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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행
김 남 천
1. 찾아온 여인네
별로 깊은 잠을 들었던 것도 아닌 터이라 아래층 가게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며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봉근이의 감았던 눈은 금시에 번쩍 뜨였다. 그러므로 뒤이어
“봉근아! 봉근아!”
하고 젊은 사람답지 않게 탁한 주인의 말소리가 들려와도 그것이 결코 발한산¹을 먹고 누워 있는 봉근이를 약값 재촉에나 자전거 배달을 보내려는 게 아닐 줄은 짐작하였다. 그러는 그는 아무 말 없이 침대 위에서 비스듬히 모로 돌아누웠을 따름이다. 낡은 침대가 찌꺽찌꺽 울고, 그의 눈이 불에 타기나 한 듯이 꺼멓게 된 거미줄 얽힌 천장 대신에 손톱 자리가 풀숲같이 어지러운 바람벽을 바라보고 있다.
“일 년 가도 개 한 마리 안 찾아오는 나에게 손님이 있을라구”
하고 생각하는 순간,
“녀석이 앓는다더니 온 낮잠을 자나, 너 좀 올라가 깨워라, 손님 오셨다구”
하는 침착한 말소리가 다시 나면서 뒤이어 층계를 달려 올라오는 발자취 소리가 귀에 어지럽다.
“일어나! 누가 왔다.”
문지방을 들어서면서 이렇게 성가신 듯이 외치고는 침대 옆으로 달려들어 봉근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명식이의 표정은 능청스럽게 웃어보였다.
“이쁜 기생이다, 머리 지지구.”
봉근이는 뜻밖의 말에 놀라면서 몸 위에 덮었던 털 떨어진 담요를 발길로 차고 상반신을 침대에서 일으켰다.
“누이가 올라왔나?”
다부지게 생긴 어린 얼굴이 점점 성글성글해지면서 코와 눈과 눈썹 사이가 벙하게 동떨어져가는 솜털이 부르르한 얼굴, 조숙한 소년이 청년기로 들어가려는 열여덟 살의 봉근이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낭패와 초조가 흘러간다.
“어느새 이쁜 기생과 친했니?”
봉근이보다는 훨씬 어린 명식이는 이렇게 빈정 대어보고도 부끄러운지 얼굴이 금시에 벌개진다. 그러나 봉근이의 얼굴이 조금도 헝클어지지 않고 정 색한 대로 서서히 침대에서 내려올 제 명식이는 한 발자국 물러서면서 변명이나 하려는 듯이
“늘 보는 얼굴이더라”
하고 혼잣말같이 중얼거려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고 양복저고리를 걸치면서 층층대를 내려오는 동안 봉근이는 칠 년 동안이나 만나보지 못한 누이의 얼굴이 띵한 머릿속을 번거롭게 굴어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는 연달아 어머니와 계부와 이복동생 관수(觀洙)의 모양이 휘끈휘끈³ 눈앞을 지나갔다.
가게와 통한 문을 열고 약장 옆으로 나와서 마주보는 여자의 상반신, ‘맨소래담’과 물감통 속으로 비스름히 유리 좌장⁴에 기대서서 물끄러미 전찻길을 내다보다가 문소리에 놀라서 봉근이 쪽을 바라다보는 콧날이 오똑하고 눈이 갸름한 젊은 여자, 그는 아무리 눈을 부비고 거듭 떠보아도 칠 년 전에 갈라진 자기의 누이 봉희(鳳姬)는 아니었다. 평양서도 백여 리를 산골로 들어간 작은 고을에서 시골 기생으로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황해도 신막(新幕)까지 흘러오는 동안 몸도 변하고 얼굴도 달라졌으리라, 산전(山戰)인들 안 겪었으랴 수전(水戰) 인들 안 겪었으랴. 그러나 사람의 모습이 이렇게 변하고 크던 눈이 작아질 리야 있겠느냐. 코도 눈도 입도, 아니 모습이 전혀 누이의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만일 누이라면, 누이가 옆에 있는 나에게 달려와서, ‘봉근아’ 소리를 치며
부둥켜안고 울지 않고는 못 견딜 것이다. 그러나 벌써 짧지 않은 동안 이렇게 마주보고 있어도 빤하게 쳐다만 볼 뿐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제가 봉근이 올시다.”
이렇게 말하며 그 여자의 앞으로 다가설 때에,
“네, 저 다른 게 아니라요”
하고 그는 제가 누구라고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
“다른 게 아니라요. 당신 누이가 어젯밤 시골서 올라오셨는데 길도 생소하다고 한번 찾아오라고요. 그래 뭘 사러 나오는 김이라 일러주러 왔어요. 주소는 청진동 백이십 ×번지. 개천 끼고 올라가다가 찾기 쉽습니다.”
연세는 봉근이와 별로 차이가 없으련만 매일 어울리는 사람들이 난봉 어른인 까닭인가 봉근이를 동생같이 다루면서 숨도 쉬지 않고 대번에 쪼르르 이야기해버린다. 그리고는 또 한 번 번지를 가르치고 봉근이가 어름어름하는 동안 여자는 문을 열고 전찻길로 걸어나갔다.
백화점으로 가는지 포근한 햇빛을 등에 지고 흰 두루마기를 발뒤꿈치까지 끌면서 여자는 전찻길을 가로 건너가고 있다.
“누가 오셨다고?”
등 뒤에서 이렇게 묻는 약방 주인의 목소리에 멍하니 섰던 봉근이는 몸을 돌리고 어정어정 결어서 뒷문으로 가기 시작한다.
“내 누이님이 올라오셨답니다.”
“머 자네 누이가 있었나? 첨 듣는 소린데.”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고 머리는 다시 쑤시는 것 같아서 이 말에는 대답도 안 하고 이층으로 올라가 그는 침대에 다시 몸을 눕혔다.
‘누이.’ 칠 년 만에 만나는 누이, 열한 살 때에 보통학교 3학년을 헌신짝같이 집어던지고 부모와 형제를 떼놓은 채 일백육십 리 길을 이틀에 걸어 평양까지 도망쳐 나오던 기억이 천장 위에 어린다.
