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본격적인 생활로...
스페인 생활과 비교해 본다면 멕시코에서의 초반은 의외로 순탄하게 풀려가고 있었다.
집마저도 길 위에서 주워 먹기 식으로 구했으나, 어쨌든 체류 자격과 거처라는 기본 요건은 갖춰진 셈이었다.
멕시코인 부부와 한집에서 지내야 하는 불편함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인야는 이곳에 오래 머물 생각이 아니었기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다른 길을 찾기로 하고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다.
2월의 첫날, 인야는 본격적인 멕시코 생활의 닻을 올렸다.
날짜가 딱 맞아 집세 계산이 수월하다는 사소한 사실조차 기분 좋은 출발처럼 느껴졌다.
짐을 옮기며 인야는 다시금 생각했다.
'도대체 그들은 차 안에서 나의 어떤 점을 보고 선한 사람이라 믿게 된 걸까.'
참으로 신기한 인연이었다.
집주인 토마스(Tomas)와 라우라(Laura) 부부는 예상보다 훨씬 꼼꼼한 이들이었다.
인야가 짐을 풀자마자 그들은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두 가지 엄격한 지침을 내렸다.
바로 ‘집안의 청결 유지’와 ‘소재 보고’였다.
청결이야 각오한 바였고 인야 역시 지저분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서 문제라고 볼 수 없었지만, 외출 시 행선지를 밝히라는 요구는 자유를 침해당하는 기분이 들어 생소했다.
하지만 치안이 불안한 이곳의 사정을 고려한 배려라 생각하니 수긍이 갔다.
그리고 인야가 머물 방은 붉은 양탄자가 깔린 바닥 위에 두꺼운 매트리스가 놓여 있었고, 깔끔한 시트와 텔레비전까지 갖춰져 있었다.
주인 부부의 배려가 고맙기는 했지만, 특히 집주인 여자가 워낙 깔끔한 성격인 듯하여... 인야는 공용 공간인 부엌과 욕실을 사용할 때마다 평소보다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할 부담도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인야는 이곳의 방식대로 살아가며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거처가 마련되었으니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고 무엇이든 치열하게 시작해 볼 작정이었다.
학교 수업은 첫날부터 행정 착오로 삐걱거렸으나, 교수를 바꾼 뒤 마주한 오리엔테이션은 기대 이상이었다.
벽화에 대한 총체적인 설명을 장황하게 듣고 느끼며 인야는 깊은 흡족함을 느꼈다.
한 평생을 바쳐야 할 전문적인 예술 분야에 이제 막 발을 들이며 자신의 경망스러움을 반성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금요일에 시작된 수업이 주말로 바로 이어지는 바람에 본격적인 강의는 다음 주로 미뤄졌지만, 인야는 한국과 스페인, 미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며 서서히 안정을 취해갔다.
일요일 오전, 토마스씨는 장을 보러 가는데 함께 가겠느냐고 인야에게 물어왔다.
아파트 바로 옆 슈퍼마켓은 편리했지만, 시장 특유의 먹거리를 구경하고 싶었던 인야는 흔쾌히 따라나섰다.
오후에는 라우라가 청소를 시작하려 하기에 시내 구경도 할 겸 토마스씨의 외출 길에 다시 동행했다.
낡은 차를 타고 도심으로 향하던 길, 토마스씨는 뜬금없이 말을 건넸다.
“인야, 이 차가 너무 고물 같지 않아? 폐차장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몰골인데 말야.”
인야가 원래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노라 덤덤히 대답하자 토마스는 껄껄 웃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멕시코에는 도둑이 워낙 많아 일부러 도둑맞지 않을 법한 폐차 직전의 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집안 문제로 흘러갔다.
“근데, 내가 그깟 700페소를 받으려고 방을 내준 줄 알아? 사실 우리 부부는 싸움이 잦거든. 그런데 당신 같은 이방인이 함께 살면, 아무래도 우리가 조심하게 될 테니... 싸움을 줄여볼 셈으로 방을 내놓은 거요. 당신의 인상이 진실해 보였고, 스페인 억양을 쓰는 게 내 관심을 끌었지.”
그분의 고백은 인야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50대 스페인 혈통의 ‘크리오요’ 토마스씨와, 30대의 ‘메스티소’ 여인 라우라.
자식도 없는 그들의 조합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느꼈던 인야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던 셈이다.
차는 어느덧 도심 한복판에 들어서고 있었다.
토마스씨가 높은 담벼락이 끝도 없이 이어진 거대한 블록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내가 태어난 집이라오.”
인야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단순한 저택이 아니라 도심 한 블록을 통째로 차지한 대저택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도 본 적 없는 규모에 인야는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토마스씨는 작정한 듯 근처에 있는 형제들의 집과 사촌 소유의 30층 타워까지 보여주었는데,
몰락한 귀족 집안의 자산가인지, 아니면 수수께끼 같은 허풍인지 인야로서는 알 길이 없었으나, 자신을 신뢰하여 비밀을 털어놓는 그가 조금은 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는,
'내가 묘한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밤, 인야는 멕시코에 온 뒤 처음으로 펜과 연필을 들었다.
어둠 속에서 한참을 씨름한 끝에 드로잉 한 점을 완성하고 ‘밤, 또 하나의 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바르셀로나 초창기에도 이런 식으로 그림을 시작했었다. 작고 보잘것없는 종이 그림들이 결국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음을 인야는 잘 알고 있었다.
쉬지 않고 그려야만 이 낯선 생활에서의 보람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멕시코에서도 드디어 내 그림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캡션을 일기장 구석에 적어 넣는 기분으로 인야는 잠을 청했다.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부부의 싸움이 터진 것이다.
토마스씨에게 미리 들었기에 놀라지는 않았지만, 둘이서 언성을 높여가며 막무가내로 싸우는 소리는... 인야의 처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방인인 인야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싸움에 휘말리기 싫었던 인야는 워크맨 이어폰을 귀에 꽂고 소음으로부터 도망쳤다.
한참 뒤,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을 때는 싸움이 끝난 듯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
아파트의 방 세 개에 토마스, 라우라, 그리고 인야가 각각 한 방씩 차지하고 숨어버린 형국이었다.
인야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양,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조차 죽여가며 살금살금 움직인 뒤... 서둘러 불을 끄고 누웠다.
다음 날, 인야는 인류학 박물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마주한 방대한 문화재와 예술 작품들은 인야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멕시코를 못 사는 나라'라고 얕보았다가는 큰코다치겠다는 경외감이 들었다.
수도인 멕시코시티와 과달라하라에서 본 것만으로도 이들이 보유한 예술적 자산은 압도적이었으니까.
박물관에서 너댓 시간을 보낸 뒤 허기를 느낀 인야는 소칼로(Zócalo) 광장 부근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연히 지난번 학교 등록을 도와준 본부 교수와 직원들을 만나게 되었고, 인야는 동양인 학생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들의 식사비를 대신 지불했다.
정중한 요청을 받아준 그들 덕분에 인야의 마음도 훈훈해졌다.
그런 뒤, 인야는 스스로 ‘슬픈 광장’이라 이름 붙인 소칼로 광장을 배회했다.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지는 그곳에서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 테이프를 사고, 국기 하강식과 인디언의 춤을 구경하며 여유로운 오후를 보냈다.
어둠이 내려앉은 뒤 집으로 돌아온 인야는 한국에서 가져온 압력밥솥에 감자 두 알을 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비록 그날 밤은 빈 종이 위에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했지만,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는 위안을 삼으며... 멕시코의 또 다른 밤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