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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삼현파 농은 대아선생 후손 칠곡지역 세거지 소개 (첫번 째) 절효 김극일 선생의 증손자이자, 참판공 김맹 어른의 맡아들집 손자인, 농은(農隱) 김대아(金大雅: 1498∼1576)선생은 태어난 해에 무오사화(1498)가 일어나 그의 부자(父子)와 형제 등 친족이 호남으로 피난을 하여 살았다.
이때부터 후손들이 고향 청도 백곡을 떠나서 각 지역에 흩어져 살거나 세거(世居)지를 형성하여 살게 되었다. 8년 뒤 중종 원년 1506년에 유배가 풀리자 큰집의 삼족당 대유공께서는 이미 연로하신 아버지 동창공(駿孫, 2년 뒤에 별세)과 일족(一族)을 거느리고 고향 청도로 회향(回鄕)하였으나 둘쨋집 매헌공(驥孫)공은 이미 38세에 별세하셨고 탁영공의 계자(系子)이신 현감(大壯, 8대)공께서는 고향(淸道)으로 가지 않으시고 그대로 유배지 남원 월곡(月谷, 현 장수군 산서면 사상리)에 남아서 사셨다. 이러한 시대에 농은 김대아(8世) 어른의 아들중 김선(9세)과 김약(9세) 두 형제의 후손들은 경상북도 칠곡과 성주지역에서 지역에 맞는 독특한 김해김씨 집성촌을 형성하며 300~400여년간 삼현파 세거지를 형성하여 살아오고 있다.
농은(農隱) 대아(8世)선생의 7번째 아들인 김선(金銑: 1534∼1600)은 성주(星州) 가야산(伽倻山) 기슭으로 이주하여 살아오다가, 1592년(선조25)경 임진왜란 당시 김선의 장자(長子)인 무와공 김치세(10世)의 후손들이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등에 정착하여 가마골에 세거지를 형성하며 살게 되었고,
또한 김선과는 형제간인 계암 김약선생의 후손들은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노석1,2 "백석마을"에 세거지를 형성하여 300여년 이상을 지역마을 전통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 칠곡군의 김해 김씨들은 김해김씨 삼현파 후손으로서 씨족의 자긍심을 버리지 않고 선대(先代)의 뜻에 어긋남이 없이 힘을 모아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칠곡군 왜관에 세거하는 삼현파의 일부가 지역 발전을 위해 열의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칠곡, 성주지역 김해김씨 삼현파 집성촌중에서 농은 김대아 선조의 후손이 거주하고 있는 칠속 왜관읍 낙산리 "가마골" 마을과 기산면 노석1리와 노석2리 백석마을 등 3개소를 답사하여 집성촌 상항을 별첨 파일과 같이 소개합니다. 참고바랍니다. 별첨 파일 1개 : 대아선생 후손 칠곡지역 세거지 현황 *** 첩부물 분량 과다로 첨부불가하므로 삭제하거나, 요약첨부 또는 윗글에 첨부합니다. 【◆김해김씨 삼현파 농은(農隱) 김대아 후손 “칠곡지역 3개소” 세거지 ◆】 ● 김 관(1세) ⇀ 김대아(8세) → 김선(9세) ⇨ 김치세(10세), 후손(무와문중) : (1) 가마골(낙산리) ⇀ 김대아(8세) → 김약(9〃) ⇨김영남의 三子 김천계(14세), 후손 : (3) 흰들마을(노석2)