그러나 그는 지금 기생이 와서 가르쳐준 청진동 백이십 × 번지를 쫓아가서 누이를 만나보고 싶지도 않은 것 같다. 내 모양도 변했으려니와 그보다도 누이의 변했을 모습을 눈앞에 대하기가 두려웠다. 말라빠진 누이의 손을 잡고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그동안에 지낸 고초를 이야기하기도 전에 우선 가슴을 치고 목구멍을 올려붙일 슬픔을 터놓기가 무서운 생각이 든다. 눈 가상엔 꺼먼 자국이 그려지고 뼈는 앙상하여 분독(粉毒)에 씻긴 낯가죽은 벌써 스물다섯 살이니 오죽인들 초라해졌으랴. 그때에 팽팽하던 두 팔, 겨울 옷을 입고 치마끈을 가슴에 잘라매어도 터질 듯이 부어오르는 젖가슴이 지금은 버선짝같이 축 늘어져서 가슴인지 등인지도 분간키 어려워졌으리라. 얼굴엔 쥐깨⁵가 내발리고 입 만이 쑥 나온 것이 웃을 때마다 구리같이 누런 금니가 드문드문 박혔을 나 많은 시골 기생. 머리칼은 빠져서 까마귀 등지 같고 목만이 엉클하게 여미어지지 않는 때 묻은 동정 속으로 쑥 기린같이 빠져 있을 터이다.
‘그 모양을 하고 뻔뻔하게 서울이 어디라고 올라왔나.’
보고 싶던 정도 내토하고⁶ 싶던 가슴에 엉킨 사랑도 없어지고 슬픔과 분함만이 열 있는 봉근이의 머릿속을 꽉 붙들고 만다.
‘찾어왔던 기생의 태도로도 짐작할 수 있다. 시골 기생의 늙은 꼴이 오작이나 초라하면 나를 찾아와서 그렇게 거만한 태도를 취할 것이냐. 나는 불과 약방의 일개 사환 아이다. 그러나 제가 잘 알고 존경하는 나이 많은 이의 어린 오빠라면 그런 건방진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이냐.’
가슴이 설레어 머리를 움켜잡고 일어나서 바람벽에 몸을 기대니 저녁 햇발이 뒤창으로부터 벌써 봄이란 듯이 방 안으로 기어든다. 햇빛을 멍하니 바라보는 열 오른 봉근이의 두 뺨을 두 줄기의 방울이 쭈르르 흘렀다.
2. 만단사연
지금으로부터 달 반 전에 봉근이는 누이에게서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큰 봉투에 육 전을 붙여서 뒷등엔 ‘신막역전 해동관 내김계향(新幕驛前 海東館內 金桂香)’ 이라고 썼다. 계향이란 물론 봉희의 기생 이름이다. 봉투는 누가 써주었는지 잉크로 제법 쭉쭉 갈렸는데 속은 줄 친 편지 종이에 연필로 더구리⁷ 부적같이 써 있었다. 심한 사투리와 말 안 된 곳을 문맥을 통하게 고쳐놓으면
다음과 같아진다.
봉근아 봉근아. 이렇게 그 편지는 시작되었다. 지금 내가 자면 꿈으로 술취하면 주정 푸념으로 혹은 반갑게 혹은 슬프게 부르던 네 이름을 연필을 들고 적으려 하니 가슴이 막히고 무슨 말을 먼저 적어야 할는지 정신이 아찔하다. 이 서툰 글씨가 네 손 속으로 가서 너의 입으로 읽혀지면서 내가 부르듯이 네가 되풀이할 것을 생각하니 형언키 어려운 그리운 정이 나의 가슴을 쩌개는⁸ 것 같구나. 나는 연필을 들고 한참 동안 묵묵히 생각한다. 나의 하는 짓이 싫고 더러운 집안이 마음에 붙지 않아 한 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겨울이 닥쳐오는 추운 날 집을 나간 채 소식이 끊어진 지 어언간 칠 년.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네가 채신없어 보이는 타락한 나에게 싫증이 나고 술만 먹고 집안은 돌보지 않는 짐승 같은 의붓아버지와 그 틈에 끼어서 딸의 편도 못 들고 아버지 역정도 채 못 들면서 결국 무럭무럭 자라나는 너에게 더러운 꼴만 거듭 보이는 것이 마음에 맞지 않아 집을 버리고 나가버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마는, 네가 나간 뒤 열흘 스무 날 한 장의 엽서도 오지 않고, 어디 가 죽었나 살았나 소식이 끊어진 지 육칠 년, 나는 너를 한없이 원망하고 너를 어디서 붙들기만 하면 힘껏 마음껏 때려라도 주려고 마음먹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봉근아 단 하나의 나의 봉근아! 네가 나의 단 하나의 피를 가른 친동생이고 흙투성이가 되든 피투성이가 되든 몸과 정신을 적시는 개암탕⁹ 속에서 언뜻 정신을 차릴 때 나의 슬푼 눈 앞에 단 하나의 빛 있는 희망으로 나타나는 것이 단 너 하나뿐인 것에는 그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내 한 몸을 변변히 못 가져서 사랑하는 어린 동생을 붉은 홀몸으로 땡땡 언 엄동설한 추운 길 위에 내세우고 만 것을 알았을 때에, 나는 금시에 하늘을 잃은 것 같고 내가 서 있는 땅은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너 보고 매일 하던 말 아마 너도 그것을 기억하리라. 이렇게 되고 보니 그 말을 지금 이 글 속에 적을 아무런 체면도 없다마는 내가 너에게 늘 해오던 말이 ‘너만은 공부 잘해 훌륭히 돼라’는 말이 아니었더냐! 네가 내 품에서 없어져버리고 어디 가서든지 입속으로 중얼거릴 것이 ‘더러운 년 같으니’란 저주하는 외마디 말뿐일 것이니 그것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어떠하였을 것이냐! 그러나 네가 서울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너도 알지, 박 주사의 아들이라고 너 있을 때에 동경 가서 무슨 대학에 다니던 병걸(秉杰)이란 사람 말이다. 바로 어제저녁 그 사람이 우연히 신막엘 내려서 밤에 이 집으로 술을 먹으러 왔더구나. 그는 사회주읜가 뭔가 하고 다니다가 감옥살이를 치르고 지금은 강원도 어디에서 금광을 한다더라. 제 말로는 일전에 고향 갔다가 내가 신막 있다는 소리 듣고 지나는 길에 언제든가 꼭 한 번 들러보려고 했던 차에 우연히 서울 종로에서 인단을 사러 어느 약방엘 들어갔더니 네가 거기 있더라는구나. 그래 동생 소식도 전하여줄 겸 이번에 평양 가는 길에 내렸노라고 하기에 나는 너 만난 듯이 반가워서 그를 붙들고 한밤을 울어 새왔다.
