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례일족(南禮一族)-3통권 95
“얼마라고?”
“30냥.”
“은 30냥이면 반년 치 녹봉인데, 그걸 한 달 만에 까먹었다는 건가?”
“저어….”
“뭐야? 뭐가 또 있는 거냐?”
“은이 아니라 금인데요.”
금은 은보다 100배의 가치가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3000냥을 한 달 동안 까먹었다고?”
3000냥이면 라혼이 백호수장이었을 때 백호금군의 1년 예산이었다.
“흑사!”
“말씀하시오, 주공!”
“철혈강시의 위력이 그렇게 대단하다 하는데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습니까?”
“흐음~!”
잔폭광마는 대장의 고요한 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자기를 새삼스럽게 위아래로 훑어보는 강시지존의 시선에 오금이 저려왔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접시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고 했던가? 곤란함을 해결해줄 봉이 그 무섭다는 강시지존 흑산자였다는 사실을 안 것은 잔폭광마는 재수가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잔폭광마도 배워 익혀두고 있는 강시권이 강시지존의 손에서 펼쳐지자 일권을 맞을 때마다 뼛골에까지 충격이 전해졌는데 맞으면서 졸도하고 다시 그 고통에 깨어나 다시 기절할 때까지 맞아야 했다. 그러나 전신이 쑤시고 결리는 것보다 산 채로 강시가 될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상황이 잔폭광마를 더 괴롭혔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강골에 절정의 내가고수, 몇 가지 흠이 있으나 나름대로 재목입니다. 주공, 철혈강시를 만드는 일은 까다로우니 차라리 귀장(鬼將)을 만들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귀장이라….”
진지하게 심사숙고(深思熟考)하는 대장의 모습에 일이 점점 구체성을 띠어가자 차라리 스스로 죽음을 결심하는 잔폭광마였다.
“대장, 제가 죽음으로….”
―퍽!
―쿠엑!
“그래, 아주 죽여주마! 오지분시(五支分屍)!”
그리고 잔폭광마는 대장이 진짜 화가 나면 목이 떨어지고 팔다리가 잘린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라혼의 집무실에 함께 있던 초초와 지심은 양팔과 양다리, 그리고 머리가 몸통에서 한순간에 분리되는 모습에 창백하게 질리며 몸이 굳었고, 어지간한 흑산자 또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한 사람, 어렸을 적 해노야가 오빠들을 어떻게 수련시켰는지 훔쳐본 경험이 있는 한포포는 태평스런 어조로 차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어머, 대가가 진짜 화 많이 났나 보네? 그래도 몸통은 으스러뜨리지 않는 걸 보니 이런 거에 익숙하지는 않은 모양이네….”
***
라혼은 향당의 석밀을 가지고 중경의 토금전장을 찾았다. 당금 대륙 상계(商界)를 위진하는 토금전장의 본장은 그것을 증명하듯 금의화복(錦衣華服)을 차려입은 상인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이 말하길, 토금전장과 거래하지 않는 장사꾼은 천하에 없을 것이라 했다. 천하에 거상(巨商)이라 자부하는 사람들도 토금전장이 주축으로 한 대상계(大商契)의 계원(契員)이 되어 웬만한 거래 대금은 토금전장의 장부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관부에 은자로 세금을 낸 것을 계기로 관부 또한 계원으로 받아들여 대륙 천하의 상계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거목이 되어 있었다.
“천하의 상인들이 여기에 다 모인 듯하군.”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하나 저들이 천하 상계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맞는 말일 겁니다.”
