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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의자
조은규 영흥고 1
나는 의자입니다. 내 몸은 폭풍이 휘몰아쳐도 끄떡없던 소나무와 누가 앉아도 으스러지지 않을 듯 견고한 금속 뼈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조공장에서 나왔던 날의 그 설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나의 뼈대를 반사시켜 화려한 빛이 되어 퍼져나가고 내 몸과 어우러져 공장 앞 숲의 울창한 나무들이 뿜어대는 자연의 향기...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나는 곧바로 트럭의 짐칸에 실렸습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친구들 모두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눈을 떠보니 벽돌로 된 건물이 보이네요, 깜빡 잠에 들었었나 봅니다. 나는 짐칸에서 내려와 큰 벽돌 건물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3-8”이라 적혀있는 빈 교실 안으로 옮겨졌고 나는 이곳이 학교의 교실이라는 장소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나는 내 앞에 덩그러니 놓인 책상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앉아 나를 가치 있게 사용할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몸이 따뜻해지자 눈이 뜨였습니다. “햇살이다!” 상쾌한 아침이 왔고 곧바로 누군가가 문을 드르륵 열며 들어왔습니다. 나도 싱글벙글 즐거운 마음으로 나에게 앉을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한 남자아이가 나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그 아이와 지내게 되었습니다. 나는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는 고등학생이며 여러 가지 엄청 많은 공부를 한다는 것, 아침 일찍 와서 밤늦게 까지 내 위에 앉아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소중히 다룬다는 것, 나는 이 아이와 함께 지내게 되어 행복했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향긋한 봄 내음이 사라지고 매미가 우는 아주 더운 여름이 찾아왔고 나는 반 아이들이 지쳐서 힘들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더운 날 공부를 하려니 힘들겠죠. 나는 힘을 냈습니다. 과연 내 의지를 이 아이가 아니, 이 반 애들 전체가 알아줄까라는 의문점이 생겼음에도 힘을 냈습니다. 내 위에 앉은 아이는 공부를 아주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매 쉬는 시간 마다 학생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물어보고 시험을 치룰 때에 쉬는 시간만 되면 몰려오곤 했으니까요. 친구들이 그렇게 몰려와서 질문을 장대비 쏟아지듯이 퍼부어 대면 한 번쯤은 거부하거나 화 낼 법도 한데 이 아이는 모두 답해주었습니다.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그 많은 친구들에게 모두 다 나는 아이가 멋있었습니다. 그리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나는 누군가가 저렇게 떼지어 오면 과연 이 아이처럼 그들을 대할 수 있을까. 부끄러웠습니다. 그 이후 오랫동안 이 질문의 해답을 생각하며 날을 보냈습니다. 그 동안 계절이 바뀌었고 아이 또한 더 성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추운 날이었던 때로 기억합니다. 가을 끝자락이며 겨울이 되기 직전이었으나 내 몸을 에는 듯이 차가운 바람이 불던 날. 나는 처음으로 그 아이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아이는 내게 기대어 앉아 서럽게 울었습니다. 아주 서럽게 큰 시험을 치룬 뒤로 미루어 봤을 때 시험을 잘 치루지 못한 듯 했습니다. 나는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는 아이와 같은 인간이 아니기에 나는 따뜻한 온기 어린 손이 아닌 차가운 강철 뼈대를 가지고 있기에... 아이가 하염없이 열고 나갔습니다. 나는 그저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아이를 볼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도 울고 있을지, 그 이후 나는 많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었고 시험을 자주 치루어습니다.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영원히 튼튼할 것만 같았던 내 소나무 관은 여기저기 찍혀있었고, 낙서로 뒤덮여 있었으며, 영원히 윤기나고 반짝일 것만 같았던 내 강철 뼈대는 녹이 슬고 삐걱거렸습니다. 내가 이 학교, 이 3학년 8반에 온지도 꽤 오래 되었다고 느낄 시점. 나는 내가 더 이상 공장에서 막 나온 그 때와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고, 아이들은 내가 처음 왔을 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변함없이 앉아 늦게까지 공부하고 또 나에게 기대 울곤 합니다. 문득 내가 처음 온 해 내게 앉았던 그 아이가 생각납니다. 아직도 앉아서 공부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시험 때문에 아직도 울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변한 것처럼 그 아이도 변했는지.
