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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불교사공부방(일본 불교사 독서회)
 
 
 
카페 게시글
▒기행문▒ 스크랩 두 남자의 여름 시코쿠 순례기#25 - 태풍의 시작
박영빈 추천 0 조회 92 14.03.16 20: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창문으로 뿌려지는 빗소리에 부스스 일어났다. 

6시 40분. 슬슬 짐 싸고 출발해야할 시간이다. 옆을 보니 도균이는 아직도 침낭 속에서 밍기적 대고 있다.


“야, 아침이다 일어나라”

“응....”


그리곤 창밖을 보더니


“비오잖아... 못 간다. 체력만땅 채우고 갈거임.”

“?!”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그렇게 밍기적 대다가 결국 8시 반이라는 늦은 시간에 출발했다.


 여기가 바로 이시테지 츠야도. 뒤에 알게 된 거지만 그리 소문이 좋진 않았다.

 

 비도 오겠다 빨리 지나가기 위해 길을 좀 헤멜 것 같긴 하지만 도심을 지나는 루트로 걷기로 하고 출발했다. 

하지만 역시나 도심. 결국 길을 잃고 빙빙 돌아 국도로 들어서게 되었다. 국도로 들어선 것까지는 좋은 데 빨간 화살표를 놓치고 국도를 따라 1.5Km정도 따라 올라가다가 다시 돌아와보니 아이고 부처님. 국도 위로 놓인 육교가 헨로미치였다.

 

  타이산지의 산문이 저 앞에 보일쯤에 그만 걸음을 뚝하고 멈추었다. 적어도 70cm은 되어 보이는 큰 뱀이 느릿느릿 우리가 갈 길을 앞서 가고 있는게 아닌가. 사진을 찍는다던지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뱀을 따라서 종종 걸으로 가다가 뱀이 길옆의 하수구로 들어가자마자 쌩하고 산문으로 내달렸다.


52번 영장 타이산지 산문


빗방울도 선명하게 찍힌 타이산지 본당.


타이산지 대사당


타이산지는 하룻밤 만에 세워진 절이라는 전설이 있다. 

 587년 신야(眞野)라는 사람이 항해를 하고 있었는데 바다에서 큰 풍랑으로 배가 뒤집어지려하자 평소에 기도하며 모시던 관세음보살께 기도하자 뭍의 산에서 큰 빛이 일어 풍랑이 멈추었다한다. 상륙해서 산으로 올라가보자 십일면관세음보살을 모신 작은 당이 있었다. 이에 신야는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큐슈에서 하룻밤 만에 목재를 구해와 절을 세웠다는 것에서 절의 시작이라고 전한다.

 절에 들어가는데 3개의 문을 지나야 했는데 꼭 우리나라의 사찰 같은 느낌이었다. 납경소는 아래에 있는데 본당만 저 위에 있었다. 도균이는 그냥 납경소에서 쉬고 나 혼자 꾸역꾸역 올라갔다.


판쵸의 한계.jpg - 뒤에서 바람이 불면 풍선이 되어버린다 ㅋㅋㅋ


53번 엔묘지로 향하는 길은 내리막과 평지어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이 53번 절이 헨로 중에 좀 특별한 이유는  시코쿠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후다가 이 절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1650년이라는 연도가 새겨진 동판의 후다가 미국의 시카코 대학에서 프레데릭 스타르 박사에 의해 1921년에 발견되어 현재는 마츠야마시 지정 문화재가 되었다. 현재는 떼어내서 보관중이고 원래 자리에는 복원품이 걸려있다.


53번 영장 엔묘지 산문


중문(中門)이 경내 마당에 세워져 있는 찰소는 이곳 엔묘지 뿐이다. 


엔묘지 본당


본당 내부


대사당


납경소 벽에 걸려 있던 시코쿠 최고(最古)의 후다와 발견자 프레데릭 박사의 사진


 엔묘지에는 다른 절과는 다른 특별한 유물이 전해진다. 바로 마리아 관음상이다. 마리아 관음상이란 옛날 일본에 가톨릭이 들어와 퍼진 후 박해를 받을 때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성모마리아와 비슷한 모습인 관세음보살상 취해 성상을 만들어 모신 것인데 역시 학자들에 의해 이 절에서 발견되어 지금은 대사당 뒤켠에 모셔져있다. 대사당 뒤로 돌아가자  십자가의 모습에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둥글게 조각한 묘비의 하단에는 다소곳이 손을 모은 성모님이 보였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곳에 특히 가톨릭 신자들이 많았는데 박해시대에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절에 있는 무덤을 성묘한다는 핑계로 모셔져있는 성모님께 기도하러 왔다고 한다. 엔묘지에서도 이 사실을 알았지만 일부러 막부에 신고하지 않고 묵인했다고도 한다.


