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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설교(94)
물과 성령으로
본문 : 요 3:1-8
<거듭나지 아니하면>
예수님께서 유월절 기간 동안
예루살렘에서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의 마음을 아시므로
그들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 중에 바리새인이요 유
대인의 지도자(산헤드린 의원)인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낮이 아닌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장 존경 받는 50세가 넘는 그런 인물이......
이름도 없는 목수의 아들 30대 청년을
찾아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대단한 극찬을 합니다.
2절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의 대답이 동문서답처럼 들리지만.....
그것은 그가 고백한 신앙...,
곧 표적 신앙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표적을 믿는 신앙은 자신이
변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새로워질 필요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를 두 번이나
반복하며 강조하며...
“사람이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예전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태어나야(‘born again’)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고 했습니다.
즉 생각과 삶의 목적...,
삶의 방식과 수단이 완전히
새로워 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약간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변화가 아닌 새로운 출생입니다.
거듭남은 개조가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 물과 성령으로>
칭찬을 기대한 니고데모는 당황하였습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이렇게 반문하였습니다.
4절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를 몰랐기에
니고데모로서는 너무나 자연스런
질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문자 그대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주십니다.
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
회개의 세례, 곧 요한의 물세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기도 함).
이것은 성도가 능동적인 신앙의 결단으로
받는 세례입니다.
자발적인 결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신앙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강제로 먹일 수는 없습니다.
물은 말이 먹어야 합니다.
사람을 강권하여 전도할 수는 있습니다.
교회로 데려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영접하게 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은혜 받게 할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그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본인 자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스스로 예수 안에서
새 삶을 살길 소원하여 받는 것이 물세례입니다.
물은 깨끗하게 해줍니다.
더러운 것을 씻어냅니다.
세례도 ‘죄를 씻어낸다’,.....
‘새롭게 출발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깨끗한 삶으로
방향전환하게 될 때 물로 세례를 받습니다.
바울은 물세례의 의미를
롬6장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롬6:3-4 읽어라>
3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세례는 물속에 잠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즉,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과
연합하여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세례란.....
주님으로부터 죄 씻음을 받은 크리스천이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결단의 예식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세례는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장사지내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교만, 고집,
육신의 욕망으로 살아가던 자아가 죽어야 .....
주님과 연합된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본을 보이기 위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또 세례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내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새 자녀가 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신앙인의 공식적인 출발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결단,
곧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아와
무릎 꿇고 물로 세례를 받는 개인적인
결단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주님은 한 가지를 더 설명하십니다.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단과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거듭난 삶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외적 변화는 가능할지언정 본질적으로
거듭난 삶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에게 구원자가 필요할 까닭이 없습니다.
‘거듭나다’는 말의 헬라어의 본뜻은
‘위로부터 난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은 ....
육으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
또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6-7절 읽어라>
6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해서
오순절에 모인 사람에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요 메시아라”고 선포합니다.
이 말을 들은 무리들이 가슴을 치며
탄식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죄사함 받을 뿐만 아니라 ...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아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8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부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부인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성령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은 분명히 성령님에 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참고 - 요14:16, 15:26, 16:7)
사랑하는 성도님들 !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오신 보혜사이십니다.
성령님은 거룩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이 내 맘을 주장할 때.....,
죄를 통회하는 마음이 생기고,.....
악에서 자유하게 되고....
내 심령이 거룩하게 됩니다.
성령은 능력의 영이십니다.
성령 받아야 죄악을 이기고,
자신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신앙생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지혜와 지식의 영이십니다.
성령 받으면 세상에서 지혜롭게
하나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은 비전의 영이십니다.
성령 받으면 미래를 향해 꿈꾸고
긍정적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님의 존재를 믿고 그 분을 내 마음 속에
영접해야 합니다.
오셔서 나를 주장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거듭난 삶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내 결단만 믿지 마세요.
우리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입니다.
나의 결단과 의지만을 의지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거듭난 새 생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전도폭발’의 저자 제임스 케네디는 ...
그의 책 속에서, 한 전도대상자와
나눈 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시면
하나님 나라를 얻습니다.”
“뭐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다고요?”
“아니요.”
“아니라니, 방금 무엇이라고 말했지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시면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게 그말 아닌가요?”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얻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지적입니다.
입술의 고백에 머무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믿는다는 것은 결단과 의지를 다해
진리이신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이와 같이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는 이와 같이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우리의 결단과 의지,
그리고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거듭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맺는 말씀 - 거듭나셨습니까?>
성도님들은 거듭나셨습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나무는 열매를 보아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거듭난 자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데,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갈 5:22-23).
이재철 목사님의 책에 이런 글이
실려 있습니다(‘요한과 더불어’ 1권 271쪽).
가나안 농군학교
교목 오세택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이 부산 모 교회 부목사로 봉사할 때,
어느 날 담임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교회에서 가장 신실하기로 소문난
여 집사님이 목사실로 들어오셨답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며느리에 대한 하소연을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며느리 험담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이윽고 집사님의 말이 끝나자
담임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제가 집사님을 위해 성경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며느리로 인해 속상해 하는 자신에게
위로나 격려의 말씀을 주시리라 기대했던
집사님은....
담임목사님이 일러 준 선경구절을 찾아보곤
금방 안색이 변했습니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집사님은 목사님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하지만 우리 동양에서는....”
하다가....
더 이상 말을 계속하지 못했습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지 못해서였습니다.
목사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집사님, 정말 구원받으셨습니까?”
많은 크리스천들이 구원받고
거듭났노라 고백은 하면서도 ....
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공자를 주인으로 섬기면서,.....
복음 대신 유교의 관습과 전통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목사님이 집사님에게 구원받았느냐고
새삼스럽게 물은 것은......
과연 예수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지배 속에서 살아가는
거듭난 크리스천인지를 물으신 것입니다.
그 본질적인 질문 앞에서, 그 때까지도
분을 삭이지 못하던 집사님을
마침내 고개를 숙였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자 잘못 생각했습니다.”
이에 목사님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집사님, 우리는 공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지배를 받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죽기까지 사랑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말 그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다면
집사님이 먼저 죽으세요.
집사님이 며느리에게 먼저 종노릇하십시오.
그래야 구원받은 크리스천이요,
그 때 우리 주님께서 집사님 가정을
반드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날 목사님과의 면담을 통해
그 집사님은 정말 거듭났습니다.
이튿날부터 진심으로 며느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종노릇하였습니다.
진심은 통하는 법입니다.
시어머니가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며느리에게 사랑의 종노릇을 하는데....
어찌 며느리가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시어머니의 사랑에 감동한 며느리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게 되었고,....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시어머니에게
종노릇하였음은 물론입니다.
혹시 성도님들중에 ‘오늘 이 설교를
우리 시어머니가 들어야 하는데’....
‘우리 며느리가 들어야 하는데’ 하며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분들을 위해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바로 성도님들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 각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당신은 진정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크리스천입니까?”
이 질문에 ‘예’ 하기를 원하신다면.....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분들을 위해
사랑의 종노릇을 먼저 시작하십시오.
바라기는 우리 금산교회 온 성도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