아! 무정한 봉근아! 사나이가 한번 마음먹고 고향을 떠난 바에 성공하기 전에는 다시 발길을 돌이키지 않는다는 속담 말대로 내가 너의 사람 된 품을 은근히 기꺼워하면서도 생사조차 알리지 않는 너의 몰인정하고 박정한 것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너는 잘 알 수 있으리라. 그이 말에 몸이 건장하고 키가 훨씬 커서 몰라보게 되었다니 그동안이 육칠 년이라 그렇기도 하련만은 그렇게도 몹시 변하였니? 모르고 길 위에서 만나면 생판 모르는 사람같이 지나치고 말겠구나. 지난 일은 어쨌거나 네 몸이 건강하다니 이 위에 더 기쁜 일이 어디 있니. 그동안 내가 고생한 것을 돌이켜 생각하고 어린 네가 맨몸으로 겪어나간 세상 고생이 어떠하였으리라는 것은 물으려 하지 않고 또 이곳에 적고 싶지도 않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곳서도 할˙ 것이 없어 빈둥거리다가 회창 금광이 금값이 올라서 재흥하는 바람에 그곳으로 이사를 해갔는데 관수 말고 또 하나 아이를 낳아 네 가족이 이럭저럭 입에 풀칠이나 해나가는 모양이다. 나는 순천으로 안주로 정주로 개천으로 화물 자동차 모양으로 흘러다니다가 이곳 와 있는 지 일 년이 되었다. 아 데 가나 그 식이 당식이다. 네 말을 듣곤 금방이라도 너를 만나러 뛰쳐가고 싶으나 네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던 때보다도 더 형편없이 타락한 지금의 나다! 너를 보고 무슨 말을 하며 무슨 면목으로 낯짝을 들 것이냐! 그러나 아무리 내 자신을 돌이쳐보고 지금의 내 모양을 두루 살펴보아도 내 뼈다귀, 이것만은 너와 같은 한가지 물건이 아닐 것이냐. 살도 더러워지고 가죽도 더러워졌으리라, 아니 그 속을 흐르고 있는 피인들 어찌 깨끗하다 할 것이냐! 그러나 뼈만은 너의 것과 같이 돌아간 아버지의 것일 것이다. 내 뼈다귀는 너를 찾아갈 것이다. 너는 이것까지도 침 뱉고 발길로 차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너의 소식 듣고 싶다. 그러나 어데서 어떻게 만나면 좋을 게냐, 그것을 네 맘대로 지시해다오, 천 리라도 만 리라도 널 찾아가리라.
양력 이월 초사흘 봉희 씀
한 번 끝을 맺고 다시 옆으로 가늘게,
그런데 조용히 상의할 딸이 있다. 네가 약방에 있다니 말이지 내가 몹쓸 병 때문에 허리가 아프고 맥이 없어 죽을 지경이니 신효한 약이 있걸랑 좀 가르쳐다오. 부끄러운 일이다.
하고 글씨까지 부끄러운 것이 새발같이 기어가게 써 있었다.
이 편지를 받고 봉근이는 사흘 동안을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간단하게 회답을 썼다. 그 속에는 편지를 하고 소식을 전할 마음은 여러 번 있었으나 굳은 결심을 하고 여태껏 지내왔다는 것과 누이와 집 소식도 알아보려고 무척 애써왔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누이님을 만나보고 싶기는 하지만 우연히 만나면커니와 일부러 만날 필요는 없으리라는 것, 냉병에 쓰는 약은 여러 가지가 있는 모양이나, 어느 것이나 모다 비등비등하므로 이곳 약국에 특효약은 없다는 것 등이 씌어 있었다.
그랬더니 다시 누이에게서 그전보다 짧은 편지가 왔는데 될수록 서울 갈 기회를 엿보겠다는 것과 그리고 얼굴이 보고 싶으니 사진을 한 장 꼭 보내달라고 하고 사진 값으로 우선 돈 오 원을 보내노라고 하였다.
그러나 봉근이는 그 편지에는 곧 회답도 안 쓰고 사진은 물론 찍지도 않았다. 한 십여 일 뒤에 편지 받았느냐는 엽서가 또 왔으므로 봉근이도 엽서로 편지도 돈도 받았노라고만 간단히 적어 보냈다. 이 일이 있고는 그대로 한 달이 지났다.
3. 봄
땀을 내었더니 몸도 거분해지코¹⁰ 머리도 가벼워졌다. 그러나 잠이 들었다가도 한 침대에서 자는 명식이가 군입질¹¹만 쩔갑거리면 펄딱 눈이 뜨였다. 다시 잠이 들려고 할 때엔 가위가 눌려서 한참 동안이나 애가 쓰였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얼굴이 파랗게 뼈만 남은 누이가 입을 감물고¹² 자기의 목을 누르려고 달려들었다. ‘누이가 미쳤어.’ 이렇게 외치면서 손으로 뿌리치려고 하여도 목소리도 나지 않고 손발도 움쩍하지 않았다. 눈이 뜨이면 막혔던 숨이 콱 터지고 뒷잔등에 땀이 쭉 흘렀다. 밤은 몇 시나 되었는지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이따금 길거리에서 들려왔다.
몇 번인가 이런 괴로움을 겪어나면서도 아침 햇발이 창문을 꽉 막은 간판 새로 스며들 때까지 봉근이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같이 자는 명식이가 새벽에 겨우 잠이 든 봉근이를 깨칠까 염려하여서인지 어느새 혼자 가게 문을 열고 약장과 책상의 먼지를 문대길¹³ 때에 봉근이는 겨우 잠에서 깨어났다. 잠이 깨어서도 그는 침대에 그대로 번듯이 누워있다.
분함과 미움과 슬픔과 쓰라림! 이런 것이 한바탕 뒤범벅을 개면서 스쳐간 뒤엔 적막이 조숫물과 같이 그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벌써 몇 번인가 경험해본 이 쓸쓸한 마음, 이것이 그의 온몸을 붙들 때엔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행길로 나가서 자전거를 탔다. 광화문 네거리로 태평통으로 장곡천정¹⁴으로 휙 한 바퀴 돌아오면 마음이 거뿐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전화통에 손을 얹곤 ‘네네, 녹성당 약방이올시다’ 하고 외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봉근이는 자전거를 타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 불행한 심리 상태에 몸을 적시고 머리를 묻어보고자 한다. 적막과 마주서서 몸소 그것과 부대껴보고자 한다.
