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자전거의 변속이나 토 클립(페달에 달린 발 끼우개), 베어링, 체인 스프로켓(톱니바퀴), 튜브, 공기 타이어, 세미 타이어 또는 관 모양의 경주용 타이어 등등에 정통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분명 생 세롱의 자전거포 주인 라울 따뷔랭이었다. 잦은 삐걱거림, 온갖 새는 소리들, 가장 고치기 까다로운 고장들, 그토록 세심한 손질 등등. 라울 따뷔랭의 실력에 대해서는 흠을 잡으려야 잡을 구석이 없었다. 그의 명성이 어찌나 자자했던지 이 지역에서는 이제 자전거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고, <따뷔랭>이라는 말로 대신하게 되었다. 그는 그 점에 대해 제법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지역에서 이렇게 마을 사람들이 수여한 벼슬자리를 지니고 있던 사람은 따뷔랭 외에는 단 두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햄 만드는 비법의 구재 오귀스뜨 프로나르. 그리고 프레데릭 비파이유. 근시와 원시, 사시, 난시를 죠정하는 그의 굳센 의지는 그로 하여금 <비파이유>를 판매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라울 따뷔랭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은, 프로냐르의 창조자 오귀스뜨가 기분 좋게 <프로냐르>를 즐겨 먹고, 비파이유의 창조자 프레데릭이 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비파이유>를 끼고 다니는 반면 (그로 인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함. 그런 대화들이 오가곤 했다.) 타뷔랭의 창조자 라울 자신은 자기 명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살고 있었다. 사람 자체와 그의 겉모양 사이에 무게가, 그런대로 균형 잡힌 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은 비밀의 무게이기도 했다. 하도 엄청나서 그 누구도 짐작조차 못할 비밀. 그것은 그가 자전거를 타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따뷔랭>을 탈 줄 몰랐다. 어려서는 따뷔랭도 다른 아이들처럼 세발 자전거나, 균형을 유지하도록 뒷바퀴에 작은 바퀴 두 개를 더 단 자전거를 탔다. 특별한 묘기를 보여 주진 못했지만, 그의 거동은 그래도 웬만은 했다. 그러나 운동을 좋아하는 또래 아이들이 잽싸게 이 꼴불견의 조그만 보조 바퀴들을 내던지고 순수한 자유와 균형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 라울 따뷔랭 자신은 원심력과 만유 인력, 그리고 중력의 법칙과 같은 신비로운 힘들을 다루는 데 지독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이 더욱더 놀라운 것은 어린 시절의 라울 따뷔랭은 정말 자연스럽게 물구나무서서 걷거나 자유 자재로 앞뒤 공중 돌기를 해서 꼬맹이 친구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내곤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는 많은 것을 터득했다. 이를테면 혼자서 붕대를 감는 기술--그는 가방에다 늘 벨포 반창고, 머큐로크롬 등을 넣고 다녔다--과 극미한 진동 혹은 어떤 작은 기미에도, 다소 우스꽝스러운 그의 노력을 목격할 사람이 나타날 것을 감지하는 기술, 그리고 오불관언(吾不關焉)의 경지에 달하는 기술 등을 말이다. 감추는 기술이 아니라, 오불관언의 경지에 달하는 기술, 즉 집에 돌아갈 때면 그는 정성스럽게 바퀴의 바람을 빼고는(혹은 자전거 핸들의 나사를 풀거나 아니면 그 밖의 모든 기술적 결함들을 일부러 만들어 내고는) 했다. 그가 감고 다니는 붕대들 때문에 사람들은 라울이, 일상적인 것에 권태를 느낀 나머지 자신들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종목에 변화를 주면서, 위험 천만한 곡예에 몸을 내맡기는 스포츠맨의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하였다. 요즈음처럼 자동차들로 빽빽하지 않았던 골목이나 한길에서 따뷔랭은 시험의 종류를 늘려 갔지만, 그 불굴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하지는 못했다. 반소매 남방 주머니에 빗을 하나씩 꽂고, 골프 바지(그 당시, 아동용 반바지와 성인용 긴 바지의 과도기적 역할을 하였던)를 입고 다니는 나이가 되자, 라울 따뷔랭, 그 역시 반소매 남방 주머니에 빗을 하나 꽂고 골프 바지를 입었다. 