마리아 관음상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의 박해가 극심하였고 한국 가톨릭 교회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라고 불리지만 일본 가톨릭은 더욱 극심한 박해가 진행되었다. 우리나라는 대륙이라는 특징상 은밀히 방인사제들과 외국에서 서품을 받고 돌아온 사제들이 있었지만, 섬나라였던 일본은 마지막 사제가 체포되어 처형된 후로 150년 넘는 세월동안 신자들 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신앙을 지켜오다 1865년 나가사키의 오우라 천주당에 그간 숨어 살던 일본인 신자들이 구경꾼을 가장해 주임신부였던 프티쟝 신부에게 “우리도 신부님과 같은 마음입니다...”라는 고백을 하기 전까지 서구에는 일본의 그리스도교는 사라졌다라고 알려지고 있었다.

 불교신자이고 불교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지만 이 일본의 숨은 그리스도인들이 프티쟝 신부에게 신앙을 고백하는 대목은 언제나 읽어도 참으로 가슴이 아리면서도 숭고함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이 비석을 남긴 이들도 그러한 신앙고백을 보았을지는 모를 일이다.


 납경을 받고 도균이와 상의한 결과 빗속에서 체력을 너무 낭비한데다가 태풍이 더 심하게 오기 전에 60번 요코미네지를 찍자는 생각으로 결국 56번 다이산지를 최종목적지로 잡고 절 근처의 이요와케역에서 전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종점인 이마바리역 근처로 찰소는 3곳. 순서대로라면 54, 55, 56의 순서이어야겠지만 역에서 가까운 순서부터 돌기로 해서 55, 54, 56의 순서로 순례를 하기로 했다.


이요와케 역


이마바리역에 도착해서 보니 55번 난코보로 가는 길이 오리무중이라 역 앞에 있는 택시기사분들에게 여쭤봤다. 길을 건너서 쭉 직진하면 난코보라고 한다.


“10분정도 걸릴 거구만. 어때 아루키상, 택시로 태워줄까??ㅋㅋㅋㅋㅋ”

“아뇨, 두다리 멀쩡한데요 뭐.ㅋㅋㅋㅋㅋ”


기사아저씨와 농담을 주고받곤 길을 건너 쭉 내려간다. 10분정도 걷자 난코보가 나왔다.

55번 난코보는 시코쿠 찰소들 중 유일하게 보(坊;방)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찰소로 방이란  절을 이르는 여러 이름중 하나인데 보통 승려가 아닌 개인이 세웠거나, 큰 절에 속하여 스님들이 기거하는 작은 암자들을 이르는 이름이다.


이마바리 역


55번 난코보 산문


55번 난코보 본당


다이호 3년(大寶;703년)혹은 와도우 5년(和銅; 712년)에 세토내해에 있는 섬으로 “신의 섬”이라고 알려진 오미시마(大三島)의 오야마즈미 신사(大山祇神社)의 별궁으로써 세워졌다고 한다. 

 당시 오야마즈미 신사에는 신사를 관리하는 스님들이 머무르는 승방이 24개나 되었는데 그 중 8곳이 별궁과 함께 옮겨졌고 이 중에 포함 되어 있던 승방중 하나가 난코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8개의 승방은 신사의 별궁과 함께 전해오다가 쵸소카베의 전화로 모두 소실되고 그중 난코보만이 이어져 내려와 지금과 같이 되었다고 한다. 본디 신사였던 관계로 부처님이 아닌 오야마즈미 신사의 주신인 오야마즈미노카미(大山積神)을 주로 모시고 작게 부처님을 모시던 형태였는데 메이지시대에 신불분리령으로 인해 대통지승여래를 모신 절의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계로 이 절은 여느 찰소처럼 대사님이나 쿄키보살과 같은 스님들의 연기설화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또 본존인 대통지승여래는 법화경이라는 불경에서만 등장하는 부처님으로 어떠한 연유로 대통지승여래를 모셨는지등의 상세한 설명이 없어서 아쉬웠다.

