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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눈병 혀로 핥아 고치는 주소금 할머니
출처: http://blog.naver.com/wun12342005/220574581848
눈알에 박힌 모래를 핥아 빼내는 신들린 혓바닥 <주소금> 할머니
이 글은 운림이 2014년에 펴낸 책 <우리 명의와 의료직설>에서 옮겨 온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라는 말이 있다.
풀이하면 죽어 무덤에 묻혀 몸뚱이가 썩어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라는 뜻이다.
이 말 속에는 사람이 죽어 무덤에 묻히기 전에는 눈에 흙이 들어갈 리가 없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제 이 속담은 그 뜻이 바뀌어져야 한다.
놀라지 마시라. 갓난아기나 한 번도 집밖에 나가 본 일이 없는 사람이거나
눈까풀이 날 때부터 붙어 있는 사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살아 있는 사람의 눈에는 흙이 들어 있으니까.
그것도 작은 찻술갈로 한 숟갈 만큼이나 되는 흙과 모래가.
그렇다. 나도 내 눈 속에서 한 찻숟갈이나 되는 흙과 모래를 빼내기 전까지는
눈 속에 모래가 들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내 눈에서 나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래를 보고도
이게 정말 내 눈알 속에 들어 있던 것이 틀림없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래알이 한두 개쯤이야 들어갔을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수백인지 수천인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들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눈알에 박힌 모래를 핥아 빼내는 신들린 혓바닥
주소금 할머니가 신들린 듯한 혓바닥으로 내 눈알을 굴려서 씻어낸 물을 보니
밥그릇 만한 그릇에 들어 있는 물이 온통 붉은 황톳물이었다.
그 황토물 밑바닥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모래가 가라앉아 있었다.
흙이나 모래만 들어 있다면 다행이었다.
작은 유리조각이 들어 있는 눈도 있었고, 쇳조각이 들어 있는 눈도 있었고,
플라스틱 조각이나 작은 나뭇가지가 들어 있는 눈도 있었다.
산에 열심히 다니는 내 제자의 눈에서는 볍씨보다 약간 작은 풀씨 하나가 나왔다.
놀랍다. 모든 사람의 눈이 이제 보니 흙투성이였구나.
따지고 보면 사람의 눈은 모든 신체 기관 중에서 외부에 늘 돌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잠잘 때를 빼 놓고는 늘 열려 있는 구멍이다.
티끌이나 모래 같은 것들이 들어가기 쉽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눈에 티나 흙이 들어가서 손으로 눈을 문지르거나
눈물로 씻어 내거나 입으로 바람을 불어 나오게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렇게 하면 눈알 속에 있는 티끌이나 모래가 다 빠져 나올까.
눈에 모래 같은 것이 들어가 눈이 아프고
껄끄러울 손으로 눈을 몇 번 문지르면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몇 번 손으로 문질러서 모래나 티끌이 밖으로 나왔을까.
아니다. 티끌이나 모래는 밖으로 나오기는 커녕 눈알 속으로 더 깊이 박혔다.
어디에?
바로 눈알의 흰자위 속에 깊이 박힌 것이다. 손으로 문지르는 압력에
모래나 티끌의 날카로운 한쪽이 눈알의 흰자위 속을 파고 들어가 겉에서는 보이지 않게 박혀 버린 것이다.
눈동자의 흰자의 부분에는 안쪽까지 모세혈관이 퍼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모래나 쇳조각 같은 것이 웬만큼 깊이 박혀도 피가 나지 않는다.
이렇게 자기가 알고 모르는 사이에 들어간 모래, 흙, 쇳조각, 티끌, 유리조각,
먼지 같은 것들이 눈알의 흰자위 속에 가득 박혀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아서 맑고 투명하게 보이는 눈도 알고 보면 모두 흙과 모래 투성이다.
티없이 맑고 아름답고 큰 눈도 알고 보면 속에 모래가 잔뜩 들어 있을 뿐이다.
눈구멍이 큰 곧 눈이 큰 사람은 이물질이 더 들어가기 쉬우므로 흙이나 모래 같은 것이 더 많이 들어 있을 것이다.