마침내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이 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아이들이 잔뜩 기대한 채 들어오겠군요. 이번 해에는 내게 기대어 우는 아이들이 없기를 이 대한민국 OO학교의 이 교실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이제 봄은 왔고 너희들의 미래는 밝으며 시험하나 못 봤다고 울기에는 너희들은 아직 튼튼하고 견고하다는 것을 부디 깨닫기를 바라면서 나는, 나는 봄 내음 가득한 화창한 햇빛이 내리쬐는 이 교실 안에서 새로운 아이를 기다립니다. 나는 의자니까요.
금상
흙
정윤희 혜인여고 2
아버지의 사업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다 쓰러져 가던 우리 집을 강남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로 바꾸어 준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얼마 가지 못했다. 빨리 뜬 해는 빨리 진다라는 옛날 어르신들의 말씀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맞았다. 사업이 승승장구 하던 때와 다르게 우리 집은 엄마와 아버지가 싸우는 고함소리로 넘쳐났고, 그 소리가 너무도 듣기 싫었던 나는 이불 속에서 귀를 막고 할머니가 불러주시던 노래를 웅얼거렸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 밖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혹시라도 엄마가 아버지께 맞아서 죽은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에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집안 곳곳 자리 잡은 빨간 딱지들이였다. 내가 아끼는 곰돌이 인형 ‘윌슨’에게도, 엄마가 좋아하던 그림들에도 사방팔방 어지러울 정도로 새 빨간 딱지들이 마치 ‘여긴 내 자리야’ 하며 영역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엄마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삼키며 웃어보였다. “어, 윤정이 일어났네 배고프지 않아? 밥 먹을래?” 엄마는 우리집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나의 아침이 걱정 되는걸까? 아무리 어렸던 나이지만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집은 망해가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항상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애 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보아도 ‘자 지금 짜증나요’하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지금 애 밥 챙겨주게 생겼어?”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처음부터 싫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이전보다 더 어렸을 때 나를 데리고 흙냄새가 향긋하게 코를 자극하던 할머니집에 자주 갔었다. 할머니 집은 참 평화롭다. 내가 좋아하는 윌슨을 닮은 강아지도 있고 무엇보다 아파트에서는 꿈도 못꿀 흙 놀이를 할 수 있었다. 흙이 비위생적 이라는 주민들의 반발로 흙이 있는 놀이터를 전부 딱딱한 것들로 다 바꾸어 버린 이후에는 할머니집에 가자고 자주 졸랐다. 어느 샌가 부터는 흙놀이를 할 수 있는 할머니집에 가지 않았다. 뭐 아버지가 어른들이 말하는 ‘성공’을 이룬 뒤부터는 변한 것 같다. 그래서 난 용기를 내어 변한 아버지를 되돌리기 위해 할머니 집에 가고 있다. 귀를 찢을 듯한 소음, 햇살을 가리는 높은 건물들을 지나 3시간 정도 가면 할머니집이 나온다. 왠일인지 아버지가 나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신 덕분에 우리 가족에게도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왔다.
할머니집에 도착하자 반갑게 맞아주시는 할머니 품에 안겼다. 할머니 냄새, 방금 밭에 다녀오신건지 할머니의 품에서는 흙냄새가 가득했다.
1년 사이에 얼굴에는 주름이 더 많아 지시고 손은 더 울퉁불퉁 더 늙으신 것 같았다. 이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도 마음이 울컥 하셨는지 눈가가 촉촉해 지셨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시간을 갖기로 하고 나는 뒷마당으로 달려나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흙놀이를 시작했다. 손톱사이에 끼는 흙들이 여간 신경쓰였지만 흙을 계속 만지작 거렸다. 그리운 나의 냄새, 내가 흙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냄새 때문이다. 돈, 아스팔트, 콘크리트, 페인트 그런 화약제품의 냄새는 너무 머리가 아프고, 그리고 또 나와 아버지와 엄마를 아프게 한 것들 이었다. 역하다. 그래서 너무 싫다. 흙이 손가락 사이로 후드득 떨어졌다. 흙은 너그러워서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꾼다. 모든 것들을 만들 수 있다.
