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소속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자력안전법을 위반한 업체 두
곳을 적발해 이달 10일 행정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원안위는 두 곳이 영세업자라는 이유로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원안위는 지난달
열린 제18차 회의에서도 원자력안전법을 위반한 업체 3곳을 적발해 행정처분을 내렸지만 같은 이유로 위반업체 명단의 공개를
거부했다.
같은 국무총리 소속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업체 명단을 공개하는 등 먹을거리 안전을 위반한 업체에
엄정한 처분을 내리고 있는데 반해 원안위가 지나치게 관련 기업을 봐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원안위는 이달 10일 제20차
위원회를 열어 연간 허가량을 초과한 방사성동위원소를 보유한 민간연구소 1곳과 4개월가까이 방사선 안전관리자가 없는 상태에서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
판매한 민간기업 1곳에 대해 각각 750만원과 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원안위에 따르면 이번에 행정처분을 받은 민간연구소는
2012년 방사성동위원소인 이리듐(Ir)-192 을 129.5TBq(테라베크렐)을 보유하거나 취급하도록 허가를 받았지만 원자력안전법을 어기고
5.8TBq를 초과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위반업체는 2011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또 2013년 7월부터
10월까지 약 4개월간 방사선안전관리자가 퇴직한 상태에서 방사성동위원소 생산과 판매를 계속해온 것으로 정기검사 결과 드러났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에 따르면 따르면 방사선취급기관은 반드시 감독자 면허를 보유했거나 방사선관리기술사 면허를 보유한 직원을 1명 이상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원안위는 두 민간업체가 행정처분 사실과 내역만 공개했을 뿐 업체명 공개는 거부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원자력안전법을
위반했지만 작업자가 피폭되지 않았고 관리 구역내 오염이 일어나지 않아 공개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말했다.
원안위는 지난달
13일 열린 제18차 위원회에서도 방사선 안전관리 의무 이행 및 허가 기준을 위반한 3개 민간업체에 대해서도 행정처분을 내렸지만 기업명 공개는
거부했다. 원안위는 또 지난해 원전 납품 비리 조사 과정에서도 당시 JS전선이 불량부품을 납품한 사실을 인지하고도 공개를
거부했다.
하지만 원안위의 이런 방침은 같은 국무총리 산하에서 먹을거리 안전을 책임진 식약처와는 사뭇 다른 정책이어서
비교된다.
식약처는 이달 7일 겨울철 대표 먹거리인 붕어빵과 호떡, 호두과자 등에 사용하는 원료인 팥앙금과 반죽 공급업체를
위생점검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허가기준을 위반한 식품원료 제조업체 33곳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는 먹을거리 안전을 위협하는 업체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식약처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정승 식약처장은 지난해 “불량식품을 만들고 유통하는 업체들을 근절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당시 불량식품을 4대악으로 규정한데 이어 원자력 안전을 최고의 목표로 삼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은철 원안위원장도 지난해 취임 당시 “원자력 관련 안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통을 강화해 신뢰를 형성하겠다”고
밝혔다.
원안위의 이런 행보에 대해 일각에선 또 다른 형태의 원자력계의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동위원소 관련 업체의 경우 원자력 발전 비리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하면 현장의 작업자나 인근
지역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며 “경중을 따지지 않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필요하다면 완전 퇴출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원안위 관계자는 “지난해 방사선 관리 규정을 위반한 업체에 대한 과징금 상한선을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늘리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채 수개월째 계류되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김익중 경주환경운동연합상임의장,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홍성담 민중화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주영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가 '핵과 나 그리고 지구의 삶'을 주제로 토크쇼를 하고 있다.
“무책임한 원전정책 그만둬야”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
핵발전소는 희생의 시스템 위에 만들어진다. 핵발전소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다. 일본에서 이익을 보는 누군가는
‘원자력마피아’다. 정부, 산업계, 학계, 언론계에 널리 퍼져 있다. 희생당하는 자는 국민이다. 원자력마피아는 늘 국민을 속이고, 국민을
버린다. 또 다른 나라 국민들을 철저히 무시한다.
‘3․11 사건’ 이후 원자력마피아의 속임은 방사능 허용치에서 잘 드러났다.
4월19일 문무과학성은 후쿠시마현의 초등·중학교와 유치원에서 교사나 교정을 이용하는데 있어 기준을 연간 피폭량 20밀리 시버트로 정했다.