 본당에 참배를 하러 갔는데 본존진언이 “나무 대통지승여래”이다. 역시나 진언이 전해지지 않는 부처님이다. 법화경이라는 경전자체가 밀교로 분류하자면 초기의 경전인데다가 후기와 같이 진언이나 다라니, 의식이 아닌 기본 사상을 담고 있는 경전이라 진언이 전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다. 내심 이 부처님의 진언이 궁금했었는데...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54번 엔메이지를 가자니 걸어서 갔다간 오늘 56번 다이산지에는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앞 정류소에서 3시 47분 버스를 타고 엔메이지 앞의 아가타 정거장까지 갔다. 


엔메이지 산문


엔메이지 본당


엔메이지 대사당


엔메이지의 본존 보관부동명왕(寶冠不動明王)


엔메이지의 본존은 부동명왕으로 쿄키보살이 새겼다고 전한다. 엔메이지는 처음 세워질 때 좀더 북쪽의 산에 있었는데 계속해서 화재가 일자 에도시대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납경소에서 시간과 거리를 확인해 보니 56번에 닿으면 딱 5시이던지 5시 조금 넘어서 절에 도착할 듯했다. 

어차피 56번의 츠야도를 사용할 생각이어서 엔메이지 납경소에서 전화를 빌려서 전화를 걸었다.


“네, 다이산지입니다.”

“예, 아루키 헨로 2명인데 오늘 츠야도 사용이 가능한가요?”

“예, 가능합니다. 지금 어디신가요?”

“엔메이지요. 여기서 바로 다이산지로 넘어갈 겁니다.”

“츠야도 위치는 아시나요?”

“아니요 ;;;”

“절에 들어오시면 종각이 있고 그 뒤로 연못이 있어요. 그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는데 화징실 끝 문을 여시면 츠야도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196호 국도를 타고 계속해서 직진. 1.5km 쯤 가자 우동집이 나왔는데 한 그릇에 160엔이라는 믿을 수 없는 가격이었다. 순간 혹했지만 시간도 없고 돈도 없으니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면...서 우동집이 안보일 때 까지 뒷걸음질로 걸어갔다.


“야야, 도균아. 지금 가장 뭐가 하고 싶은지 물어봐”

“왜?”

“아, 그냥 물어봐, 심심해서 그려”

“음음.. 박영빈 헨로 지금 가장 뭐가 하고 싶나?!”

“예! 부모님이 보고 싶슴다!”

“뭐가 하고 싶나!”

“예! 따신 밥이 먹고 싶슴다!”

“뭐가 가장 하고 싶나!!”

“예! 밀린 만화가 보고싶슴다!!!으허어엉???ㄴ갼ㄴ?루ㄴㅋㅋㅋㅋㅋㅋ”

“야ㅋㅋㅋㅋㅋㅋㅋ”

“? 마ㅋㅋㅋㅋㅋㅋㅋ”

“아나 이런 ㅂㅅ을 봤나ㅋㅋㅋㅋ”

“어이 김도균 헨로 지금 가장 뭐가 하고 싶나!!”

“예 부모님이 보고싶슴다!!”

“뭐가 하고 싶나!”

“밥이 먹고 싶슴다!!”

“뭐가 가장하고 싶나!!!”

“예! 밀린 만화가 보고싶슴다!!!ㅋㅋㅋㅋㅋㅋ”

“아나 너도냐 ㅋㅋㅋㅋㅋㅋ”

“너 병신 나 병신 우리 모두 병신ㅋㅋㅋㅋ”


이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에 다이산지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니 아직 납경소에 사람이 있어 부리나케 달려간다.


56번 다이산지


다이산지 본당


다이산지 대사당


대사님이 심었다는 소나무. 원래의 소나무는 고사했고 이 나무는 원래의 나무에서 접붙인 소나무라고 한다.


“저기, 헥..헥....아까...헉.... 전화한....헉....헨론데요....”

“아, 두 명이죠? 납경장 주세요”

“에?? 아직 예불도 안드렸는데...”

“괜찮아요 어차피 이 뒤로 납경도 끝이니까 천천히 하세요”


납경을 받고 예불을 드린 후 츠야도를 안내받았다. 다행히도 딱 2사람이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절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컵라면을 끓여먹으며 몸을 풀었다. 아이고... 내일은 어찌되려나....




<오늘 이동한 거리> 

 51번 이시테지 ~12Km~ 52번 다이산지 ~3Km~ 53번 엔묘지 ~38Km~

55번 난코보 ~3.4Km~ 54번 엔메이지 ~2.5Km~ 56번 다이산지 

= 58.9Km


<오늘의 지출>

납경료  -1,500

전차  -830Y

버스  -200Y

=-2,530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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