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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87년
태양이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지고 있었는데 일진의 청명한 바람이 불어와 사람들의 더운 이마를 식힌다.
경사의 장엄한 성문을 빠져나온 말 네 필은 장안성 동쪽으로 향했다. 마상에는 일견 기이한 인상을 풍기는 세 명의 여인과 한 장부가 의젓하게 앉아 있다.
백색의 청총마는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청총마 위에서, 등에 장검을 걸머진 우아하게 생긴 젊은 여인은 가끔씩 얼굴을 찡그리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백의를 걸친 절색의 가인은 그녀의 뒤를 바짝 따르며 얼굴에 가느다란 웃음을 담고 있었는데, 마치 한 떨기 모란화가 흰 빛 속에 싸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천첩분홍매화가 백설 속에 고고히 핀 것 같기도 하다. 뒤쪽에서 허리에 장검을 찬 여인은 앞서 달리는 여인과 얼굴이 흡사하게 닮았고, 고혹적인 진분홍 장미를 연상시킨다.
그녀 옆에는 기상이 씩씩한 한 영준한 젊은이가 그녀와 웃음을 주고받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의 얼굴이 다소 심각해지며 옆의 여인에게 묻는다.
“아가씨, 아무리 궁리해보아도, 태평공주의 남편 설소라는 인물은 베일에 싸인 매우 의혹적인 사람인 것 같소.”
“태자전하께서 잘 보셨습니다.”
“쉿! 누가 듣겠습니다. 그 칭호는 사용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조영이 주의를 주며 물었다.
“혹시 짚이는 데라도 있습니까?”
“실은, 실은···.”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털어놓았다.
“제가 어찌 전하께 감출 수 있겠습니까? 그는 우리의 협력자입니다.”
“네?!”
조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건 이루하 아가씨에게도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그녀가 한층 목소리를 낮추며, 앞서 가고 있는 이루하와 여미아를 한 차례 흘끗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설소는 우리 여미단과 손을 잡고 있는 당나라 내의 협조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무 태후와 이씨 친왕들, 그리고 우리에게 발을 걸친 삼중세작三重細作으로서 매우 위험한 인물입니다.”
전에 영주에 갔을 때 조영은 미시아에게서 여미단의 정체에 관해 들은 바가 있었다. 고구려의 고토회복을 꿈꾸는 재중 비밀결사란다.
고조영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허공을 쏘아보며 얼마 전에 설소가 보여준 기이한 언행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그 때 미시아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그의 귀를 다시 훑었다.
“작년 동짓달에, 무 태후와 함께 영주로 올라오면서 한 번은 수장의 위기를 만나고, 또 한 번은 화마의 입에 삼킬 뻔하는 등 두 차례나 죽을 위기를 만났다 하셨죠?”
조영이 회상에서 벗어나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며 되묻는다.
“새삼스레 그 일은 왜 언급하십니까?”
“그 사건에 설소가 깊이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네, 사실입니까?”
조영이 다시 화들짝 놀란다.
“저는 우리 고려황가의 종친들과 관련된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은 우리 여미단의 식구들이지만, 설소가 개입해 무 태후와 태자전하 일행을 모조리 죽이려 한 것입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조영은 설소에 대해 경각심이 크게 일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미단이 왜 무 태후와 우리를 죽이려 했는지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습니다. 저의 우준한 소견으로는 여미단이 결코 무 태후를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 태후를 보호하고 그녀의 권력을 지지함으로써, 이씨 황가와 무씨 가문 사이에 상잔극이 벌어지도록 꾸밀 것으로 짐작했거든요.”
“태자전하의 통찰이 옳습니다. 우리가 영주에서 무 태후를 은밀하게, 정중히 모신 것도 그런 의도에서였습니다.그러나 우리에게 무태후의 움직임에 대해 정보를 제공한 설소가, 도중에 대하大河(황하)에서 활약하는 우리 여미단의 지부장을 속이고, 무 태후를 죽이도록 부추긴 것입니다.”
“아가씨는 어찌 그리 사태를 소상히 파악하고 계십니까?”
“이곳에 온 후 우리 여미단의 세작을 만나보고서야 저도 그 사건의 본말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앞서 가던 이루하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두 사람이 웃는 낯으로 이루하를 바라본다.