아버지가 원하는 안정적인 집도, 윌슨도 만들 수 있다. 일단 나는 아버지가 원하는 안정적인 집부터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흙으로 무언가를 하나씩 만들고 있었던 그 때 내 뒤에 짙은 그림자가 졌다. 아빠였다. 아빠의 목소리는 내 생일 선물로 윌슨을 주었던 그날의 상냥했다. “윤정아, 지금 뭐 만드는 거야?” “응, 이건 아빠가 좋아하는 돈, 이건 윌슨, 그리고 우리가 살집 지금 우리집이 없어서 엄마랑 싸우는 거잖아. 이제 싸우지마. 내가 만들었어 우리집” 아빠는 말을 잇지 못 하였다. 그리고는 나를 꽉 안으며 미안하다고 울었다. 두 번째 였다. 아빠가 내게 눈물을 보인 것은. 재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아빠는 눈물을 더 이상 흘리지 않았다. 가장으로서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콤플렉스는 아빠의 없는 눈물을 더 마르게 했고 무엇이 그렇게 아빠를 힘들게 한건지 아빠가의 등은 예전보다 더 휘고 작아져 있었다. 가난한 시골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몸이 편찮으신 할아버지를 대신에 일찍부터 소년가장이 된 것? 아니면 췌장암에 걸린 엄마의 병원비? 어떤 것인지를 모르겠지만 아빠는 무거운 삶의 짐으로 인해 작아져 있었다. 아직도 나를 껴안고 울고 있는 아빠를 흙이 묻은 손으로 어색하게 토닥였다. “괜찮아 아빠, 이제는 힘들면 울어” 아빠의 눈물은 내 등을 축축히 적셨다. 그날 흙냄새가 가득한 뒷 마당에서. 아빠 이제 힘들면 울어, 나랑 엄마랑 윌슨이 지켜줄게.
은상
의자
강혜원 고양예술2
아빠가 의자 다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톱으로 나무의자 다리를 자를 때 나는 소리는 가족 모두를 미치게 만들었다.
아빠는 늘 애매한 사람이었다. 애매한 의사표현과 애매한 표정은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그로인해 아빠는 늘 주변에 아빠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뿐 이었다. 엄마와 내가 몇 번이나 정확한 표현을 하라고 했지만 아빠는 신경쓰지 않았다. 몇 번이나 아빠는 사기를 당할 뻔 했고, 그럴 때마다 일을 해결하는 건 엄마였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이혼 문제가 여러번 오갔지만 그럴 때조차 아빠는 애매했다. 엄마는 친정에 가있겠다며 외할머니 집으로 떠났고, 아빠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가 떠나고 한 달 뒤부터 아빠는 의자의 다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사춘기가 와서 유독 예민해진 동생은 의자 다리를 자르는 소리에 예민해 했다. 그런 동생의 모습과 아랑곳 않고 의자 다리를 자르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아빠가 그렇게 하다가 말거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곤 마지막에 목소리에 힘을 주어 “너네 아빠는 늘 애매하니까.”라고 덧붙였다. 엄마의 마지막 말을 듣고 엄마에게 좀 미안해졌다. 결국 나는 엄마의 말대로 아빠도 동생도 무시하기로 했다.
아빠는 절대 전기톱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톱으로 천천히 의자 다리를 잘라냈다. 가끔은 희열의 미소를 짓기도 했다. 아빠는 항상 퇴근을 할 때 의자를 사왔다. 엄마였다면 쓸데없는 소비를 한다며 아빠를 나무랐겠지만 이제 그럴 사람이 없었다. 나는 차라리 아빠를 가만히 놔두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 말대로 아빠는 애매하니까. 어중간 하게 하다가 말테니까.
두 달 째다. 아빠가 의자 다리를 자르기 시작 한 지. 그러니까 엄마가 집을 나간 지 세 달 째가 되는 셈이다. 세 달이면 사실상 엄마가 이혼을 마음먹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엄마는 나와 통화를 할 때 아빠에 대해 전혀 묻지 않았다. 내가 아빠에 대해 이야기해도 그저 ‘응’ 하고 답할 뿐이었다. 아빠 또한 엄마에 대해 묻지 않았다. 유일하게 동생만이 내게 엄마에 대해 물었다.
“언니, 엄마 언제 온 데?”
“몰라, 네가 통화해 봐. 엄마랑 싸웠다고 전화도 안 하냐?”