일반인의 피폭량은 연간 1밀리 시버트이다. 방사선의 영향을 보다 크게 받는 아이들에게 일반인의 20배에 이르는 피폭을 허용한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비상시기라서 기준을 완화한다면 애초부터 무엇을 위한 기준치란 말인가.
‘완전 무책임 체제’로 추진돼 온 원전정책. 그 이권에 떼지어 모여들었던 정치가, 관료, 전기회사 간부, 원자력 과학 관련 학자와
기술자들의 태만과 기만, 그리고 특권 의식이 초래한 참혹한 실패에 대한 뒷처리는 원전내 현장 작업자들의 몫이다. 그들을 영웅시하며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 재해를 당한 사회가 스스로의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없는 양’을 자신의 구원자로 ‘우러러’ 보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 후쿠시마의 역사적 과제는 원전이라는 희생의 시스템을 얼마나 적절하게 사라지게 할 것인가에 있다. 이 후에도 이 시스템을 지지하려고
하는 자는 ‘누가 희생이 되는 것인가’라는 근본 문제에 답할 의무가 있다.
일찍이 ‘전쟁멸절 보증법안’이라는 것이 있었다. 전세기 초 덴마크의 육군 장군 프리츠 홀름이 ‘각국에 다음과 같은 법률이 있다면 지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시작된다면 10시간 이내에 다음의 순서로 최전선에 일개 병을 보낸다. 첫 번째 국가수상, 두 번째 수상의 남성 친족, 세 번째
총리대신, 국무대신, 각 성의 차관, 네 번째 국회의원, 단 전쟁에 반대한 의원은 제외, 다섯 번째 전쟁에 반대하지 않았던 종교계의 지도자.”
홀름은 어떤 전쟁이든 국가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희생해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전에서 사고가 났을 때 다음의 사람들을 결사대로 보내야 한다. 내각 총리대신, 각료, 경산성 등 각성의 차관과 간부,
전력 회사의 사장과 간부, 원전을 추진한 과학자와 기술자들. 원전을 인구 과소지역으로 떠맡기고 전력을 향유해 온 도시의 사람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희생의 시스템 그 자체를 그만둬야 한다.
동일본대진재, 새로운 파시즘
계기 될 수도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일본의 파시즘 도래를 우려한다. 대진재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일어서라 일본’ 등의 레토릭으로 국민적 단결을 고무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국민의 적을 만들 것이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고 지배층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쌓여가면 필시 적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다. 그럴 때 적으로 간주돼 버릴 가능성이 높은 존재가 재일조선인이다.
현재 일본에는 ‘한국·조선’으로 분류된 외국인이 약 58만 명이다. 이중 이번 대진재 피해가 컸던 이오테, 미야기, 후쿠시마 세 현의
한국·조선인은 약 7,600명이다. 재일조선인은 단지 소수자일 뿐 아니라 ‘북한 때리기’의 대상이며 언제까지고 ‘과거 식민지지배를 문제삼을
성가신 존재’이다.
15년 전 한신 대지진 때도 그랬다.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 ‘외국인 절도단이 재난지역에 들어갔다’는 등의 근거없는 선동이 떠돌아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대량 유포됐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 6,000명 이상의 조선인, 200명 이상의 중국인, 무정부주의자 등 수 십 명이
학살당했다.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있다’, ‘우물에 독을 집어넣고 있다’는 유언비어에서 시작됐고 그것을 관이나 언론이 증폭시켰기 때문에
일어났다.
이시하라 지사는 2000년 자위대원들에게 훈시하면서 ‘오늘의 도쿄를 보면 불법 입국한 많은 외국인들이 몹시 흉악한 범죄를 계속 저지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큰 재해가 닥치면 큰 소요까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시하라 지사 같은 존재, 그를 지지하는 다수자의 존재는
후쿠시마의 원자로에 뚫린 구멍처럼 우리에게 끊임없이 긴장과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동일본대진재는 새로운 파시즘의 계기가 될 지 모른다.
“핵 발전 안전하고 싸다? 모두
거짓말”
김익중 경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김익중 경주환경운동연합상임의장
핵발전소는 나이와 개수에 증가에 따라 위험성이 비례한다. 이번에 일본에서 사고가 난 원전들은 모두 30년 이상 된 원전이었다. 핵사고 확률
100만분의 1이라고 정부는 말하지만 ‘아니다’. 전 세계에 핵발전소가 100만개 있나? 447개다. 이중 6개가 고장을 일으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그렇다면 위험 확률은 1/80(1.34%)이라는 말이 정확하다.