“두 분은 무슨 얘기를 그리 재미있게 나누고 계시는지요?”
“설소 얘기였습니다.”
조영의 대답이다.
“그 사람은 심산이 매우 깊은 것 같았습니다.”
이루하가 대꾸하며 덧붙인다.
“그런데 우리가 그 곳을 들렀다 간다면, 혹시 의심을 사지 않을지 모르겠어요.”
조영이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종실의 사람들을 만나보지 않고 모른 척한다면 예가 아닐 것 같습니다. 더구나 거기에는 보장태왕 폐하의 능이 있다고 들었으니, 그 앞에 내 속이라도 좀 털어놓고 가야 후련해질 것 같습니다.”
일행이 경사京師(장안성) 동편의 파수灞水를 건너 북으로 십여 리 올라가는 동안 길을 물어 고가촌高家村에 당도해 보니, 그곳은 황량한 들판이었다. 근 이십년 전 나라가 망하고 당나라의 수도 장안성까지 끌려온 고려 황가의 종친들이 여기에 한 작은 촌락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말로만 듣고 아직 방문해 보지 못한 조영은 그 곳에 고려식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있는 것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가 하늘을 우러러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데 마침 한 아낙네가 지나가고 있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보였다. 옷차림을 보니 고려인이다. 조영은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눈물이 솟구치려 했다.
그가 용기를 내어 고려 말로 물었다.
“여기에, 돌아가신 태왕의 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시겠어요?”
당나라 관리 복장의 영준한 젊은이가 유창한 고려 말로 묻자 그녀는 대뜸 경계하는 빛을 보이며 조영 일행을 훑어보다가 말했다.
“왜 찾으시는데요?”
“실은 저도 고려 사람입니다. 묘에 참배나 하고 갈까 해서요.”
“마을 서편으로 가시면 큰 무덤이 있소.”
그렇게 말하고 여인은 휭하니 사라졌다.
여인이 가르쳐준 대로 찾아가보니, 과연 왕릉과는 비교할 수 없으나 규모가 상당히 큰 무덤 두 기가 상당한 거리를 두고 고즈넉이 앉아있었다. 그 중 하나는 정관 8년(634년)에 사망한 동돌궐 힐리칸의 무덤이고, 다른 하나는 보장태왕의 묘였다.
오년 전 보장태왕이 유배지 공주邛州에서 돌아가시자 고종이 조서를 내려 장안성으로 모셔와 힐리칸의 무덤 옆에 장사지내게 했고, 장안성 인근에 터를 잡은 종친들이 보장왕의 묘를 지키게 되었던 것이다<삼국사기/고구려본기><구당서/동이열전/고구려>.
오늘날 보장태왕의 묘는 도굴되고 깎이고 헐리고 폐허가 된 채, 중국 서안시西安市 파교구灞桥区 114현도一一四县道 고새촌高塞村 서쪽 400미터 지점에 방치되어 있다.
고새촌은 서안시 동편에서 남북으로 흐르고 있는 파하灞河 동쪽에, 강변으로부터 직선거리 약 십여리 떨어져 있으며, 마을 서남쪽 1킬로미터 지점에서는 경곤京昆고속도로와 서안시순환고속도로가 만난다.
고씨 종친들이 살던 그 마을은 아마도 그들 때문에 아직 고새촌으로 불리고 있는 것 같다.
폐허가 된 보장태왕의 묘. blog.sina.com.cn/s/blog_6328ac260102vcb5.html에서 캡처.
비문에는 그의 생몰년도와 당나라에서 받은 관직 등이 간략히 적혀 있다.
조영은 군신의 예에 따라, 무덤에 삼육구대례三六九大禮(세 차례의 큰 절로서 각각 3, 6, 9번 머리를 조아림)를 올린 후 중얼거렸다.
“폐하, 신 조영이 이제야 폐하께 찾아왔사옵니다. 너무 늦었사옵니다. 폐하께서 떠나신 지 어언 오년. 폐하의 영령이 천궁天宮에 계시다면, 이 땅을 굽어 살피사, 미천한 소신들이 고토수복의 대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그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고이려 했다.
