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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8권
제4부 전쟁과 분단
지은이:조정래
출판사:해냄
봉사자:삼육대학교 경정4이지윤
1.백두산 천지, 한라산 백록담
반도땅 산과 들애 겨울이 닥쳐오고 있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고 매서운 바람은 수많
은 산들을 휩싸고 빈 들녘들을 휩쓸며 남쪽으로 줄달음질쳤다. 북쪽 끝 백두산에서부터 남
쪽 끝 한라산까지 겨울에 묻혀가고 있었다. 반도땅에서 제일 높은 산, 백두산 천지에 물이랑
을 일으키며 시작된 겨울바람이 굽이굽이 이어지고 뻗어내리는 산맥들을 따라 남쪽으로 남
쪽으로 불어내려 바다를 성큼 건너뛴 다음 한라산 백록담에 다다르면 반도 천지는 겨울로
뒤덮였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한바탕 맴돌이질친 바람이 산줄기를 타고네리며 나뭇잎들을
떨구기 시작할 즈음이면 백두산 언저리 붇쪽땅은 벌써 얼음이 꽁꽁 얼고 눈보라가 휘몰아치
고 있었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한라산에서 끝나는 반도땅에 겨울이 오면 크고 작은 산들도, 넓고
좁은 들녘들도 고즈너기 계절의 침묵 속으로 잠겨들었다. 그 산야에 발붙이거나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도 겨울나기의 조심스러운 몸짓들을 지었다. 백두산 뻗어내려
삼천리라 일컬어지는 반도땅 동쪽으로는 험산준령들이 줄기차게 이러져 산맥을 이루고, 그
산맥에서 또 다른 산먁들이 뻗어나와 서쪽으로 가지를 치고 있는데, 그 산맥들이 거느리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산들은 그 얼마일 것인가. 반도땅의 칠 할을 차지하고 앉은 그
많고 많은 산들은 제각기 그 크기나 모습이 다르되 이름을 갖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했다.
그 크기나 모습이 걸출하지 않고서는 이름을 얻기가 어려웠고, 산이 귀한 평원지대에 가면
어엿하게 산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수많은 산들이 그저 '야산'이라고만 싸잡아 불리었다. 그
수없이 낳은 산들은 그냥 땅만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속에 품었던 물들을 골짜기
골짜기마다 흘려보내고, 그 물줄기들은 서쪽으로 흘러내리며 서고 합쳐지고 있었다. 그 자연
의 조화를 따라 까마득히 먼 세월부터 사람들은 삶의 터를 일구어왔다. 그 역사를 셈하여
오천년, 그 무리를 일컬어 한민족이라 하였다.
반도땅에 자리잡은 그 많고 많은 산들이 제각기 그 크기와 모습이 다르되 꼭 닮은 것이
두 개 있으니, 그것은 백두산과 한라산이었다. 두 산은 신비스럽게도 똑같이 머리에 물을 담
아 이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산이 지니는 신비스러움은 그 특이한 생김에만 있지 않았다. 그
자리잡음이 더욱 기이했다. 두 산은 반도땅이 시작되는 첫머리와 반도땅이 끝나는 끝머리에
우뚝우뚝 솟아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 어인 조화일까. 우연일까. 그 연고를 아는 이 이
세상에 그 누구일까. 두 산의 똑같이 닮은 모습이 신비하고, 그 자리잡음마저 더욱 신비하여
그 연유를 알아내려는 옛사람들의 애쓴 흔적이 역연하니, 백두산이 담아 인 물을 '천지'라
아였고, 한라산이 담아 인 물을 '백록담'이라고 한 것이다. 그 두 이름이 갖는 공통점은 '
하늘'인 것이다. 그런데 '하늘의 못'이라는 뜻인 천지에는 절대한 존재인 하느님이 막연하게
상징되고 있는데 반하여 '흰 사슴의 못'이라는 백록담에는 하늘에만 산다는 하얀 사슴들이
내려와 목욕하는 터라서 그런 이름이 지어진 거라는 사연이었다. 백록담에는 그런 구체적
인 내용의 전설이 있는데 왜 천지 에는 그런 것이 없을까. 그리고, 천지가 상징하고 있는
하느님과 백록담의 하얀 사슴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어쩌면, 하느님께서 천지에 하강하
시어 목욕을 하셨다거나, 낯을 씻으셨다거나, 발을 씻으셨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엮
어 내는 것은 절대신성에 대해 불경을 범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하
얀 사슴의 무리는 하늘나라에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무슨 일을 땀흘려 했기에 목욕을 하러
내려오는 것일까. 아마도, 하얀 사슴들은 세상만상의 생성과 소멸을 도맡고, 질서와 조화를
다스리는 하느님을 모시고 다니는 일을 하고, 하느님이 고단하시어 발이라도 천지물에 담
그고 계시는 틈을 내어 한라산의 못에 목욕을 하러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야기가
그렇게 연결되는 것이 틀림없다해도 옛사람들의 노력은 똑같이 닮은 두 산의 못에 그런 이
름을 짓게 된 연유를 밝힌 것일 뿐, 두 가지의 신비를 밝혀낸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전설
이 밝혀내고 있는 것은 두 산이 닮은 모습을 하고 반도땅의 끝과 끝에 자리잡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라는 필연의 관계설정이었다.
그 밝혀질 길 없는 신비로운 두 산 사이에 많고 많은 산들이 제나름의 독특한 모습을 하
고 우람하게 솟아 서로 어깨동무를 하여 장엄하게 이루어냈으니,줄기찬 산맥이었다. 이름을
가진 산들은 모두가 전설을 갖게 마련인데, 그 이름이라는 것이 전설의 요약이거나 그 이야
기 내용의 제목이었다. 그런데, 산이 크고 높을수록 전설들은 하늘에 가까운 내용들로 신비
화되었고, 그 주인공들도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령들이었다. 그리고 산이 낮아져 들녘에
가까우면 비로소 전설의 주인공들이 인간으로 바뀌되, 그것도 범상한 인간들은 아니고 우러
를 만한 비범한 인물들의 이야기로 엮어졌다. 산의 높낮이와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전
설의 주인공과 내용이 하나도 없는 그 많은 전설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먼저,
이땅에 터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장구한 세월이 사람들의 지적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하며 그
수준이 얼마나 철학화되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금강산에서 잉태된
'나묵꾼과 선녀'의 전설이면서 '견우와 직녀'의 전설인 것이다.
