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1747)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 1696-1770)는
앞선 시기의 베네치아 거장들과는 달리 대형 화면을 선호하지 않았다.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1m가 못 되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이 그림은 <최후의 만찬>을 다루고 있다.
최후의 만찬이란 주제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카타콤 벽화에서부터 시작된
서양 종교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 가운데 하나다.
티에폴로는 〈최후의 만찬〉에서 무대 장치로서의 배경 건축 소재를 반복한다.
또 좌우 동형의 공간 구성을 취함으로써 종교 도상의 관례를 엄격히 지키고 있다.
예수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주제 가운데 참혹한 수난 장면을 제외한다면
열두 명의 제자가 함께 나오는 장엄하고 거대한 크기의 구성이므로
구성하는 데 있어서 전통의 한계를 뛰어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티에폴로의 진정한 재능은 세부 처리에서 돋보인다.
이 그림에서 제자들은 모두 열한 명이다.
예수님 오른쪽에 서 있는 검은 겉옷과 흰 속옷 상의를 걸친 대머리 남자는
음식을 나르는 시종으로 보인다.
<최후의 만찬> 주제에서 배신자 유다를 주 화면에서 제외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가령 시모네 마르티니의 〈최후의 만찬〉 제단화에서도 유다는 빠져있다.
그 옆에 앉아서 탄식하며 큰 몸짓을 취하는 노인은 베드로일 것이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으뜸 제자로서
제자들 가운데 배신자가 있다는 발언을 듣고 몹시 놀랐다고 한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나아가서 만일 베드로가 배신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더라면
맨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박살 내어 죽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기존 최후의 만찬 그림들과 티에폴로의 다른 점은 식탁 앞쪽에 두 사람을 배치한 것이다.
카스타뇨, 기를란다요 등의 작품에서는 식탁 앞쪽에 한 명이 배치되어 있다가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이르러 모든 제자가 식탁 뒤쪽으로 모인 것은 구성의 진화에 해당한다.
그보다 앞서 조토는 식탁의 앞쪽과 뒤쪽에 제자들이
고루 둘러앉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 틴토레토는 초기 르네상스의 전통을 따랐으나,
티에폴로는 전성기 르네상스의 선례를 좇았다.
그러나 단순히 선례를 답습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성의 균형을 조정한 것은 티에폴로의 새로운 감각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마태 26,21)
예수님의 폭탄 발언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표정과 눈빛 그리고 사지와 옷 주름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모두 절망, 탄식, 놀람, 호기심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화면 전면의 등을 돌린 남자의 경우
술독에 술을 붓고 있는 엉뚱한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이것은 다양성 이론을 시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양성 이론이란, 아우구스티누스가 미술의 세 가지 덕목 가운데 하나로 꼽은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화가는 모름지기 감상자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서
그림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재현해야 하는데,
가령 얼굴 표정이 제각기 달라야 하고, 옷차림과 옷 색깔은 물론,
자세에서도 앉은 사람, 서 있는 사람, 허리를 젖힌 사람,
구부린 사람 등으로 가능한 한 모든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티에폴로는 자칫 밋밋하고 경직되기 쉬운 종교화의 주제를 다루면서
다양성 이론에 입각해 풍부하고 재치 넘치는 재현으로
그림 속에 긴장과 생기를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제자들이 엄격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슬픔과 동요의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으로
재현되던 전통이 바뀐 것은 다 빈치 이후다.
다 빈치는 제자들에게 혼돈과 불안의 소용돌이에 나부끼는
영혼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재현한 최초의 화가였다.
그 후 베네치아의 화가 바사노와 틴토레토를 거쳐서
점잖은 모습의 제자 대신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반응을 보이는
제자들의 유형이 서양 미술사에 자리 잡게 된다.
티에폴로가 관심을 가진 것도 바로 <최후의 만찬>에 대한 새로운 재현 전통이다.
티에폴로의 그림에서 앉아있는 예수님 뒤쪽에 걸린 푸른 천은
조르조네의 제단화 〈성스러운 대화〉 등 베네치아 제단화에서
주인공의 배후를 장식하는 소품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인데,
여기서 바람에 펄럭거리는 푸른 휘장은
예수의 내면에 휘몰아치는 격정과 고뇌를 대변하고 있다.
휘장 뒤의 벽체에 움푹 파인 벽의 벽감 조각도 눈에 띈다.
이오니아식 푸른 기둥 사이에 있는 예수님의 좌우에 서 있는 여인 조각은
아마 알레고리 조형인 것으로 추측된다.
가령 베네치아 거장 티치아노의 마지막 제단화에서도
티에폴로의 〈최후의 만찬〉에서와 똑같은 구성 형식으로 화면 뒤쪽에
벽감 조각으로 서 있는 자세의 두 여인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은 에클레시아와 시나고가의 알레고리이다.
에클레시아와 시나고가는 제각기 그리스도교 교회와 유다교 회당을 상징하는데,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대변하기도 한다.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 이르러 실현됨으로써 구원의 역사가 완성된다는 의미다.
티치아노뿐 아니라 미켈란젤로도
같은 시나고가와 에클레시아의 알레고리를 선보인 적이 있고,
두 알레고리가 나란히 서 있는 재현 전통은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개 화면을 좌에서 우로 진행하면서 읽는 서양의 조형 전통에 따라서
왼쪽 여자가 구약을 상징하는 시나고가의 알레고리이고,
오른쪽 여자가 에클레시아의 알레고리를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