아마 모래바람이 심하게 부는 사막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더 많은 모래가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낀 사람은 조금 적게 들어가지 않을까.
눈알에 박힌 이물질이 온갖 눈병의 원인
전북 부안군 백구면 용계리는 드넓은 김제평야 한가운데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언제나 바람이 분다.
흙과 모래를 날리는 바람,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호수의 물결을 일렁이는 바람,
가랑잎이나 마른 풀잎을 날리는 바람…
이 바람이 잠들지 않는 마을 한 귀퉁이에 스레트 지붕을 인 초라하고 작은 집에 주소금 할머니가 살고 있다.
조그마한 방 두 개에 부엌이 있고 작은 마당에는 고추, 토란, 봉숭아, 과꽃 같은 것들을 심었다.
이 초라하고 낡은 집에 주소금 할머니는 혼자 산다.
나이 일흔이 넘어서 그런지 온 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혈압이 몹시 높아서 곧잘 쓰러지곤 하는 데다 무릎이 아파서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다.
혼자서 끼니를 지어 먹기에도 힘들지만 마당에 붙어 있는 텃밭을 가꾼다.
어쩌다 서울에 사는 딸네 집에 다녀 오는 것 외엔 바깥출입도 거의 않는다.
조물주는 평범하거나 때로는 별 재능이 없어 보이는 사람한테 간혹 특이한 재능을 부어넣어 주신다.
늙고 외롭고 가난하여 누가 보아도 특별한 것이라고는 없는 주소금 할머니한테는
다른 어떤 사람도 지니지 못한 신기한 재주가 있으니
바로 사람의 눈알 속에 박혀 있는 모래를 혓바닥으로 빼내는 기술이다.
서울 명일동에 사는 가정주부인 김명희 씨는 몇 년 전부터
눈이 자주 붉게 충혈되고 시력이 나빠졌으며 눈이 아프고 눈물이 저절로 나오곤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곱이 많이 끼고 눈곱으로 눈꺼풀이 달라붙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눈이 흐릿해지고 눈앞이 아지랑이가 낀 듯 어른거려 신문의 잔글씨를 읽을 수 없었다.
텔레비전도 가까이서 봐야 하고 청소나 집안 일을 하는데도 불편하고
때로는 눈이 가렵기도 하여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서 눈이 나빠졌거니 하고 안경을 맞추어 써 보았지만 눈이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안과에 다녀 보았으나 나이가 들어서 시력이 나빠졌다는 대답 밖에 들을 수 없었다.
몸이 열 냥이면 눈이 아홉 냥이라고 했는데
그토록 소중한 눈이 이처럼 망가져 버렸으니 앞으로 제대로 사람 구실을 못할 것 같아 앞이 캄캄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남편이 밖에서 들었다면서
전북 부안에 눈알 속에 들어 있는 모래를 혓바닥으로 꺼내는 희한한 할머니가 있는데
그 할머니한테 가서 모래를 빼내고 나면 눈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김명희 씨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떻게 눈알 속에 모래가 들어 있을 수가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혓바닥으로 빼낸단 말인가.
아마 모래를 눈 속에서 꺼내는 것처럼 속임수를 써서
사람을 현혹하여 돈을 울궈 내려는 수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은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들었다면서 한 번 가서 확인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서 주말에 날을 정하여 그 할머니가 있는 부안으로 내려갔다.
어느 바람이 몹시 부는 날 김명희 씨는 남편과 함께 주소금 할머니 집에 문을 두드렸다.
약간 뚱뚱한 몸집에 키가 작고 허리가 약간 굽은 시골 어디에서나 불 수 있는 그런 시골할머니였다.
손님이 왔다고 해서 반가워하지도 않는 것 같았고 친절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눈이 아파서 왔다고 하자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부엌에 나가 양치질을 하고 나더니
물을 한 바가지와 빈 그릇을 하나 갖고 왔다.
그러더니 김명희 씨를 앞으로 당겨 앉게 하고는 눈을 감지 말라고 했다.
그런 다음 얼굴을 가까이 대더니 순식간에 혀를 낼름 내밀어 김명희 씨의 눈 속으로 집어넣었다.