금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그 빼어나게 아름다운 산속에 선녀들의 목욕터를 잡은 배경
선택부터가 신비스러운 실감을 자극학 수 있도록 탁월헌 것이다. 그리고, 밤과 낮을 있게 하
고, 비와 눈을 내리게 해 인간을 물론이고 만상의 생존을 지배하는 하늘의 그 무한하고 불
가사의한 힘에 지향 없는 의문을 갖게 된고, 끝내는 그곳에 이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실현시키게 하는 이야기 전개의 상상력은 더욱 탁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두레박
을 몰래 타고 올라간 나무꾼이 아내인 선녀를 다시 만나 하늘나라에서 천녀만년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냈더라면 얼마나 단순하고 싱거우며, 하늘에 대해 불경을 저지
르는 일인가. 나무꾼이 아내를 다시 만나는 대목에서 이야기는 일대전환을 일으켜 옥황생제
의 명령에 따라 두 사람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살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여기서
동거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하늘나라의 존재들과 인간이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탸내는
동시에 하늘에 다한 불경을 재치있게 그대로 남겨 선녀와 헤어져 살게 하되 일년에 한 차례
씩 만나도록 허락한 것은 한번 맺어진 인연의 끈은 하늘나라에 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나
타냄과 아울러 옥황상제의 엄격하면서도 너그러움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건
너지 못할 강을 사이에 두고 일년에 단 한번밖에 만날 수 없게 함으로써 두 사람의 목마른
그리움을 더욱 애닯게 하면서, 그 비련미를 영원하게 하는 이야기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것
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다시 한 고비를 넘긴다. 그리움에 사무친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은하구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바로 까치라는 것이다. 이 느닷없는
이야기의 끝맺음 뒤에 여운처럼 따르는 말이 있다... 그래서 칠월칠석 앞뒤로는 비가 자주
내리고, 칠석을 지낸 까치들의 머리에는 털이 빠져 있는 것이다...라고. 이 얼마나 놀라운 논
리적 과학성이며,투시적 환상인식이고, 현실적 실감을 증폭시키는 이야기의 구성력인가.견우
와 직녀가 상면의 반가움으로 울고 다시 헤어져야 하는 슬픔으로 우는 것이 아니라 칠월칠
석 즈음에는 계절적으로 비가 많은 때이고, 또 견우와 직녀가 밟고 오가는 탓에 까치들의
머리털이 빠진 것이 아니고 칠월칠석을 고비로 까치들은 털갈이를 하는 것이다. 그런 사실
들을 유심히 관찰해내서 전설에 접합시킴으로써 하늘과 만상과 윤회법칙을 일깨우는 한편,
이야기의 생동적 실감을 송두리째 획득해내는 이중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
하여 까치에게 만남의 다리를 놓게 하는 고역스러우면서도 보람에 찬 그 선한 역을 맡긴 것
일까. 까마귀의 그 시커먼 생김에 비해 까치가 훨씬 보기 좋게 생겼기 때문일까. 결코 그런
표피적인 단순함이 아니었다. 제비가 나락에 기생하는 여러 해충들을 잡아먹는 길조라면, 까
치는 나무들에 기생하는 가지가지 해충을 잡아 먹어 산림을 돕는 길조었다. 까치에 비해 까
마귀를 흉조로 꺼리는 것은 그 식성이 육식이어서 사람의 시체까지 뜨고 덤비는 까닭이었
다.그리고 까치는 부부애가 돈독해 사랑의 아픔으로 가슴앓이하는 견우와 직녀애는 원앙새
다음으로 윤리의 규범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듯 철저한 논리성과 과학성을 바탕으
로, 삼라만상과 인간의 관계를 하나의 고리로 연결시키면서, 인간의 하늘에 대한 의문과 경
배를 가슴저리는 애절한 사랑이애기로 엮어낸 이런 완벽한 전설이 그 어는 나라, 어는 민족
에세 있는가. '세계적'이라고 가치부여를 하는 그리스 신화에도 그런 요건을 고루 갖춘 이야
기는 없다.
건국신화로부터 호랑이와 인연을 깊이 한 반도땅은 그형상이 포효하는 호랑이라고 예로부
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 전설에 따르자면, 백두산을 머리로 하고 한라산을 꼬리로 하
여, 두 산이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음은 한 생명체의 완결미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
을 수 없다.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마천령산맥은 함경산맥과 엇갈리면서 호랑이의 목뼈를 이
루고, 그 아래를 이어받치면 남쪽으로 뻗친 낭림산맥은 그 꼬리를 감추듯하면서 남쪽 끝까
지 줄기차게 뻗어내리고 있는 태백산맥과 더불어 등뼈를 이루었으며, 그 두산맥에서 가지쳐
서쪽으로 뻗어나간 강남산맥 적유령산맥 묘향산맥 언진산맥 멸악산맥 마식령산맥 광주산맥
차령산맥은 제각기 갈비뼈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산맥들 사이사이로 긴 흐름을 짓는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섬진강 낙옹강은 다른 수많은 지류들과 함께 핏줄
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이 어찌 단순한 말놀이일 수있으랴. 생태학의 분류를 따르더라도 반
도땅의 호랑이는 세계에 거려 이땅의 사람들과 친교를 맺어온 사이이기도 했다 반도땅의 그
기이하고도 신묘한 형상으로 볼 때 일본놈들의 강압지배는 호랑이의 몸을 쇠사슬로 칭칭 동
여맨 형국이었고 해방과 함께 미국이 멋대로 그어댄 삼십팔도선은 호랑이의 허리를 동겨 내
려는 무모한 짓이었다. 호랑이가 어찌 실수하여 쇠사슬에 묶였었다하나 언제까지나 묶여 있
을 리가 만무한 일이었다. 호랑이는 마침내 성을 내고 쇠사슬을 끊으려고 포효하기 시작했
으니, 그것은 삼일운동을 시발로 하여 해방이 되는 그날까지, 세계식민사에서 그 유래를 찾
아볼 수 없도록 치열하고 끈질기게 전개된 민중들의 독립투쟁이었다. 그 꺼질 줄 모르는 저
항투쟁을 두려워한 나머지 일본놈들은 반도땅이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이라는 전설을 꺼려
토끼로 둔갑시키는 엽산은 다 찾아다니며 그 맥을 끊겠다고 산줄기마다 깊이 파서 쇠기둥을
박아넣은 다음 흙으로 덮는 것도 모자라 두꺼운 시멘트 땜질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민족의 정기나 기상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의 전설을 간직한 석상들을 굴려내리는
짓을 자행했다. 미국이나 소련이 아니었더라도 일본놈들의 강압지배가 일시적일 수밖에 없
는 것은 반도땅의 기상을 일본놈들로서는 꺽을 도리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반도땅에서 뿌
리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의 장구한 역사를 돌이켜불 때 일본놈들이 가하는 수난쯤은 얼마든
지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지닌 민족이었다.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저력에 받들려 장구
한 역사는 엮어져내린 것이며, 그 저력은 산 많고 평지 적은 악조건을 이겨내며 살아오는
동안 길러진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이제 호랑이는 잘린허리의 아픔을 떼쳐내려고 다시 포효하고 있었다. 허리가 잘린 아픔으
로 더는 살 수가 없는 호랑이의 몸부림에 반도땅 전체는 요동치고 있었다. 잘려진 허리를
잇기 위하며 갈라진 민족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산골짜기마다 들녘의 이곳저곳에서 피를 뿌
리도 있었다. 사하가 얼어붙어가는 속에 찬바람에 휘말리는 비명들은 처절하고, 흰 눈 위에
뿌려지는 피는 더욱 처연하게 붉었다. 수십마리 또는 수백마리씩 무리를 이룬 까마귀떼들이
그 음산한 울음과 함께 검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극성을 부렸다.