(1) “왜관읍 낙산리” 가마골 세거지, 무와공 김치세 문중
※ [2017년 현재 ‘낙산리’ 이장 : 김종호(010-9240-3353)] ◇ 김선 후손 무와공 김치세(致世) 문중 세거지 현황 김해김씨 삼현파 무와공(武窩公) ‘김치세 후손들’이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가마골에 세거지를 형성하게 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430여년 전으로 추정된다. 김수로왕의 후손이요, 삼현파조 김관(1세)의 후손이며, 김준손(7世)의 넷째 아들인 농은(農隱) 김대아(金大雅: 1498∼1576)선생은 태어난 해에 무오사화(1498)가 일어나 그의 부자(父子)와 형제 등 친족이 호남으로 피난을 하여 살았다. 이때부터 후손들이 고향 청도 백곡을 떠나서 각 지역에 흩어져 살거나 세거(世居)지를 형성하여 살게 되었는데 농은(農隱) 대아(8世)선생의 7번째 아들인 김선(金銑: 1534∼1600)은 성주(星州) 가야산(伽倻山) 기슭으로 이주하여 살아오다가, 1592년(선조25)경 임진왜란 당시 김선의 장자(長子)인 무와공 김치세(10世)의 후손들이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등에 정착하여 가마골에 세거지를 형성하며 살게 되었다. 칠곡 왜관읍 낙산리 가마골에 세거지를 형성하여 온 무와공 치세선생의 후손들은 [별표 2], [별표3] 과 같이 현재 무와공 김치세(10世)의 아들 태우, 태해, 태립 등 세분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백파(伯派), 중파(仲派), 계파(系派)로 형성되어 3개 파로 이루어 진 김해김씨 삼현파 “무와공 치세문중회” (대표 김원수)를 구성하고 선조 봉향을 이어오고 있다. 참고 ※ [백파 사무유사 김종화(010-7146-7016), 중파 유사 김동수(010-3816-9500), 계파 〃김동수 (010-3503-8451)] 1980년 무와공 치세선생의 13세 백파후손 종만, 중파후손 종욱, 계파후손 종원 등 무와공 문중대표들은 무와공의 아버지 통훈대부행고성현령(通訓大夫行固城縣令)을 지낸 김선(金銑)과 무와공 김치세(金致世)를 추모하기 위하여 영락재(影洛齋)를 중건하였으나, 2006년 왜관2공단 확장으로 전통마을이 철거되면서 가마골 김해김씨 집성촌이 다사라지고 인근 마을동네로 옮겨졌고, 영락재(影洛齋) 역시 재건(再建)하기로 하고 해체되었다. ( ※ 참고 [별표1]: 영락재 철거 전 당시 편액)
왜관읍 낙산리 가마골 세거지에는 현재 120년 전통의 가실(佳室)성당이 있다 1894년에설립되어 조선교구 11번째 본당으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이름은 가실 본당으로 불렀으나, 후에 행정구역명을 따라 낙산(洛山) 본당으로 개명되었다가 다시 가실 본당으로 변경되었다. 가실성당은 2003년 성당본관과 사제관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되었고, 또한 2004년 신부수업 영화 촬영지가 되면서 유명해 지기시작 하였다. 가실(佳實)은 낙산마을의 전통적인 이름이고, 아름다운 집을 뜻한다. 