그 때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영이 돌아보니, 미시아와 여미아가 자기 뒤편에서 나란히 무덤 앞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거리며 심하게 울고 있었다. 그녀들의 흐느낌에 조영도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때 그의 뇌리에 노래 하나가 저절로 떠올랐다.
아리하 푸른 물은 저리도 서러워서
천만년 쉬임 없이 울어 울어 흐르나
백의민족 가슴마다 고인 눈물이
못 견뎌 터져 나와 강수가 되었네
다물 임금의 아내가 되었던 완산일매完山一梅 천국화天國花 매아리梅峨梨의 시다.
이역만리 중토中土에 끌려와 한 맺힌 일생을 마친 보장황제와 고려 황가 종친들, 고려 유민들의 비참한 종살이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조영은 꿇어 엎드린 채로, 소매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 울어야 했다.
소매로 얼굴을 씻고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여미아와 미시아는 아직도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고, 이루하는 서서 망연히 북쪽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뒤쪽을 돌아보니, 어느 사이엔가 동네 사람들 대여섯 명이 멀찍이서, 그들이 무덤 앞에 엎드려 우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영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마을 어르신들은 찾아뵙지 말고 그냥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잠시 후 미시아와 여미아가 일어나며 말했다.
“죄송해요. 저희들이 추태를 보여서.”
“아닙니다. 아가씨들은 감성이 너무나 풍부한 것 같군요.”
조영은 이렇게 말하다가 속으로 아차 했다.
‘그럼 이루하는 마음이 냉정해서 울지 않았다는 말이잖아?’
이런 생각에 가슴이 뜨끔해 입을 다물고 이루하를 쳐다보았다. 이루하가 별로 불쾌한 기색 없이 조영을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조영은 말을 끌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마을 밖으로 나오기까지 동네 사람들 몇이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마을을 벗어난 그들은 동편으로 진행하며 서경동도 간의 관도로 들어섰다. 그 길을 따라 한 시간쯤 천천히 달리니, 남동쪽으로 장엄한 려산麗山 봉우리들이 모습을 뚜렷이 드러낸다.
일찍이 조부로부터 려산의 고사를 들었던 조영은 산세를 바라보며 깊은 감회에 잠겼다. 려산은 원래 옛 조선의 식민 제후국이 세워진 곳이란다.
단군조선의 그 유명한 이십이세 색불루 임금이 은나라와의 투쟁에서 조선의 고토인 회대지방(태산과 회하사이, 즉 동부평원)을 다시 평정하고 은나라의 수도를 정복한 후, 려파달로 하여금 지금의 서안시 지역으로 진출해 그곳에 나라를 세우게 했는데 이를 려국黎國이라 했다.
그 때부터 이 산은 려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훗날 산의 이름은 려산麗山으로, 다시 중국인들에 의해, 멸시하는 의미에서 려산驪山으로 바뀐다. 이곳에 나라를 세운 주축이 고려인 즉 고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6세기 초의 <수경주>가 “려산이 려융의 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려국이 융족과 섞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려산을 지나 동으로 400여리를 나아가면 함곡관이 나오고, 함곡관을 지나면 태행산맥 동쪽의 산동지방, 즉 회대지방에 진입하게 된다.
회대지방은 처음에 동이족이 먼저 진출해 거주한 곳이므로, 우리 동이족은 나중에 서쪽으로부터 진입해온 화하족에게 이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썼다. 화하족이 통일제국을 이룬 후 이 땅은 결국 화하족의 땅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 배달겨레가 회대지방을 거듭 탈환하고 관중關中까지 진출한 장구한 역사가 있다.
신시배달국의 자오지환웅 일명 치우임금이 탁록대전에서 중국의 황제헌원을 지우고(서기전 25세기 이전),
단군조선의 1세 단군왕검이 중국의 제순유우帝舜有虞 시대에 그 땅에 분조分朝를 두며(서기전 23세기 중엽), 4세 단군 오사구가 하나라 상왕相王을 정벌한 역사(서기전 2119년),
고조선 이십이세 색불루 임금이 은나라 수도를 함락시키고(서기전 1266년), 23세 단군 아홀이 다시 은나라를 쳐부순 일(서기전 1236년),
4세기 초엽 이후 백제와 고구려가 회대지방을 경영한 일, 최근 7세기 중엽에는 연개소문이 당나라 태종 이세민을 압박해 항복 받고 회대지방의 일부를 고구려 영토로 인정받은 것 등이 그런 예다.