다시 옷깃을 여미고 생각하건대, 어인 연고로 반도땅은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백두산으로
시작하여 그 모양을 그애로 닮은 한라산으로 막음되고 있는가. 백두산 천지에서 한라산 백
록담까지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 무지개다리가 하늘로 드리원지고, 백로감에서 천지까지 우
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또하나의 무지개다리가 땅속으로 이어져 크고 큰 동그라미를 이루
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인가. 그 크고 큰 동그라미를 따라 이민족의 정시는 순환되고, 생명력
은 생성되는 것이 아니랴. 그러나, 그 누가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으랴. 아무도 그 수수께끼
를 풀 수 없으되, 끝과 끝에 의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서로를 닮은 두 산은 우리 민족이 하
나인 것을 중거하는 상징이 분명하고, 우리민족이 하나가 되고자하는 염원을 대변하는 상
징이 확실하고, 그 어떤 힘으로도 우리 민족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상징이
뚜렷했다.
산야의 나무들은 다 잎을 떨구고 고나무마저 아랫잎들이 누릭누릿 변색해가면서 십일월
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어인 일인지 추위까지 빨리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스산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나날이 추워지는 속에서 전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었다.
싸움터는 완전히 두 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추풍령을 분기점으로 한 북쪽과 남쪽의 싸움터
가 그것이었다. 북쪽의 양쪽 정규군으로 맞서 있는 반면에 남쪽은 빨치산과 경찰이 맞서 있
었다.
전남도당은 시월이 끝나가면서 조직 정리를 거의 마치게 되었다. 북상후퇴가 완전차단되면
서 도당마저 발길을 되돌리게 되자 각 지역의 구빨치들은 신속하게 행동을 대기했던 것이
다. 그들은 재빨리 지난날의 투쟁지를 찾아들어가 거점을 확보하고 자기네들 지역에서 입산
하는 사람들을 규합해 나갔다. 사십팔년 시월 말에 이천오백여 명이 입산해서 오십년 칠월말
까지 겨우 이백여 명밖에 살아남지 못한 구빨피들은 다시 위기를 맞아 도당을 떠받쳐올려야
하는 전투병력으로서의 빨치산조직을 구축하는 대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그 능력을 유
감없이 발휘했던 것이다. 그들 한 사람, 산사람은 곧 중요한 산 하나씩의 무게와 다름이 없
었고, 그들의 축적된 능력은 그만큼의 일은 막힘없이 해냈다. 각 지역별로 거점을 확보한 그
들이 입산자들을 선별규합하기 시작한 것은 도당의 지시를 받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위기
에 대처하기 위해 자율적 판단으로 그 일을 해나갔던 것이다. 이미 당생활을 통해 그들은
그만한 결단력과 책임감 기민성 같은 것을 갖추고 있었다.그런 그들의 활약으로 각 군당이나
시당이 다시 제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고 차례로 도당과도 선들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곧 도당 전체의 건재를 서로가 확인하는 상호신뢰의 기쁨이면서, 개개인의 가슴에 깊이 심
은 불멸적 당성이 곧 당의 조직력이라는 사실을 재확인 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하부조직의
구축에 따라 도당은 여섯 개의 지구를 편성했다. 동부에 박운산지구 서부에 불갑지구 남부
에 유치지구가 그것이었다.
그런 유격투쟁조직이 완료될 때까지 염상진은 백아산 쪽 무등골에 임시로 자리잠은 도당
에 머물러 있었다. 전체적인 조직계획을 수립하는데 참여했던 것이다. 그런대 조직사업을 완
료하고 사령부로 돌아와서도 그때 어찌할 수 없이 죽어가야 했던 그 젊은 군관의 모습을 잊
지 못하고 있었다. 도당 책임자인 위원장의 냉철성과 당의 군대인 지휘군관의 투철성을 극
적으로 보여주었던 그 사건은 도당 간부들의 가슴을 치는 충격이었고 당성이 무엇인지를 입
증하는 말없는 웅변이었다.
"이미 퇴로는 차단되었소. 이 위급한 시기에 무리한 북상을 시도하다가 병력손실을 당하
는 건 더없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오. 앞으로는 전선이 따로있을 수 없고 해방투쟁은 도
처에서 전개되어야 하고 또 그 방법이 적들을 교란시키는데 효과적일 것이오. 가서 북상을
중지하고 우리 도당과 힘을 합쳐 싸우자고 제의 하시오.지금우리도당의 무장생테는 너무 빈
약한 형편이데 육백 명의 인민국과 합세하게 되면 그때야말로 당당한 유격투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오"
박영발 위원장의 결정이었다.
부위원장은 위원장의 신임장을 겸한 의견서를 가지고 떠났다. 그러나 부위원장이 기지고
돌아온 소식은 밝은 것이 아니었다.
"결과부터 보고드리자면 그 지휘관은 도당의 결정을 거부했습니다. 자기는 군인으로서 상
부에서 받은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말로 설득을 시도했습니다만
저로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부위원장의 보고였다.
"그 군관의 계급이 뭐였소?"
위원장의 나직하나 무거운 말이었다.
"소성 넷, 총위였습니다."
"총위...그 말도 맞긴 하오만..."
위원장이 흘리듯 말했다. 그런 위원장의 얼굴에는 그의 특유의 우울한 기색이 짙게 드러
났다. 둘러앉은 간부들은 그 감정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일정시대부터 투쟁을
해오면서 고문으로 다리를 상해 보행이 다소 불편한 위원장 박영발은 그 투쟁 경력을 입증
하듯이 지나칠 만큼 과묵했고,얼굴에는 언제나 무겁게 느껴지는 우울이 담겨 있었다. 그는
말보다는 그 우울한 빛의 농담으로 더 많이 감정을 나타낫다. 그는 소리내서 웃은 일이 없
었고, 언제나 무슨 생각인가를 골똘히 하는 것 같은 모습이면서 그 누구를 대하든 깊이 살
피는 듯한 예리하면서도 차분한 눈길을 가지고 있었다. 총위...그말도 맞긴 하오만...염상진은
위원장의 말을 되씹어보고 있었다. 그 부정이 담긴 말과 위원장이 입고 있는 소장 계급장이
붙은 인민군복이 겹쳐지고 있었다. 전시상황 전시편제로 바뀌어 도당위원장은 사단장급과 동
일하게 소장 계급장을 달게 되었다. 그래야만 군대조직의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
었다.
"여길 언제 떠날 것 같소?"
위원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예, 직접 확인하진 못했습니다만,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부위원장이 다소 당황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됐소. 내가 작접 만나러 가겠소."
쇳소리가 나는 듯한 위원장의 말이었다. 예상했던 결과라고 생각하는지 아무도 말이 없었
다. 염상진은 그 빠른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위원장은 지체없이 길을 나섰다.
염상진은 다섯 명의 수행원에 끼여 위원장을 뒤따랐다.
"부위원장을 통해서 지휘관 동무의 뜻은 다 들었소. 그런데 동무의 생각에 다소 오류가
있어서 내가 다시 찾아오게 된 것이오."
위원장은 상대방을 깊이 살피듯한 그 특유의 눈길을 모아 총위를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오류라고 하시면...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지적인 부위기가 감도는 얼굴에 군인다운 견고함까지 갖춘 총위의 또렷한 말이었다. 서른
쯤 되었을까, 빈틈없이 생긴 얼굴이고, 군인다운 태도라고 염상진은 생각했다.
"군관 동무가 총사령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겠다는 것은 군인으로서 일단 옳소. 그러나...
퇴로가 완전차단된 현재의 상황하에서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춘천까지 북상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오. 그 불가능한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병력을 손실하는 것은 무
모한 해당적 행위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단 한 명의 전사의 목숨이라도 소중하게 지
켜 투쟁력을 집결하고 확대시켜야 할 때요."
