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병 속의 별천지, 하동… 문학·사색의 ‘멋’, 스릴·재미의 ‘흥’, 녹차·재첩의 ‘맛’이 넘친다
최참판댁 일대 문학테마파크 조성
김준호 기자
입력 2022.04.28
병풍처럼 늘어선 지리산. 그곳에서 내려온 시원한 바람과 물은 섬진강을 따라 잠시 머무르다 쪽빛 남해로 넘어간다. 그 한 가운데 경남 하동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유학자 최치원(857~미상)은 이런 하동을 가리켜 “호리병 속의 별천지”(호중별천·壺中別天)라 불렀다. 다른 세상에서 볼 듯한 절경에 감탄해 그 당시 최고 문장가가 극찬을 담은 ‘리뷰’를 남긴 셈이다. 그의 찬사는 현재까지 유효하다. 과거와 현대가 이어지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면서, 문학과 문화가 넘쳐 흐르는 하동은 1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별처럼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개장한 경남 하동 플라이웨이 케이블카. 해발 894m 금오산 정상에서 금남면 중평리 청소년 수련원 일원에 이르는 총 연장 2.56km를 다니며 청정 한려해상국립공원과 금오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하동군 제공</figcaption>
◇문학·사색…'멋’있는 하동
하동은 문학의 도시다. ‘토지’(박경리), ‘지리산’(이병주), ‘역마’(김동리), ‘칼의 노래’(김훈) 등 소설을 비롯해 ‘섬진강에서’(고은), ‘강 끝의 노래’(김용택) ‘낙화’(정호승) 같은 시의 배경이 됐다. 하동 사람들은 “지리산과 섬진강의 넉넉하고 따뜻한 품이 ‘토지’ ‘역마’를 낳았다”고 자랑한다.
지난 23일 찾은 하동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한국 근대사 100년을 배경으로 한 3대 명작 중 하나라 꼽히는 대하소설 ‘토지’ 속 생활공간을 목조 건물로 재현한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드라마 세트장이지만 오래전부터 원래 있었던 것처럼 주변과 잘 어우러져 이질감이 없다. 소설을 읽은 사람에게도,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부산에서 온 김연옥(63)씨는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장면 장면이 떠오른다”며 “집에 돌아가면 다시 ‘토지’를 꺼내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드라마 세트장 안 한옥문화관에서는 숙박도 가능하다. 소설 속 인물을 떠올리며 하동의 정취와 문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또 박경리문학관에서 대작가의 문학 세계와 삶을 엿볼 수 있다.
하동군은 이곳 일대를 대한민국 대표 문학테마파크로 만들고 있다. 최근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국비 등 총 79억원을 들여 내년 말까지 한옥문화관 인근에 연면적 520㎡ 규모 한옥호텔 2채를 새로 짓고, 170㎡ 규모의 김훈장·김평산네를 리모델링한다. 또 433㎡ 규모 기존 토지 세트장 12동도 리모델링해 숙박 이용객과 일반 여행객, 지역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유 사무실과 아트 갤러리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내년 말쯤 완공된다.
섬진강 고운 백사장과 푸른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백사청송(白沙靑松)이라 불리는 하동송림(松林)도 ‘멋’으로 빼놓을 수 없다. 천연기념물 제455호로, 최대 300년에 달하는 소나무 등 900여그루의 나무들이 2km 길이에 숲을 이루고 있다.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숲을 중심으로 트래킹 코스도 조성돼 있어 가볍게 산책하거나 사색하기 좋다. 하동군은 약 60년간 사용하지 않아 방치됐던 섬진강변의 하동비행장이 폐쇄됨에 따라 휴양숲·기념숲·체험테마숲 등을 조성해 인근 하동송림과 연계한다는 계획을 세워 또 한번의 변신이 기대된다.
