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술렁이는 종로 사회’
정치철학에서 논의되는 ‘플루트 이론’이 흥미롭다.
황금으로 만든 플루트가 있는데, 그 음색 또한 세상 최고였다. 그래서 누구나 그 플루트를 갖고 싶어 했다. 그런데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사람들은 그 황금 플루트를 누가 가져야 하는지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황금 플루트이니까 왕이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왕보다는 플루트와 함께 낭만을 즐기는 귀족이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귀한 플루트는 돈 많은 부자가 소유를 해야 옳다고 떠들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소중한 플루트를 멋지게 잘생긴 귀공자나 소공녀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모두 저마다 황금 플루트 주인을 이야기 했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누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그 귀하고 소중한 플루트는 플루트를 가장 잘 부는 사람이 가져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 그 소리에 동감을 하듯 소리 난 곳을 응시했다.
정치철학의 ‘플루트 이론’은 절대 왕정 시대부터 민주주의 시대까지 아우르며 정치적으로 거론된다. 과연 그 귀하고 소중한 황금 플루트는 누가 가져야 마땅한가? 흔히들 대의민주주의에서 주민 대표로 누가 적격인가? 라는 문제에서부터 임명직 공공기관장 또는 재단 이사장까지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옳은 것인가? 등 유사한 경우에 많이 적용되는 이론이다.
최근 종로 사회가 술렁이는 모습이다. 얼마 전 종로문화재단 대표이사 임용으로 주민들은 의구심을 표했었다. 그리고 또, 종로복지재단 이사장 및 이사들에 대한 선임에 대해서도 설왕설래를 보였다. 주민들은 한마디로 실망스럽다는 의견들이었다. 대한민국 1번지 종로구 주민의 눈높이가 아니라는 평가였다. 종로를 무시하는 인사가 통탄스럽다는 의견들이었다.
그러다가 지난달 27일 종로구시설관리공단 신임 이사장 임명식 및 취임식이 열리면서 종로 주민들은 크게 술렁였다. 단언컨대 주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이는 종로를 무시하는 인사라고 지적했다. 종로를 삼류 지역으로 추락시키는 행위라고 개탄했다.
신영자 신임 공단 이사장 임용에 대한 거센 반발은 세 부류로 나뉜다. 우선 국민의힘 종로구 당원들 입장에서는 국민의힘 당원도 아닌, 오히려 더불어민주당 성향인 사람을 임용한 것에 대해 불만이 터진 모습이고, 더불어민주당 종로구 당원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공단 이사장이 됐는지에 대한 의혹스런 눈초리다. 세 번째로 숭인동 등 종로구 동쪽 지역 주민들은 과연 공단 이사장 자격이 되는지에 대한 탄식조다. 이처럼 불만과 의혹 그리고 탄식이 혼합된 거센 반발 조짐은 종로 사회를 술렁이게 했는데, 그 파장이 결코 만만치 않은 형세다.
여기서 같은 당원이 아니기 때문에 터진 불만의 소리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일면 소아병적이기도 하다. 민주당 당원들이 갖는 의혹은 실체가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입증되지 않는 억측만의 의혹은 결국 찻잔 속에 태풍으로 끝난다. 하지만 같은 동네 주민들이 터트리는 탄식은 의미심장하다. 주민 정서에도 맞지 않고, 주민 눈높이에도 안 맞는 인사는 종로를 삼류 동네로 만드는 실책이라는 탄식은 향후 종로를 무시한 댓가를 치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종로구청장의 인사는 정무적이다. 인사권 자체가 구청장 고유권한이라는 법정 권리 아래 매우 정략적으로 단행되는 것이 관례다. 그러니까 정무적 인사는 주관적 판단과 선택으로 이뤄진다. 물론 객관적 임용 조건이 규정되어 있지만, 차별 없는 세상으로 변해 가는 시대에서 객관화 또한 무용지물인 셈이다. 사실 “객관화를 쫓다가 망하고, 주관화를 쫓다가 패한다”는 말도 있듯이 객관화와 주관화는 엄밀히 같은 맥락이다.
결국 이러한 종로구청장의 인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이 반영된 결과인데 그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칸트의 의무론도 세상의 정의를 지키는데 아주 소중한 원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