"위원장 동지의 말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민군총사령부로부터 받은 명령을 끝
까지 수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퇴로의 차단도 제가 직접 확인하지 못
한 상태이며, 퇴로가 차단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뚫고 나가는 것이 군인의 임무라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총위의 말은 위원장 못지않게 논리적이었고, 차분했다.
"군인으로서 백번 옳은 말이오 그러나, 퇴로가 차단된 것은 직접 확인하지 않더라도 우리
도당이 북상을 포기하고 발길을 되돌린 것으로 충분히 입증할 수 있소. 그리고 군인의 투철
한 임무수행은 어디까지나 현명한 전략 전술에 따르도록 되어 있소.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전략 전술은 우리 도당과 힘을 합쳐 해방전쟁을 수행하는 것이오.모든 전선이 교란되고, 북
쪽으로는 후퇴가 게속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생태에서는 이제 우리가 적을 교란시키는 전술
밖에는 없소."
"현명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전략 수정이나 전술 변경에 대해 총사령부로부터
명령을 받기 전에는 저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총위의 얼굴은 점점 더 견고해져가고 있었다. 어제나처럼 우울한 빛이 담긴 위원장의 얼
굴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염상진은 긴장감으로 마른 침을 삼켰다. 상부의 명령에 충실하
고, 명령계통을 철저히 지키려는 총위의 태도는 물론 군인다웠지만 상황을 전적으로 무시하
는 데는 답답함이 없지 않았다.
"군관 동무, 한가지 묻겠소. 우리 도당에서 아무리 무전을 보내도 당중앙과 연결이 안되는
데 군과 동무는 총사와 무슨연락이 되고 있소?"
"아닙니다."
"알겠소 그것으로 한 가지 대답은 끝났소. 다시 한 가지 묻겠는데 인민군은 어디에 소속
된 군대요?"
"당의 군대로서 당을 보위하고 인민혁명에 복무합니다."
두 사람은 기초문답을 하는 식의 입장이 되어 있었다. 염상진은 위원장의 그 능란한 이론
공격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분명 그렇소. 그럼 당위원장인 내가 왜 군복을 착용하고 있는지 알겠소?"
"그건 전시편제에 따른 조처입니다."
"편제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군대에 대하여 당우위를 지키기 위해서요 그리고 비상시 위시
상황속에서 도당이 당중안과 모든 연락이 두절상태에 빠졌을 때 도당의 결정은 곧 당중앙의
결정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예."
"그럼 내 얘기는 다 끝났소."
위원장이 총위에게서 눈길을 거두었다.
"그러나 위원장님! 주전선은 따로 있고 여긴 어디까지나 적 후방일뿐입니다. 지금 모든인
민군대는 그 어떤 난관을 뚫고라도 주전선으로 총집결해서 적을 무찌르는 것이 최대의 과젭
니다. 저는 무슨일이 있어도 주전선으로 가야 합니다."
총위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땅!
총성이 터짐과 동시에 총위가 푹 고꾸라졌다. 그 돌발상황에 혼겁한 염상진의 시야에 권
총을 들고 선 조직부장의 차가운 얼굴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위원장은 미동도 한지 않고 앉
아 있었다. 염상진은 그때서야 그것이 돌발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청마루에는 금방 피가 흥건하게 괴었다 왼쪽가슴을 맞은 총위는 바르게 뉘어졌다.
"위원장님...,이것밖에는 달리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총위는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있는 얼굴에 엷은 웃음을 띠며 분명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
리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총위는 엷은 웃음을 담은 채 숨을 거두었다.
"남향받이에 고이 모시도록 하시오."
장판 두께만큼 진한 우울이 덮인 얼굴로 돌아서며 위원장이 한 말이었다.
결국 총위는 자기가 죽는 것으로 군인으로서 인민군총사령부의 명령을 어기지 않았고 당
의 군대로서 당적 요구를 충족시켰음을 알고 죽어간 것이었다. 그가 웃음과 함께 남긴 마지
막 말이 그 사실을 잘 입증하고 있었다. 염상진의 가슴에는 그 젊은 군관의 모습이 화인으
로 찍혀졌다. 박영발 위원장의 그런 결정도 젊은 군관의 해결책도 충격일 뿐이었다. 나도 당
앞에서 그런 투철성으로 웃으면서 죽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이런 물음을 새롭게 떠올리
며, 자신에게 맡겨진 도당 총사령부 부사령관이란 새 임무에 어깨 무거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염상진은 또한 입산하고 처음 나섰던 작전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각지구조직을 편성하랴,
지구마다 해방구를 확보하랴, 입산자들을 지구단위로 분류,편성하랴, 계속되는 입산자들을
심사하고 선들을 확인하랴, 간부들은 한 사람이 열 일을 해내는 형편이었다. 그런 긴박함 속
에서 분산되어 후퇴하고 있는 인민군들의 문제와, 그들을 뒤쫓고 있는 국방군에 다한 경계
도 함께 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부대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몇 명씩 분산되어 쫓기거나 산
속을 헤매고 있는 인민군들은 눈에 뛰게 규합시켜야 했다. 그것이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도당의 전투력도 확대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일단 전세를 장악하고 북상하는 국방군
들은 현지 경찰의 정보에 따라 해방구를 한바탕씩 공격해왔던 것이다.
그런 복잡한 상황이 겹쳐져 있는 어느날 한 마을에서 좋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인민군
몇 명이 낮에는 뒷산으로 피하고 밤에는 마을로 내려돠 며칠째 민폐를 끼치고 하더니 마침
내 처녀를 강간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인공 아래서도 철저하게 금했던 일을 더구나 입산한
상황에서 자행했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민의 지지 없이는 혁명은 이루어
질 수 없고 인민의 협조 없이는 빨치산이 존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인민군들이 민폐를 끼친게 사실입니까?"
염상진의 확인에 마을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중에서 강간을 한 사람은 누굽니까?"
그 사람은 금방 밝혀졌다. 염상진의 첫인상에 나머지 다섯 사람을 휘어잡고 있는 것 같았
던 양복기술자였다.
"인민을 위하여 싸운다는 인민군이 인민의 딸을 강간했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입니다. 당은 그러한 행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당의 결정에 따라 저 범죄자를 인민
여러분들의 앞에서 총살형에 처합니다."
염상진은 마을사람들 앞에서 엄숙하게 말했다. 그 결정은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내
려져 있었던 것이다.
도당의 우격투쟁조직은 그런 내적 아픔들까지 감내해가며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섬
진강 동쪽 회문산 일대에 자리잡은 전북도당에까지 선을 대서 중요한 부분의 인력지원을 요
청하는 한편 전남 출신들을 찾아 가능하면 연고지로 이동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조직편성에 따라 보성은 우치지구에 포함되었고 군당의 간부들도 인접한 두 지구에 걸쳐
자리바꿈을 하게 되었다. 안창민은 조계산지구 정치위원이 되었고 이해룡은 유치지구 연대
장직을 맡았으며 하대치는 조계산지구 기동대장이 되었고 오판돌은 군단위원장의 책무를 맡
았다.
모든 군당과 지구들은 무한책임 아래 관할지역을 지키며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절대원칙
이었다. 만일의 상황이 여의치 못할 때에는 군당은 해당지구로, 지구는 인접지구로 임시 이동
할 수는 있으나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본지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 원
칙아래 각 지구들은 관할지역 안에 해방구를 확보했다.
