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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의도침례교회제7교구 원문보기 글쓴이: 안현상
정년 퇴직자
독자여, 지긋지긋한 사무실에서 인생의 황금기, 빛나는 그대의 청춘을 허송해야
하고, 그 속박의 나날이 중년을 거쳐 은발의 노령에 이르기까지 석방이나 유예의
희망조차 가질 수 없고 휴일이란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거나 아니면 어린 시절의
특권일 수밖에 없다고 여기며 사는 것이 그대의 운명이라면, 그대는 어쩌면, 아니 그
때에만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민싱 래인에서 책상에 자리잡은 지가 30 년 하고도 6 년이 되었다. 그 많은
방과 시간이며 학기 사이사이에 끼여 있는 휴가를 즐기는 일에서 불과 열네 살의
나이에 하루 8시간 9시간 때로는 10시간씩 일하는 회계 사무실에 출근하는 일로 옮겨
앉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이 다소간은 무슨
일에건 적응시켜주는 것이어서 나는 만족하게 되었지만 우리 속에 갇힌 들짐승과 같은
어쩔 수 없는 만족일 수밖에 없었다.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일요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요일이란 그
제도가 예배를 위해서는 찬양할 만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마음놓고 오락을 하는 날로
택하기에는 음울하고 무거운 대기가 감돌았다. 런던의 활기찬 모습이, 생기 넘치는
소리를, 음악, 가수들 (버저 소리, 살랑이는 거리의 속삭임들이 그립다. 그 긴 교당의
종소리는 우울하고 문 닫힌 점포들이 싫다. 책들, 그림들, 화려하고 끝없이 늘어선
오밀조밀한 상품들이며 자랑하듯 진열된 장공들이 세공품들) 좀 한산한 도심가의
산책을 즐겁게 하는 이모든 것들이 일요일에는 닫혀버린다. 끊임없이 지나가는 분주한
행인들, 이를 구경하는 소요객들, 용무가 있는 행인들의 긴장한 얼굴, 이를 구경하면서
잠시 긴장을 풀고 있는 모습과 대조를 이루는 매력 같은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기껏
볼 수 있는 것이래야 풀려나온 도제들과 소상인들의 따분한 얼굴들, 아니면
반고반락의 표정들이요, 외출 휴가를 얻어 하녀가 여기저기 가끔 있을 뿐이다. 그들은
주 내내 종살이를 한 나머지 바로 그 버릇 때문에 자유 시간을 즐기는 능력을 거의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하루를 즐기는 공백의 여유를 보여줄 생기마저 없는
사람들이다. 그날은 들을 산책하는 사람까지 결코 기분좋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요일 외에도 내게는 부활절에 하루, 성탄절에 하루가 있었고 여름에는
허트포트셔의 고향 산천에 가서 바람을 쏘일 수 있는 일주일의 휴가가 있었다. 이
일주일은 크나큰 기쁨이었다. 이 휴가가 다시 돌아온다는 기대가 있었기에 한 해를
지탱할 수가 있었고 구속된 생활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막상 그
일주일이 다가왔을 때, 멀리서 반짝이던 화려한 영상을 계속 지닐 수 있었던가?
아니면 기쁨을 쫓기에 안절부절했던 7일의 불안한 나날이요, 그날들은 최대로 즐겁게
하는 방도를 찾아보려는 따분한 걱정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어디에 기대했던 휴식이
있었던가? 그것은 내가 맛보기도 전에 사라졌고, 나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똑같은
짧은 휴가가 있기까지 끼여 있기 마련인 51주일을 꼬박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그
휴가가 돌아온다는 기대는 유폐된 어두운 생활에 무언가 밝은 빛을 던져주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말했듯이 나는 내 노역을 배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출근의
어려움과는 별도로 언제나 업무에 대한 무력감이, 어쩌면 단순한 기분일지 모르지만
나를 따라다녔고 근간에는 점점 심하여 내 얼굴의 주름살 곳곳에 나타나 보일 정도에
이르렀다. 내게는 남달리 어떤 위기에 대한 공포감 같은 것이 줄곧 있어서 낮에
일하고 나서도 미진하여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밤새 다시 일을 하고, 회계장부에
기장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계산 착오는 없었나하는 따위의 걱정으로 잠을 깨곤
하였다. 나는 어언 나이 쉰 살이 되었고 이젠 해방의 기대감도 없었다. 말하자면 나는
책상이 되어버렸고, 책상의 나무토막이 내 영혼 속에 들어와 앉은 것이다.