그렇다! 분함은 누이에게로 돌려보낼 감정이 아니었다. 누이의 육체가 물에 젖은 걸레 조각같이 더러워졌어도 수많은 사나이들에게 고기는 짓밟히고 피는 할퀴어 지금은 능금같이 건강하고 무성한 나무같이 아름답고 씩씩함이 하나도 찾아볼 길이 없어졌다 하여도, 그는 나를 쫓아오며 빚을 구하며 희망을 찾고 있지 아니하냐! 머리는 모든 이성에서 떠나고 감정과 정서는 타락하고 일그러져서 탄력 없는 살덩어리만이 뼈다귀 주머니 모양으로 축 늘어져 있다 하여도 오히려 그의 품에 나를 껴안아주고 나를 부둥켜안고 땅을 치며 통곡할 사랑과 정성이 남아 있다며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같이 울고 웃는 것이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아름다운 감정이 아닐 것이냐?
이렇게 생각하면서 봉근이는 아침 햇발을 머리 위에 얹고 청진동 백이십 ×번지를 찾을 염으로 이 대문 저 대문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문등이 달리고 누런 대문 두 짝이 번들번들 윤을 내고 있는 집, 최연화(崔姸花)라는 사기 문패가 붙어 있는 집이 청진동 백이십×번지였다. ‘최연화라는 것이 아마 어저께 약방에 찾아왔던 기생의 이름일 것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약 배달을 가던 때와는 좀 다른 감정에 지배되어 봉근이는 가만히 대문을 밀어보았다. 새벽은 아니지마는 기생집으로는 이른 아침인지라, 대문이 아직 꽉 닫혔으리라 하였던 것이 뜻밖에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나며 미는 대로 한 짝이 스르르 열린다. ‘누구요?’ 하는 듯이. 대문을 들어서서 왼편 쪽으로 한참 가다가 아마 부엌에서 아침을 짓던 식모일는지 문등이갛이 눈썹이 뻔질뻔질한 사십 가까운 네모가 진 여편네의 얼굴이 쑥 봉근이 쪽을 바라다본다.
“저, 말씀 좀 물읍시다.”
이렇게 자기의 온 뜻을 전하고 식모가 대청으로 올라가 안방의 문을 열고 두런두런 하는 동안 봉근이는 가슴에 고동을 느끼며 침착해지려고 뜰 안과 집을 물색하였다. 새로 지은 집인데 부엌에 연달아 안방이 두 칸 대청 칸 반을 건너서 건넌방이 칸 반 그리고 대문을 들어서서 바른쪽으로 뚝 떨어져 방 한 칸이 있고 동쪽은 옆집 담장으로 막혀 있다. 한 달에 집세로 20원은 물어야 할 집이었다. 뜰 안엔 아무것도 없고 토방엔 고무신, 여자 구두 이런 것들이 비교적 단정하게 놓여 있다.
식모는 다시 대청에서 나와서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버리고 한 십 분 동안 싱겁게 섰노라니 어저께 왔던 기생이 안방에서 나온다.
“아이구.”
반가운 손님이나 맞는 듯이 갸름한 눈을 흰 손으로 부비며,
“누이님은 금방 목욕을 가셨는걸! 어쩔까”
하고 도톰한 입을 웃어보인다. 얼굴에는 아직도 수면 부족의 피로가 흐르고 머리카락이 거칠게 흩어져 있다. 짧은 치마 밑으로 보이는 긴 바지 그리고 목달이¹⁵ 긴 버선, 연화의 입은 옷품은 사오 년 내로 평양 기생들이 집에서 입는 옷 풍속이다.
그가 안내하는 대로 대청에는 올라섰으나 여자의 방 안으로 성큼 들어설 용기는 봉근이에게 나지 않았다. 어저께 이 기생에게서 느꼈던 가벼운 불쾌. 이런 것은 어제와는 딴판으로 친절해진 지금 태도로서 넉넉히 자취를 감추었으나, 아랫목에 깔아놓았던 붉은 다알리아 무늬의 이불을 활짝 말아서 뒷목으로 밀어버리고, 방금 벗어놓았을 연둣빛 파자마와 가운을 집어서 윗목에 있는 이인용 침 대 위에 던지는 것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어지러워 미안하외 다만 자 들어오라구요”
하고 평양 사투리로 봉근이의 낯짝을 쳐다볼 때에 그는 말문조차 막혀 한참 동안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리타분한 간장 내 같은 데에 분내와 담뱃내가 섞인 듯한 구역나는 냄새, 시골 기생의 방에서 늘 맡던 그런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순전한 향수 냄새도 아니요, 머리칼 냄새도 아니요 크림이나 분 냄새도 아니요, 여자에게서 나는 일종 악취인 듯하면서도 결코 싫지 않은 특별한 향기, 방석을 깔고 쭈그리고 않았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코를 울리는 이 냄새가 여자의 냄새라는 것을 의식하였을 때 봉근이는 두방망이질을 하는 듯한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뺨이 후끈하고 귀가 펄펄 붙는 듯하여 그는 낯을푹 숙이고 묵묵히 앉아 있다.
“아직 몸에 열이 있소?”
대답도 못 하고 두어 번 도리질을 하고 나니 그는 자기의 이상한 태도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어저께 밤 깊도록 누이님이 기다리시던데, 혹 약방을 닫고 오나 해서.”
이 말에도 봉근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누이님도 육 년 만이나 칠 년 만이라니 오죽해요. 나를 시켜서 어저께 옷가지를 사다 놓으시고, 기쁨인지 한숨인지 옛말을 하면서 여러 번 말문이 막힙 데다. 나와 다니는 남덩¹⁶6 어른들은 몰라두 웃어른 된 사람의 정이야 어데 그런가요.”
여자의 말이 웃어른 같은 말씨로 변하여갈 때에 봉근이는 비로소 누이를 생각하고 누이가 기탁하고 있는 이 집 주인을 눈앞에 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참 동안의 침묵을 깨트리고 문득,
“평양서 오신지 오래야요?”
하고 봉근이가 얼굴을 들었을 때에 연화는 여지까지 정색하였던 표정을 금시에 허물고 무슨 큰 기특한 일이나 당한 듯이,
“내 사투리로 알았어요?”
하고 가름한 눈을 오뚝 세웠다.
그가 서울 여자가 아니고 한가지 평안도 사람, 그것도 평양 여자라는 것을 알아준 것이 유별하게 반가운 듯이 여자는 오랫동안 그의 얼굴에서 예쁜 표정을 씻지 아니하였다.
“사투리보다도 치마하구 바지 하구 버선!”