라혼은 토귀의 자신만만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란 언제나 흐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데 토귀는 천하의 돈의 흐름을 장악한 것이다. 원주를 중심으로 한 중원 상권, 후려 남경을 중심으로 한 남해 상권 그리고 인시드 남주 무역 항로와 북주 무역 항로의 상권이 있었다. 기존의 대상(大商)들은 각자의 상권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서만 활동했다. 그러나 토금전장은 달랐다. 천하 전역을 무대로 하여 입지를 넓혀왔고, 대상계를 열면서 토금전장을 통해 황금을 동경에서 서경으로까지 가지고 갈 필요가 없게 만든 것이다. 동경 토금전장 분장에 거액의 은자를 맡기고 원주 중경에 와서는 그것을 찾아 사용했다. 아니, 물건을 인수하고 장부상으로 자금을 빼서 상대에게 지불하면 되었기에 거금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한번 원거리 거래를 하려면 상단을 조직하여 그곳에 가서 팔 상품을 들고 가 그것을 팔아 그 이익금으로 다시 물건을 사들여 돌아왔다. 그러나 이것은 그때그때 시세차가 존재하기에 확실한 상품이 아니면 손해를 보기 일쑤였다. 그러나 토금전장의 대상계를 이용하면 천하의 어디든 토금전장의 전부(錢簿)만 가지고 재빠르게 가서 물건을 사서 표국의 도움을 받아 가지고 오면 되었다.
“주공, 여기 있습니다.”
작달막하고 둥근 몸매에 둥글둥글한 얼굴과 가는 눈매의 토귀는 수백 명 호장 무사들이 지키는 자신의 집무실 한가운데 나타난 사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하나 그 사내가 주공인 백호나한임을 알고는 길게 읍(揖)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토금전장에서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는 토금전장의 현재 상황을 개략적으로 알 수 있는 극비 장부를 내놓았다. 라혼은 토귀가 내미는 장부를 죽 훑어보고 장부를 덮었다.
“500만 냥이나 손해를 보았군. 이대로라면 원금을 회수하는 데만도 십 수삼 년은 걸리겠어.”
“예, 그렇습니다. 하나 태회진에서 본격적으로 철기가 생산되면 어느 정도 보정은 될 겁니다.”
말은 거금을 손해 보았다고 하지만 표정은 그 반대였다. 라혼은 토귀에게 황금 1000만 냥을 주어 은행을 조직하게 했다. 그리고 그중 500만 냥이 중원십일주의 관부에 수조권을 사들이는 자금과 각지에 토금전장의 지부를 세우는 데 투입되었다. 이로써 토금전장은 천하 전역을 시장으로 하는 상권과 십이진가의 운용 자금을 유치함으로써 단돈(?) 황금 500만 냥으로 천하의 자금 흐름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금의 흐름을 알면 각 세력의 군비가 어느 정도 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되고 토금전장에 속한 상인들이 주요 거래처로부터 얻어들은 정보는 살아 있는 정보들이었다. 권력자와 황금을 가진 자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상경에 토금전장의 본점을 새로이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대상계(大商契)와 별도로 우리 토금전장이 취급하는 상품을 거래하는 부분을 그쪽으로 옮길 생각입니다. 백호둔도 그쪽에 있으니 말입니다.”
“좋아! 그보다 투함의 작도(作圖)를 구해보도록. 나를 돕는 토지신이 그것을 원하더군.”
“구해보겠습니다!”
“그리고 향 장자가 석밀을 팔기 위해 원주로 오고 있는 중이다. 철기의 판로와 각 세력들과 안면을 익혀두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마라.”
“이미 전환으로 들어 알고 있습니다.”
라혼은 모든 일을 기대 이상으로 처리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토귀의 능력에 감탄했다. 황금 1000만 냥은 천하를 두어 번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었다. 웬만한 대상인이라도 그 엄청난 무게에 치여 정신 못 차리고 지리멸렬할 정도의 황금을 마음 것 주무르는 배포와 능력은 가히 하늘에서 내려받은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수고했다!”
“고맙습니다. 상인으로 들어선 이상 천하 상계를 주무르는 것은 제왕이 패업을 이루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오히려 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라혼은 그런 토귀에게 귀림 드워프들이 만든 500여 개의 전환을 건네주며 다시 한 번 치하했다. 그리고 앞으로 라혼이 나설 필요가 없도록 하는 상망(商網)을 조직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며 정원으로 나와 에텔 스페이스에서 목우유마를 몇 개 꺼내놓았다.