사무실 동료들이 내 안색에 나타난 병색을 가금 물었으나 그것이 사주의 어느
분에겐가 의심을사고 있었던 사실은 몰랐었다. 그런데 지난 달 5일, 나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회사의 부사장이 나를 한쪽으로 부르더니 직접 나의 수척한
안색을 책망하고선 터놓고 그 원인을 캐묻는 것이었다. 나는 솔직하게도 내 병을
고백했고 어쩌면 종국에는 사임해야만 하지 않을까 두렵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는
물론 나를 격려하는 말을 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꼬박 한 주일,
나는 말을 너무 분별없이 해서 어리석게도 불리는 단서를 주어 해고를 재촉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일을 했었다. 이렇게 한 일주일이 지났다. 정말 내 일생에 가장
근심에 싸인 한 주일이었다. 이윽고 4월 12일 저녁,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려던 때였다.
8시쯤이 아니었나 싶다. 그 무서운 별실에서 회사총회가 열리니 출두하라는 두려운
소환명령을 받은 것이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두려움에 싸여 있는
나를 보고 L씨가 미소짓는 것이어서 다소 안심이 되었던 것인데 놀랍게도 회장인
B씨는 나에 대한 의례적인 장황한 연설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뿔싸! 그런 것을
어떻게 꼬치꼬치 알아냈을까? 나는 속으로 어림없는 찬사라고 항변을 했다.
그는 계속해서 생의 일정한 시기에 퇴직하는 이점들을 설명하고서 별로 가진 게
없는 내 재산상태를 묻고 연금에 대한 제의로서 말을 끝맺었다. 그에 대해 세
중역들이 정중하게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충실하게 일한 보답으로 봉급의 3분의
2의 평생연금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엄청난 수혜인가! 나는 놀랍고 고마워서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으나 그들의 제의를 내가 수락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이 시간부터 일을 그만두어도 좋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듬더듬 인사를 하고 8시 10 분에
집으로 돌아왔었다. 아주 영원히. 이 너그러운 은혜, 너무나 고마운, 그분들의 존함을
나는 여기에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후한 회사, 볼데로, 메리웨더,
보샌퀘와 레이시 상사에 나는 은혜를 입고 있다. 만수무강하시길!
처음 하루 이틀 동안은 들떠서 나는 명한 기분이었다. 행복을 붙잡았을 뿐 너무
어리둥절하여 진정으로 맛볼 수 없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느껴져
종잡을 수 없었다. 나는 30 년의 감금생활에서 갑자기 풀려난 바스티유 감옥의 수인의
상태에 놓인 것이다. 나 자신이 내가 어떻게 된 것인지 믿을 수 없었다. 그건
시간이란 개념을 벗어나 '영원'으로 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사람이 '시간'을 온통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영원'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나는 주체할 수
있는 시간 이상의 시간을 수중에 넣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시간에 궁한 가난한
사람의 처지에서 거창한 수입이 있는 처지로 갑자기 끌어올려진 것이요, 내 소유의
한계를 알 수도 없어 내 대신 시간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청지기나 영민한 관리인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기 경고해 두고 싶거니와 활동적인 사업에 오래 종사한
분은 시간 관리의 재능을 헤아리지 않고 경솔하게 평상시 하던 일을 한 번에 당장
그만두지 마시라. 그건 위험하다. 나 혼자 생각이지만, 내 관리 능력은 무던한
것이어서 이제 그 처음 아찔했던 황홀감은 점차 가시고, 축복받은 내 처지를 조용하고
차분하게 느끼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서둘러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일요일이란 일요일은 다 가지고 있지만 이를 즐기려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 시간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산책으로 몰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옛날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던 일요일에 그날을 최대로 이용하려고 하루에 30 마일을 걷곤 했듯이
온종일 걸을 필요가 없다. 시간이 귀찮다면 독서로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촛불을 켜야 하는 저녁 시간밖에 내 시간이 전혀 없어서 겨울철이면 머리를 짜고 눈을
상하곤 했듯이 그렇게 격렬하게 읽을 필요도 없다. 나는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아니면 발작이 날 때는 낙서를(지금처럼) 해대기도 한다. 그러나 이젠 기쁨을 쫓지
않고 기쁨으로 하여금 내게 오도록 한다. 어느 시에서 말했듯이 나는,
어느 푸른 황야에서 태어나
세월이 그에게 오게 하는
사람과 같다.
'세월, 이 퇴직한 얼간이가 무슨 세월을 헤아리고 있단 말인가? 쉰 살이 넘었다고
이미 말하고선' 하고 독자들은 말할 것이다.
사실 나는 정말 액면상으로는 50 년을 살았다. 하지만 그 세월에서 나 자신에게가
아니고 타인에게 살아준 시간을 빼보라. 그러면 내 나이 아직 젊은 청년임을 인정할
것이다. 이에 해당되는 것이 정히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밀할 수 있는 오직 진정한
시간이요, 전적으로 자신에 대해 갖는 시간이지 나머지는 어느 의미로는 그 시간을
살았다 할지라도 타인의 것이지 자신의 것은 아니다. 내 가련한 여생의 남은 시간은
길든 짧든 내게는 적어도 세 배의 시간이다. 내 인생의 다음 10 년은, 그때까지
산다면, 앞에 보낸 생의 30 년과 같다. 이는 삼단 구구의 정확한 수치다.