겨우 이 말 한마디가 봉근이의 입에서 다시 나왔는데 여자는 기쁨을 참을 수 없어 홀딱 일어서며 손을 부비고 한참 동안이나 자기 몸에서 치마와 바지와 버선을 훑어보았다.
봉근이는 여자의 노는 품이 처음에는 퍽 이상스러워 이것이 히스테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았으나 옥양목 버선 목달이를 덮을락 말락 한 흰 파레스 바지 그리고 세 치 가량 위로부터 연옥색 저고리 밑까지 깡충하게 내려 드리운 연두 치마를 묵묵히 바라다보다가 힐끗 쳐다보는 여자의 얼굴에서 귀여운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발견하곤, 어저께 교만하고 빽빽하게 보였던 이 여자에게 한없이 정이 가는 것 같았다.
열세 살이나 열두 살 때부터 기생 학교를 다니고, 열다섯 살이 되나 마나 한 때 부모가 시키는 대로 남자의 살을 알기 시작하여, 평양과 서울에서 수백수천의 사나이들의 속을 헤엄치듯이 하는 동안, 타고난 성품도 변하고 말씨와 행동에도 거짓과 아양이 끼어서 이만 나쎄¹⁷의 처녀들이 응당 가져야 할 모든 아름답고 귀한 모습이 없어져버렸을 최연화란 기생의 얼굴에 이렇게 순진한 한 조각의 표정이 남아 있는 것을 봉근이는 희한케 생각하고 있다.
입이 마음껏 벌어지고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여 두 손을 어디다 놓을지 몰라 한 번은 치마를 만져보고 그 다음엔 서로 붙잡고 부비어보는, 이런 자세와 표정은 결코 마음을 낚아야 하고 웃음을 팔아야 할 사나이들을 앞에 놓은 세련된 여자의 것이 아니었다.
봉근이는 자기도 모르게 멍하니 이 여자를 쳐다보면서, 옛날 자기가 제일 믿고 제일 숭고하다고 생각하던 누이에게서도 찾아보지 못하였던 무슨 청신한 것을 발견하는 듯하였다. 이 청신하고 밝고 깨끗한 정서 속에 몸과 마음과 머리를 맡기고 싶었다. 이것은 봉근이가 어렸을 적부터 여지껏 그리워하고 또 호흡하고 싶었던 빛과 공기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봉근이는 이 빛과 공기에 굶주리고 목말라 있었던가?
“지금 참 모란봉이 좋겠다. 대동강, 능라도, 돋아나오는 버드나무 잎새하고 단군전 뒤 언덕의 잔디. 경재리랑 신창릴 한바탕 싸다녔으면 좋겠다.”
여자는 침대에 걸쳐 앉아서 혼잣말같이 중얼거린다. 평양의 경재리(鏡齋里)와 신창리 (新倉里)의 길 위에 봄빛을 안고 거닐고 있을 수많은 그의 동료들을 생각하는지. 그리고 봉근이는 아무 말 없이 흥분된 얼굴을 하고 묵묵히 그대로 앉아 있을 따름이다.
4. 넘을 수 없는 개천
눈물도 나지 않고 가슴을 치고 목구멍을 치받칠 만한 절통한 감격도 생기지 않았다. 당연히 만날 사람들이 한 두어 달 만에 서로 만나는 모양으로 아니 그것보다도 더 싱겁게 봉근이는 터무니 인사라고 할 만한 것을 누이에게 한 것 같지 않다.
지금도 봉근이는 바람벽을 기대고 까치다리¹⁸로 앉았고, 그 앞에는 목욕에서 돌아온 누이가 머리를 대강 틀어서 도금 비녀를 찌르고 바른 다리를 세우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창문 쪽을 바라보고 있건만, 별로 말할 만한 건드리지도 없는 듯이 텅 빈 방 안에는 담배 연기만이 무럭무럭 떠오르고 있다.
담배를 털다가 혹은 담배를 끄면서 누이는 여러 번 동생의 변한 얼굴을 바라보지마는 봉근이는 누이의 눈살이 얼굴에 부딪칠 때에도 일부러 멍하니 고리짝 위에 놓인 타월로 만든 낡은 잠옷을 바라보았다.
“너 그동안 데금이나 좀 핸?”
봉근이는 머리를 썰레썰레 내흔들었다.
“데금할 돈이 있나.”
그러나 그는 한 달에 먹고 십 원 받는 중에서, 육 원씩을 다달이 내는 삼백 원 저축 저금에 부어놓고 있었다.
“받는 걸루 군입질이나 하구 구경이나 가네.”
봉근이는 이러한 누이의 물음에는 대답도 아니 하였다.
봉근이는 자기가 저축 저금에 다달이 육 원 씩을 부어 넣느라고 입을 것도 변변히 못 입고, 철마다 주인이 사주는 양복 벌로 이렁저렁 지낸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누이가 얼마나 만족해하고 기뻐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누이가 묻는 것이 첫째로 불만하였다. 둘째론 장가 밑천도 장사 밑천도 안 될 적은 돈에다 무슨 큰 희망을 달고 있는 듯이 매달마다 쩔쩔매면서 꾸역꾸역 저축하기에 볼장을 못 보는 자기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보일까 두려워하였다.
“그래두 장래를 생각할래문 지금부터 돈을 아까워하야지.”
이런 말은 칠 년 전에 세무서 인상하구 좋아 지낸다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야단을 칠 때마다 누이에게 타이르던 말과 비슷하였다. 열아흡 스물 전후의 기생들이 자기 신세가 불쌍해서 술 먹고 제맘대로 휘뚜루마뚜루 하다가도 스물이 넘어서서 장차 늙으면 나는 무엇이 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눈이 뜰 때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심리 상태의 변화를 봉근이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자기 집에 놀러 오는 늙은 기생에게서 이런 것을 수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칠 년 만에 만나는 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에 그것을 진심으로 좋게 해석해 들을 겨를이 없었다. 누이는 결코 이런 소리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사람으로 봉근이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봉근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누이는 사회주의 하노라고 이리 덤벙 저리 덤벙 하다가 어찌어찌하던 끝에 금광 브로커나 된 박병걸이를 하늘같이 섬기고 그에게서 술장사 밑천이나 뽑아내려고 하는 그런 누이는 아니었다. 된 데라고는 반 닢 어치도 없는 놈을 ‘카모’¹⁹라고 따라와서 일생의 생계나 세운 듯이 ‘돈이 제일’이라고 동생에게 설교하려 드는 그런 누이는 아니었다. 박병걸이와 같이 오게 된 경위를 자랑같이 이야기할 때에 벌써 감출 수 없는 불만을 품었으매 그 위에 다시 돈 모으는 설교는 무엇이냐! 그는 누이와 자기와의 새에 메울 수 없는 무슨 큰 도랑이 생긴 것을 쓸쓸히 느끼고 앉아 있다.
