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신학자 김근주교수에게 길을 묻다.
이봉철목사
본협 서기
크리스찬다이제스트부국장
호산나전원교회
비행기는 두 날개가 부러져 빠르게 추락하는데 난 안전벨트 했으니 걱정 없다는 이 정신 나간 한국목사들을 과연 믿고 따라갈 수 있을까?
이미 무너진 한국교회를 바라만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고 찢어진다. 목사들은 제왕의 자리를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있다. 과연 한국교회가 파선되어 가라앉는 이 지경에서 살아남는 길은 무엇일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희망의 길을 신학자 김근주 교수에게 물었다.
지금의 보고 있는 한국교회를 말씀하신다면.
우리 사회 가득히 생태계 피라미드가 있어서 한 칸이라도 위에 다 가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기껏 한다는 소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주의 교회를 위해 봉사했더니 하나님께서 나를 대한민국의 10% 안에 우리 아이를 세워 주셨다고 간증합니다. 이건 좋은 간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태계는 눈꼽만큼도 건드리지 않은 채, 예수님의 등에 업혀서 오른 피라미드 정점을 우리 교회들이 뭐라고 말하냐면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향력 있는 위치 이게 교회를 다 더럽힙니다. 우리 청년들은 100명이 있으면 99명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도우시고 순종함으로 정규직이 되었다고 한다면 비정규직의 형제 자매들은 가슴이 너무 아픈 소리입니다.
저는 원숭이가 사람 되었다는 게 얼마나 성경과 어긋나는지 하는 것들과는 싸울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제가 정말 싸우고 싶은 대상은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주름잡고 있는 한 칸이라도 위로만 가려하고 위에 가야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장로가 대통령되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 영광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이거야말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평생의 싸워야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대부분의 노동자와 비정규직의 삶을 사는 성도들에게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판사, 검사, 변호사, 대학교수, 총장 나오면 영광이라고 설교합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진화론이야말로 평생 싸워야할 과제입니다. 한국교회는 이거 앞에서는 무기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한국교회를 말씀하신다면.
지금 한국교회 끝에는 하나님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위를 위협하는 그것 바로 돈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것이죠. 산을 좋아해서 산에 가면 절이 있습니다. 지리산의 어느 절에는 기왓장마다 기도제목 감사제목이 적혀 있습니다. 절 안에 있는 서랍장에도 기도제목이, 향초에도 꼬리표로 기도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교회나 절이나 뭐가 다른가 싶은게 다 내자녀 잘되고 내남편 직장 잘되고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달라는거 빌고 바라는데 절이나 교회나 차이가 없고 그거에 돈이 다 필요해요 절도 양초하나에 얼마씩 합니다. 교회나 절이나 자기가 잘되고 편안해지는데 돈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빌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부처님 이름으로 드리면 온 천하의 주님이 ‘넌 번지수가 틀렸어’하고 박살내고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기도하거나 절에 가서 기도하는데 절에서는 안되고 교회에서 해야한다는 식으로만 가다보면 누가 진짜 용 되게 하느냐 시합을 하는거고 누가 자기새끼를 성공시키느냐의 조잡한 싸움이 되는건데 아마 한국교회는 이미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참된 복음의 의미는 던져버린 것 같습니다. 앞으로 5년, 10년 후엔 개신교회가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을거고 어떤 정치인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안해서가 아니라 주일성수를 안해서, 술, 담배를 안해서 영향력이 없어져 버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십일조, 주일성수를 하지말자는 것이 아니라 주일성수니 많은 기독교정치인들의 조찬기도회 니 하는 것도 중요한 전통이지만 그거 강조해야 틀리거든요 교회는 점점 쇠퇴할거고 교인의 수도 줄 거 같습니다. 대형교회들은 쾌적함과 편안함이 있으니 망하지 않을 거 같고 요즘 작지만 건강한 작은 교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의 작은교회운동이 10년을 넘어갑니다. 10년이 넘으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큰 몸집 있는 교회는 큰 몸집 때문에 망하고 건강한 작은 교회는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중형 교회에서는 청년들이 다 빠져 대형교회로 가고, 건강한 교회를 찾아 가게 되겠지요 그러나 늘 하는 말이지만 교회는 망해도 복음은 망하지 않습니다. 제가 구약을 보면서 느끼는게 예루살렘이 망할 때 다들 느꼈던게 ‘우리끝이구나’ 생각해서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으려고 난리법석을 떨지만 다윗의 후예인 나라도 망하고 딱 하나 있던 교회 성전도 망했지만 복음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리는 망하지 않고 이 구약이 이루어지고 오늘 우리까지 하나님 말씀으로 믿게되는걸 보면서 제가 배운게 교회는 망하겠구나 이렇게 하나님을 거역하는걸 보니 한국교회는 망하겠구나 그러나 한국교회는 망하지만 복음은 쇠하지 않고 더 영성해지고 복음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능력은 더 드러나겠다 싶습니다. 