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2:25-33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마음대로’와 ‘하나님 말씀대로’의 치열한 싸움의 과정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자기 마음대로 행하다 하나님을 떠났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여로보암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은 사람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근본 원인은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우리도 이 땅을 살아갈 때 하나님 백성으로서 자기 마음대로 살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씨름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의 시작은 민족을 살릴 혁명가와 같았을지라도 그의 신앙이 변질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로보암이 남 유다와 르호보암을 경계하여 스스로 종교 행위를 하고자 계획했던 사건들과 영적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의 금송아지(25-29)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에 세겜과 부느엘을 건축하고 새로운 종교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는 르호보암을 향해 솔로몬 때 있었던 무거운 부역을 멈추게 해 달라는 요청에 거절당하자 그것을 빌미로 혁명을 했지만, 정작 자신이 왕이 되고 나서 자신 또한 새로운 건축 사업을 펼쳤습니다. 보통 누군가를 비판했던 행동을 어느 순간 자기가 하고 있음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나약함, 간사함을 깨닫게 됩니다. 여로보암 역시 인간의 약함 속에서 자신도 똑같은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삶에도 혹시 내가 그토록 싫어하고 비판했던 대상을 어느 순간 내가 따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늘 자신을 돌아보아야겠습니다.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다윗의 집은 곧 다윗 왕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나누어 새로운 왕조를 일으켜 대등한 나라를 세우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과 르호보암을, 북이스라엘을 남유다와 비교하였습니다. 자신은 분명 하나님에 의해서 왕으로 세워졌지만, 유다와 르호보암에 비해서 정통성이 약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고 남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자신을 엄습했던 것입니다. 이것의 근본 원인은 곧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혹은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으로부터 올라오는 두려움에 휘둘려 버린 것입니다.
때로 우리도 이 땅을 살아갈 때 세상의 벽과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까? 절대자 하나님, 능력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두려움과 어려움 속에서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지 않습니까? 때로 삶의 고난과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어려움 속에서 비교하고 낙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에게 복을 주기 원한다. 나는 너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주님의 음성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여로보암의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인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또한 스스로 종교 행위를 하도록 만들고 불법적인 우상 숭배의 길을 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반대로 여로보암의 입장에서 보면 본인과 백성들 스스로의 정체성이 흔들리기를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생각 끝에 묘책을 세웁니다.
(28-29)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여로보암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신뢰하기보다 점점 자신의 생각 곧 인본주의의 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지 말고 단과 벧엘에 세운 신상에서 제사를 지내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신명기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우상을 만드는 행위는 십계명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자연히 우상을 숭배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는 인간의 죄성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눈에 보이는 우상은 아니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하나님 대신 의지하고자 하는 것들, 우리 두려움을 물리쳐 주고자 하는 것, 불안에서 멀어지게 해 주는 어떤 것, 우상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들이 많이 있음을 봅니다. 또한 우리 마음 속에 단과 벧엘은 어디인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가정, 학교, 직장, 삶의 반경 속에서 하나님과 잠시 멀어지는 우상 숭배의 영역은 있지 않은지 늘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삶의 단과 벧엘을 금송아지가 아닌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꾸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여로보암의 큰 죄악(30-33)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여로보암은 자신이 죄를 범한 것과 동시에 백성들로 하여금 잘못된 길로 가게 했습니다. 지도자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으로 영광과 명예를 얻지만 그만큼 무거운 책임을 어깨에 지는 것입니다. 또한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잘못으로 백성들도 잘못된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의 죄는 열왕기에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게 됩니다. 또 31절에, 본래 레위 자손 중에서 세웠던 제사장을 일반 백성 중에서 뽑아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북이스라엘은 점차 여호와 신앙과 율법, 정통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32-33)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여로보암은 기존 장막절 날짜인 7월 15일보다 한 달 뒤인 8월 15일을 새로운 절기로 만들어서 지키게 했습니다. 아주 치밀하게 계획하여 북이스라엘만의 종교 형식을 만들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의 결과는 우상 숭배입니다. 북한의 김일성이 본래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본래 감리교 교회를 다니던 부모님을 따라 주일학교에도 나갔고 신앙생활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교육에 물들며 점차 하나님과 멀어졌는지, 아니 본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기독교와도 자연히 멀어지게 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주체사상을 만들고 우상화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평양 광장에 세계에서 가장 큰 황금빛 동상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 머리를 숙이게 하고 스스로 신이 되었습니다. 지금 평양 만수대 언덕에는 높이 23m짜리 김일성 김정일 부자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단상의 높이가 3m이고 동상의 높이가 20m라고 합니다. 보통 동상을 만들면 녹이 슬지 말라고 금 도금을 하는데, 이 동상에는 순금 37kg이 사용되었고 우리 돈으로 하면 약 20억 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동상이 전국적으로 수만 개가 있다고 합니다. 본래 평양 장대현교회가 있던 곳에 김일성 동상이 세워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던 곳이 우상을 숭배하는 곳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탈북민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예배하며 그들을 섬기는 사역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주체 사상을 신봉했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을 영접하게 되면, 그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가게 되면 오히려 신앙이 더욱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과 제3세계에 있는 탈북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북녘땅의 우상들이 무너지도록, 주체사상이 무너지도록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교사님들의 희생과 헌신이 묻어 있는 이 한반도가 다시 복음으로 통일되어 함께 예배하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아가 북한뿐만 아니라 이 나라, 전 세계,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 우상도 무너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또한 여로보암의 길로 가지 않기를 결단해 봅니다. 여로보암은 힘과 권력과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도 아무리 많이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한 의사의 실수로 뇌성마비 장애를 얻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새롭게 되어 감동적이고 은혜로운 시를 많이 쓴 송명희 시인의 ‘나’라는 유명한 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때로 다른 사람과 비교되고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이 시의 고백처럼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가진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예수를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그 곁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고, 주님과 함께 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지금 있는 자리가 비록 작은 자리인 것 같지만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영광스러운 자리임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 삶의 자리에서 이기신 주님과 동행하며 자기 마음대로의 신앙, 우상 숭배의 길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믿음의 길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의 여로보암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한 나라의 왕으로 세워졌음에도 낮은 자존감과 불신앙,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한 사람을 보며, 우리 역시 언제든 마음에 우상이 자리 잡을 수 있음을 경계할 수 있도록 저희를 깨우쳐 주시옵소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비교와 불안 속에서 다른 것을 찾지 않도록 성령 하나님께서 저희를 날마다 강권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오늘 하루도 이기신 주님과 동행하며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과 마음대로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나의 삶에서 말씀보다 나의 마음대로 행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2. 여로보암은 르호보암에게 과도한 세금과 부역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지만, 이후 자신도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내가 비판했던 행동을 스스로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적이 혹시 있었습니까?
3.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잘못된 길로 가게 했습니다. 혹시 리더의 자리에서 따르는 자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끼친 적은 없습니까?
4. 오늘 하루 이기신 주님과 동행하며 삶의 자리에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최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