공기가 이상하게 무거워진 것을 눈치 채고서인지 누이는 갑자기 웃으면서
“너 폐양 첨 나와서 여관에 있었지? 누가 와서 그러기에 그 길루 자동찰 타구 폐양 나갔드니 발쎄 다른 데루 갔두나”
하고 옛날이야기를 한다.
봉근이도 그때 생각이 나서 빙그레 웃었다. 여관의 사환 아이로, 양말 공장에 들어가 실 감는 소년 직공으로, 양복점 견습으로 들어가 단추 구멍만 하고 앉았던 생각, 그리고는 삼 년 전에 서울로 와서 약방 사환 아이가 된 만 육 년 동안의 과거가 휘끈휘끈 그의 머리를 스쳐갔다.
“그때 고생하던 이야기나 좀 해라.”
누이는 다시 담배를 붙여 물며 동생의 얼굴을 보았다.
“건 해선 뭘 해, 재미있나?”
참말 봉근이는 누구에게도 자기의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고 하지 않았다. 부끄러울 것도 없고 수치 될 것도 없건만 재미가 없었다. 누가 이야기를 물으면 그대로 픽 웃고 말았다.
“넌 몰라보게 됐다만, 나두 변핸?”
이 소리에 봉근이는 힐끗 누이를 쳐다보고,
“뭘 변해.”
한마디로 대답해버렸을 뿐이다. 사실 누이의 몸과 얼굴은 봉근이의 예상과는 여간 틀리지 않았다. 교통이 편하여지고 사람의 내왕이 빈번해진 탓일런가, 그전과 같이 도회 기생과의 차이가 심하지 않은 것 같다. 본래부터 눈이 크고 얼굴 모습이 미끈하던 누이는 그다쳐 심하게 시골 기생의 티는 보이지 않았다.
“그전보담 무던히 상했지?”
이렇게 누이는 동생 에게 추궁한다. 그러나 동생은 또다시,
“퓔.”
하고 빙그레 웃을 따름이다. 봉근이는 병이 있다는 말을 듣고 냉병이 심하면 자궁병을 겸하였을 것이므로 누이의 얼굴은 몹시 여위고 눈자위엔 검버섯이 끼어 있을 것을 상상하였다. 그러나 누이는 전보다 오히려 살이 찐 것 같다. 포동포동하여 물 샐 틈 없게 다부지게 아름답던 얼굴이 오히려 뺨따귀에 살이 올라 두 볼이 맥없이 목으로 흐르고 있다. 가슴도 탄력은 없으나 더 커진 것 같다. 눈은 더 떼꾼해져서²⁰ 영채가 없고 몽롱하게 술 취한 것 같이 맥이 없어 보인다. 확실히 건강한 청춘은 누이에게서 떠나고 말았다. 봉근이는 예상보다는 너무 능청맞게 비둥비둥하게 살진 누이의 몸에서 징글징글한 염증을 느꼈다. 그것은 전혀 그의 말하는 투와 말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 같았다. 받은 편지 내용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이러고들 있을 때에 대청으로 통한 문을 동동 두드리면서
“실례지만 문 엽니다”
하고 연화가 열린 문틈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허실 말이 태산 같으시겠지만 위선 아침을 먹읍시다. 벌써 열한신 데”
하고 웃는다.
“난 가 먹지요”
하였다.
“아이고.”
연화는 놀라는 표정을 하며 방 안으로 뛰어들어가
“그게 무슨 말이오. 채린 건 없어두 원”
하면서 봉근이의 손을 붙들어 앉힌다.
“어멈 이리루 상 디려오.”
담뱃갑과 재떨이를 치우고 셋이서 둘러앉았는데 둥그런 큰 상에 조반이 들어온다.
막 상을 받아놓고 술을 들려 하는데 구두 소리를 내면서 박병걸이가 찾아왔다.
“복상 오슈?”
먼저 계향이가 뛰어나가며 반가워한다.
“머 지금 아침 이슈. 응, 봉근이가 왔군, 지금 처음인가”
하면서 대청으로 올라서서 병걸이는 방 안을 들여다본다. 봉근이는 좀 불쾌하였으나 앉은 채로 끄떡 인사를 했다. 허리 잘라맨 간복²¹ 외투를 벗으니 얼룩얼룩한 뱀의 꺼풀 같은 스타킹과 다갈색 닛카 쓰봉²²이 나타나고 시곗줄 늘인 조끼 밑으로 혁대 고리가 번쩍번쩍 한다.
“어서들 잡수시유, 난 더운데 여기 좀 앉았지.”
“거긴 아직 칩습니다. 이리 들어오세요, 잡수신 데 오래 되시면 좀 같이하실걸.”
연화도 일어서서 방석을 들고 들어오라고 하나,
“나두 지금 막 먹구 옵니다”
하면서 병걸이는 대청에 펄썩 앉았다.
“그래 봉근인 누일 만내 기쁜가? 오늘은 계향이한테서 한턱 졸라 먹어야겠군.”
뭣이 우스운지 일동은 하하 하고 소리를 치는 속에서, 봉근이는 덤덤히 앉아 있었다. 병걸이는 연화가 내어다 주는 방석을 깔고 담배를 붙여 물곤 코허리가 간지러운지 두어 번 금테 안경을 어루만졌다.
봉근이는 병걸이를 잘 알고 있었다. 내지 가서 학교에 다닐 때엔 안경도 안 쓰고 또 코 위에 오뚝하게 기른 수염도 없었다. 긴 머리칼을 하고 방학 때에 오면 노²³ 천도교당에서 연설을 하였다. 연설회가 끝난 밤엔 어데서 술을 처먹었는지 청년회 친구 두서넛과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자기 누이를 끼고 봉근이가 자고 있는 집으로 몰려왔다. 그리고는 다시 칸즈메²⁴ 해서 술을 컵으로 마시며,
“기생도 학대받는 계급이다”
하고 주먹으로 술상을 울리고 야단을 쳤다.