동생은 짜증난다는 듯 나를 흘기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 때 다시 의자 다리를 자르는 소리가 내 방으로 새어 들어왔다. 그 소리는 결국 동생을 화나게 만들었다.
“아빠! 그만 좀 해! 시끄러워, 진짜. 아빠가 자꾸 이러니까 엄마가 집에 안 오는거야!”
아빠는 동생의 말을 듣곤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고 보니 안방에 들어가 본 지도 오래됐다. 아빠가 의자 다리를 자르기 시작했을 때부터니까 학교에 다녀와서 안방을 청소하려고 하면 늘 문이 잠겨 있었다. 안방에는 아빠만 들어갈 수 있었다. 아빠는 자신이 잘 청소하고 있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동생의 짜증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계속 의자 다리를 잘랐다. 언젠가 한 번 아빠에게 왜 의자다리를 자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빠는 초점 없는 눈동자로 의자를 쳐다보며 내게 말했다.
“의자. 다리. 참고 있어. 망가졌어. ”
아빠는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대답을 듣고 자리를 피했다. 왠지 모르게 서늘한 아빠의 눈빛이 나를 짓눌렸다. 사실 망가졌다는 아빠의 대답이 조금은 불안했다. 아빠가 자꾸 고등학생 시절의 육상선수였던 자신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사고로 인해 아빠는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됐다. 아빠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그 뒤로 아빠는 애매한 사람이 됐다. 난 그게 후유증이라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시작한 4교시 수업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졸고 있었다. 엎드려 자려고 하던 찰나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나는 혼날 짓을 했나 하는 생각으로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은 나에게 아빠에 대한 소식을 알렸다. 순간 아빠가 의자 다리를 자르던 장면과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결국 아빠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병원에는 동생과 엄마가 와있었다. 엄마는 울고 있었고 동생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를 처음 발견한 건 동생이었다. 피가 흥건한 아빠를. 나는 경찰에게 상황 설명을 들었다. 아빠가 자신의 다리를 톱으로 자른 것이다. 육상 선수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의 좌절감이었던 걸까? 엄마와 동생과 나 중 그나마 내가 제일 정상적이었다. 경찰은 내게 아빠가 육상 선수였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경찰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안방에 가득한 육상 선수시절의 아빠 사진은 다리가 다 잘려 있었다. 그런 사진들이 벽에 두서없이 붙어 있었다. 마치 아빠의 심정처럼.
의사는 수술실에서 나와 우리에게 다가왔다. 과다출혈로 위험할 뻔 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고 했다. 엄마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갔다. 아빠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아빠의 얼굴은 편해보였다. 늘 애매하던 아빠는 결단력 있게 자신의 다리를 잘랐다. 애매함을 지탱해주던 엄마가 없어서 이렇게 된 걸까? 아빠가 다리를 잃었음에도 나는 왜인지 편안했다. 아빠는 나보다 더 편하겠지.
은상
흙
원상준 고양예술고 1
제 부모님께서는 특이한 수집품이 있습니다. 첫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놀러간 곳의 흙입니다. 이 흙은 제가 태어난 해부터 모으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저희 집 거실에는 흙병이 늘어서 있습니다. 때문에 저희 집에 놀러온 아이들이 흙부자라고 놀리기도 합니다. 저는 그 더러운 것을 왜 모으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부모님은 이 흙이 미래하는 말만 하셨지요.
학교에서 농장체험을 간다는 공지가 나왔습니다. 기간도 무려 열흘이 넘었지요. 환호보다는 한숨이 나왔습니다. 몸 고생 마음고생의 문이 열린 것 같았습니다. 가방을 싸는 손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농장 생활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아직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온 몸이 지치고 지루했습니다. 배추 뽑기, 마늘 심기, 토마토 따기 등 다채로운 체험을 했지만 그저 재미없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습니다. 점점 더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만 커졌습니다. 그러던 중 농부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지긋지긋하게 듣던 이 흙은 미래다. 라는 말이었지요. 그 순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왜 그런지 묻고 싶었지만, 그 질문을 하면 저도 그 더러운 흙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 머뭇거렸습니다. 질문이 입 안에 맴도는 동안 다른 아이가 물어봤고 저는 너도 모르게 안도했습니다. 농부의 말은 실로 단순했습니다. 작물들은 흙에 있는 양분을 먹으며 자라니 양분을 품고 있는 흙은 작물의 미래하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제 농장 생활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봐 슬슬 보기 싫어지던 작물들에게 동질감이 느껴지고 교감이 이뤄지는 듯 했습니다. 내가 먹을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대충하던 손길에 정성이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똑같게만 보이던 작물들이 하나하나 개성이 있는 아이들로 변했습니다. 빨리 마치고 쉬고 싶다는 마음 대신 오래 걸리더라도 잘 자라 줬으면 하는 바램이 생겼다.