도당의 파악에 따르면 전북도당이나 경남도당의 입산자들 수도 각기 이만여 명씩을 헤아
리는 모양이었다. 삼개 도당 육만여 명의 입산자들을 생각하며 염상진은 가슴 뻐근함을 느
끼는 반면에 근심스러움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가 그들 모두를 실질적인 병
력으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이었다. 기본 무장인 소총마저 태부족이 것이 현실이었다. 육만에
서 이 할을 여자로 잡더라도 오만 가까운 인력을 확보해놓고도 무기가 없어 전체를 병력화
시킬 수 없다는 것은 큰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까움을 오래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빨치산 빨치산이다.' 그는 이 빨치산의 기본투쟁방법을 다시금 가슴 한복판
에 말뚝으로 박았다. 사 할 정도밖에 안 되는 무장을 오 할, 육 할로 확대시키기 위해서도 투쟁
을 치열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었다. 식량해결과 전력확보를 위해 해방구의 인민들에게는 쌀
수확량의 이할 오부를 세금으로 징수하고 있었다. 인공이 끝나면 세금에다가 농지개혁 상환
금까지 내야 할 줄 알았던 사람들은 이할 오부만 내면 되는 세금을 마다 하지 않았다. 선전
선동을 겸해 입산자들을 편성해서 추수를 거들게 했던 까닭에 세금징수는 한결 용이했던 것
이다.
염상진은 삼 개 도당 육만여 명의 입산자들을 생각하며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고 있었다.
여순병란과 함께 지리산을 중심으로 전개했던 무장투쟁이 거의 소멸상태에 이르러 민족해방
전쟁은 시작되었고, 이제 다시 그때의 이십 배가 되는 혁명전사들이 지리산을 에워싼 것이
었다. 지리산 전남북과 경남의 삼개 도에 걸쳐 자리잡고 앉은 그 웅대하고 장엄한 산. 지리
산이 거기 그렇게 있기에 고난의 투쟁을 하면서도 언제나 마음 든든했던 것이 아닌가. 더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을 때 언제라도 찾아들면 말없이 품어줄 산. 지리산을 찾아들게
되는 상황이 와서는 안되겠지만 지리산이 거기 의연하게 있다는 것은 역시 마음 든든한 일
이 아닐 수 없었다. 지리산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비무장이 너무 많다는 염려와 불안을 떼
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압록강변의 작은 도시 만포는 날마다 불어나는 사람들로 어수선한 불안이 고조되어가고
있었다. 초산 쪽의 길은 이미 막혔고 사람들은 강계 쪽에서 꾸역꾸역 밀려들어 작은 도시의
공백을 채워나갔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피난민들은 저마다 짐을 이고 진 채 불안과 초조가
엇갈리는 눈길을 두리번거리며 발길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초산과 위안 쪽 하늘로는 제트기
와 폭격기들이 쉴 새 없이 날고 있는 것이 멀리 보였고 먼 메아리처럼 울려오는 포성이 사
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비행기들은 그쪽 하늘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때는 느닷없이 만포 하늘로도 날아들어 기총소사를 퍼부어대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 대응
하는 사람들의 행동도 이제 만만하지가 않았다. 군인이고 민간인이고 군사시설이고 민가이
고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격을 해대는 미국 비행기들을 피해 국경의 끝까지 온 사람들의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선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이나 집으
로 뛰어들어 남녀 구분 없이 겹겹이 포개지듯했고 사람의 자취라고는 없이 텅 비어버린 거
리거리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자면 맥빠지기 이를 데 없어 심심풀이로 기총소사를 한바탕씩
해대고 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 하는 일없이 날을 보내고 있는 이학송은 장구경을 낙으
로 삼고 김미선과 함께 돌아다니다가 네댓 차례나 그런 식으로 공습을 피했던 것이다. 이학
송은 공습에서 풀려날 때마다 한마디씩 했다.
"보시오, 저놈들은 분명히 국경을 넘고 있소. 아까 남쪽에서 날아와 여기로 쑤셔박혔으니
까 다시 북쪽으로 떠오를 때는 이미 압록강을 넘어 버린 만주땅 상공이란 말이오. 저건 엄
연한 침략행위요."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빌어먹을 놈들, 이땅을 얼마나 더 불바다를 만
들어야 직성이 풀릴래나그래" 혼잣소리를 흘리며 비행기가 사라져간 하늘을 응시하기도 했
다.
돈도 없는 이학송이 하루에 한 차례씩 장터에 나가는 것은 무슨 특별한 구경거리가 있어
서가 아니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그곳에 사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먼발치에서나마
대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전혀 친숙한 사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저명인사들을 그런 급박
한 상황에 처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찾아낸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건재를 확인하는 것이 이상하게도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찾아낸 사람이 소설
가 이태준이었고, 배우 문예봉이었다. 이태준은 정지용이며 박태원이며 떠올리게 했고, 문예
봉은 최승희를 연상시켰다. 그들말고도 각 예술분야에서 중추역할을 맡고 있던 수많은 예술
가들은 서울에서 벌써 인민의 역사를 선택하고 나섰던 것이다. 언론인도 아니고 더구나 정
치가도 아닌 그들의 과감한 참여에서 이학송은 역사의 정당성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이
학송은 그런 사람들을 보았다는 말을 굳이 이원조에게는 하지 않았다.
이학송은 수첩에 간단간단한 기록을 하고, 장터를 배회한 다음 남는 시간은 거의 압록강
을 바라보면서 보냈다. 영하 십 도가 예사인 날씨속에서 압록강은 시린 푸르름으로 소리없
이 흘러가고 있었다. 압록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질정없이
떠올라 추위도 잊고는 했다. 만포에서 맞으편 만주땅 지안까지 연결된 철교를 볼 때마다 그
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째서 비행기들이 철교를 폭파하지 않을까하는 점이었다. 철교
로는 기차가 매일 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해답은 며칠 만에 얻어졌다. 그 철교를 폭파해
버리는 경우 미국은 중국을 침략한 명백한 증거를 남기게 되기 때문에 비행기들은 오가는
기차를 행해 위협사격만 가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그 약아빠진 자제력에 이학송은
강한 울분과 혐오를 느꼈다. 인천상륙작전때 민간인 대피를 예고하지도 않은 채 그리도 무
지막지하게 폭탄을 퍼부어대는 위로는 불바다를 만들고 아래로는 피바다를 만들여 인간살육
을 자행했던 자들이 국경선에 와서는 눈속임의 잔꾀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만주땅으로 들어선 기차는 통화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만주벌판은 음산한 회색빛이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땅은 놀랄 만큼 그 채색을 달리하
고 있었다. 산 하나도 보이지 않는 감감한 벌판을 기차는 쉬엄쉬엄 하루내내 달려 사백 리
길 통화에 도착한 것은 오후 다섯시였다. 매사에 서두르지 않는다는 중국인의 기질을 첫날
유감없이 맛본 기분이었다. 하루종일 굶어서 그 실감은 더한지도 몰랐다.
