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회 27회 김주용 바오로 형제가
장익 세례자요한 주교님의 장례미사 참석후 총서가회 운영진밴드에 올린 글입니다
27회 김주용 바오로 형제는 혼배성사를 혜화동성당에서 주교님께 받았답니다.
장익 십자가의 요한 주교님의 장례미사에 참여하고 나서...
오늘 2020년 8월8일(토) 오전 10시 30분에 거행된
장익 주교님의 장례미사에 참여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ITX 청춘열차를 타고
남춘천역에서 내린 후 춘천 죽림동 주교좌 성당으로 갔습니다.
장마 때문에 전국적으로 물난리이지만
춘천은 소강상태로 공기가 심지어 상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성전 좌석이 한정적이고 협소한 (120명 수용) 관계로
저는 교육관에서 영상으로 참가했습니다.
춘천교구 사제들은 성전 입구 앞마당에서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많은 신자와 수도자들이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주교님 선종을 조문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끝없는 사랑과 겸손의 목자이신 주교님으로 익히 알고 있었지만,
게으름으로 근황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희 혼배 성사를 해 주셨던, 그래서 우리 부부가 해로할 수 있도록
축복을 주셨던 주교님께 진작 인사를 드리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하면서
이 세상에서 마지막인 오늘, 작별인사를 올렸습니다.
은퇴하시어 실레성지 공소지기로 계시던 그분을 2018년 6월에
고교동창 가톨릭교우들과 함께 성지순례로 만났을 때가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이때 그분의 유머 넘친 소탈한 환영 인사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저의 고교가 남학생 고교인 것과 부부동반 모임임을 이미 아시면서도
“아니 언제부터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나요?”라는 우스개를 하시어
성전을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드셨습니다.
한편 강론에 이은 특별말씀 시간에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신자는 또한 무엇인가?”라는 것에 진지하게 생각하기 바라셨으며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1장 12절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와처럼 되는 은총을 빌어 주셨습니다.
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님,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 등의 고별사에서
장익 주교님이 예수님과 함께 하신 삶의 일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94년 춘천교구장에 부임할 때 제의를
2010년에 퇴임하실 때 다시 입으셨을 정도로 검소를 실천하셨습니다.
“성서백주간”을 처음으로 만드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신앙생활에서 특히 성경 공부를 강조하셨습니다.
언어에 조예가 깊으시어 9개국 언어에 능통하십니다. 잘 알려진 얘기로
바오로2세 교황님께 1984년 방한 이전에 한국어를 가르쳐드려서
한국어로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최근에도 일본어를 계속 공부하셨다고 합니다. 누구는 주교님이
10개 국어에 능통하시다고 하는데 “사랑의 언어”가 추가된 것이 라고 합니다.
1968년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비서신부가 되셨는데,
추기경님(1922년생)과 주교님(1933년생)이 11년 나이 차이가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추기경님은 2009년도에 선종하시어
똑같이 11년 후인 2020년에 주교님이 선종하시었습니다.
장 주교님의 사목방향이 주님과 “하나되게 하소서”라고 알려져 있으며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처럼 지극히 겸손하게 사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언 중에서)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반세기 이상을 부당한 사제로 허락하신
과분한 은총을 입은 주님의 종, 죄인 장익 십자가의 요한 나는
그저 더없이 고맙고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정오쯤에 미사가 끝나자
영구차로 죽림동 주교좌 성당 성직자 묘역으로 향하셨습니다.
밝은 햇살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하였습니다.
장익 십자가의 요한 주교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2018년 6월 6일
실레마을 공소 총서가회 피정에
24회 동기형제자매 21명 포함
130여명의 동문 형제자매님들이 다녀왔습니다.
행복했던 그날을 추억 해봅니다
http://cafe.daum.net/seoul24catholic/DvC1/213
당시 총서가회 회장 최성일 요셉 형제가 찬조한 기념타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