미국이 104기, 구소련은 러시아 32기를 포함해 66기, 프랑스 58기, 일본이 54기를 갖고 있다. 우리는 21기의 핵발전소가 있다.
만약에 핵사고가 일어난다면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확률은 27%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고 제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탈핵밖에 없다.
일본을 비롯해 독일, 벨기에, 스위스가 탈핵을 선언하고 점진적으로 없애 나가기로 했다. 그 나라들이 바보인가? 가능하니까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대안은 재생가능 에너지를 쓰는 것. 지력, 태양, 풍력, 바이오, 수력 등을 이용하면 된다. 재생가능 발전소가 유럽은 20% 우리는
1%가 채 되지 않는다. OECD 국가 중 우리만 유일하게 대체에너지가 줄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은 매년 50%씩, 풍력은 20%
증가하고 있다. 핵 산업은 1980년대 이후 사양산업이다.
핵발전소가 싸다는 것, 재생에너지가 비싸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미국 주정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재생가능 발전의 원가가 2010년 처음으로
핵발전 원가보다 낮아졌다. 우리나라는 핵발전 원가를 왜곡해 더 싸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풍력과 태양열 에너지를 개발하기에 지형상 불리하다고 하는데 그것도 믿으면 안 된다. 전세계 풍력에너지 지도를 보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서해안은 바다가 깊지 않아 해상풍력 하기 좋은 조건이다. 태양에너지는 독일, 벨기에, 스위스보다 우리가 좋다. 주차장, 학교 운동장,
고속도로 등에 태양에너지 시스템을 설치하면 에너지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의지가 없을 뿐이지 가능하다.
한전KPS
차기 사장 공모에 한수원 등 원자력계 출신은 배제키로 했다는 상부(?) 지침이 내려와 주목. 그렇다면 두 차례나 공모를 연기한 것이 힘이
센(?) 원자력계 인물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라는 얘긴데...과연 그 인물은 누구?
[김수종 칼럼] 원자력 마피아
23면| 기사입력 2013-06-1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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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마피아'는 매우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단어다. 마피아(Mafia)는 일반적으로 이태리 이민자들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미국 내에 만든 비밀범죄조직을 일컫는다. 마피아는 스스로를 마피아라고 부르지 않고 "코자 노스트라"(Cosa Nostra)라고 표현한다. 영어로
'Our Thing', 즉 '우리들의 일'이다. 특수한 집단 이익의 어감이 강하게 풍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원자력마피아'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원전비리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원전마피아'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는 '원전 비리의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를 시인하며 "부품제작사, 시험기관, 발주처 사이의 폐쇄적 구조로 사슬처럼 얽혀 있는 유착 형태"라며 "이래서 원전마피아라는 말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개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전비리와 관련해 마피아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국무회의에서 "역대 정부를 거치며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마피아'란 말은
올여름 불쑥 나온 것이 아니다. 위조 부품공급 비리로 원자로 가동 중단이 잦았던 최근 몇년 동안 언론에 떠오르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올해 두 가지
원인이 결합되면서 들끓은 이슈가 되었다. 우선 지난 4월 이래 불거진 시험성적위조 부품비리로 원자력 3기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고장과 검사 또는
부품비리로 총 23기의 원자로 중 10기가 전기를 생산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여기에 일찍 찾아온 더위로 예비전력 확보에 비상이 걸리면서,
이 모든 문제의 원인 제공자가 원자력마피아라는 책임과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어쩌다 한국의 원자력에너지 분야 기술인들이
과학기술자의 윤리와 직업윤리를 상실하고 사적 이익만 추구하는 '공공의 적' 쯤으로 몰리는 것일까. 과연 일이 이 지경에 이른 원인이 단순히
사적인 이익추구 때문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
특정대학 출신 선후배 카르텔
구조
원자력 에너지는 우리나라 전력생산의 30% 안팎을 차지한다. 원자력 발전소를 독점적으로 운영 관리하는 곳이 한국전력이
세운 (주)한수원이다. 한수원을 중심으로 원자력발전의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발전소의 설계와 감리를 맡은 엔지니어링 분야, 부품납품 및
검증업체들, 그리고 그 위에 감독과 안전 규제를 맡은 산업자원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 같은 정부 기관이 포진해 있다. 이 생태계 안에서 한수원,
엔지니어링분야, 납품업체가 부품시험성적을 위조해도 봐주고, 퇴직하면 관련업체에 취업을 시켜주는 등 주거니 받거니 하는 나눠먹기식 유착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진단인 것 같다.