이러한 ‘가실 성당’과 낙산리 가마골 세거지 마을과 문중후손(주민)은 매우 특별한 관계를 이어져왔다는 것입니다. 가실성당 당초부터 가마골 세거지 김해김씨 일족들은 거의 모든 집안이 카톨릭 신자로서, 가마골마을 전체가 약100여년 동안이나 마을 가실성당의 역사와 같이하었고, 특히 가마골 김해김씨 일족 중 김희주(1872∼1948) 족장이 가실성당의 총회장을 33년간이나 맡아서 낙산리 가마골 마을은 더욱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마을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 “낙산리 가마골” 세거지 인물, 행적 ○ 김대아(金大雅) 1498년(연산4) ~ 1576(선조9) 문신, 자(字)는 청숙, 호는 농은(農隱), 본관은 김해, 삼현파조 판도판서 김관(管)의 후손이요, 조부는 남계공 김맹(孟)이요, 부(父)는 동창공 김준손, 4째 아들이다. 농은 김대아 선생은 무오사화로 부자(父子)와 형제가 호남으로 피난 중에 있었으나, 1506년(중종 1)병인 반정으로 벗어나 이황강, 성대곡선생의 문하에서 수학, 1523년(중종18) 계미 중사마시(中司馬試)를 거쳐 1531년 신묘(중종26)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장사랑이 되고, 통운대부에 오르시고, 탐진현감(耽津縣監)취임, 임용 다음해 임진 1532(중종27)에 공직을 사퇴하고, 창원 창녕에 환거하여 둔세불출하고, 일사경학하다. 1576(선조9) 병자(丙子) 2월14일에 졸(卒)하니, 향년78세 이였다. 묘(墓)는 창녕세진에서 청도 토평(土坪)뒤 빈산 선영(先塋) 좌변, 임좌(壬坐)라하였다, 부인은 숙인 풍산씨 1495(연산1)∼1555(명종10)9월12일 묘는 현 창원시 마산고려병원동변 우복곡 자좌라하나 실전되었다. 그 후 실전(失傳)등에 대아여 종의합의(宗議合議)로 제단(祭壇)과 비석을 세우고 봉향하고 있다, 단비갈문(壇碑碣文)은 성주 이헌주(李憲柱)선생이 찬(撰)하고 썼다.
자는 교원(敎遠)이고, 본관은 김해이며, 1534년(중종28)갑오(甲午)에 태어났다. 김해김씨 삼현파조 판도판서 김관(管)의 후손이요, 조부는 김준손이고, 부(父)가 농은 김대아 선생이며, 그의 7째 아들이다. 선생은 통훈대부 고성현령 벼슬을 지냈다. 선조33년 경자(庚子)1600년 10월20일에 졸하였고, 묘는 선영(청도 백곡)에 숙부인 경주이씨와 쌍봉이다.
【 근거 자료 : 1995년 김해김씨 삼현파 대동보 】 ※ 또한 김치세 인물에 대해서 현재 위 최근 대동보와는 아래와 같이 다른 기록이 존재하고 있고 시대가 다른 족보와도 일부 일치하지 않는 내용이 있으며, 현 성주 무와공 문중 역시 위 최근 대동보록 제작시에 보록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사료된다. 자는 희지(憘之)이고 호는 무와(武窩)이다. 본관은 김해이며 통훈대부 현령(通訓 7월15일에태어나서 벼슬이 가선대부를 지내셨다. 신유년2 ○ 김희두 1872(고종9)∼ 1948(무자년12월28일 망)
배위는 함평이씨 부(父) 유병의 따님으로 을해(乙亥)생이고, 기일(忌日)이 1월 24일이다. 묘는 공의 선영하에 오른쪽에 분묘이다. 계배위는 성산이씨 부(父) 병수의 따님이고, 무자(戊子) 2월2일생이다. 슬하에 4녀을 두었다.