친구들도 내 변화를 알아채고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신 미래가 누구의 것인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이틀이 길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여드레는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저는 강낭콩을 사 흙에 심었습니다. 매일같이 물을 주고 예뻐 해주자 콩은 순식간에 자라났습니다. 건강하게 자란 콩이 나의 미래 같았습니다. 농장에서의 생활은 저에게도 잊혀지지 않은 추억이 되어 콩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상
의자 – 바다로 가는 첫 걸음
조서희 고양예술고 2
“어때요, 기분 좋아요?”
나는 고개를 살짝 비틀어 내 등에 업혀있는 그에게 말했다.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귀에서 모래와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바다는 짙은 군청색을 띄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오늘따라 바다색이 더 짙은 것 같다며 말을 걸었다. 이번에도 그는 아무 말 않았다. 나는 자세를 고쳐 매 그를 더 더 끌어당겼다. 그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 발밑까지 전해져왔다. 모래사장에 새겨진 발자국이 내 것이 아닌 그의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곳에 이사 온 지 벌써 반 년이 되었다. 도시와는 다른 이곳의 뻥 뚫린 풍경이 맘에 들었던 것 같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바다의 사람들이었다. 짙은 바다색을 띄고 있었다. 나는 내 이웃들이 마음에 들었다. 다급하고 여유 없던 도시 사람들과는 달리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그들에게서는 바다의 짠 냄새가 났다. 어딜가든 이곳은 전부 바다에 물들여져 있었다.
이사를 와 이곳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도움을 줬던 분이 한 분 계신다. 집 앞 구멍가게 사장님이었다. 사장님은 내가 구멍가게에 올 때면 매번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씩 해주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마치 어렸을 적 엄마가 들려주던 전설같은 이야기였다.
내가 구멍가게에 자주 찾아가는 이유가 또 한 가지 더 있다. 사장님의 아들이었다. 사장님의 아들, 그는 내가 갈 때마다 의자에 앉아 가게 밖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그가 생각하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걸 초연 한 듯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눈빛을 어린 남자아이의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 눈빛이 내가 그에게 존댓말을 써가며 결코 낮추어보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내가 구멍가게에 갈 때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항상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의자였다. 나는 그가 걷거나 누워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가 의자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하반신 마비 때문이라는 것을 듣게 된 것은 내가 이곳에 온 지 다섯 달이 되던 때였다.
내가 그에게 같이 바닷가로 가자고 말했을 때 그는 처음으로 내 눈을 바라봐주었다.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그가 의자에서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의자는 그를 속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딜 가지 못하는 그가 의자에 묶여있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어쩌면 그는 걷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의자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업고 바닷가에 가고 싶다는 나의 말에 사장님은 조금 놀란 듯 보였다. 가볍지 않다는 사장님의 말에도 나는 나의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바다에서 불어본 바람인걸까. 나는 꼭 그와 바다를 거닐고 싶었다.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의자에서 그를 일으켰다. 그의 허벅지가 땀으로 축축했다. 그가 나에게 업혔다. 사장님의 말대로 그의 무게에 처음에는 살짝 휘청거렸지만 금방 중심을 찾을 수 있었다. “불편하지는 않아요?” 바닷가로 떠나기 전 그에게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를 업은 채로 뒤로 돌아 그가 앉아있던 의자를 보았다. 그가 마침내 의자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몇 분만 더 걸으면 바닷가의 끝이었다. 더 이상은 일반인들이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다시 되돌아가면 그는 또 의자에 앉을 것이다. 나를 이끌게 했던 그 눈빛을 가진 채로 말이다.
“앞으로 자주 놀러 와요. 의자에만 앉아 있는 거 지루하잖아요.”