자유가 시작되던 순간에 내가 사로잡혔던 그 야릇한 환상들 가운데서, 그 중에서도
그 흔적을 지금도 완전히 씻어버릴 수 없는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그 계리사무소를
그만둔 사이에 엄청난 시간의 간극이 끼여들었다는 환상이었다. 나는 그것을 요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게도 여러 해 동안 연중 날마다 그렇게도 여러
시간을 그렇게도 가깝게 지내 온 그 중역들이며 사무원들, 금방 작별한 그들이 내게
죽은 것만같이 느껴진다. 어느 친구의 죽음에 부친 로버트 하워드 경(주1)의 '비극'
이란 시 속에 이와 같은 환상을 표현해 줄 훌륭한 구절이 하나 있다.
그대 떠난 지 촌각이라.
내 눈물 흘릴 틈마저 없었는데,
누천년 헤어진 양
그렇게도 그 사이가 먼 것만 같구나.
억겁의 영원이데 길고 짧음 있겠구나.
이 어색한 감정을 무산히기 위해 그 후로 한두번은 그들과 어울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고, 나의 옛 사무실 동료들, 교전상태에서 내가 저버리고 떠났던 그 필경의
전우들을 방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친절을 베풀어 나를 반겨 주는데도
그때까지 함께 누렸던 그 흔쾌한 친밀감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들은 예전과
같은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그것마저 내게는 멀고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내 책상,
모자를 걸던 옷걸이는 다른 사람에게 배당되어 있다. 그러리라는 것은 번연히 알고
있으면서도 곱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농담과 재담으로 나의 직업 험로를 부드럽게
해주던 30 년 하고도 6 년의 옛 동료들, 그 고된 일을 함께 나눴던 그 충실한
협동자들을 작별하는 마당에 다소의 회한을 느끼지 못한다면 악마가 나를 데려갈
것이요,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짐승이리라. 그런데 정말 그때가 그렇게도
험난했던가? 아니면 단순히 내가 겁장이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후회하기엔 너무도
늦었다. 이런 경우 그런 후회를 한다는 것은 흔히 있는 잘못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복받쳐오르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었다. 우리들 사이에 묶여 있는 끈을 나는
우지끈 끊어 버린 것이다. 그건 적어도 예의가 아니다. 이 이별이 진정되기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잘 있거라! 깡마르고 빈정대기 좋아하면서도
친절했던 C군! 너그럽고 둔한 동작에 신사답던 D군! 지나치게 서두르고, 자청해
일하기 좋아했던 훌륭한 일꾼 P! 그리고 너, 육중한 지브 그레샴(주2)이나 휘팅턴(주3)
같은 시대의 당당한 상역관에나 어울릴 건물인 너, 미로의 통로들, 연중 절반은 촛불로
햇빛을 대신했던 답답하고 음침한 사무실들, 내 건강의 가해자요, 내 삶의 준엄한
양육자였던 너 또한 잘 있거라! 나의 노작들! 떠돌이 책장수의 어두운 책더미 속이
아니라 그대의 품에 남아 있으라! 아퀴나스(주4)가 남겨 놓은 것보다 더 많은 내
육필의 회계장부들, 너의 빽빽한 선반에 가득히 쌓여 노역에서 풀려난 나처럼 쉬게
하라! 나의 의발을 그대들에게 남겨놓는다.
첫 회사 나들이가 있는 후 2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마음이 잔잔해지고 있었지만
완전히 고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사실 평온하게 된 것을 자랑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적인 것에 불과했다. 새로은 변화에 대한 불안감, 쇠약한 눈에 비친 낯선
광선의 현기증 같은 무언가 제 1차적인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전에 나를 얽어매고
있던 사슬들이 마치 내 옷에 없어서는 안될 어떤 부분처럼 정말 그리웠다.
나는 엄격한 독방 수도 생활에서 어떤 혁명으로 인해 갑지기 세상으로 귀환한 불쌍한
카르투지오(주5)의 수사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나는 이제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
아닌 적이 전혀 없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이 늘 있어 왔던 일차럼 여겨진다. 대낮 11시에 홀연 본드 스트리트(주6)에
나왔지만 예전부터 그 시각에 그곳을 산책해왔던 것만 같다. 소호(주7)로 들어가서
서점을 뒤진다. 마치 서적 수집가로 30 년이 된 기분이어서 거기에도 신기하고 새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홀연히 아침 풍경을 대하고 있는 기분이다. 전이라고 다른
적이 있었던가? 피쉬 스트리트 힐은 어찌되었는가? 펜처치 가는 어디에 있는가? 30
년하고도 6 년 동안 매일 내 순례의 발걸음으로 닳아진 옛 민싱로의 돌, 일에 지친
사무원의 발걸음이 부딪칠 때마다 그 딱딱하던 부싯돌 소리가 이제 노랫소리로
변했는가? 나는 팰맬(주8)의 보다 즐거운 깃발로 마음이 쏠렸다.
