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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ㄹㄹㄹ릉~~!! 컷!!
유진이 생일잔치를 치르느라 피곤했을 아내의 새벽잠을 깨울새라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껐다.
일요일, 거리는 차분했고 북한산 너머엔 먼동이 트고 있었다.
먹고 살 꺼리, 당과 관련한 뒤숭숭한 일정들을 떨쳐 버리고 올림픽 대로에 차를 올렸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차들을 뒤로 하면서 경부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고 영동고속도로로 차를 옮겨 조금 달리니 여주휴게소다. 한시간 정도 소요. 돈까스 한접시로 요기를 하고 중부 내륙을 한시간 남짓 달리니 문경이다. 34번 국도로 차를 옮겨 25분 정도 달리니 안동, 여느때와 달리 시가지를 둘러 볼 수 있는 태화동 강변길을 택하여 20년이 지나버린 고교시절의 추억을 상기하며 변화된 풍경들을 접할 수 있었다.
고향 영덕이 시작되는 지점의 친구집에 들러 인사를 하고는 또 달렸다
`아, 이제 창문을 열어야지'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코를 뚫고 들어가 발가락까지 전해져 왔다
옥계산장! 연기가 몽실 몽실 올라오고 있었고 헛기침을 하며 들어선 집안엔 올찬누리와 다올누리가 밤을 구워먹고 있었다.
`아부지는?'
`어머니랑 배추 가지러 가셨는데요'
다올이는 눈 수술한 것이 마무리라 덜 된 탓인지 부끄러워 하는것 같았다
10분정도 지났다는데 만나지 못햇으니 윗마을로? 하며 상옥의 마지막 마을로 차를 돌려 오가피 농장도 둘러보고 6년전에 만들어 놓았던 나무 간판의 기둥이 삭아서 쓰러진채 방치된 놈을 일으켜 길가에 바로 세워두고 양지밭도 살폈다. 사람의 출입이 없었던 터라 입구는 풀이 무성했다.
나중에 마을의 공동 납골당을 만들 부지다
빼어난 풍경에 예전엔 고시원 부지로 선정했던 곳이다
오가피는 차분?하게 자라고 있었다
권태순 노인이 사는 마을에 다다르니 마을 진입로가 콘크리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다
마을 건너편 암벽위의 논은 꽤나 넓었고 저곳을 접수하면 30가구의 먹거리는 충분히 해결 되리라.
탁이형에게 전화를 하니 주응이란다
엇, 들어오다가 못 만났는데?
차를 돌려 산장엘 가니 곧 형수랑 형이 배추랑 무를 싣고 들어 왔다
월동 준비를 해야하니 먼저 소주부터 한잔 하자고 하여 한병을 까면서 오가피와 카페운영등에 관한 논의들을 잠깐 나누고 나오니 집지을때 한 번 본듯한 회원 종대씨 부부가 아이와 함께 들어온다
인사는 짧게. 산 중턱에서 흙을 비집고 내려온 표층수? 심층수?를 먹을 물로 사용하기에 땅에 묻어둔 배관과 물을 걸르는 세개의 물통을 보온덮개로 싸고 비닐을 두르는 일이었다
이런류의 일에 있어 탁이형은 대충 주의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오가피 택배시 사용하다 남은 공기주머니 비닐(맞나?)로 일차적으로 통을 싸고 그럭저럭 대충? 마무리를 했다
하룻밤 더 유하고 길 떠나기를 제안하는 형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둘러 여행?을 진행할 요량으로 영덕으로 나왔다
황장재를 넘으면서 마주친 버스를 보면서 버스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친구 "무식"이와 통화를 한 탓에 읍에서 기다리니 전화가 없다. 일마치고 전화를 준다더니...밤은 깊었고 까아만 어둠을 헤집고 강구항으로 달렸다. 한시간여를 기다리니 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두시간 동안 중매인의 방울소리를 따라 다니며 가격 매기기를 구경했는데 오징어가 주를 이루었다
산 오징어가 대충 한 바구니에 20마리 가까이 담겼는데 평균 가격이 2만원 꼴이다
한 배에서 올라오는 통이 대충 20개 내외였고 승선한 사람들은 5명에서 8명이다
40만원에 저 사람들이 나누어 가지겠지?...
청하에 다다르니 졸음과 피곤함이 겹쳐 차를 길가에 세웠다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11시가 넘었다
흥해 장터에 들러 이발소를 찾으니 간판은 여러개가 보이는데 이름이 전부 "이용소"다.
