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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의 엔돌핀 원문보기 글쓴이: T조세원
봄 |
북서쪽 멀리 안드로메다자리를 중심으로 케페우스자리, 물고기자리가 보임 |
여름 |
북동쪽 멀리 안드로메다자리 부분인 도마뱀자리, 케페우스자리, 카시오피아자리가 보임 |
가을 |
북극성을 축으로 페르세우스자리, 양자리, 삼각형자리, 가을대사각형자리, 안드로메다자리, 물고기자리, 도마뱀자리, 페가수스자리, 카페우스자리, 조랑말자리, 독수리자리, 백조자리에 이르는 가을하늘의 전면 ----- (본고) |
겨울 |
하늘 중앙에 페르세우스자리, 안드로메다자리가 위치하며 별의 밝기와 모습이 난해함 |
계절 |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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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
우수 |
경칩 |
춘분 |
청병 |
곡우 |
저녁 |
위수 |
필수 |
삼수 |
정수 |
정수 |
성수 | ||
새벽 |
저수 |
심수 |
미수 |
미수 |
기수 |
두수 | ||
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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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 |
소만 |
망종 |
하지 |
소서 |
대서 | |
저녁 |
장수 |
익수 |
진성 |
항수 |
저수 |
방수 | ||
새벽 |
두수 |
우수 |
여성 |
위수 |
실수 |
벽수 | ||
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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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
처서 |
백로 |
추분 |
한로 |
상강 | |
저녁 |
미수 |
미수 |
기수 |
두수 |
두수 |
두수 | ||
새벽 |
규수 |
위수 |
묘수 |
삼수 |
정수 |
정수 | ||
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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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 |
소설 |
대설 |
동지 |
소한 |
대한 | |
저녁 |
여수 |
허수 |
위수 |
실수 |
벽수 |
규수 | ||
새벽 |
성수 |
장수 |
익수 |
진성 |
항수 |
정수 |
(3) 도해 부분의 성좌명 이해 (출처 : 吳吉淳 : 고대 동양성좌의 의미)
이 천문도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이에 관련된 지식은 현재의 지식보다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고, 인식했던 지식이어야 하겠다. 조선 초기에 다시 측정되고 복각되긴 했어도, 거극도, 주천도수와 천문도의 위치는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를 담고 있다. 또한 황도와 북극의 위치가 불완전하여 수거성이 잘 못 표시되기도 했고 실제의 별의 위치와 크기에 오차도 있다. 따라서 남해상주석각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비교 도해는 그 오차가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한글명(한자명) : 소속 성수, 서양 별자리 이름, 성수의 의미
각도(閣道) : 규수(奎宿). 카시오페아. 궁전(宮殿)과 궁전(宮殿)을 잇는 복도
구(鉤) : 위수(危宿). 케페우스. 낫. 끝이 구부러진 열쇄
구(臼) : 위수(危宿). 백조. 페가수스. 절구. 맷돌. 곡물을 찧는 기구
구진(勾陳) : 자미원(紫微垣). 호위군(護衛軍). 작은곰
규(奎) : 규수(奎宿)와 같음. 안드로메다의 일부. 임금이 쓴 글, 하늘의 무기고
내저(內杵) : 위수(危宿). 제단
등사(謄蛇) : 실수(室宿). 케페우스, 도마뱀, 카시오페아, 백조, 안드로메다. 하늘의 뱀
부로(附路) : 규수(奎宿). 카시오페아. 궁전(宮殿)을 잇는 각도(閣道)의 남쪽으로 따로난 복도