일행은 저녁요기를 하고 밤이 깊어서야 떠나는 기차에 다시 올랐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
은 제7군단 본부가 있는 반석이었다. 기차는 또 끝도 안 보이고 방향도 알 수 없는 광막한
벌판을 하루종일 지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눈을 들면 산이고, 그 어떤 방행으로든 아무리
돌아서도 산을 피할 수가 없었던 눈들에 그 끝간 데가 없는 흐린 회색빛 벌판은 갈수록 가
위눌리게 했고 이상스러운 압박감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저 멍청이 같은 벌판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히려고 해요. 전 이런 땅에선 못 살겠어요."
김미선이 손으로 눈을 가렸다.
"다 비슷하겠죠, 처음 보는 거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 끝도 한도 없이 넓은 땅이 아
직오 미개간지로 버려져 있다는 사실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산골짜기
를 타고 올라가며 손바닥만씩 한 다랑이논들을 일구며 사는 것과 대조하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우리에게 저런 벌판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이학송이 꽁초에 불을 붙였다.
"그렇네요. 근데 말예요, 옛날엔 여기가 다 우리 땅이었잖아요."
"옛날에 그랬었지요, 그 까마득한 옛날에."
이학송은 자조적인 웃음을 입에 물었다.
"맞습이다. 당나라를 끌여들여 영토를 반 이하로 줄여버린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것은
마땅히 역사의 검토를 거쳐야 할 대목입니다. 그런데, 그 뒤로 천오백 년이 지나면서 회복을
하지 못했으니 감감한 얘기 아닙니까."
"그래요,이제 와서 중국이 되돌려줄 리도 없는 일이고..."
이야기는 여기서 중단되었다.
기차는 어둠이 짙어지는 저녁에 반석역에 도착했다. 기차를 내리자 대륙의 추위가 몸을
휘감았고 땅내음도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무거우면서도 느끼하고 진득거리는 것 같은 냄새
가 약간 비위를 거슬렀다. 냄새 탓인지 느끼한지 공기도 탁한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중국음
식점에서 포식을 한 일행은 다시 발길을 옮겨야 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 군단분부가 아니라 인민국 75사단이오. 해방촌까지 사십리는 걸
어야 하니, 자아, 그만들 일어나봅시다."
군단본부를 다녀온 이원조의 말이었다.
그들은 어둠에 묻힌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를 걷지 않아 모질게 부는 바람과
매서운 추위에 몸들이 뻣뻣하게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몸이 비틀거릴 정도로 거세게 몰아
치는 바람은 예리하게 날을 세운 얼음조각들이나 날카로운 칼날들을 품고 있었다. 그 혹독
하게 맵고 독한 바람은 줄기차게 불어닥치면서 온몸을 따끔따끔 쏘아대다가 갈가리 찢어대
는가 하면 속살을 후벼팠고 끝내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그런 바람을 맞받으며
걷자니 숨은 숨대로 막히고 몸은 몸대로 얼어붙었다. 얼굴이며 손발은 차츰 마비증상을 일
으켰다. 거의가 남쪽에서 살아온 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칼바람이었고 혹독한 추
위였다. 그리고 그들의 옷은 그런 추위를 막아내기에는 어림도 없게 허술했다.
"기운을 내세요. 계속 걷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학송은 김미선의 팔짱을 끼고 걸으며 이따금 같은 말을 되씹었다. 아아 만주, 말로만 듣
던 추위가 바로 이런 것인가. 십일월 중순 추위가 이 지경이면 정작 일,이월 추위는 어떨 것
인가. 그는 이를 악물고 걸으며, 이런 땅에서 독립을 찾겠다고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
했다. 나는 이제 여기를 왜 왔는가. 민족해방을 위해서...? 그래, 역사의 바른편에 서고자 했
던 작은 의지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니냐. 역사는 당장 손에 잡히는 실물이 아니다. 그
러나 그것은 엄연히 존재한다. 역사는 지금 당장 한 벌의 솜옷을 당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건 이런 시련 속애서 살아 숨쉬고 있다. 그것은 존재를 믿을 때, 그리고 행동할 때 그것의
실체는 드러난다. 이학송은 손등에 매운 눈물을 찍어냈다.
중국인의 집을 만나면 서투른 중국말로 길을 물었고, 뜨거운 물을 얻어마시고 다시 기운
을 북돋우고는 했다. 모두 얼음덩이가 되어 해방촌에 당도한 것은 자정을 한 시간 앞둔 시
각이었다.
인민국 75사단은 제7군단에 소속되어 있었고 7군단은 6군단,8군단과 함께 이곳 동북만주
에서 부대를 정비하는 한편 신병들에게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대충 알게 된
것은 이삼 일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거쳐온 통화에는 제2군단과 군관학교가 있다
고 했다.
사단본부의 이동에 따라 이틀 만에 호란진으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비로소 중국의 혁명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택혁명을 거친 다음이어서 옛날의 토호나 지주들의 턱없이 크
고호화로운 저택들은 텅텅 빈 채 퇴락해가고 있었다. 그런 집들은 대부분 동사무소나 공동
회합 같은 것에 쓰이고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그런 웅장한 집들을 마음놓고 드나들 수 있
다는 사실에서 혁명을 실감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일제 때부터 살아온 동포들도 꽤나 많았
다. 이학공이나 다른 기자들도 그들과 만나 변하지 않은 풍습이 고향을 느끼게 했다.
"혁명은 잘한 거지요. 어디 부자나 지주만 사람인가요?"
그들은 혁명을 사람값을 쳐 받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괜찮아요. 조선도 다 혁명을 하자면 서로가 참고 힘을 합쳐야지요."
그들은 후퇴한 인민군들 때문에 안게 된 생활의 부담을 그렇게 소화시키고 있었다. 사단
본부가 다시 명성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백여 리의 길은 구름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키를
넘는 마른 풀들만 무성하게 우거지 막막한 황야였다. 그 광막한 벌판의 이곳저곳에서 훈련
을 받고 있는 인민군 신병들을 볼 수 있었다. 추위를 무릅쓰면서 뛰고 뒹굴고 하는 그 젊은
이들을 멀찍이 바라보며 그들 일행은 숙연한 마음으로 그런 곳을 지나치고는 했다. 그들은
머잖아 자신들이 쫓겨온 그 전쟁터로 뛰어들게 될 처지였던 것이다.
명성에서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군단본부에서 연락원이 왔다.
"우리 군단에서는 당분간 신문을 발행할 전망이 없다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께서는
통화의 최고사령부로 가셔서 총정치국의 지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단장의 정중한 인사였다.
"이거 참 고맙고,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 비상시에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식량만 축내고 떠
나게 됐습니다."
이원조의 말이었다.
"원 별말씀 다 하십니다. 계획 변경은 당의 지시고 잠시의 휴식은 혁명사업에 더욱 매진
하기 위한 준비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신문을 잘 만들어주십시오."
사단장의 화통한 대꾸였다.
그래서 그들 일행은 반석으로 되돌아가는 깃을 잡았다. 압록강을 건너온 지 열흘째가 되
는 날이었다. 길을 나서서 한 시간 남짓 걸었는에 아침부터 하늘을 가리고 있던 짙은 구름
에서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저 눈이 오나보다 하고 몇 분 동안 발을 옮기는 사이에
눈은 마치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 같은 기세로 퍼붓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넓고 넓은 벌판이
눈보라로 가득 찼고 짙은 안게에 묻힌 것처럼 뿌였게 시야가 막히고 말았다.
"다들 서로서로 간격을 좁히시오."
필요 없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 이원조의 이 말이 일행을 긴장시켰다.