눈까풀 안으로 혓바닥이 들어가 몇 번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 같더니
바가지의 물을 한 모금 물고 빈 그릇에 물을 뱉어냈다.
눈이 아프거나 껄끄럽거나 하지는 않고 약간 시원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
몇 번 할머니는 눈 속에 혀를 집어넣어 눈알을 몇 번 굴렸다가 빼내어
물을 머금고 빈 그릇에 뱉어내는 동작을 되풀이했다.
3-4분 뒤에 이제 다 끝났다면서 할머니는 김명희 씨에게 물그릇을 보여 주었다.
맙소사, 물그릇에는 시뻘건 황톳물이 들어 있었는데
붉은 빛깔이 얼마나 진한지 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티끌 같은 것이 몇 개 물 위에 떠 있었다.
흙탕물을 한쪽으로 기울이자 바닥에 자잘한 모래들이 찻숟갈로 한 숟갈쯤 들어 있었다.
모래는 따로 놓으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것에서부터 직경 2밀리미터쯤 되는
저런 것이 어떻게 눈 속에 들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되는 것까지 하나하나 세어 볼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어떻게 내 눈 속에 저렇게 많은 흙탕물과 모래가 들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눈알에 모래가 한 찻숟갈씩 박혀 있다니
눈알 속에 박힌 모래를 빼냈다고 해서 눈이 금방 시원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일부러 눈에 모래를 집어넣은 것처럼 눈이 껄끄럽고 아팠다.
눈동자를 굴리면 여기저기에서 모래가 눈알 속을 파고 드는 것 같았다.
“내일 아침까지는 눈이 조금 아플 게요.
아침에 일어나면 눈곱도 많이 낄 거고, 그러나 한 이틀 지나면 눈이 시원해질 거구만.”
눈에 안약을 한 방울 넣어주면서 할머니가 말했다.
눈알 속에 박힌 모래가 빠져 나오면서 눈알에 상처가 생겼기 때문에 눈이 껄끄럽고 아픈 것이며
그것 때문에 눈곱이 많이 나오지만 이틀쯤 지나면 상처가 다 나아서 눈이 맑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신기한 일이었다.
할머니의 말대로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눈곱이 많이 나와 눈까풀이 서로 달라붙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김명희 씨는 물로 눈까풀을 정성 들여서 한참동안 씻어낸 뒤에야 눈을 뜰 수 있었다.
거울을 보니 며칠동안 밤샘을 한 사람모양 흰자위가 벌겋게 되고 핏줄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눈은 오히려 밝아진 것 같았다.
그 다음날에 김명희 씨는 깜짝 놀랐다.
안경을 쓰고도 잘 보이지 않던 신문의 잔글씨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눈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는 것도 없어졌고 찔끔찔끔 나오던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언제나 벌겋거나 누렇게 보이던 흰자위가 백짓장처럼 하얗고 깨끗해졌다.
눈이 수정처럼 맑고 투명해진 것이다.
그 뒤에 김명희 씨는 세 번 더 눈 속에 박힌 모래를 빼러 갔다.
두 번째에는 첫 번보다는 훨씬 적게 나왔지만 그래도 제법 많이 나왔다.
세 번째와 네 번째에는 한 눈에 대충 세어 볼 수 있을 만큼 나왔다.
할머니는 3-4번쯤 빼내야 완전히 다 빠져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눈알 속에 박힌 모래를 꺼내는 할머니 얘기를 했다.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썼다가 안경을 벗게 된 이야기,
눈이 밝아지고 흰자위가 깨끗해진 자신의 얘기를 열심히 들려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말을 잘 믿으려 들지 않았다.
특히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그랬다.
사람의 눈 속에 모래가 한 숟갈 들어 있을 리가 절대로 없다는 것이었다.