원자력비리가 터질 때마다 지적되어 왔지만 문제의 본질을 살피려면 세 가지 측면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 같다. 첫째, 원자력이 전문기술을 요하는 분야이다 보니 특정대학 출신 선후배들이 원자력산업 생태계에 배타적으로 포진하게 되어
사적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이다.
둘째, 이런 원자력산업의 기술적 특성에다 보안상의 이유로 내부에서 무슨 짓을 해도
밖에서는 자세히 알 수 없는 폐쇄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감독권을 가진 산업부와 안전운영을 감시해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견제와 균형의
감시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 비리구조를 척결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역대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보니 박근혜 대통령의 척결의지도 강해 보인다. 그런데 정부의 일처리 방식을 보니 처벌 위주로 가는 것 같아 비리구조의
혁파가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검찰의 속성은 범죄만 보는 것이다. 비리의 고리가 어떻게 연결되고 또 작동하는지 정확한 맥락과
실상을 알아내는 것이 검찰수사와 별도로 이뤄져야 한다.
비리구조 척결이 무엇보다 중요
원자력 전문가들을
싸잡아 범죄 집단처럼 몰아가면 자칫 문제해결에서 빗나갈 수 있다. 원자력분야 과학기술자들도 젊은 날 자긍심을 갖고 에너지산업에 기여했던
사람들이고, 한때 건강한 국가관도 가졌을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원자력마피아라는 오명을 쓰게 된 데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비리의 늪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구조 때문일 것이다.
원자력 생태계를 이 지경으로 만든 데는 정부 감독기관의 책임도 크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재앙은 쓰나미 자체보다 정부감독기관과 산업계의 유착이 더 큰 원인이라고 지적됐다. 국회청문회에 의하든, 감사원 감사에 의하든, 아니면 객관성과
파워를 가진 태스크포스를 만들든, 원자력비리의 생태구조를 밝혀 국민에게 알려줘야 한다.
정부가 집권 2년차에 접어들면서 '정상화'를 기치로 공공기관 개혁에 본격 팔을 걷어붙인 가운데 이를 이루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기본'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연일 이야기하는 가운데 '비기본의 기본화'도 공공기관
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낙하산'으로 대표되는 공공기관의 잘못된 인사, 각종 입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해 당사자
간 유착관계, 높은 도덕성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일부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 방만경영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사업 추진으로
산더미같이 불어난 부채 등이 모두 기본을 망각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기본의 망각, 결과는
지난해 5월.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호기 등 총 3기의 원자력발전소(원전)가 가동을 멈췄다. 원전에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부품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이들 원전 3기의 가동 중지로 원전 비리가 수면으로 올라왔다. 원전을 책임지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납품업체의 유착관계는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이후 한수원 관련 비리 중 향응.금품 수수, 골프접대는
기본이고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납품계약 관련 청탁.알선 △인사청탁 △납품가격 담합 등 기자재 관련 비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실제 적발건수도
2008년 3건에서 2012년에는 무려 61건으로 늘었다.
비단 원전뿐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는 KTX에 1만7500개의 짝퉁
부품을 납품한 일당이 검찰에 적발됐다. 납품업체들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관세청이 발행하는 수입신고필증 등을 위조해 국내 업체가 만든 부품을
프랑스에서 수입한 정품인 양 속이거나 재고품을 신품인 것처럼 납품했다. 특히 이들이 납품한 부품은 KTX의 제동장치 계통에 사용됐다. 초고속으로
달리는 KTX의 특성상 제동장치는 안전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한 도박과 같다. 원전과 KTX에서 발생한 이 같은 부품비리는 공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이와 같은 부품비리의 원인으로 일각에선 '원전마피아' 또는 '철도마피아'로
불리는 특정 학교 출신 인맥의 폐쇄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마피아'는 정보와 규제를 독점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이들을 비꼰 말이다.
원자력산업과 철도산업은 국내에 해당 공기업 외에 경쟁자가 전무하다. 이러다 보니 납품 과정에서 편의를 봐주고 나중에 납품회사에 재취업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실제 한수원의 경우 1급 이상 고위 간부급 퇴직자 중 상당수가 원전 건설 및 발전설비, 정비 수행, 원전 품질보증
자격인증 기업 등 원전과 매우 밀접한 연관기업에 재취업한 상태다.