흰색으로 뒤덮이고 있는 대지에는 눈이 금방금방 쌓여가고 시야가 막힌데다 길마저 분간
할 수 없어져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은 갈수록 심하게 퍼부어댔다. 아무도 불길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차 있었다. 눈의 기세는 전혀 누그러지지 않은 채
땅에 쌓인 눈은 발목을 넘치고 있었다. 걸음은 차츰 느려지고 천지는 눈구덩이었다. 크고 메
마른 눈송이가 겹겹의 장막을 치듯 만주벌판의 눈도 그들에겐 공포스러운 첫경험이었다.
"봐요! 들어봐요! 저기, 무슨 소리가 들리죠. 마차 소립니다. 마차!"
자연스럽게 대열이 이루어진 뒤쪽에서 누군가가 외친 소리였다. 모두는 우뚝 걸음을 멈추
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귀를 세웠다. 그다지 심하지 않은 바람 속에서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
가 끊겼다 이어졌다 하고 있었다 어쩌면 환청인 듯 싶게 그 소리는 멀고 약했다. 그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도 정확하게 가늠할 수가 없었고 마차의 형체는 더구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리고 그 마차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인지, 다른 길로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도 없었
다. 그들은 다시 눈 속을 터덕거리기 시작했다. 마차가 이쪽으로 오기를 빌면서.
그런데 마차소리는 조금씩 분명하게 들리면서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
다. 사람들의 걸음은 더 느려지면서 안도의 기색이 얼굴에 드러났다. 눈을 밟는 말발굽 소리
와 바퀴 구르는 소리와 마차가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아주 가깝게 들리는데도 마차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눈의 장막은 그처럼 두꺼웠던 것이다. 서너 발짝 앞이 흐릴 지경이었다.
마차는 그들은 스쳐 지날 정도가 되어서야 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매달렸다. 서투른 중국말이 다급하게 튀어나가고 있었다. 마차가 느리게 멈추었
다. 다행이도 그 마차는 반석까지 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깊은 어깨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애쓰며 걸어온 길이 잃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그들은 눈
퍼붓는 속에서 희멀건하게들 웃었다. 그들은 마차를 놓칠세라 숨가쁘게 눈을 해쳐나갔다. 마
차는 다름아닌 등불이었던 것이다.
군단사령부를 거쳐 그들은 매화구역까지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차비는 군단에서 지급
했고, 군단의 증명서로 오 할을 할인받았다. 기차에 자리를 잡고 읹자 지나온 눈길이 모두에
게 꿈만 같았다. 언 몸이 풀리는 가운데 그들은 비로소 그 때의 심정들을 주고 받았다.
"전 꼭 눈에 파묻혀 죽는 줄만 알았어요. 어쩌면 눈이 그렇게 지독스러울 수가 있어요. 제
눈에 눈이 흰 것이 아니라 검게 보였어요. 아무리 눈을 부비고 봐도 검은 것들이 쏟아져
내리면서 앞이 막히는 거예요. 마차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미쳤을지도 몰라요."
김미선이 두 손바닥으로 양쪽 볼을 감싸내 말했다.
"그럼 저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요. 그런 공포감 때문에 일어나는 착각인데 혼자서 참으면
점점 심해질 뿐입니다."
이학송은 김미선한테서 슬그머니 눈길을 돌렸다. 볼을 감싸고 있는 그녀의 손등은 예리한
칼로 찢어놓은 것처럼 터 있었고, 그 튼 자리마다 실피를 물고 있었던 것이다. 혁명의 외로
운 열정이여, 핏빛의 고통을 먹고 크는 혁명이여! 이학송이 신음처럼 씹은 생각이었다.
"이 동무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전 두 아이 생각뿐이었어요. 두 아이가 자
꾸 헛것처럼 보이는 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전 역시 덜된 당원
이 게 틀림없지요?"
김미선이 어색스럽게 웃었다.
"글쎄요, 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성과 모성은 완전히 별개의 가치고, 독립
된 가치입니다. 그 두 가지는 그러니까, 수평비교할 대상도 아니고 상대평가할 성질의 문제
도 아니라 그겁니다. 다시 말해 그 두가지는 인간이 기본적이고 본질적으로 갖는 여러 갈래
의 감정 중에서 그 특징을 달리하는 서로 그 막이 다른 감정으로 둘다 소중하게 존중되어야
할 가치입니다. 그 맥을 굳이 따지자면 당성은 이성적 감정이고 모성은 본능적 감정이 아니
겠습니까. 모든 인간은 그 두 가지를 동유하는 존재고 그것을 공유하는 능력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것일 겁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두 가지를 수평비교하거나 상대
평가하는 것은 소아병적인 경직이고 왜곡입니다. 그건 곧 혁명가는 사람을 해서는 안된다거
나 결혼을 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도식이고 오류입니다. 그 두 가지 감정을 조화있게 잘 공
유하면 오히려 보완적 상승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이미 우리 조선이나 중국의 많은 위대한
혁명가들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굳이 이름을 댈 것도 없이, 그분들이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
서 혁명의 열정을 끊임없이 불태워 올릴 수 있었던 여러 요인들 중에서 사랑하는 처자가 분
명 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김 동무의 경우도 아까 두 자식이 떠오
른 것은 당성이 약해서가 아니라 두 자식이 김 동무의 의지를 지켜준 기둥 역할을 했고, 김
동무는 두 자식을 통해 그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자식들과 다시는 이별 없는 생활을 위해
서는 혁명이 하루빠리 이룩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귀결되었을 겁니다. 결국 모성이나 자식은
당성을 고무시키고 강화했으면 했지 당성을 좀먹거나 약화시키는 것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예외가 전혀 없는 건 아니겠죠. 적에게 잡힌 극한상황 속에서 자식을 이유로 내세워 자기합
리화를 하며 당의 기밀을 판다거나 화선에서 투쟁은 소홀히 하고 사랑에 빠져 해당적 사고
를 휴발시킨다거나 하는 경우 말입니다. 그런 경우들은 아까의 주제와는 달라진 엄연한 정
치범죄가 되겠지요."
이학송의 얼굴은 마르고 거칠어져 있엇지만 나직한 목소리는 변함없이 울림이 좋았다.
"이 동무는 언제나 저를 구해주시는군요."
김미선은 이학송과 눈길이 마주치자 살며시 아래로 눈길을 내렸다. 그리고 이 동무는 그
때 무엇을 생각했느냐는 말은 묻지 않기로 했다.
기차 안에는 민간인보다 군인들이 더 많았다. 중국군 특유의 누비솜옷을 입은 군인들은
태평스럽게 트럼프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저기 좀 보십시오. 공산혁명을 이룩한 중국군들이 제국주의자들의 놀이인 트럼프를 치고
있습니다."
이학송이 건너편을 눈짓했다.
"네에, 아까부터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뭔가 안 어울리는 게, 모순적으로 보여요."
김미선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 동무가 보는 건 표피모순입니다."
이학송이 씨익 웃었다.
"네에? 표피모순이라니요?"
김미선은 솔직한 셩격 그대로 그게 무슨 뜻의 말인가를 묻고 있었다.
"아 네, 겉보기에 불과한 모순이란 뜻입니다. 그냥 제맘대로 지어붙인 말인데, 말이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이학송은 약간 멋쩍게 웃고는, "김동무가 저걸 무순된 행동이 아닌가 하
고 이상하게 보는 건 김 동무 생각이 어느 면에서 경직되고 획일화되어 있다는 증거지요."