이미 교회에 대한 신뢰는 깨어지고 자정의 능력은 없어졌습니다.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를 자정할 수 없고 세습에 대해 자정할 능력이 없습니다. 겉으로보이는 문제는 썩어 보이는데 자기들끼리는 행복합니다. 커다란 한국이라는 배가 침몰해가고 한국교회라는 배가 침몰해 가는데 내부교회는 자기네 탄 선실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배가 침몰해 가는데 자기네 교회는 괜찮다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 중 ‘우리가 지금 봐야 할 건 우리가 탄 선실의 행복이 아니라 한국교회라는 전체 배의 문제다 근데 우리는 우리 선실이 행복하다고 행복한줄 아는데 이제는 우리가 배를 봐야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너무나 올바른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이 배를 끌고 가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지금 그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현실을 잘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500명 돌파하기 위해 건물 짓고 1000명 돌파하기 건물 짓고 돌파하면 또 건물이고 이 쓰레기 같은 교회는 존재의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자기가 아닌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하는 세상의 빛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유지하는데 급해졌습니다. 빛이 자기 집 등불 닦느라 신경을 못 쓰면 그건 교회가 아닙니다. 지금은 교회를 확장해야 할 때가 아닙니다. 이제 목사님들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저런 세미나 찾아다닐게 아니라 미친 듯이 성경을 보는 실력을 늘려야 합니다. 히브리어, 헬라어로 성경을 할 수 있는 만큼 읽어야 합니다.
특별히 예레미야서에 관한 저서도 쓰시고 현재 연구 강의활동을 하고 계신데 한국교회의 상황과 유사한 예레미야서를 통한 한국교회에 교훈을 주신다면
한국교회는 10만명이 모이는 큰 각성대회가 있고 회개기도회가 있다고 하지만 무엇을 회개할지를 모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인데 렘4장 1절에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인가하면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라고 하십니다‘ 가증한 것은 우상의 섬기는 삶의 방식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삶을 버리라는 것인데 뒤따라 흔들리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는 이유는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 삶을 포기하자니 쫄리고 긴장되고 떨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단지 집 안에 있는 불상 하나 갖다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상과 연관된 삶, 즉 우상은 제사와 풍요한 삶의 약속인데 신에게 온 정성 다했더니 복을 주시더라는식의 신앙을 버리자니 두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회개할 것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거짓말하지 않으면 한국교회가 바로 서겠습니까? 몰론 그것도 있어야 하지요. 음란도 회개해야겠지만 음란하지 않으면 회복이 되겠습니까? 이러한 것은 다 개인의 문제입니다 진정 회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들의 줄기찬 요구는 무죄한 자들의 피를 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죄한 자라는 것은 부당하게 희생 당하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세월호와 같은 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나그네, 고아, 과부로 생각할 수 있는 집단이 한국 사회에서는 누구인가 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술과 마약을 회개하기 이전에 약자들을 향한, 성추행을 당하는 여성들, 직장 내의 하급자들, 비정규직노동자, 한국에 있는 외국노동자들 그리고 생활고에 자살한 모녀와 같이 가난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과의 어떠한 관계를 맺어 가는냐가 핵심이라고 봅니다. 예배를 더 드리자라는 식의 회개가 아니라 이러한 자들과의 관계회복이 예레미야의 유일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근주교수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담임목사의 권유로 장로회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시작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박사과정으로 거치면서 용인의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7년간의 교수활동을 했으며 현재 한국기독교의 재구성을 위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그의 저서로는 구약의 숲 (대장간, 2014), 구약으로 읽는 부활신앙(SFC, 2014), 특강 예레미야 (IVP, 2013), 이사야가 본 환상(비블리아아카데미아, 2010)이 있고 공저로 목사란 무엇인가? (대장간, 2015), 안식일이냐 주일이냐 (대장간, 2015), 세월호와 역사의 고통에 신학이 답하다 (대장간, 2014), 한국교회 개혁의 길을 묻다 (새물결플러스, 2013), 희년, 한국사회, 하나님나라 (홍성사, 2012), 정치하는 교회, 투표하는 그리스도인 (새물결플러스, 2012)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