북극(北極) : 자미원(紫微垣). 작은곰. 천자(天子)와 그 가족(家族)이 사는 궁전(宮殿)
북극오성(北極五星) : 자미원(紫微垣). 작은곰
사비(司非) : 허수(虛宿). 조랑말. 옳고 그름을 가리는 하늘의 사람
사위(司危) : 허수(虛宿). 조랑말. 안위(安危)와 화복(禍福)을 맡아보는 하늘의 사람
여석(礪石) : 묘수(昴宿). 황소. 숫돌
오제내좌(五帝內座) : 자미원(紫微垣). 기린, 케페우스. 다섯 임금이 자미궁에 행차하여 앉는 자리
왕량(王良) : 고대의 28수(宿)의 규수(奎宿). 카시오페아. 전국시대의 명마부(名馬夫)
외병(外屛) : 규수(奎宿).물고기. 더러운 냄새를 막는 병풍
우기(右旗) : 우수(牛宿). 독수리. 장군의 오른쪽 깃발
이궁(離宮) : 실수(室宿). 페가수스. 임금의 별장
이유(離瑜) : 허수(虛宿). 남쪽물고기. 진주와 옥으로 꾸민 옷
전사(傳舍) : 자미원(紫微垣)에 속함. 카시오페아의 일부. 영빈관
조부(造父) : 위수(危宿). 케페우스의 일부임. 마부
차부(車府) : 위수(危宿). 도마뱀. 백조 수레와 사신의 숙소를 관리함
책(策) : 규수(奎宿). 카시오페아. 왕량이 쓰던 채찍
천구(天鉤) : 위수(危宿). 케페우스. 임금의 수레를 잠그는 문고리
천부(天棓) : 자미원(紫微垣). 용, 헤르클레스. 하늘임금의 선봉장
천선(天船) : 위수(胃宿). 페르세우스임. 하늘의 배
천장군(天將軍) : 누수(屢宿). 안드로메다. 천대장군(天大將軍)의 약칭
천진(天津) : 녀수(女宿). 백조. 하늘의 나루터
천참(天讒) : 묘수(昴宿). 페르세우스. 무당과 의사의 별
천황(天潢) : 필수(畢宿). 마차부. 하늘의 나루터
하고(河鼓) : 우수(牛宿). 독수리. 하늘의 북
함지(咸地) : 필수(畢宿). 마차부. 하늘의 연못
화개(華盖) : 자미원(紫微垣). 카시오페아. 비나 햇빛을 막는 천자의 마차덮개
2. 성격
(1) 역사성(歷史性)
◯ 기원전 2500년경(혹은 그 이전)에서 기원전 50년경 고대 한반도의 고인돌, 석벽 등에 별자리가 새
겨져 있고 고구려, 고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무덤의 벽과 천장에도 사방신을 비롯한 별자리들
이 그려져 있어 옛적부터 우리 선인들의 별자리에 대한 관심과 관측 그리고 별에 대한 신앙이 두
터웠음을 알 수 있다.
◯ 고구려 여느 벽화에는 별자리가 그려져 있고 석각 천문도가 있었으며, 7세기 중엽 신 라에서는
세계 최초의 첨성대가 세워졌고 천문에 관한 지식 또한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조선 태조 4년(1395년)에는 그 이전 석각인 천문도의 탁본에 근거하여 정교한 천상열 차분야지도
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이 완성되었다.
◯ 전국 각지에서는 성황, 사당과 연계하여 해마다 좋은 시기와 날을 정하여 영성, 노인 성 등 별자
리에 제사를 지냈으며 칠성, 삼태, 태을, 천황 등의 별과 관련된 토속신앙이 생활과 관련을 맺고
있었으나, 현대의 우주과학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전통이 점차 사 라지고 있다.
(2) 사실성(寫實性)
◯ 이 석각은 화강암에다 별자리를 확(구덩이 모양)으로 쪼은 후 홈으로 갈아닦기를 가한 선각이다.
선각되지 않은 확의 별자리도 25수(宿)가 넘는다. 확의 조각에서 발전한 선 각과 하단에 ‘天’자와
‘上’자의 한자가 병각(竝刻)되어 있음은 각석의 기술 및 발전상을 의미한다.
◯ 고구려 석각천문도, 신라의 첨성대 건립, 남해 연혁의 역사성에 비추어 이석각은 6~7 세기에 각
석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매년 10월 초․중순, 절기로는 한로(寒露)경에 보다 각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꼭 닮은 별자리
를 관측할 수 있다.
◯ 별자리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별자리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동양과 서양이 다르
고 각 나라에서 붙인 별자리 이름 또한 다르다.
◯ 지금까지 발견된 고대의 고인돌이나 암벽에 새겨진 별자리 등은 홈으로 팠거나 확의 모습인데 비
해 남해상주석각은 정교한 선각으로 새겨졌음이 특이하다.
(3) 문학성 - 서불 언급 부분의 인용 또는 주제
○ 심청전 : 작자 연대 미상
……동남동녀 실었으니 진시황의 불로초 캐러 가는 배인가? 가는 길에 죽자 해도 뱃 사람이 지키고, 살아가자 해도 돌아갈 나라는 멀고 아득하다.
