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4월 10일 〈즐거운 나의 집〉의 가사를 지은 미국 시인 존 하워드 페인이 세상을 떠났다. 본래 노래는 영국 핸리 비숍이 작곡했는데, 존 하워드 페인이 1823년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에 극음악으로 차용했다.
비숍은 〈시칠리아 섬의 선율〉이라는 제목의 악보집도 출간했다. 그런데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가 플라톤과 대단한 인연을 쌓은 곳이라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플라톤은 이곳에서 ‘철인哲人정치’를 실험했다. 우스꽝스러운 정치꾼들이 어리석은 대중을 데리고 중우衆愚정치를 일삼는 데 분개한 플라톤이 직접 팔소매를 걷었던 것이다. 성공 여부야 물을 일도 없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 즐거운 나의 벗 내 집뿐이리”
〈즐거운 나의 집〉의 우리말 제목과 번안은 김재인 작품이다. 사람들은 김재인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해도 노랫말 내용은 익히 암송한다. 이는 그만큼 보통 사람들이 ‘가족’에 큰 기대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원시공동체사회가 해체된 청동기시대 이래 남은 것이라고는 가족뿐이니 어쩔 도리도 없다. (어찌보면, 철인정치를 추종할 만큼 어리석기는커녕衆 대중衆은 자신보다 훨씬 영악하다는 사실을 플라톤은 몰랐던 모양이다.)
플라톤은 기원전 347년경 타계했다. 그 뒤 1500년쯤 지난 기원후 1145년 《삼국사기》가 나왔다. 플라톤이 《삼국사기》를 읽었더라면 식민 폴리스 시칠리아에는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감히 플라톤에게 하는 말은 아니고, 일반론으로) 역시 사람은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물론 1500년 뒤에 출간될 책까지 읽는 일은 누구에게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삼국사기》에 신라 내물왕이 백제인 300여 명의 투항을 받아준 데 대해 근초고왕이 항의한 기사가 나온다. 내물왕은 “좋으면 오고, 싫으면 가는 것이 본디 그들의 마음입니다. 대왕께서는 백성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 못했음을 걱정하지 않고不患民之不安 신라만 책망하시니 안타깝습니다.”라고 답변한다. 그후 근초고왕은 다시 말을 하지 못했다不復言.
보통사람은 ‘내 나라’보다 ‘내 집’이 소중하다. ‘꽃 피고 새 우는 집’은 꿈도 꾸지 못하면서도 무조건 그렇다. 지도자는 보통사람을 탓하지 말라. 백성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 2500년도 더 지난 옛날 교훈이지만, 내 마음을 기준矩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라絜는 《대학》 ‘혈구지도絜矩之道’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하다.
첫댓글 집...! 아버지가 돈벌어서 엄마가 돈벌어서 같이 나누고 지내는 집.돈 많이 번다고 유세하지않고 자식들과 부모님,지인들에게 베풀어 살듯이 나라도 부모같은 마음으로 나누고 살아야하는데...펑범한 저는 돈을 적게 주는 남편을 탓하지 않고 제가 더 벌어서 살아야겠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