자전거 위에 앉아 버티지 못하는 사정은 마찬가지였지만, 대신 높은 데서 떨어질 때 충격을 덜 받기 위해 보다 사뿐이 재주를 넘어 보이는 묘기라거나, 절제된 측면 글라이딩 등은 따뷔랭이 떨어지는 데 관해서는 완벽에 가까운 비법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계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왜냐하면, 따뷔랭은 자신의 실패의 비밀을 밝혀 내보려는 희망을 가지고 자전거의 모든 부분(안장에서부터 베어링에 이르기까지)들을 방법론적으로, 줄기차게 연구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수리를 맡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자연수럽게도, 학업을 마치기가 무섭게 따뷔랭은, 포르똥 영감의 가게에서 견습을 시작하였다. 영감은 기계 만지는 것보다는 낚시를 더 좋아하였기 때문에 가게를 아예 따뷔랭에게 맡겨 버렸다. 오불관언의 경지에 달하는 비법을 가진 따뷔랭은 자연스레 남을 웃게 하는 재주도 겸비하게 되었다.(이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을 숨길 수 있었던 것이지만) 사람들은 따뷔랭을 꽤나 좋아하였다. 남들이 자신이 색명인 사실을 받아들이듯이 따뷔랭도 자기가 두 개의 바퀴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런가 하면 일요일이 되어 자전거를 타고 근처의 무도회장으로 갈 때면 따뷔랭은 균형을 보장함은 물론, 좌중의 흥을 돋우는 사람으로서의 명성도 보장해 줄 자전거를 만들어 타곤 하였다. 그는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들도 그가 웃기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람으로 알려진 따부랭은 그 명성을 통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하루의 해가 저물 녘이면 대부분의 남녀가 자연스럽게 짝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웃기는 사람들을 정말 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젓한 어스레함이 주는 무게를 갑자기 깨버릴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이 웃기는 사람들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둔다. 자신에게도 가슴이 있으며 이 가슴으로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영혼은 때로는 남과 함께 나누곤픈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내놓고 말하고 싶어지는, 낭만이 과하게 들린 사람들이 자주 당하는 유혹을 따뷔랭도 느끼곤 했다. 포르똥 영감님 댁 따님인 조시안(조산이 아니라 조<시>안이라고 그녀는 강조했다)이 거의 매일 저녁 그를 찾아왔다. 브레이크를 더 조여야 한다거나, 연장 주머니를 갈아야 한다거나 한쪽 바퀴에 바람을 더 넣어야 한다거나 뭐 그런 일들 때문이었다. 어쨋건, 조시안은 거의 매일 저녁 왔던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 당신은 얼마나 저를 웃기시는지 몰라요. 라울" 어느 날 저녁, 한낮의 태양이 그 힘을 잃어 가조 있을 때 호젓한 어스름을 이용해, 따뷔랭은 진지하게 그녀에게 말을 건냈다. "저어, 조시안, 괜찮을지 모르지만, 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괜찮고 말고요, 라울" "그게, 말씀 드리기가 워낙 어려운 거라서요. 그렇지만, 이 말씀은 오직 당신께만 드리고 싶습니다." "어서 말씀하세요. 라울." "세상에는 고백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것들이 있지요." "그러나 누구에게 고백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어요?" 그는 조시안이 그에게 가까이 내맡긴 손을 잡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당신께 제 생전 아무에게도 해본 적이 없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로써 우리 사 이는 더욱 가까워지고 당신도 저를 더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당신을 아주 가깝게 느끼고 있어요."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그녀도 따뷔랭의 손을 꼭 쥐었다. "자, 어서요......" "좋습니다.......저...... 저는...... 자전거를 탈 줄 모릅니다." 그러자 따뷔랭이 매사에 농담을 하던 버릇으로 자기도 놀리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조시안은 머리끝가지 화가 나서는, 마치 허친슨 안장의 용수철에 튕겨 나다듯,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가벼렸다. 