“이것은?”
“목우유마다. 수레를 끌거나 하는 데 사용하면 된다.”
“….”
라혼이 꺼내놓은 목우유마는 높이가 어른 가슴께 오고, 너비가 보통 사람이 양팔을 벌린 정도 되었다. 길이는 그보다 길어 전체적으로 커다란 나무 궤짝을 연상시키는데 양쪽에 다섯 개의 바퀴가 무한 궤도에 있는 형상이었다. 라혼은 목우유마를 손수 조작해 그것들을 움직이며 설명했다.
―스르르르~!
“이것들은 먹지 않아도 되고 쉴 필요도 없지. 속도도 말이 속보로 달리는 정도로 빠르다. 힘 또한 소 스무 마리가 내는 힘과 같다.”
“대, 대단하군요.”
“그러나 사람이 타고 직접 몰아야 하는데 이렇게 몰면 된다.”
라혼은 토귀를 목우유마에 태우고 토귀에게 목우유마 모는 법을 가르쳤다. 두 개의 <ㄱ> 모양의 막대로 하는데 오른쪽은 오른쪽 궤도를, 왼쪽은 왼쪽 궤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당기면 뒤로 가고 밀면 앞으로 가는 방식이었다. 즉 동시에 밀면 곧바로 나아가고 당기면 뒤로 가는 것이다. 방향을 틀려면 막대를 엇갈리게 하여 궤도의 속도를 다르게 하면 되었다. 원래는 그냥 보통 수레바퀴를 사용했으나 라혼이 다리가 있어 수레로 이용하기 어려운 곳을 지날 때 쓰이는 목우를 이야기하자 드워프들이 바퀴 부분을 무한궤도로 만들어 가파른 언덕이나 지형이 험한 지역을 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사실은 다리를 가지고 사람이나 실제 짐승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하기에 목우는 한계가 있었다. 차라리 어느 정도 자아가 있어 스스로 움직이는 골렘이라면 가능할지 모르나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에 의해 움직이게 하려면 다리 달린 목우는 만들어놔도 사람이 사용하지 못했다.
“나는 이것들을 대량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러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라혼은 유마를 조작하는 것을 멈추고 토귀에게 역석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재료가 적힌 목록과 견본품을 내밀었다. 목우유마는 바로 역석과 역석의 힘을 발현하는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른 재료는 나무나 쇠 정도였기에 비교적 구하기 쉬웠지만 역석은 아니었다. 역석 문제만 해결되면 역석과 역석의 힘을 발현하는 주요 기관 등은 드워프들에게 맡기고, 그 외 부분은 원주에 공방을 두어 만들 생각이다.
“하나같이 귀한 물건들이군요. 하지만 곧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좋아. 그리고 이것은 목우유마의 제작도다. 상경 근처에 공방을 만들어라. 조립은 이곳에서 하게 할 생각이니.”
“이거야! 만일 이것이 대량으로 만들어진다면 천하에 풀린 500만 냥은 금세 회수되겠군요.”
“….”
라혼은 토귀의 말에 퍼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사실 라혼이 목우유마에 대한 책을 발견하고 생각한 것은 궁극의 전투 병기인 마장기(魔壯機) 탈로스(Talos) 제작과 제작 비용의 절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찌어찌하다 보니 목우유마의 본래 목적인 보급품을 적은 인원으로 수송하는 기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감곡의 사탕수수를 추수하면서 목우유마를 이용하면 좋을 것이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것을 토귀에게 보여준 이유는 라혼 자신이 직접 천하를 오가지 않고도 상품을 무역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현재 원거리 상행에 필수적인 말이 징병령과 함께 관부로 모두 들어가 군마로 이용되자 짐말의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그래서 그 말을 대체하기 위해 대량으로 만들겠다고 한 것인데, 철저한 상인인 토귀는 그것을 훌륭한 상품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토귀가 역석을 만들 재료를 얼마나 많이 모아줄 수 있느냐에 달린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