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이 없는 사랑과 영혼의 ‘변종시학’ <새전북신문>
기사 작성: 이종근 - 2021년 07월 22일 15시49분
정군수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한쪽 가슴이 없는 여자'(인간과 문학사)를 펴냈다. 비유와 상징의 맛이 신선하고 현묘한 작품이 대다수다. 시적 대상과의 은유는 가깝거나 멀지 않고 팽팽한 유사성에 놓여 있다.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과 긴장의 시학을 발산하고 있다. 작품은 모두 6부 80편이 수록됐다. 주요 테마는 ‘사랑·순수·죽음·기적·영혼·가족·황혼·시대정신’ 등 다양하게 펼쳐진다.
시인은 폭풍우 속에도 여린 생명의 알을 포란하는 신비한 사랑의 힘이 시의 원천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쪽 가슴이 없는 여자를 사랑하였다/ 배가 닿지 못하는 바위섬에서/ 그녀는 억센 찔레넝쿨만 키우고 살았다/ 내가 헤엄쳐 건너가자/ 그녀는 사슴을 키우기 시작했다/……/ 내가 한쪽 가슴이 있는 여자라 불렀을 때/ 섬은 외롭지 않고 바닷새도 날아와 알을 낳았다'('한쪽 가슴이 없는 여자'중에서)
시인은 김제고 시절 신석정선생을 만나 그 연으로 시의 길을 걸어왔다. 올해 희수(喜壽)를 맞이한 그의 시심은 봄날 만삭의 다목적댐처럼 넓고도 깊은 맛이 난다. 나아가 낮은 세상으로 흐르고자 하는 시정신은 사도(使徒)나 보살처럼 정의롭고 숭고하다. 그는 “저 산에는 멧돼지가 몇 마리나 살고 있을까/ 고라니 너구리 뱀 산토끼 가족들은/ 눈 쌓이는 겨울 굶어죽지는 않았는지” 늘 변방의 안부를 묻고 있다. 이번 작품은 독자들에게, 시인의 한 줌 햇살이 어느 곳으로 먼저 향하고 소멸돼야 하는지를 준열히 보여주고 있다. 왕태삼 시인은 이번 시집은 “백신이 없는 사랑과 영혼의 변종시학”이며 “모던한 선비, 정군수 시인은 ‘서어나무 위에서 노래하는 팔색조八色鳥다.’ 시적풍모는 헌걸스럽고 그 결은 매끄럽고 탄탄하고 잎새는 자냥스럽다. 또한 그의 시적사유는 끝없는 변이를 부르는 팔색조다. 회화의 스푸마토(sfumato)처럼 비유와 상징은 천의무봉하며 일색 신비하다”고 평했다
김제 출생인 시인은 '시대문학'을 통해 등단, 한국문인협회전북지회장, 전북시인협회장, 전북대평생교육원문창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전영택문학상, 전북시인상, 목정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모르는 세상 밖으로 떠난다', '풀은 깎으면 더욱 향기가 난다', '봄날은 간다', '늙은 느티나무에게', '초록배추애벌레' 등을 펴냈다. 석정문학관 관장을 역임한 작가는 현재 석정문학회 회장과 신아문예대문창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