○ 선상탄<제2단에서> : 박인로
어즈버 깨다라니 진시황(秦始皇)의 타시로다. 배 비록 잇다 하나 왜(倭)를 아니 삼기던들, 일본(日本) 대마도(對馬島)로 뷘 배 졀로 나올넌가. 뉘 말을 미더 듯고, 동남동녀(童男童女)를 그대도록 드려다가, 해중(海中) 모든 셤에 난당적(難當賊)을 기쳐 두고, 통분(痛憤)한 수욕(羞辱)이 화하(華夏)애 다 밋나다. 장생(長生) 불사약(不死藥)을 얼매나 어더 내여, 만리 장성(萬里長城) 놉히 사고 몇 만년(萬年)을 사도떤고. 남대로 죽어 가니 유익(有益)한 줄 모라로다. 어즈버 생각하니 서불(徐市) 등(等)이 이심(已甚)하다. 인신(人臣)이 되야셔 망명(亡命)도 하난 것가. 신선(神仙)을 못 보거든 수이나 도라오면, 주사(舟師)이 시럼은 전혀 업게 삼길럿다.
․ 배를 만든 유래에 대한 내용으로 1만 리 밖의 오랑캐가 우리나라를 침범해 백성들이 고통 받는 것은 배가 있었기 때문.
․ 불사약을 구하려고 많은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배에 태워 동해로 보내 섬마다 도적을 낳게 함.
․ 신선을 못 만나 불로초를 못 구했다하여 도주 망명한 서불(徐市)을 간신으로 봄.
○ 간양록(看羊錄 : 1668년 간행) : 강항(姜沆 : 1567-1618)
왜승 진절해와 명 태조의 화답시가 적중봉소편에 7언절구로 소개되어 있다. 진절해(津
絶海)가 중국에 조공하러 갔을 때 명 태조가 시를 지으라 명하자 그는
熊野山前徐福祠 滿山藥草雨餘肥 至今海上波濤穩 直待好風須早歸
熊野峯高血食祠 松根琥珀亦應肥 昔時徐福浮舟去 直至于今猶未歸 |
‘웅야산 앞에는 서복의 사당이 있고 온 산 약초는 비 끝에 살이 쪘네 해상의 파도가 지금쯤 잔잔하면 좋은 바람 기다려 일찌감치 돌아가리.’ 하니, 이에 명 태조가 화답하기를, ‘웅야산 높은 봉 혈식의 사당일세 솔뿌리 호박도 살이 쪘다지 그 옛날 서복이 배 띄워 갔는데 돌아오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네.’ 라고 했다. |
○ 파한록(破閑錄) : 김석인
서귀포 해안 절벽에 진나라 방사인 서불이 새겨놓았다는 글자가 있는데 백락연 제주 목사가 이 말을 듣고 정방폭포 절벽에 밧줄을 내려 그려오게 했던 바 살펴보니 모 두 12자의 과두문자(蝌蚪文字)여서 해독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조선지 : 1910년 발행
서예가이자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귀양 생활(1840년~1849 년) 중 이를 탁본하였다고 한다. 김정희의 ‘조선지(朝鮮誌)’는 현재 일본 도쿄대학 도 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지에 탁본이 있는지는 미문(未聞)이다.
○ 경세설 - 백발가
서불의 동남동녀 돌아온 줄 뉘 들었노? 불사약 어디있고 불로초 보았느냐? ……가는 청춘 뉘 막으며 오는 백발 뉘 제할까?
○ 기재기이(企齋記異) : 신광도
진시황의 허망한 꿈이 천하를 혼란시키고 만세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신선이 될 분수 도 없으면서 신선이 될 약을 먹는 자는 그 수명을 재촉할 뿐이다.
○ 금란굴 전설 : 설화
․보로국 임금이 딸을 위해 불로초를 구하려는 헛된 망상과 불로초를 구하려다 낭패 를 당해 물귀신이 된 서불처럼 사람들의 손길을 용서하지 않는 불로초를 주제로 함.
* 신라 헌강왕 12년(886) 봄 보로국과 흑수국이 통교를 요청해 왔다는 역사 기록과 천년 전 실화성을 서술한 점으로 보아 본 전설은 조선 영․정조대에 쓴 것으로 당시 외교 관계의 일면도 엿보임.
○ 기타 : 백과사전 - 남해 상주리 석각(南海尙州里石刻)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동양 최고(最古)의 문자로서 가로 7m, 세로 4m의 평평한 바위 위에 가로 1m, 세로 50㎝ 넓이로 새겨져 있다. 서불제명각자(徐市題名刻字)라고도 하는 그림문자로 상주면 양아리에서 금산(錦山) 부소암에 오르는 산중턱 평평한 자연암에 새겨진 특이한 형태의 조각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중국 시황제(始皇帝)의 명령으로 방사(方士)인 서불이 삼신산(三神山) 불로초를 구하려고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여 명을 거느리고 이곳 남해 금산을 찾아와서 한동안 수렵을 즐기다가 떠나면서 자기들의 발자취를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새겨 놓고 갔다고 한다. 그러나 시황제 때는 이미 한문자(漢文字)가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 그 이전의 고문자(古文字)로 추측되기도 한다. 아직 해독되지 않고 있다.