그가 내 목을 더 끌어당겼다. 이럴 때는 어김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이제 정말로 바닷가의 끝이었다. 뒤를 돌아 왔던 길이 되돌아가려 하던 때였다.
“감사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파도 소리와 겹쳤다. 나는 더욱더 짙어진 바다를 보았다.
은상
흙
김경수 고양예술고 2
“뭐해 어서 가자고. 그렇게 느려서 어디 써먹겠나.”
어깨에 자기 키만한 나무막대와 접이식 삽을 걸친 시형이 부랴부랴 포대자루를 챙기는 민서를 다그쳤다. “좀 너가 행동을 너무 빠르게 안하고 천천히 하면 된다니깐. 내가 느린게 아니라고.” 둘은 서울 북쪽의 신도시에서 살고 있는 농부였다. 원래는 서울의 빌라 뒤편에 있는 개인 텃밭에서 상추를 키우며 살았지만 워낙 주변이 시끄럽고 공기가 좋지 않다보니 상추를 키울수가 없었다. 이 답답한 서울에서 어떻게 농사를 해야하나에 대해 고민하다가 북쪽에 있는 신도시로 이사를 가기로 정했는데 시형이 지난번에 일년동안 키운 상추들 중에서 그나마 품질이 좋은 녀석들만 골라 일산에 위치한 농수산물센터에 팔러 갔을 당시 이곳이다 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고층 아파트와 유흥단지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지 나머지는 전부 풀밭이나 산 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주로 흙을 판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과일이나 벼, 나물들은 키우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흙이 주를 이루었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신도시 농부들은 바보 취급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자기들이 바보 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우리가 왜 이제야 이 땅의 흙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알았을까? 진작에 알았다면 얼마나 좋아.”
“그만큼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거지. 사람 안 몰리고 좋자나.”
“그렇긴 해.” 시형은 호미를 태양에 비춰보며 말했다. 그는 호미를 비추다가 갑자기 뭔가 중요한 것이라도 생각이 난 듯 민서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 이 지역 말고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들, 이쪽 흙이 좋은 걸 알고 사가는거 아냐?”
“당연하지. 좋으니깐 사가는거 아니 잠깐만.”민서도 고민에 빠졌다.
“흙이 좋은 걸 알면 왜 땅을 사러 오지 않는거지? 나 같으면 바로 사러 오겠다.”
둘은 마치 학창시절로 돌아온 것 마냥 서로 머리를 맞대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한 오분이 지났을려나 시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 뭐 우리만 좋으면 장땡 아니냐. 으 머리아파라.”
“하하 그렇네. 돈 많이 벌로 잘 살면 그게 끝이지. 흙이나 담으러 가자.”
시형은 그렇게 말하며 생수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민서가 허겁지겁 포대자루를 날리며 뛰어갔다.
“야 이제 내일이면 돈 엄청나게 물어오겠구만.”
“그렇지, 내일 트럭이 새벽 여섯시에 온다니깐 우리도 이만 들어가자고.”
다음날 이었다. 시형은 이 신도시에서 기른 첫 흙을 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대충 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그는 서둘러 밭으로 달려갔다. 이미 민서가 나와서 트럭 운전수에게 포대를 건네고 있었다.
“일찍 오셨네. 약속한대로 흙 열한포대 맞죠?” 그러자 트럭 운전수가 손가락으로 일일이 세며 확인을 했다.
“어 맞네, 돈은 계좌로 들어갈거니 걱정말고 그보다 이번이 마지막 만남 이라는게 아쉬워.”
“예?” 시형이 잘 듣지 못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 또 처음 왔다고 잘 모르나 본데 여기 곧 있으면 기다란 빌딩도 들어오고 그 뭐냐 백화점이랑 영화관도 세워진데. 얼마 있으면 시청에서 보상금 주러 나올거야.”
“그 그럼 저희는 어떡하죠?” 그러자 트럭 운전수가 말했다.
“뭘 어떡해 잘 해야지. 그럼 나는 이만 가본다이.”
트럭이 떠나고 뿌연 연기가 이들을 덮쳤지만 시형과 민서는 미동도 하지 않고 점점 작아지는 트럭 꽁무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시형이 말을 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땅이 아니라 흙을 산거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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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산문 은상 맨 마지막 흙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물을 서울로 사형을 시형으로 고쳐줬으면 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오자가 났군요. 관계자에게 연락해서 고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