한 안과의사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화를 내면서
정말 눈알 속에 모래가 그렇게 많이 박혀 있다면 엑스레이 사진으로 눈을 찍으면
모래들이 찍혀 나올 것인데 한 번도 눈알 속에서 모래가 박힌 사진이 찍힌 일이 없었다면서
그것은 틀림없는 속임수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김명희 씨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눈이 아프거나 흐릿하거나 붉게 충혈되는 등 눈에 탈이 있는 사람 몇 사람이 주소금 할머니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 사람들의 눈병이 다 나았고 눈이 맑고 깨끗해졌다.
그 중 한 사람은 원인을 알 수도 없고 병명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눈병으로
며칠 뒤에 안과에서 수술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할머니한테서 모래를 빼내고 나자
눈병이 씻은 듯이 나아 수술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할머니가 진짜 혓바닥으로 눈알에 박힌 모래를 꺼내는 신기한 재주를 가졌으며
안전한 눈병 치료법이라고 믿게 된 것은 아니었다.
틀림없이 눈치챌 수 없는 교묘한 속임수가 있을 것이라고도 했고,
눈알 속에 혓바닥이 들어가면 혹시 나쁜 질병에 걸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 걱정했다.
아마 어느 쪽이건 간염이나 성병, 에이즈 같은 병을 앓고 있다면 전염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만약 할머니가 감염되었다면 할머니한테 시술을 받은 모든 사람이 감염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또 전염성 눈병 같은 것에 걸린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충분히 전염될 위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두 번 다시는 할머니한테 가지 않았다.
시력 좋아지고 온갖 눈병이 나아
김명희 씨는 7년째 주소금 할머니한테 다니고 있다.
1년에 한두 번씩 또는 눈이 약간 흐릿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온 가족이 할머니한테 가서
눈알 속에 박힌 모래를 꺼내는 시술을 받는다.
시술을 받고 나면 눈이 한결 시원해지고 밝아진다.
주위에 할머니의 독특한 눈병 치료법의 효과를 본 사람도 적지 않고 주기적으로 할머니를 찾아오는 사람도 여럿 된다.
그 동안 주소금 할머니는 많이 늙었다.
앓아 누워 있는 일도 차츰 많아졌다.
혈압이 높아서 늘 어지럽고 뒷목이 뻣뻣하고 뒷골이 아프다고 한다.
때로 무릎이 퉁퉁 부어서 일어나지도 못할 때도 있다.
보건소에서 혈압약과 관절염 약을 타서 먹고 있다.
약을 먹으면 조금 낫는 것 같기도 하다가 약을 끊으면 더 아픈 것 같다.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먹어 봐도 별 효험이 없다.
“이러다가 죽고 말지. 그런데 살아서도 별 낙(樂)이 없는데 죽어서도 무슨 낙이 있겠나.”
할머니는 자주 담배를 한 모금 빨며 한탄한다.
김명희 씨는 한 때 할머니의 그 신기한 기술을 전수 받아 볼 생각을 했다.
온갖 눈병을 고칠 수 있는 이 신비로운 의술이 사장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병약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눈이 아파도 치료받을 데가 없지 않은가.
김명희 씨는 꼭 그 기술을 전수받아야겠다고 다짐하고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그 기술을 어떻게 배우셨습니까?”
“내 스스로 배운 것이지 남한테 배운 것은 아녀.
옛날에는 눈에 티가 들어가면 입으로 후후 불어 날려서 빼내거나 혓바닥으로 핥아 꺼내지 않았나.
아이들 눈에 티가 들어가면 엄마가 혀로 티를 핥아서 꺼냈어.
나는 그것을 오래 해서 숙달된 거야.”
“그 기술을 꼭 배우고 싶습니다.”
“아무나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야.
나는 스무 살 무렵부터 했는데 공부를 많이 해야 돼.
잘못하면 혀를 다칠 수도 있고 눈이 몹시 아플 수도 있어.
눈이나 혀나 다 같이 가장 민감하고 상처받기 쉬운 곳이지 않은가.
잘못하면 눈이 몹시 아프고 상처가 생겨서 피가 날 수도 있어.
유리 조각 같은 것이 눈알에 박혀 있을 때에는 혀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지.”
김명희 씨는 할머니한테서 눈알에 혀를 재빨리 집어넣는 요령과 눈알을 혀로 굴리는 방법을 대강 배웠다.