위에서 살핀 바 우리의 문학인 ‘심청전, 선상탄, 간양록, 파한록, 조선지, 경세설의 백발 가, 기재기이, 금란굴 전설’ 등 어디에도 서불이 한반도 또는 한반도 중남부의 해안 지대에 정박했거나 불로초를 찾아다녔다는 언급은 없으며 국어대사전 및 백과사전에도 정설은 없다. 그리고 1860년 이전의 서불 관련 역사적 기록 또한 없다.
설화(說話)가 구비전승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라는 포괄적 의미로 쓰인다면, 사화(史話)는 역사적 증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쳐가는 장르로서 설화 중에 역사의 고사와 허구적 설정이 가미된 갈래라 이를 수 있다. 따라서 역사는 사실이며 전설은 꾸민 이야기다. 불로장생의 욕망은 동서고금이 같다 하더라도 사실의 입증 이전, 전설에 근거하여 제주 서귀포 정방동에 웅장한 ‘서복전시관’을 만들고, 거제 와현마을에 ‘서복유숙지’의 기념비를 세우는 까닭은 무엇이며 2003년 이후 우후죽순처럼 서불 전설을 와전시키는 석학과 강호제현의 의도는 무었일까?
(4) 인지성(認知性)
본 석각에 대한 조사 연구는 석학과 강호제현에 의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이해 해독이 되지 않은 생태로 비밀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추정과 추론은 연구의 빌미가 되므로 또 다른 연구의 소지가 된다. 그러나 이 각석과 관련하여 구전 설화인 서불과차 및 불로초의 관련 연구나 주장은 큰 오해의 발단과 빌미가 되어왔다. 이는 진나라의 방사 서불이 한반도 또는 한반도 중남부의 해안 지대에 정박했거나 이 땅 어디에도 불로초를 찾아다녔다는 역사적 사실과 기록이 없음에도 전설을 사실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불(또는 서복)은 기원전 255년 제나라에서 태어나 진나라의 방사였을 때 전국(戰國)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의 명으로 불로초를 구하려고<배 60척, 일행 5천명, 그리고 동남동녀 3천명을 이끌고 단주(亶洲) 또는 이주(夷洲)에 도달한다. 삼국지와 후한서에 나오는 기록으로 기원전 210년의 일이다. 중국에서 이주는 대만을 가리킨다. 다른 전설로는 동남동녀 5000명, 3000명, 600명, 500명 설 등이 있음> 남해 금산을 지나며 그의 족적을 남겼다고 한다. 전설이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1860년 남해상주석각의 탁본 해석[서불기례일출]이 알려지자 서불가차라는 전설이 사실화 되었고, 이후 서세동점의 격동기에 모화사상가의 입으로 더욱 와전되었으며, 1919년 ‘조선금석총람 상 조선총독부(朝鮮金石總覽 上 朝鮮總督府’의 남해전 서불제명 석각南海傳徐巿題名石刻)’이 유포되면서 항간의 실화로 회자(膾炙)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남해상주석각 위쪽에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부소암이다. 부소암은 시황제의 맏아들 부소가 간신배의 모함으로 진나라를 탈출, 서불과 합류하여 이곳에 와 여생을 마쳤다하여 붙여진 바위 이름이다. 중국 사서에는 부소가 변방에서 기원전 210년 사사(賜死)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나라가 망하자(기원전 206년) 기원전 108년 한나라는 위만조선을 멸하고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사군(四郡 : 낙랑·임둔·진번·현도)을 설치한다. 진나라 패망으로부터 불과 98년 후의 일이다. 진시황제의 불로불사 야욕이 무엇인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한반도 중남부 지방에는 기원전부터 삼한(三韓 : 마한, 진한, 변한)이 있어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시대에 접어들어 고조선 문화의 황금기를 맞는다. 그리고 여러 가야국과 삼국(고구려, 신라, 백제)의 병존 시대로 이어진다.