철도시설공단 역시 퇴직자 185명 가운데 136명이 관련업체에
재취업할 정도로 '철도마피아'의 아성은 높았다. 부장급 직위 퇴직자 53명 가운데 34명(64%), 처장급은 32명 중 28명(87%),
임원급은 45명 중 37명(82%)이 공단 업무와 관련 있는 업체에 재취업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 전문가는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공기업 비리는 폐쇄성, 해묵은 유착관계, 담당자들의 도덕적 해이 등 총체적 문제에서 비롯된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선 납품의 투명성 확보,
유착관계 근절,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 제고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감사원이 내놓은 '15개
공기업 주요 사업 및 경영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문제는 비단 이들 기관뿐만이 아니다.
한국가스공사에
대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당시 정부가 내놓은 '제10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에서 발전용 천연가스 수요량을 '5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예측한 전망치보다 높게 산정했다. 이에 따라 가스공사는 천연가스 도입계약을 하면서 제10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보다 많은 수요를
가정, 고가의 물량을 과다하게 도입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 한국전력공사, 한수원, 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이 추진하고 있는 해외자원개발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업의 내부수익률이
기준수익률보다 낮아 수익성이 없는데도 수익성 검토를 소홀히 했다는 게 그 이유이다. 또한 이 같은 사실을 이사회에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꼬집었다. 한전과 한수원의 '니제르 우라늄 광산사업', 한국중부발전이 추진하는 '말레이시아 열병합 발전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기본, 어떻게 확립할까
이 같은 공공기관들의 폐쇄성과 유착관계, 방만경영은 결국 국가적인 피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원전 가동 중지로 인한 피해액은 9조9500여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원전비리의 사회경제적 피해까지 고려하면
피해액수는 추산조차 불가능하다.
KTX 부품비리도 피해액수가 원전에는 못 미치지만 사건의 재발이라는 게 문제다. 코레일은 지난해
3월 순정부품을 국산으로 대체 납품한 사건이 경찰에 적발된 뒤 개선을 다짐했지만 다시 똑같은 비리가 발생했다. 또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이미
부정부품을 적발해 모두 교체하고 업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섰지만 같은 업자로부터 납품받은 코레일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일부
공기업의 무리한 투자는 '과도한 부채'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공공기관의 비위는 결국 국민혈세로 감당해야 함은 물론
국가재정 악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개혁을 위한 기본으로 '낙하산 인사 방지'를 가장
첫째로 꼽고 있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을 내놓으면서 공공기관 대표 및 감사, 주요 인사 등에 대한 투명한 임명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것에 대해 상당수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힌 사업 추진 방지'도
중요한 '기본'으로 꼽힌다. 공공기관 개혁에 상당한 에너지를 쏟을 현 정부조차도 벌써부터 일부 공약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 분석 없이 추진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부실인사가 아무런 원칙 없이, 전문 분야와 상관없는 곳에 낙하산으로 임명되는 관행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2012년 11월)
"공기업 공기관 같은 곳에서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낸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국민들께도 큰 부담이 되는 거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생각
한다"(2012년 12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도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한다"(2013년
1월)
그러나 집권 2년차를 맞이한 지금의 현실은 대통령의 이 같은 약속을 무색게 하고 있다.
한국가스기술공사만 놓고 봐도 정부 역량평가서
탈락한 인사를 낙하산으로 앉히려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
지난해 9월 임기 만료로 공석인 경영지원본부장 자리에 모 사단법인
정책연구실장이던 이 모 씨를 사실상 내정했다.
이 실장은 국회 보좌관, 원내총무 비서실장, 건설교통부장관 보좌관 등을 역임한
정치계 인사다.
이 씨는 지난 1월 산업통상자원부 역량평가에서 탈락했지만 공사는 이 씨에 대한 재평가를 요청할 예정이다.
가스기술공사 관계자는 "이 실장이 본부장 자리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선임했고, 역량평가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3번까지는 재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실장이 본부장 자리를 꿰차면 이 회사의 경영진은
100% 낙하산으로 구성된다.
한국가스기술공사 노조 현지형 지부장은 "강원도 행정부지사 출신의 사장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북도당 사무처장 출신의 감사, 지식경제부 과장 출신의 기술사업본부장 등 경영진 전원이 낙하산 인사로 구성된 상태에서 관련 분야 경험이 전무한
이 실장을 경영본부장으로 선임하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가스공사 뿐 아니다. 부채가 많은 12개 공공기관의 2008년
이후 낙하산 실태를 파악해보니 12명 중 11명이 낙하산이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5명이 새로 낙하산으로 채워졌다.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에 착수한 지난해 11월 이후 공공기관들은 기관장과 감사 40명을 새로 임명했는데, 이 중 15명(37.5%)이 여당인 새누리당
출신 정치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