지난 1월 우리나라 차(茶) 시배지인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도심다원’을 찾은 방문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하동에서 재배된 찻잎으로 만든 ‘녹차 가루’는 품질 검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스타벅스에도 수출된다. /김동환 기자</figcaption>
◇스릴·재미…'흥’ 넘치는 하동
여유와 낭만으로 대표되던 슬로시티(Slow City) 하동은 최근 스릴과 짜릿함을 더한 익사이팅 시티(Exciting City)로 변신중이다. 지난 22일 하동 플라이웨이 케이블카가 개장하면서 더욱 속도를 높이고 있다. 케이블카는 해발 894m 금오산 정상에서 금남면 중평리 청소년 수련원 일원에 이르는 총 연장 2.56km를 운행한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청정 한려해상국립공원과 금오산의 절경은 한폭의 그림이다. 10인승 케이블카 40대를 운영해 하루 최대 9800명을 실어 나른다. 케이블카 주변으로는 아시아 최장인 3.42km의 구간을 최고 시속 120km로 내려오는 짚와이어, 투명한 유리 바닥으로 짜릿함을 선사하는 스카이워크도 있다. 금오산 일대가 하동 새 관광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을 따라 하동을 색다르게 감상하는 방법도 있다. 레일바이크다. 경전선 복선화 공사에 따라 폐선된 북천역~양보역 구간 총 5.3km를 바이크로 즐길 수 있다. 철길 주변엔 사계절 특색있는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1.2km에 달하는 터널 속엔 다양한 조명이 불을 밝혀 낭만을 선사한다.
흥하면 화개장터를 빼놓을 수 없다. 산수유, 오미자, 구기자, 죽순, 도라지, 고사리 등 온갖 약초와 나물이 즐비하다. “한 번 맛보시오”라며 상인마다 입 안에 찔러주는 맛보기용 음식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각설이의 장단과 조영남의 국민 애창곡 ‘화개장터’가 배경음악처럼 종일 울려퍼진다.
이충열 하동군 관광과장은 “이번에 개장한 케이블카와 기존 집와이어·스카이워크 등이 융합돼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천년고찰 쌍계사, 영호남 화합의 상징 화개장터, 하동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리산 성제봉(형제봉) 신선대 구름다리, 1500여개 돌탑이 주는 이국적 풍경의 청학동 삼성궁, 한국관광공사의 안심관광지 동정호 등 하동 곳곳에 보물 같은 명소가 많다”고 말했다.
◇녹차·재첩…'맛’있는 하동
하동은 차(茶)의 고장이다. 하동 화개면 일대는 우리나라 차 시배지(始培地)로 그 역사만 1200여년을 훌쩍 넘는다. 지난 2020년 12월 기준 1060여 농가가 726ha 규모 차밭에서 연간 1223톤(t)의 차를 생산했다. 전국 차 생산량의 30%가 하동산이다. 최근엔 하동녹차연구소를 통한 활발한 연구·개발의 성과로 하동 가루녹차가 스타벅스 미국 본사에 수출되고 있다. 차밭은 그 자체로 하동의 관광 자원이 됐다. 지리산 비탈에 자리 잡은 야생 차밭은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이국적인 풍경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동군은 이중 풍경 좋은 차밭 10곳을 ‘다원(茶園) 10경(景)’에 선정했다. 이런 차밭을 찾아 직접 찻잎을 수확하고 솥에 덖어 차를 만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하동군은 내년 5월쯤 세계차엑스포를 개최해 우리 차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계획을 갖고 있다.
하동은 섬진강 재첩으로도 유명하다. 섬진강에선 국내산 재첩 70% 이상이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4월에서 11월까지 재첩잡이가 이뤄지는데 5~6월이 제철이다. 뽀얗게 끓여낸 재첩국도 좋고 새콤달콤하게 무친 회무침, 재첩과 각종 야채를 섞어 먹는 비빔밥으로 즐길 수 있다. 이밖에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로 구이나 찜, 전 등으로 먹는 벚굴과 참게를 바탕으로 찹쌀가루와 들깨, 버섯, 양파 등으로 구수하게 끓여낸 참게가리장 등이 하동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윤상기 하동군수는 “지리산·섬진강을 비롯한 천혜의 자연환경과 차(茶)·문학 등 인문·문화자원을 활용해 짧게 10년, 길게는 100년 미래 하동의 기반을 닦아가고 있다”며 “내년 세계차엑스포 성공 개최 등 하동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찾아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