왜관 낙산리 가마골에는 전부터 김해김씨 모와공 문중 일족이 30호에 약 80∼90명이 거주하였고, 또한 낙산리 ‘가마골’외의 외관읍과 몇몇 마을에서 거주하고 있는 무와공 문중 일족들의 호수는 약 300호와 1,4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호가 미산(微山)이다. 본관이 김해(金海)인으로 시조 72世이고, 김해김씨 삼현파 24世이다. 미산 선생은 1955년생으로 수려한 가야산과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성주군의 선남면 도흥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에도 도흥마을에는 김씨 성을 가진 씨족의 집성촌이었다, 지금은 김원수 회장이 태어난 고향 도흥마을에서 직접 “김해김씨 삼현파 미산문중”을 개창하였고, 어릴 때 살던 고향마을 옛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수개년 동안을 심혈을 기울인 끝에 개인소유 차원에서 볼 때 전국 최초라 판단되는 “김해김씨족 박물관”(가칭)을 신설하였다. 또한 현재는 김씨김씨 삼현파 ‘무와공(武窩公) 김치세 문중회’ 대표를 맡아서 무와공 문중의 대표적인 三문중 태해, 태해, 태립선생의 후손들의 돈목(敦睦)을 기대하면서 지난 9월24일 본인이 직접 경작하고 있는 야생약초농장에서 즐겁게 씨족행사를 하였다. 《허약한 건강과 문중을 위한 성공 체험》 미산 김원수 회장은 약 15년 전 젊었을 때 고향을 떠나 도시에 나가서 생활용품 유통 이렇게 살 거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싶어 여러 번 울기도 하며 지내는 던 중 곰장어식당을 하던 이웃집 후배가 어성초를 한번 먹어 보는게 어떠냐는 말에 현대 의학으로는 안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한번 먹어보라는 권유에 반신반의 하면서 먹기 시작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먹게 되었을 때 진통제를 안 먹을 만큼 많이 호전이 되었고 1년쯤 되었을 때는 일상에 지장 없을 만큼 활동하게 되었고 신기하고 괜찮다 싶어 어성초를 분양 받아 고향 성주군 소학리에서 재배를 하여 식구들과 먹고 이웃들과 장애인 단체에도 나눠주고자 키우다보니 점점 규모가 커져 현재는 1만여 평에 어성초외에 삼백초, 우슬, 울금, 여주, 수세미 등 20~30가지 야초를 재배하게 되었다. 또한 12가지 약초에 유기농인증을 받아 가공하여 전국적으로 판매하게 되면서 천기누설, KBS, MBC, 풍문에서 들었소, 달성군 인터넷방송, 동아일보, 스포츠 신문, 영남일보, 대구신문, 대구일보, 푸른신문 등에 여러 언론에 알려지면서 출연하게 되었고 특히 엄지왕을 상표화 하여 엄지왕 두피수 두피발모제 문제성 피부에 좋은 스킨로션 제품은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제품이 되었다. 또한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과 돈이 아무리 많아도 단 1원도 가져갈 수 없음을 깨닫고 선조님들 또한 죽어서 돌아 올수 없기에 이 땅에 선조님들의 흔적을 남기는 것과 선조님이 계시기에 오늘의 내가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문중을 설립하게 되었다. 2002년 3월 26일 문중을 등록하고 시조대왕님에서부터 저의 부친까지 한자리에 모시고 2015년 나의 고향집(경북 성주군 선남면 도흥리 768-1번지) 400평에 세운 문중기념관은 시조대왕 시조 왕비 및 흥무대왕 김유신장군 석상을 세워 저를 중심으로 가계도를 만들고 대한민국 100대 성씨와 유래, 족보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자료를 만들어 후손들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보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 농은 김대아선생 후손 칠곡지역 세거지 무와공 치세문중과 미산문중 (도표) 아래 별첨 파일 참고 【◆ 김해김씨 삼현파 후손의 성주 일원 입향(入鄕) 세거지 ◆】 김해김씨 삼현파는 가락국 (김해) 김수로왕을 시조로하고, 고려 말의 김관(管) 선조(先祖)를 파조(1世)로 하고 있다. 일족들이 전국 각지에서 흩어져 살거나, 또는 여러 지역에서 집성촌을 형성 세거하는 마을이 지금도 존속하고 있는데 성주군 선남면 도흥리를 비롯한 성주군 일원에 입향한 사례는 아래와 같다. ① 관(管)의 11세손(世孫)인 입경(立慶)이 1636년경 병자호란 때 선남면(船南面) 도흥리(道興里)(신흥(新興))에 정착하였으며 또한 관(管)의 16세손(世孫)인 현범(顯範), 현택(顯宅), 현성(顯晟), 현황(顯晃) 사(四)형제가 1791년 밀양에서 신흥(新興)으로 이거하여 현재 신흥과 성주읍(星州邑) 성산(星山) 2리(里) 등에 거주하고 있다.
[별표. 3] 김해김씨 삼현파 김선 후손 ‘무와공(김치세)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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