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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석 대표 | 한정석 편집위원·시너지웍스 대표
해마다 11월이 되면 TV방송사는 PD, 기자, 아나운서 등 신규사원 모집공고를 낸다. 대개 박진감 넘치는 배경음악과 함께 자막에는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역량 있는 인재를 찾습니다’라는 내용의 문구가 뜬다. 필자도 이런 공고를 보고 1993년 KBS 19기 프로듀서 공채에 응모했고 합격의 행운을 얻었다.
입사 후 선배들의 환영식을 거치고 나니 몇몇 입사 동료들과 선배들 간에 은밀한 회합의 자리들이 눈에 띄고는 했다. 바로 대학 운동권의 점조직 멤버들이었다.
80년대 후반, 386 운동권 조직 가운데 NL(민족해방)계열, 그 중에서도 주사파 멤버들은 국가조직의 핵심에 적극 진출해서 혁명의 방가드를 구축할 것을 결의하고 교육기관, 사법기관, 언론기관 등 3대 기관에 세포조직으로 진출했다. 그 결과 교육 쪽에서는 ‘전교조’, 사법기관에서는 ‘우리법 연구회’및 ‘민변’그리고 언론기관에서는 ‘언노련’이 탄생하게 된다.
방송사의 경우 동료와 선후배 간의 끈끈한 연대의식은 다른 기관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왜냐하면 신입 기자, PD 등의 업무습득이 선배와 후배 간에 맨투맨 도제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PD들의 경우 속칭 ‘입봉’이라고 하는 첫 연출은 선배들의 지도와 관심 속에 의식처럼 치러지고 이 과정은 하나의 ‘통과의례’가 되는데 이를 통해 PD들은 하나의 문화적, 정신적 공동체에 귀속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공동체는 93년 방송노조가 등장하면서 좌파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선배와 후배 간에 도제로 이어지던 인격적 유대관계는 ‘이념성’으로 대체됐고 방송사의 간부들과 경영진은 노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막강한 방송노조가 노사문제를 떠나 방송의 편성권과 인사권까지 장악하게 됐다는 점에 있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한 사회개혁이라는 명제의 기저에는 분명하게도 386 주사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들의 일부는 혁명을 포기하고 현실의 자리로 돌아간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적 ‘때’는 온전히 벗겨지지 않았다.
한국의 방송계 특히 PD나 기자의 문제점은 한 세대가 좌파적으로 우월하다는 데 있다. 그들은 내부경쟁으로 도태돼도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급여가 줄어들지 않는다. 생존경쟁이 부재한 조직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하게 방송사 조직이다.
좌파적 이념을 굳건히 견지하기만 한다면 승진을 못해도 존경받는 ‘선배’로서 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오히려 외부활동을 통해 명예와 부도 누릴 수 있는 조직이 바로 대한민국의 방송사다. 그중에 특히 KBS, MBC PD들이 그렇다. YTN의 기자도 그 예외가 아니다.
흔히 PD들 사이에서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해야 한다’는 말이 금과옥조로 통용된다. 다시 말해 PD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며칠 전 MBC PD수첩의 광우병 제작진이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고 한다. 방송 내용이 ‘고의적’으로 왜곡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가 발생했다는 것이 검찰 기소 사유의 핵심이다.
MBC제작진은 ‘고의’가 없었다고 항변한다. 그러면 ‘사과’하고 ‘정정’하면 될 일이다. 고의가 없었다면서도 법원의 ‘정정보도’명령을 거부하는 MBC PD들의 비겁한 모습은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쯤은 훔쳐도 되는 것 아니냐’는 위선적 태도로 읽힌다.
그런 방송프로그램은 더 이상 저널리즘이 아니라 ‘너절리즘(?)’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들이 영웅처럼 보일지 몰라도 한 때 그들과 동료였던 내 눈에 그들은 시쳇말로 너저분한 ‘양아치’들의 ‘이념적 패악질’로만 보여 안타까울 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시너지웍스 대표 前 KBS PD<KBS 일요스페셜>, <세계는 지금>등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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