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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2일 안국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박노자 교수가 일제강점기 주류 개신교의 친일 행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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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주의자가 된 원인
한 목사가 반공주의자가 된 이유와 개인적인 평가를 묻는 기자 질문에 박 교수는 "월남 이전의 한 목사는 기독교 사회민주당을 조직할 정도로 온건한 사회주의자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조선 정권의 토지개혁을 전후로 약 8만 명에 달하는 기독교인들이 월남했는데, 특히 친일 경력이 있고 재산이 많았던 이들의 대북 적개심이 강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은 남한 사회에서 전투적 반공의식의 진원지가 되었고, 중심에는 한 목사가 있었다. 박 교수는 "북조선의 토지개혁과 한국전쟁이 한경직을 반공주의자로 돌아서게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또 한 목사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기 힘들지만, "토지개혁으로 북조선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의 뜻에 따라) 신사참배를 하고, 구약 폐기 운동에 참여했으며, 군사정권에 반공 이데올로기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군목 제도와 개신교의 종교 특혜
1950년 9월 한국군의 연패를 지켜본 한경직과 유형기는 이승만에게 군목 제도를 건의했다. 미군 군목 제도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군종 제도는 미군의 지원으로 고속 팽창했다. 1954년 군내에는 261명의 개신교 목사와 35명의 천주교 신부가 있었다. 이와 달리 군승제도는 1968년에 이르러서야 생겼다. 박 교수는 군에서의 종교 활동 독점과 군사정권 아래 이뤄진 전군 신자화 운동의 모든 특혜는 개신교가 입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 감리교 장로이기도 했고,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이 필요로 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개신교가 제공한 점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정권과 한경직
박 교수는 5․16사태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와 주류 개신교 목사들의 유착 관계를 설명했다. 예로 한 목사는 김활란, 최두선 등과 민간 사절단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5․16군사혁명'에 대한 당위성을 이야기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의 전신 한국기독교연합회에서는 "이번 5․16 군사혁명은 조국을 공산 침략에서 구출하고 부정과 부패로 기울어져 가는 조국을 개선하기 위한 부득이한 처사"라는 성명을 냈다.
▲ 박노자 교수는 종교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
평화의 종교로 거듭나기 위한 평신도의 역할
박 교수는 지난 '종교와 국가 폭력' 강의에서 기독교가 평화의 종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정권에 유착하는 주류 개신교를 각성하게 하는 것은 평신도들의 몫이라 했다. 평신도들이 정권과의 유착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비판한다면 교회는그러한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첫댓글 한 사람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교회의 세상정권과의 유착을 비판함이 글의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