1절 말씀에서 “하나님이여!”라는 부름에서 신앙인을 봅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부르짖었기에 어려움을 당하자 하나님이 보호해 달라고 외칩니다.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는 문장은 도치가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나를 지켜 주소서”라고 해야 순서입니다. 주께로 나아가 나를 지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를 지켜 주소서”라고 외칠 때 생명이 급박이나 어려움에 빠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절에서만 급하지 2절부터는 전혀 급하지 않고, 하나님이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라고 하여 긴장과 급박감은 사라지고, 평온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모습을 봅니다.
“여호와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에게 복 주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라고 기도하는 주인공은 지금 평온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금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여호와는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가 복이 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3절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라고 하여 하나님 앞에 있는 성도들의 즐거움을 말씀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 왔습니다. 와서 기쁨을 노래합니다.
어느 날 새벽에 기도하다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과 교회 밖에 있는 성도들의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에 나온 백성들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성전 안에서는 감사와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밖에서는 내 삶의 생활이 있기에 생활 속에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아하! 이것이 차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실생활에서 교회 안에서 하는 일까지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교회에는 예배와 감사와 찬양이 있어야 하고, 또 밖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까지 와서 “하나님 도와주세요”하는 기도는 성전 밖에서 해야 합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기도의 장소를 교회당에서 와서 한다고 하면 일상생활에서 하는 기도가 다 포함이 됩니다. 예배와 개인 시간의 차이에 대한 생각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기도는 감사의 기도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 이웃들과 함께 하는 감사 등 영광과 찬양과 감사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4절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여 이방 신에게 예배하는 모습과 그들의 신을 부르는 모습을 알려줍니다. 시인은 그런 이방 신에게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주께로 피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시편 16편을 선택한 것은 이 시가 정말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6편까지 오는 동안에 “참 아름답다” 하는 생각이 든 시가 바로 16편입니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라고 하여 여호와가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 되고 분깃이 됩니다. 내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인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가정을 지켜 주시는 보호자요, 수문장이 됩니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하나님이 내가 사는 구역을 재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내 삶의 영역은 모두 하나님이 재어 준 구역입니다. 이 구역이 아름다운 곳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하고 찬양합니다.
내 삶의 터전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내 집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내 가정이 정말 아름답도다 하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아름다운 것을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업이 아름다운 곳에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아름다움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이런 시인의 마음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도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아름답게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사는 곳이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는 고백은 자연과 내 산업과 내 가정을 바라보며 만족하는 삶이요, 기쁨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런 기쁨이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시인은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리라고 합니다.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한다고 합니다.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여기 7절은 도치가 되었습니다.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가 맞는 구절입니다.
밤마다 나를 교훈하는 양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사람에게 무슨 양심의 소리가 있겠습니까?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소리입니다. 이 소리가 밤마다 나를 교훈합니다. 얼마나 멋진 신앙인입니까? 이 시를 읽을 때 정말 감탄했습니다.
“이 16편 시인의 마음을 닮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이런 멋진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멋진 시를 읽고도 감동을 받지 않으면 어떤 것으로 감동을 받겠습니까?
성경을 읽으며 받는 감동이 많이 있지만, 정말 아름다운 시를 읽고 오는 감동은 벅차오르는 감동입니다. 미소가 저절로 나오는 감동입니다. “이 시인만 같아라!” 저의 마음입니다. 이 시는 정말 아름다운 시입니다. 16편까지 오는 동안 “정말 아름답다”라고 느낀 시는 이 16편입니다. 가장 멋진 시입니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인의 마음은 주님과 함께 하는 신앙인입니다.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멋진 삶입니다. 여호와를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와 함께 하는 인생이 얼마나 멋지고 즐거운지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시의 주인공은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반석과 같은 신앙으로 살아갑니다. 정말 멋진 신앙인입니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내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은 나를 오른쪽에서 지키시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신앙으로 살아갈 때에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라고 합니다. 내 영혼이 즐거워하고 내 육체도 안전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시인은 하나님이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는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이 바로 구원 신앙입니다. 주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시인의 고백이 다시 나옵니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여 주셨습니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마음이 얼마나 즐거운지 덩달아 춤을 추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시인의 마음이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