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9장 메시지>
유다의 종말에 담긴 하나님의 긍휼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 12:1-3)을 계승하고 시내산 언약(출 20-24장)의 직접적인 은택 아래에서 살던 그들, 특별히 다윗 왕국의 언약(삼하 7:5-16)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한때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은 적이 있었다(겔 16:13). 그러나 지금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했고 마지막 남은 예루살렘마저도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제 다윗 왕국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과 다름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바벨론 포로들에게는 70년이 찰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며(렘 25:11-12; 29:10),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약속의 땅에 대한 정화와 더불어 새롭게 임하게 될 평안으로 이해되어야 했기 때문이다(렘 29:10). 그리고 바벨론 포로들에게 이 약속만이 유일한 소망이 되어야 했다. 이에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예루살렘의 멸망이 가까이 다가 왔음을 예고함으로써 바벨론 포로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살아야 할 것을 받아들이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유다 왕국의 종말을 예견하는 애가를 지어 부르게 하셨다(겔 19:1). 이 애가는 두 개의 비유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암사자를(겔 19:2-9), 또 하나는 포도나무(겔 19:10-14)를 각각 노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애가는 나라나 민족의 파멸에 대한 슬픔을 나타낸다(암 5:1; 렘 7:29; 9:10). 또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한다(삼하 1:17; 대하 35:25). 여기에서는 다윗 왕조의 운명을 비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1. 유다 왕국의 최후를 위한 애가
첫 번째 애가에 등장하는 사자 이미지는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창 49:9)는 야곱의 축복을 연상케 한다. 이런 점에서 다윗 왕국을 ‘사자’로 비유한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따라서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겔 19:2)에서 암사자는 다윗 왕조를 암시하고 있다. 애가는 이 다윗 왕조와 관련된 두 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1) 하나는 잔인한 사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을 지닌 젊은 사자에 대한 비유이다(겔 19:3-4). 이 사자는 강한 사자로 자라났지만 포악하기로 유명해졌고, 나중에 열방의 함정에 빠져 애굽으로 끌려간 것으로 묘사된다. 이 사자는 요시야(Josiah, BC 640-609)를 계승한 여호아하스(Jehoahaz, BC 609)를 가리킨다. 곧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는 비유에서 언급하고 있는 역사적 배경으로 바로 느고(Neco II, BC 610-594)가 여호아하스를 볼모로 잡아간 사건과 일치하기 때문이다(왕하 23:31-33).
당시 바로 느고는 무너진 앗수르의 재건을 도모하고 있는 앗수르우발릿(Asshur-Uballit II, BC 612-609)과 동맹을 맺고 하란을 탈환하기 위해 유프라테스 강변의 갈그미스(Carchemish)로 진격했다(왕하 23:29; 대하 35:20-24). 그 과정에서 요시야가 무모하게도 느고의 길을 막아섰지만 요시야는 이 전쟁에서 죽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느고는 바벨론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이에 느고는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루살렘을 치고 요시야를 이어 재위한 지 불과 3개월밖에 안된 여호아하스를 수리아의 립라(Riblah)에 있는 사령부로 소환하여 왕위를 박탈하고 애굽으로 유형을 보냈다(왕하 23:31-35; 렘 22:10-12). 그리고 여호아하스의 형제인 엘리아김의 이름을 여호야김(Jehoiakim, BC 609-597)으로 바꾸고 애굽의 봉신으로 유다의 왕위에 앉혔었다.
2) 또 하나는 다른 사자에 대한 비유이다(겔 19:5-9). 이 두 번째 사자 역시 강하게 성장하였고 악독한 사자처럼 사람들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겔 19:5-7). 그러자 여러 나라들이 그를 공격하여 함정에 빠뜨린 후에 잡아서 바벨론 왕에게 끌고 갔다. 바벨론 왕이 그를 감옥에 가둠으로써 더 이상 그 사자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내용이다(겔 19:8-9). 이 두 번째 사자가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있었다.
유력한 인물로는 여호야김을 꼽는다. 여호야김 시대(BC 609-597)는 사회적인 불의와 압제가 극에 달하였었다(렘 22:12-17). 이것은 으르렁거리는 악독한 사자(겔 19:6-7)와 잘 어울린다. 하지만 여호야김은 애굽의 봉신으로 있다가 BC 605년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에 충성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느부갓네살의 봉신이 되었지만(왕하 24:1) 느부갓네살을 배신하고 반기를 들다가 BC 597년에 바벨론의 분견대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왕하 24:6-10; 렘 35:11). 이런 점에서 여호야김 대신에 여호야김의 공동 통치자였던 여호야긴(Johoiachin, BC 597)을 유력한 인물로 언급한다.
여호야긴은 여호야김과 마찬가지로 악을 행했다(왕하 24:9; 대하 36:9). 여호야김이 죽고 난 후 백성들에 의해 공식적인 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왕하 24:8) 바벨론 군대의 침공으로 그의 통치 기간은 3개월 만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포로가 된 여호야긴은 결국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에스겔서는 여호야긴에 대해 우호적으로 대하고 있으며, 본문의 내용은 여호야긴이 포로생활 37년째인 BC 560년에 복권되었다(52:31-34)는 사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의 연구로는 시드기야(Zedekiah, BC 597-586)를 가장 유력한 인물로 꼽고 있다. 비록 이 애가에서 발생한 사건이 과거처럼 묘사되었다 할지라도 애가의 예언적 성격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여호아하스의 파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돌이키지 않고 악행을 일삼고 있는(렘 34:8-16) 시드기야에 대한 미래적인 사건을 묘사하는 것으로 본다면 애굽에 대한 유화적 정책을 펴고(겔 17:15) 바벨론에 대항하여 반란을 도모한 사건(렘 27:1-11)은 본문과 잘 어울리게 된다. 이것은 또한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그 위에 내 그물을 치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에서 심판할지며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겔 17:19-21)는 경고의 성취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로써 유다 왕국은 시드기야를 끝으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2. 유다 왕조의 종말을 고함
유다 왕국의 종말과 관련된 두 번째 애가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포도나무를 비유로 들고 있다. 이 포도나무는 충분한 물을 공급받은 풍성한 나무로 묘사된다(겔 19:10). 그 가지들은 강해서 통치자의 지팡이로 사용되기에 적합했고 그 나무는 점점 자라나서 많은 가지들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다윗 왕조의 왕들을 가지는 탁월성을 암시한다(겔 19:11). 그러나 그 나무는 갑자기 뿌리가 뽑히고 바벨론 군대를 상징하는 동풍에 말라버리게 된다(겔 19:12). 그 나무는 뜨거운 광야에 옮겨 심어지지만 결국 불이 나와서 그 열매와 강한 가지들을 모두 태우고 만다(겔 19:13-14). 이 내용, 즉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유다 왕국의 멸망을 예고한 에스겔 17장의 경고가 마침내 성취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한때 유다 왕국은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절을 누린 바 있다. 이때는 다윗 왕국이 약속의 땅과 관련해 선포하신 언약의 규례(레 26장)에 따라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겔 5:6)는 말씀처럼 유다 왕국은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저버린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겔 19:14)라고 할 정도로 쇠약해지고 말았다. 이것은 더 이상 유다 왕조에서 왕권을 행사할 인물이 없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로써 유다 왕조는 시드기야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왕권을 행사할 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는 말씀으로 약속하신 것처럼 바벨론 땅에서 새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결국 시드기야의 죽음은 그가 죽은 땅 바벨론에서 새롭게 변화될 다윗 왕조를 탄생하기 위한 ‘씨’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