따뷔랭은 이나 저녁 다시 한번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젊은 여자란 방식은 다르지만 캄피오니시모 자전거 변속 장치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과,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것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른 것,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이 비밀 이야기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생 세롱과 그 이웃 마을은 프랑스 전국 사이클 경주 구간에 속해 있었다. 이 지역 출신 청년 소뵈르 빌롱그가 한 주행 구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도착점 2백 미터 전방에서 모든 선수가 넘어지는 불상사를 가만은 기적적으로 모면하면서 말이다. 어쨌건 그의 우승이었다. 하기야 그의 자전거를 준비했던 사람이 바로 라울 따뷔랭이 아니었던가. 남은 경주 구간은 확실히 빌롱그에게 전만큼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는 시합 도중 기권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라디오에도 나왔다! 그 다음 주 토요일 소뵈르 빌롱그가, 운동복이 남긴 영광의 흔적들을 보라는 듯 뽐내며 생 세롱 시립 수영장에 다시 나타났다. 라울 따뷔랭은, 그가 일광욕을 하다가 발견한 조시안을 홀딱 반하게 할 만한 천사의 도약을 연출해 내기 위해 다이빙대 위에 서 있었다. 따뷔랭은 비상을 위해 예비 동작을 하고 있었는데, 자전거 챔피언을 맞아들인 갑작스러운 정적 때문에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다이빙대에서 잘못 떨어지는 바람에 몸을 고약하게 겹질렀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빌롱그는 조시안과 결혼했다. 그 이듬해에 따뷔랭으 그의 부상을 용하게 잘 치료해 준 젊은 간호사와 결혼했다. 포드똥 영감님은 마음을 낚시 쪽으로 완전히 굳히고 가게의 경영권을 라울 따뷔랭에게 넘겨 버렸다. 따뷔랭은 잘 다린 푸른 작업복이 좋았고, 훌륭한 간호사이자 잡에서는 좋은 아내인 마들렌이 준비해 주는 도시락이 좋았다. 마들렌은 남편이 걸어서 출근하는 것을 자기를 사랑하는 증거로 여겼다.(그녀는 자동차 교통량의 증가로 인해 자전거가 당하는 사고가 증가한다는 사실에 말할 수 없이 불안해하던 터였다.) 따뷔랭은 신선한 빵을 좋아해서 돌아오는 길에 빵을 사오곤 했다. 존재론적인 근심들과 형이상학적인 불안을 잠시 논외로 하자면, 따뷔랭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따뷔랭이 초등 학교 시절 배웠던 여자 선생님 소유의, 구멍이 숭숭 난 타이어 튜브에 바람을 넣고 왔는데, 어떤 낯선 손님이 한 손에 변속 장치 손잡이와 끊어진 케이블을 들고 나타났다. <골칫거리가 생겼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호감 가는 인상이었다. 따뷔랭은 재빨리 그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가 바로 에르베 피구뉴였다. 에르베 피구뉴는 사진사였다. 바로 얼마 전 그는 광장 시장 아케이드 아래 사진관을 차렸다. 그는 단숨에 다음과 같이 빼어난 인물 사진들을 만들어 냈다. 꽃을 좋아하는 이렌 사프랑 르게, 책을 좋아하는 랑뜨봉 선생님, 그리고 개를 좋아하는 렌 까무아농. 매사가 다 그렇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이뤄지는 법. 따뷔랭과 피구뉴는 친구가 되었다. 여섯 시경이면 예술가 양반은 수두룩한 주머니마다 메모지며 필름 통 따위로 가득 채우고 기술자 양반 집에 도착했다. 그들은 잡담을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논의하기도 하였다. 따뷔랭은 이러한 우정에 가슴이 뿌듯했다. 어쟀거나, 자신의 삶은 만족할 만한 것이라고 내심 흡족해하기도 했다. 마들렌은 매력적인 아내였고, 그에게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두 아이를 안겨 주었으며, 직업적으로도 인정을 받았고, 벗 에르베 피구뉴도 더 없이 멋진 친구로, 그 역사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사진을 <사진>이라 하지 않고, <피구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일이 생겼다. 비바람까지 몰아치던 어느 저녁(자전거의 벨이며 핸들, 페달, 양철통, 바퀴살 위로 콩 튀듯 하는 벼락도 따뷔랭에게 그다지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피구뉴가 기술자 양반에게 <따뷔랭> 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자고 제의를 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매료시킨 이 장면의 연출에 이상적인 장소를 담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아리드 언덕이었다. 작고 험한 길이 나 있는데 하류에 가파른 절벽이 있어, 가시가 무성하고 거친 식물들로 덮인 밭들이 있는 상류가 잘 보였다. 