"이발"과 "이용"의 차이가 해석이 난해하여 파출소 옆 가게문을 빼곡이 여니 안심이다
잘 정돈된 가게에 노인 한 분의 머리를 만지던 오십은 훌쩍 넘어 보이는 주인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머리를 정말 시원하게 잘 감아주었다
포항 교도소 근처의 공사장 함바 식당을 찾아가 요기를 하고 교도소에 접견신청을 하니 1시다.
아차 밥먹고 운동할 시각인데...결국 50분이 지나서 칭호번호 3069번 유기수 건설연맹 사무처장님이 나오신다. 조금은 더 수척해 보이는 얼굴에 미소만은 예전 그대로다.
요즘 바깥의 소식들을 나누고, 빵안에는 보일러가 들어 온다니 "호텔"이다.
지난번에 상렬이 형에게 보낸 편지를 보았는데 "술을 끊었다"는 말은 진지하게 강조를 해 놓았던데 "하이 코미디가 아니냐"고 물으니 "이곳에 술을 팔지 않으니 끊은거"란다.
하긴나도 술담배를 끊어 본 적이 있으니...ㅋㅋㅋ
감옥은 어쨌거나 참 좋은? 수양 장소다
50년을 살아온 자서전을 끄적이고 있는 중이라는데 30장 정도 썼으니 200페이지는 될꺼란다.
(형제 인쇄소나 정보와 사람에서는 빨리 손을 써야 할 것 같다..ㅎㅎㅎ)
짧은 접견을 마무리하고 울산으로 내뺐다
지나번 노대에서 만났던 현대 자동차의 친구에게 전화를 해 두었더니 벗이 네명이 모였다
횟집에서 5만원짜리 잡어회를 시켰더니 큰 쟁반에 회를 떠서 눕히지 않고 세운채로 가득 채워져 나왔다.
무채도 깔지 않고 돌자갈도 깔지 않았는데...5명이 먹고도 남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만난 "백식"이는 살이 많이 붙었고 인물도 좋아 보였다
각자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주제는 결국 민노당으로 모아졌고 민노당이 좀 더 잘해야 된다는데 "친구들, 그대들이 참여해서 바꾸어 내야할 세상"이라는 답?만 던져 놓고 마무리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명달"이 가게에서 해장 라면을 들이키고 대구로 기수를 돌렸다.
움직이며 문자 한판을 날리니 "물회 한사발 하고 갔어야 한다"는 대수의 전화가 왔다.
대구에 이르러 "여친"에게 전화를 걸어 "앞산"을 올랐다
내 전화를 받고 벗들에게 연통을 해 놓았단다
"화자야, 사알짝 니만 보고 올라 갈랬더니 ^&^"
저녁이 되니 금오공대 짱을 하던 벗과 그의 친구, 그리고 또 중학교 졸업하고 대구로 이사나오는 바람에 정말 오랜만인 "현식", 술을 많이 마시면 고집을 부린다는 "우섭", 그리고 6년 선배 한분과 또다른 "무식"이란 동생을 둔 "금순"이가 나중에 나왔다.
옥계, 포항, 울산, 대구로 이어지는 "음주 투어"가 되고만 이번 탈출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고 말았다.
대구에서 대전으로 옮겨 하루를 더 유하려 했던 계획은 "진보정치" 기자의 인터뷰 요청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당원의 향기" 란에 실린다는데...내게도 향기가 날래나?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130킬로미터에 바늘을 고정하고 달렸지만 수도권의 정체는 약속시간을 한시간 이상 지연시키고 말았다.
미안한 마음에 8천원짜리 곰탕을 사먹이며 인터뷰에 응했는데 그 기자가 내 말뜻을 잘 알아 먹었으면 향기나는 기사가 올라올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어떤 냄새나는 기사가 올라올 수 도 있을 것이다.ㅋㅋㅋ
첫댓글 정말 음주투어를 하셨군요. 얼굴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음주투어 생각만해도 행복한 여행일것같다. 사람과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고속도로. 나도 조만간 음주투어나 한번 가야 되겠다.
음주투어라....... 인엽이형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10년전 민족무예할때 전국을 떠돌았던 내가 생각납니다... 행복하고 행복한 때였어요.....목표가 똑같은 사람들은 의리도 있고 또한 의기 투합도 잘 되었어요... 지금의 직장생활은 살아남기 위한 권모술수만 존재하고 진정한 선배 진정한 후배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더욱더 그때 그시절의 선배님과 후배들이 생각납니다..... 서울에 눈이 옵니다... 더욱더 그때가 생각납니다... 포항으로 내려갈까 생각도 하지만 아내가 반대를 많이 하는군요........ 암튼 이까페에 들어오면 약간은 내마음이 정리가 되는것 같아 좋아요......... 인엽이형 내가 꼭 한번은 찾아 갈께요...... 그때
터미네이러/ 총기류는 버려두고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