그는 느릿하게 말했다.
"아니, 무슨 말씀이시지요?"
김미선은 놀란 눈을 떴다.
"그리 놀라는 걸 보니까 예상 못했던 말이가보군요."
"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그런 거거든요."
"그럼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저 군인들은 분명히 장개석군대를 몰아내고 거대한 중국
혁명을 성취시킨 사람들입니다.그 모태는 물론 모택동 주석이 이끌고 대장정을 마친 홍군이
었죠. 장정을 마치고나자 홍군은 삼백 명 정도밖에 안되었고 공산당은 중국의 공동의 적이
일본놈들을 무찌르자는 명분으로 장개석과 화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홍군은 깃발을 내리고
장개석군대의 제팔군을 편입되었습니다. 그 명분은 당당하고 떳떳한 것이었습니다만, 세상은
그 사실을 어떻게 보았겠습니까? 장개석이 승리감에 도취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인들
이나 세계의 눈은 마침내 중국공산당이 종말을 고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표피관찰이었죠."
김미선이 재빠르게 말을 끼워넣었다.
"아이쿠, 이런. 제가 한방 먹었군요."
이학송이 고개를 젖히며 웃었고, 김미선은 장난기어린 눈으로 웃었다.
"맞습니다. 그게 완전히 빗나간 표피관찰 아니었습니까. 그 소수의 홍군은 팔로군이 되어
국민당군과 힘을 합쳐 일본군과 싸우는 한편, 국민당군을 아래로부터 붕괴시켜나갔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일본놈들을 막아내고 장개석정부를 몰아내는 이중목적을 달성시키면서 이십
세기 정치의 기적이라고 하는 중국혁명을 성취시켰습니다. 도대체 그 비결은 무엇이었습니
까? 그건 너무 간단하게도 혁명이념을 투철하게 지키면서 그것을 지속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데 충실했던 것입니다. 레닌 동지의 그 기본적인 지도이념을 바탕으로 홍군 전체는 모주석
에 데한 신뢰로 한덩어리가 된 결과가 중국혁명 아닙니까. 그 강철같이 강한 정신으로 무장
된 사람들이 바로 저 군인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트럼프 놀이를 한다고 해서 그 정신에
제국주의적 훼손을 입거나 무슨 병이 들겠습니까? 저 사람들에게 트럼프라는 건 그저 오락
의 재미를 주는 단순한 도구일 뿐입니다. 저것보다 더 여러 가지 묘미를 주는 어떤 도구가
생기면 그들은 트럼프를 미련없이 팽겨쳐버릴 겁니다. 그런데 겉에 드러난 그런 하찮은 현
상을 가지고 그들의 기본적인 정신상태나 의식문제 같은걸 판단하려고 의미확대를 하는건
위험천만한 병적 경직이고 편벽된 아집이라 그겁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우리 조선 사람
들이 화투를 즐기는 것을 보고 조선사람들은 일본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느니 식민지시대를
그리워 한다느니 하는식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 우를 범하는 일입니다. 무리 조
선사람들이 화투를 친다고 해서 어디 일본놈들에 대한 증오나 원한이 약해집니까?"
"네, 그래요."
김미선은 생각이 담긴 언굴로 오래도록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틀이 걸려 통화에 도착했다. 그들은 총정치국 문화부에 소속되었다. 그들에게 맡겨진 일
은 신문발행이 아니라 라디오를 청취해서 통신을 만드는 일아었다 오랫만에 일거리를 찾아
안정을 얻게 되어 모두는 열심히 일에 매달렸다. 먹는 것과 잠자리가 안정되었을 뿐만 아니
라 담요와 솜옷까지 지급받게 되어 그들은 그 동안 겪어온 고생에서 비로소 벗어난 것을 실
감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 일행 중 열명이 인민군신문으로 파견근무를 떠나게 되었다. 여섯사람은 공장
기술자들이었고, 기자는 네명이었다. 이원조는 기자를 세 명까지 뽑고 마지막 한 명을 남겨
놓고 잠시 망설이더니 김미선을 지목했다.
"절 안 뽑으면 대들 작정이었어요."
차를 타고 가며 김미선이 속삭이듯이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출당 당할 뻔했군요."
이학송의 멋쩍은 대꾸였다.
"이원조 선생님은 역시 속이 깊고 멋있는 분예요."
김미선의 감상적 어조에 실린 '선생님'이란 말이 묘하게도 가슴을 우리는 것을 이학송은
느꼈다. 김미선, 나를 그냥 오라비라고만 생각해. 이학송은 속말을 하며 눈길을 창밖으로 보
냈다. 만주의 눈이 어느 한많은 여인의 사무침처럼 진해게 내리고 있었다.
그 부대의 대접은 융숭했다. 총정치국 통신소보다 훨씬 더 듣진한 대우였다. 그들 네 기자
는 취재에 나서기 전에 군사지식에 대한 교양을 먼저 받았다. 그들이 만들어야 할 인민군신
문은 가 군관학교를 대상을 겸한 교재적인 성격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방에
자리잡고 있는 여러 가지 병과의 군과학교들을 견학했다.
각 병과의 대대에는 두 명씩의 대대장이 있었다. 하나는 해당병과의 대대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치부 대대장이었다. 그 두 조직을 통해 군관후보생들은 군사와 정치지식을 균형있
게 교육받으면서 군인생활과 정치생활을 익혀가고 있었다. 후보생들은 의외로 사기가 높고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그것은 정치교육을 통해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그들한테서는 전
세가 불리해져 만주땅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한 어떤 옹색함도 머지 안아 전선에 투
입될 것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들의 모든 사회조직이 그렇듯이 군대
까지도 이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유와 그 효과를 이학송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인
민군 군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병들까지도 이남에서 민폐를 전혀 끼치지 않은 것이 바로
정치생활을 통한 정신무장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본격적인 취재활동이 시작되었다. 제 기자는 각 대대를 순회하면서 취재했다 중요한 기사
거리는 대개 정치부 대대장이 제공했고 후보생들과의 대화도 자유로웠다. 애로사항을 말하
라고 하면 무기가 좀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밥을 태우지 말아달라는 말
이 나와서 웃기도 했다. 취재를 하다보니 정찰대에 의외로 남쪽사람들이 많았고 강사들도
노동당 간부들이 많았다. 대대의 성격상 납득이 되는 일이었다.
이학송은 그 대대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혹시 전라도가 고향 아니신가요? 말씨가 그런 것 같은데요."
한 젊은이가 조심스럽게 물어온 말이었다. 그의 어조에서도 전라도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그렇소. 나 강진이오. 동무는 어디요?"
이학송은 반갑게 말했다.
"전 벌굡니다, 보성 옆에 있는..."
"아니, 벌교!"
이학송의 목소리가 느닷없이 커졌다.
"벌교를 아시는군요."
젊은이의 얼굴이 금방 밝아졌다.
"알고말고요. 혹시 김범우라는 사람아시오?"
"네에? 김범우 선생님... 그, 그 분을 어떻게 아십니까? 그분은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이었
습니다."
젊은이는 말을 더듬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반갑소, 나 이학송이라고 하오."
이학송이 젊은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저는 정하섭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