그러면 감격하여 누이도 우는지 웃는지 모를 소리를 올리고 으악 하곤 고함을 치며 손을 두드렸다. 봉근이는 이때 모양을 묵묵히 생각해보고 지금 마루에 앉아서 점잖게 구노라곤지 담뱃내를 이상하게 흑흑 소리를 내서 내뿜고 있는 병걸이의 모양을 내다보았다. 그러고는,
“자 우리끼리 먹습니다”
하는 연화의 소리에 숟가락을 들고 김칫국을 연거푸 세 번이나 떠먹었다.
5. 내처 걷는 길
주사기를 닦고 소독기를 치우면서 방금 주사를 맞은 손님이 놓고 간 오원짜리 상품권으로 무엇을 살 건가 하고 봉근이는 이층에서 생각하고 있다. 병원에 가면 엄청나게 돈을 뺏긴다고 약방에 와서 남모르게 주사를 맞는 사람이 많았다. 두 달 석 달을 두고 ‘칼슘’이나 ‘살발산’을 맞는 사람, 혹은 ‘트리폘’ 때문에 ‘트리파프라빙’이나 ‘판셉틴’을 장기일 동안 맞는 사람들은 약방에 들어와 슬쩍 눈짓만 하곤 봉근이를 앞세우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증류수나 한 병 혹은 두고 쓰는 주사약을 한 개 올려다간 주사기를 소독하여 정맥이든 피하이든 의사 부럽지 않게 봉근이는 주사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주사 값 이외에 수수료라고 받는 것은 결코 봉근이의 수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주사약과 증류수와 알코올 대금’ 이란 명목 밑에 그대로 공공연하게 약방의 버젓한 수입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간혹 가다 봉근이의 신세를 생각하는 사람은 돈으로나 음식으로나 혹은 상품권 같은 것으로 제 병을 고쳐주는 봉근이에게 선물을 하였다. 아무리 금고같이 굳은 주인도 이것까지 박탈할 체면은 없었다. 그래서 ‘봉근이 놈 큰 수 났다’고 중얼거리며 부정 행동을 시켜 큰 이익을 보는 것을 봉근이 때문에 하는 일같이 말하였다.
봉근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시키는 대로 유쾌한 마음으로 주사를 놓아주었다. 그는 아무런 일이 있다 해도 약국의 책임인 주인 약제사에게 관계될 일이지 자기는 상관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벌써 한 달 동안이나 약방에서 ‘백단’과 ‘푸로타르골’을 갖다 쓰며 하루 건너큼 ‘판셉틴’을 맞고 있는 서른 살이 될락 말락한 포목상 점원이 봉근이에게 주고 간 백화점 상품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명식이의 운동화를 하나 사주리라 생각했다. 부정행위에 대하여 입을 막노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겨우 한 달에 3원 밖에 못 받는 어린 명식이가 퍽 전부터 물이 올라오는 운동화를 신고 있는 것을 봉근이는 마음에 꺼렸던 때문이다. 자기 해는 별로 살 것이 없었다. 누이가 내복과 스웨터를 사주었기 때문에 급히 사고 싶은 것은 없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니까 주인은 변소에를 가고 명식이가 혼자서 오도카니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다.
“너 운동화 구 문²⁵ 반이가?”
“아니다, 구 문이다.”
이렇게 대답하며 명식이는 잘 다물어지지 않는 입술을 꼭 물고 ‘건 왜 묻니?’ 하는 표정을 한다.
“너 하나 사줄란다. 아들 놈이 메기 아가리 같은 운동화를 신었으니 부친 된 마음이 오죽 아프냐.”
이 소리에 명식이는 발딱 일어서며 먼지떨이개로 ‘엥히’ 하고 때리는 헤늉²⁶‘을 한다.
“잠깐 댄녀오께.”
봉근이는 자전거도 안 타고 백화점을 향하여 전찻길로 뛰어갔다.
연화. 그는 신막서 계향이와 같이 있던 그의 언니의 신신한 부탁으로 그런다고 하지만 봉근이의 누이가 지금 괴롬을 끼치고 있는 사람이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자기를 찾아온 거나 다름이 없는 누이를 자기 대신에 제 집에 두고 몸을 돌보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후 몇 번인가 그 집을 찾아간 봉근이에 대하여도 결코 소홀한 대접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뜻밖에 생각이 나는 연화와 누이. 이 두 사람 중에서 먼저 연화의 생각이 떠오른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봉근이는 자기의 마음을 갈피갈피 뒤적여본다. 그러고 보니 자기가 몇 번인가 그의 집을 찾아간 것은 누이를 보고 싶다느니보다 연화를 보는 것이 유쾌하여 그런 것이 아닐런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일어난다.
둘째 번에 누이를 찾아갔을 때 누이는 약방을 그만두고 자기가 술장사를 차려놓으면 자기와 같이 있자는 말을 하였으나 봉근이는 단마디에 거절하고 불쾌한 감정을 안고 돌아왔다. 그 다음은 좀처럼 찾아갈 생각이 날 것 같지 않았는데 열한시에 약방 문을 닫고 주인이 자기 집으로 돌아간 뒤에 이상스럽게 누이 있는 집이 마음에 걸렸다. 역시 누이가 기다릴는지 모를 것이라고 찾아갔더니 연화는 요릿집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누이 혼자 있었다. 누이는 병걸이와 함께 다옥정²⁷과 서린정²⁸ 부근으로 집을 보러 다녔다는 것을 말하고 병걸이가 자본을 얼마 내면 일 년에 그에게 얼마씩 이익을 배당하게 되느니 어쩌니 하고 봉근이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를 늘어놓았으나 새로 한시가 되어 연화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야 그 집을 나왔다. 세번째 가서도 누이는 방 안에 있고 연화가 대청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으므로 봉근이는 방 안에 들어가기가 싫고 대청에 앉아 있기를 즐겼다.
이런 것을 지금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봉근이는 제가 연화에게 딴생각을 두고 있지는 않는가 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결코 싫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럴 리는 절대로 없다고 봉근이는 자기 마음에게 타이른다.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고 그는 다시금 또 다시금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가 누이보다 먼저 연화에게 선물할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누이와 연화와의 관계를 보고 또 누이와 자기와의 관계를 생각할 때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남이고 누이는 자기와 같다. 그러므로 선물이라는 것은 남에게 우선해야 될 것이라고 되씹고 되씹고 하였다.