제주도 서복전시관 광장에는 이 각석이 크게 조형 판각되어 선전되고 있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 제주도 정방폭포 석각의 모형이라는 것이다. 제주도 정방폭포 석각은 풍화, 낙수, 그리고 위에 있는 공장의 폐수로 험하게 마멸되어 고증이 불가능하다.
거제 해금강 소매물도에 있던 잘못 읽혀진 서불과차(徐市過此) 석각은 1959년 사라호태풍에 바윗돌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당시의 석각을 입증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그 곳에 설립된 와현리 ‘서불유숙지’ 기념비는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모순을 안고 있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금산을 중심으로 상주에는 석각이 두루 산재해 있다. 어떤 석각도 서불과는 관련이 없다.
남해 금산 절경이라 상제(上帝)님께 사뢨더니,
영추성(迎秋星) 모두 불러 다녀오라 허락하셔,
우리는 기암 선경에 눈을 떼지 못했소.
즈믄 해 지난 지가 언젠지 모릅니다.
누십 년(屢十年) 나의 모습 그렇게 그린 당신,
밤 새워 들려주세요. 못다 나눈 이야기.
글자가 아니외다. 수렵도(狩獵圖)가 아니외다.
진나라 서불(徐市) 과차(過此) 더더욱 아니외다.
우리는 옥황(玉皇)님 뫼시는 가을하늘 성사(星使)외다. - 추성사(秋星使) -
현존하는 남해 상주석각, 고증이 어려운 제주 정방폭포석각, 사라호 태풍으로 떨어져 나간 거제 소매물도석각은 별자리 선각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남해 금산 고대 그림문자 수수께끼 풀었다’ 는 심포지엄 활동과 한․중․일의 서복연구회도 다채롭게 운영되고 있다.
3. 맺음말
천체의 자오선과 화강암의 선각바위 경사면 방향이 일치하는 본 석각은 북극성[⇔남극성 : 남극성은 노인성으로 이 별을 보면 장수한다고 함]을 중심축(中心軸)으로 하여 페르세우스자리(Perseus), 양자리(Aries), 삼각형자리(Triangulum), 가을대사각형, 안드로메다자리(Andromeda), 물고기자리(Pisces), 도마뱀자리, 백조자리(Cygnus), 페가수스자리(Pegasus), 카페우스자리(Cepheus), 조랑말자리(Equuleus), 독수리자리(Aquila)에 이르는 가을하늘의 부분을 지금부터 1300여년 전 우리의 선인(先人)이 정교하게 쪼아 갈아닦기한 ‘우리나라 가을하늘의 별자리 그림’으로 삼국시대 중기와 후기의 별자리(성좌도또는 천체도)를 연구 이해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4. 제언
하루 빨리 바른 인식과 조명으로 우리 선인이 남긴 ‘우리나라 가을하늘의 별자리 그림’의 남해상주석각이 우리의 눈을 맑고 밝게 그리고 진실되게 비춰야만 한다.
남해상주석각의 모습이 하늘에 나타나는 삽상한 시월의 높고 맑은 가을밤[자정 전후23:00~01:00], 남쪽을 배후로 하여 자리에 누워 여러 별자리 부분과 전체의 모습을 보자.
이제 모든 의문을 접자. 이 돌에 별자리를 새긴 우리의 선인께 맑고 밝은 큰 웃음의 선물을 드리자. 그리고 우리 함께 가을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며 정겨운 이야기로 꽃을 피우자.
성 명 |
조 세 원(趙世元) 성별 : 남 |
본 적 |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다정리 1726번지 |
주 소 |
경상남도 사천시 벌리동 450번지의 20호(17통 1반) 우편번호 : 664-834 |
전 화 |
(055)-832-3482 / 휴대 : 010-4932-34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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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상주면 에 있는 바위글 서불의 글씨라고도하고 여러설이 있음
한단고기(환단고기)를 읽다보면 양아리 석각(상주리석각에서 양아리석각으로 바뀜)에 대한 내용이 짧게 언급되어 있습니다만 전문가가 아니니 어떤 주장이 맞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한단고기의 내용대로 서불을 단군의 아들로 보고싶습니다.
그건 단군의 역사부터 우리나라 역사로 보고 싶은 제 애국심 때문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네 저도 전문가는 아니라서 하지만 ㅈ의 주장은 역사적 유물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생각 합니다 가을 하늘을 보십시요 거기에는 수많은 별들있습니다 1300년 전의 우리 남해 조상님께서 누워 바라다 본 하늘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남해의 애향심 존경합니다 하지많 바로 알고 발로 배우자입니다 석각에는 천. 상 .이라는 문구는 정확 하게 적혔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