집에 와서 가족들을 상대로 몇 번 연습을 해 보았다.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눈에 혀를 집어넣자 눈이 따갑고 터지는 듯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고
남편은 징그럽다면서 도망을 갔다.
몇 번 연습을 하고 나자 혓바닥이 아리고 아프며 목이 타는 듯이 말랐다.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되지 않을 성 싶었다.
포기할 수도 없었고 계속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눈알 속에 혓바닥을 집어넣게 해 달라고 부탁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아픈 사람 고쳐 주고 상은 못 받을지언정
김제평야의 넓은 들에는 오늘도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날린 흙먼지가 농부의 눈에 들어간다.
농부는 눈을 몇 번 비비고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요새 갑자기 눈이 부쩍 나빠졌다.
기계도 오래 쓰면 고물이 되듯이 나이가 들어서 눈도 나빠진 거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는 바로 이웃에 10미터도 안된 곳에 사는 행색이 초라하고
가끔 관절염 때문에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니는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자기 눈병을 고쳐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에언자는 고향에서 배척받는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에 대한 신통력은 믿을 수 있어도
같은 마을에서 수십 년을 같이 지내 온 사람이 신통한 능력을 지녔다고 믿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명의한테는 가까운 곳에서 사는 환자는 찾아오지 않는다.
가까운 곳에 사는 환자는 명의를 눈앞에 두고 먼 곳에 있는 명의를 찾아간다.
주소금 할머니를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며칠만에 한두 사람씩 올 때도 있고 하룻저녁에 대여섯 사람이 올 때도 있다.
한 번에 서너 사람을 시술해 주고 나면 할머니도 힘이 빠진다.
한 사람을 시술하는데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온 몸의 신경을 혀에 모아야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혀에 정신을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때로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이 귀찮다.
안과의사나 의료인들 중에는 할머니가 하는 일이 법을 어기는 짓이라고 하여 좋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다.
전에 안과의사라는 사람이 와서 이런 일을 계속하면
경찰에 신고해서 법대로 처벌받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일이 있은 뒤에 두 달 동안 환자들을 모두 되돌려 보냈다.
그러나 뻔히 고칠 수 있는 환자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할머니는 사람을 꺼린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묻는 것이 제일 겁난다.
이웃 마을에 주사약으로 치질을 잘 고치는 노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중에 자고 있는 것을 형사들이 와서 깨워서 잡아갔다.
6개월 뒤에 노인이 돌아왔는데 아무도 만나지 않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3개월쯤 뒤에 죽었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치질 환자를 고쳐 준 대가가 감옥과 죽음이었다.
얼마 전에는 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겠다고 온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그 사람들이 집 안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쫓아보냈다.
어느 잡지사 기자가 취재를 온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기자는 그냥 돌아갔다.
할머니는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희망도 없고 절망도 없어진 지 오래 되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손님이 오면 맞아주고 오지 않아도 기다리지 않는다.
할머니가 죽고 나면 혓바닥으로 눈알을 굴려서 티끌과 모래를 꺼내는 기술을
어디에서도 불 수 없을 것이고 그런 것이 있었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할머니의 혓바닥으로 눈병을 고친 사람이 몇 천명은 될 것이다.
그 동안 혓바닥이 뱀 혓바닥처럼 길어졌고 혓바닥의 힘도 소 혓바닥처럼 세어졌다.
수천 명의 눈병을 고쳐 주는 좋은 일을 했으니
죽더라도 여기보다 더 나쁜 곳에 가지는 않겠지 하는 것이 할머니한테는 유일한 위안이다.
김제평야에는 오늘도 바람이 분다. 가을바람이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벼가 익어 가는 내음에 농약 냄새가 섞여 있다.
이제 온 세상이 온통 죽음의 흰 빛깔로 옷을 입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눈병에 걸린 사람들은 더 늦기 전에 주소금 할머니를 찾아갈 일이다.
눈알에 박힌 모래 한 숟갈을 빼내고 나면 서녘하늘의 흰구름처럼 맑은 눈매를 가지게 될 터이니.
주소금 할머니는 몇 해 전에 별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