때는 장날인데 나는 이상하게도 즐비하게 늘어선 석상들(주9) 가운데에 서 있다. 내 처지의
변화를 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에 비유해도 과장이 아니다. 어떤 의미로는 내겐 시간이
멎어 있다. 나는 계절의 차이를 모두 잃었다. 요일도 모르고 날짜도 모른다. 전에는 하루하루가
아직 겪지 않은 생소한 날들에 관련되고 다음 일요일도 멀고 가까움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느껴졌었다. 수요일의 느낌이 달랐고 토요일 저녁의 흥분이 있었다.
온 주일의 요일 하나하나의 특징이 내게는 분명했고 나의 구미와 기분 등에 영향을 주었다.
주말까지의 그 따분한 닷새를 보낼 월요일 날의 무슨 마력이 그 검정색(주10)을 하얗게 표백했단
말인가? 그 잿빛 월요일(주11)은 무엇이 되었는가?
모든 날들이 한결같다. 일요일. 덧없다는 아쉬움, 최대의 기쁨을 얻어내려는 지나친
걱정 따위로 번번히 실패한 억울한 휴일이었던 그 일요일 자체가 녹아내려 평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제 교회에 나갈 여유도 생겼다. 휴일을 동강내는 것으로 여겨지던
그시간이 아깝지가 않다. 나는 무엇이든 가장 바쁜 시간에 훼방을 놓을 수도 있고, 이
5월의 화창한 아침에 윈저(주12)에 가서 함께 하루를 즐기자고 초청하려 상관없게 된
그불쌍한 노역자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로마의 전설에 나온
열녀 루크레티아(주13)를 대하고 있는 기분이다. 돌려도 돌려도 끝 없는 연자매를
열심히 돌리고 있는 방앗간의 마소와 같다. 한데, 그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해선가?
사람이란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많이 주면 줄수록, 할 일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가? 만일 내게 어린 자식이 있다면 그에게 불유노작(아닐 불, 있을 유, 힘쓸
노, 지을 작)이란 세례명을 붙였을 것이다. 아무일도 하지 않도록 말이다.
진정 믿거니와 사람은 활동하는 한은 사람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나야말로
전적으로 명상적인 삶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 지진이라도 고맙게 일어나서 그
저주스런 면화공장들을 몽땅 삼켜버리지 않을 것인가? 거기 저놈의 책상을 가져다
멀리 던져 버려라!
천장지하 멀리 멀리 악마에게로
나는 이젠 상사 따위의 서기가 아니다. 나는 은퇴한 한유거사가 아닌가? 곱게
단장한 정원에서나 만나게 되어 있다. 나는 이미 텅빈 얼굴, 태평스런 거동, 일정한
걸음걸이로 정해진 목적도 없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걷는 것이지만 실상 가는 데도 없고 오는 데도 없다. 사람들은 내 인품에서 보지
못했던 무언가 고상한 기품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칭찬을 한다. 그동안 다른
기품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 이제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알아보게 고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신문이란 것을 집어 들었다면 그것은 오페라
사정이나 알아보기 위함이다. 일은 끝나버린 것이다. 이 세상에 와서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마쳤다. 내게 할당된 노역을 마쳤으니 남은 날은 내 자신의 것이다.
(옮긴이 주)
1. sir robert howard(1926--98): 영국의 연극배우, 극작가.
2. sir thomas gresham(1519--79): 영국의 재무관, 런던 거래소 설립자.
3. whittington(1358--1423): 영국의 견직물 상인, 자선가, 한 마리의 고양이로
거부가 되었다는 인물.
4. thomas aquinas(1225--74): 이탈리아의 신학자. 스콜라 철학자.
5. carthusian: St.브루소가 1086 년 프랑스 샤르트뢰즈에 개설한 엄격한 수도원의
수도사.
6. bond street: 런던의 고급상가.
7. soho: 프랑스, 이탈리아인 주민과 외국 음식점, 서점이 많은 지역.
8. pall mall: 클럽이 많이 있기로 유명한 런던의 거리.
9. 원문 elgin mables: 대영박물관 소장의 고대 그리스 대리석 조각물. 19세기초
earl of elgin이 사옴.
10. 원문 the ethiop: 에티오피아 흑인의 색깔을 가리킴.
11. 원문 black Monday: 쉬고 난 후의 첫 등교일을 가리키는 학생 숙어.
12. windsor: 잉글랜드 남부 버크셔 주의 도시.
13. lucretia: 로마 전설에 나오는 정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