그는 명식이의 운동화를 사곤 누이의 지갑과 연화의 콤팩트를 샀다. 사놓고 생각해보니 우스웠다. 누이에게는 마치 돈 돈 하는 사람은 이게 제일이라는 듯이 지갑을 보내고, 연화에게는 아름다운 얼굴에 더러운 것이 붙을 때마다 이것을 보면서 문대라는 듯 하였다. 그러고 보니 명식이 놈은 운동화 신고 하루 종일 자전거 배달이나 다니라는 것 같아서 픽 유쾌하였다. 그것을 사고도 아직 얼마가 남았으므로 그는 상품권에 금액을 기입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거리에 나섰다.
약방 앞으로 오니까 명식이가 배달을 가려고 자전거를 잡고 섰다. 그래 배달은 자기가 가마 하고 명식에게는 운동화를 주었다. 그리고는 자전거도 안 타고 배달을 떠났다.
수송동으로 배달을 하고 봉근이는 그 발로 누이 있는 집으로 갔으나 누이는 병걸이와 나가고 연화가 혼자서 축음기를 틀고 있었다. 봉근이가 들어가니까 연화는 축음기를 멈추고 그에게 방석을 권한다. 그러나 그는 대청이 따스하다고 방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낮에 어떻게 틈이 있었수?”
“요기 수송동 배달을 갔었어요.”
연화도 버선을 신고 마루로 나왔다. 해 드는 데 나와 앉아서 손톱을 갈기 시작한다. 봉근이는 잠깐 주저주저하다가 종이에 싼 두 가지 물품을 내놓고
“이거”
하다가 주춤했다.
“네?”
하듯이 얼굴을 들면서 좀 의아하게 내놓는 물품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봉근이의 얼굴을 쳐다본다. 봉근이의 얼굴은 물감같이 빨갰다.
“돈이 좀 생겨서 사왔는데.”
겨우 여기까지 말하니까 연화는 눈치를 챈 듯이,
“네 누님 올리려고. 뭐요 이게”
하면서 두 가지를 다 끌어다가 두 손에 하나씩 쥐어본다. 그리고 갸름한 눈에 웃음을 그리면서 봉근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갑만 누이 .”
이렇게 말하고 봉근이는 머리를 푹 숙였다가 대문간 있는 쪽을 바라본다. 그때에 대문 소리가 나면서 병걸이와 누이가 입을 헤하고 웃으면서 들어오고 있다. 봉근이는 당황하여 물건과 연화를 번갈아 보았으나 연화는 물건을 쥔 채 일어서서,
“아이구 어데를 그리 다니시유, 다리들 아프시겠수”
하며 그들을 맞아들인다. 봉근이도 일어섰다. 그러나 그는 지금 들어온 누이와 병걸이에게 인사를 하려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고 집으로 가려고 서 있었다.
“어떻게 낮에 틈이 있어 왔구나. 또 주인이 야단하지 않을까.”
봉근이가 신을 신을 때 누이는 대청 위에 올라서면서 말하였다.
“아니 동생이 선물을 사가지구 왔어요.”
봉근이는 이 말에 뒷잔등에 선뜻하는 칼을 느끼면서 연화를 돌이켜보았다.
“이것은 누이님 올리구 이건 내 해라우”
하면서 지갑은 누이에게 주고 자기는 크림으로 만든 콤팩트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보였다. 그리고는 두 사람과 함께 하하 하고 웃었다.
“거 또 봉근이가 엉뚱한데. 연화 씨에게 콤펙트를 보낸 걸 보니까 아마 연애를 하는가 보아. 하하하하 기생 오빠는 하는 수 없어.”
봉근이는 병걸이의 낯짝을 쳐다보았다. 금테 안경이 뒤로 젖혀지면서 콧구멍과 수염과 그리고 담뱃진에 까맣게 된 입 안이 껄껄껄 소리를 내고 있다. 봉근이는 그것이 사람인 것 같지가 않았다. 봉근이의 변한 낯색을 보고 벌써 연화와 누이는 웃음을 멈추었는데 병걸이만은 허리를 또 한번 추면서,
“봉근이가 난봉이 난가 보아”
하고 혼자서 좋아한다. 봉근이는 신으려던 운동화를 벗어버리고 대청 위로 뛰쳐 올라와 연화가 쥐고 서 있는 콤팩트를 빼앗아 그대로 뜰 안에 내어던졌다. 콤팩트는 돌에 부딪쳐 깨어져서 유리알 자박이 꽃잎같이 마당에 흩어진다.
“여보 난봉난 놈을 보려문 당신을 보우.”
봉근이의 목소리는 열이 오르고 낯은 오히려 해쓱하다.
“사회주의 하노라구 꺼덕대다가 협잡꾼이 안 돼서 내가 난봉이 났소.”
말이 끝나는 대로 봉근이는 토방으로 뛰어내려 신을 끌고 대문으로 쏜살같이 걸어 나간다.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하여 봉근이의 하는 양을 움쩍도 못 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
그러나 연화는 큰 죄를 저지른 것같이 생각되어서 고무신을 끌고 대문으로 쫓아나갔다. 계향이가 미안한 듯 죄스러운 듯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다가 방석을 들어 병걸이에게 권하면서 눈물이 글썽 글썽 하여,
“복상 미안하외다. 어린 게 철이 없어서¨
하고 침묵을 깨트린다.
연화가 대문을 열고 내어다 볼 때 봉근이는 벌써 골목을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그는 어른 티가 나는 봉근이의 뒷모양을 보면서 비로소 그의 연세가 열여덟 살이라던 말을 생각하였다.
눈물을 씻고 후 한습을 내쉰 뒤에 약방엘 들어서니 마침 전화가 따르릉 운다. 봉근이는 전화통을 들었다. 남대문통 어느 회사에 약 배달 갈 일이다. 그는
“네네, 고밥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은 뒤에,
“보험 회사 사이 상 기나프루드 제 하나요”
하고 주인에게 배달 전표를 청하였다.
자전거 위에 올라타니 벌써 마음이 시원하였다. 마침 네거리의 교통 신호는 황색이다. 그는 넘어질 듯이 자전거를 눕히고 바른쪽으로 길을 휘어잡곤 궁둥이를 안장에서 들고 아스팔트 위를 지치듯이 돌아간다. 뒤이어 찌르릉 하고 종이 울다 멎으면서 신호는 파란색으로 변하였으리라. 그는 바라다볼수록 판판한 넓은 길을 앞으로앞으로 달아 나갔다. 막 피어나는 가로수의 나뭇가지가 뒤로뒤로 밀려간다. 제비 같은 자동차와 산도야지²⁹ 같은 사이드 카가 그의 경쟁의 대상이었다.
-끝-
2016년 5월 27일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