이미 분명히 말했다시피, 예술가 양반은 비가 왔으면 했다. 자기 자전거를 타고 있는 이 남자의 물 그림자가 주는 아름다운 효과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 존재의 자유, 그의 정교한 솜씨(우선, 기술적인 측면)와 용감 무쌍함(저 야성적인 풍경을 보라)은, 피구뉴가 서정성을 가미하여 자기의 친구에게 불어놓고자 하는 일종의 상징을 잘 표현할 것이었다. 따뷔랭은 마들렌에게 자전거를 타지 않겠다고 했던 묵시적인 약속을 핑계로 삼았다. 마들렌은 그 말에 발끈했다. 자기는 피구뉴의 사진을 아주 좋아할 뿐 아니라, 비파이유 부인 같은 엄처로 취급받고 쉽지 않다는 것이다. 비파이유 부인은 남편이 여자 손님들에게 예쁜 눈을 가지셨다는 말을 지나치게 쟈주, 그리고너무 힘주어 말했다는 이유로 가게의 관리를 남의 손에 맡기라고 강요했다. 또는 돼지고기 가공품의 콜레스테롤 함유량에 경악을 한 나머지 남편에게 생선 요리 이외에는 절대 해주지 않는 프로냐르 부인과 같은 취급을 받기도 싫었다. 게다가 마들렌은, 사진을 찍기 위해 물색해 놓은 장소에는 생전 자동차 한 대로 지나다니지 않더라고까지 했다. 따뷔랭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신경도 곤두서 있었다. 두 번인가 세 번은 등인가 핸들인가를 거꾸로 달아 놓기도 했다. 마들렌은 사진사 편을 들어 가며 부추켜 댔다. "바람이라도 좀 쐬야 한다니까요. 저 양반, 너무 과로했어요." 그녀만은 라울이 <따뷔랭>을 타고 찍은 인물 사진이 보고 싶어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 피구뉴는 기발한 묘수를 둔답시고, 절묘한 마들렌의 인물 사진을 완성했다. 마들렌이 그 사진에 황홀해진 나머지 <병실의 차가움과 초목의 부드러움이 이루는 대비 속에서 은은히 발산되는 이 상징은 말이조.....>하고 몇 번이나 말을 하는데, 거기에다 대로 따뷔랭은 <상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퍼부어 댔다. 이것은 결혼 후 8년 만의 첫 말다툼이었다. 마들렌은 며칠 동안 남편에게 말도 건네지 않았다. 하루는 -- 일요일이었다. -- 마들렌이 그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가방에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어요. 가서 자전거 한 대 끌고 나와요. 10시에 피구뉴가 당신을 데리러 들를 거예요. 바람 쫌 쐬고 오세요. 당신 요사이, 같이 살기 정말 고약해졌어요." 사진사가 10시 10분 전에 도착했다. 그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따뷔랭은 몸을 풀자는 구실로 좀 걷자고 제안했다. 피구뉴도 좋다고 했다. 사실 그는 뭐든 좋다고 할 태세였다. 그가 받아들일 수 없는 단 한 가지 경우가 있다면 그건 이 기술자 양반이 20년 동안 끌고 다니던 그 유명한 세발 자전거를 타고 사진을 찍자고 하는 것뿐이었다. 예술가 양반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코믹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가 때문이라고 했다. 따뷔랭은 뭐라도 좋으니 어떤 변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굼벵이 걸음을 걸었다. 이를테면 이 세상을 끝장낼 대홍수라거나, 거대한 메뚜기들의 엄습, 이 세상의 종말을 초래할 안개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피구뉴를 혐오했고, 필름으로 가득한, 몇 개나 되는 그의 주머니들을 혐오했다. 때때로 그는 걸음을 늦추었는데, 그것은 사진사를 피곤하게 하려는 의도였으나 실제로은 더욱 굳세게 다시 출발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다. 그는 사진사를 처음 만났던 날 차라리 다리가 하나 부러졌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말을 해보았다. 똑같은 일이 조금 있으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그의 불편한 심사를 그다지 진정시켜 주지 못했다. 생전 술을 입에도 안 대던 그가, 소풍 가방 속에 넣오 온 묵직한 병 포도주를 벌컥벌컥 마셔 댔다. 그러자 저조하던 그의 기분이 몽롱해져 왔다. 따뷔랭은 낮잠을 달게 잤다. 그는 이 모든 게 악몽에 불과할 뿐이라는 내용의 꿈까지 꾸었다. 피구뉴는 기다렸다. 햇빛은 그 기세가 한풀 꺾여 가고 있었다. 그는 잠자는 시늉을 하고 있는 따뷔랭을 깨웠다. 술기운 때문에 아직 몽롱한 정신으로 따뷔랭은 어떻게 그랬는지도 확실히 모르는 사이에 아리드 언덕 위에 올라서 있었다. 아래쪽에 있던 피구뉴는 영 심사사 나빴다. 따부랭은 그렇게 늑장부리게 놔두지 않았다면 그토록 소원하던 물 그림자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바로 그날 오전에 비가 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그는 따뷔랭에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