“려산이 우리 삼한의 산이라고 하던데, 무슨 근거라도 있는 건가요?”
갑자기 고조영이 미시아에게 물었다.
“할아버지께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가물가물해요. 우리 내친 김에 려산이나 좀 둘러보고 갈까요?”
일행이 말을 세우고 발걸음을 멈추었을 때 여미아가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혹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요?”
조영이 여미아에게 물었다. 그녀가 가볍게 웃으며 대꾸한다.
“아니에요.”
일행이 관도에서 빠져나와 소로로 접어들었을 때다. 뒤쪽에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네 사람이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어느 샌가 일단의 도사 무리들이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과 시선이 맞부딪혔다. 이쪽을 쳐다보는 눈길들이 예사롭지 않다. 조영이 그들을 자세히 훑어보니, 그 중 한 사람은 낯이 익었다. 다름 아닌, 얼마 전에 헤어진 곤륜검객 청해진인이라는 도사였다.
“거기 가시는 분, 북아문北牙門의 고조영 장군이 아니시오?”
고조영이 말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세우고 그들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맞습니다. 청해진인이시군요. 여기서 다시 만나 뵙다니, 반갑습니다.”
“장군께서는 무슨 흥취가 있어서 여인들 셋을 거느리고 산속 길로 들어가십니까?”
청해진인의 말투가 영 글러먹었다. 여인들은 부끄러워하는 한편 분노하고 조영도 몹시 거북했다.
“이 명산이 우리 고려인과 인연이 깊다고 해서 그윽한 정취라도 맡아보고 싶었습니다. 진인께서도 저희와 같은 감상을 가지고 계신지요?”
“빈도貧道는 산중별세에 우거한지 오래라, 속세의 도회都會가 그리웠는데, 오늘 아리따운 낭자들을 만나니, 새삼 환속하고 싶은 심정 간절하외다.”
그의 어조가 여전하다.
“진인께서는 농도 잘 하시는 군요. 과거엔 의기남아의 호연지기가 충만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소.”
“진인께서는 어인 일로 산중에 들어가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귀공을 따라 왔수다.”
“무슨 용무라도?”
“낮에 그냥 헤어져서 너무 섭섭했소.”
“가르치실 게 있다면, 겸허히 배우겠습니다.”
“빈도가 어찌 장군을 가르칠 수 있겠소? 다만 장군의 한수 검법을 구경하고 싶을 따름이오.”
조영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소인은 배운 게 일천하여 보여드릴 게 없습니다. 거듭 간청 드립니다.”
조영이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그 때 청해진인의 곁에 있던 한 도사가 좀 무뚝뚝한 소리로 끼어들었다.
“아따! 비싸게 굴지 말고 한 수 보여주시오. 경사와 낙양 일대에서 장군의 소문이 쟁쟁하던데, 저기 저 어여쁜 색시들마냥 어찌 그리 꽁지를 빼시오?”
그의 입술이 험악해 도를 닦는 자의 그것이라 하기 어려웠고 숫제 도전해오는 모양새다. 이 때 여인들도 일제히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조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인사를 하자마자 고조영은 발걸음을 되돌려 산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인들이 앞장서서 걷는다. 조영의 하인 둘은 조영의 뒤를 따른다. 좁은 소로를 따라, 도사들도 그들의 뒤에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앞서 가던 여미아가 고개를 돌리며 고조영에게 말했다.
“장군님, 그냥 뒤돌아서서 낙양성으로 가는 게 좋겠어요.”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의 말을 신호로 그의 일행 네 사람은 일제히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고조영이 바로 앞에 서 있는 청해진인에게 말한다.
“진인께선 좋은 구경 많이 하고 오십시오. 저희들은 돌아나갈 작정입니다.”
좁은 길이니 좀 양보해서 비켜달라는 뜻이었다.
“장군의 검술 구경보다 더 좋은 구경이 어디에 있겠소?”
그들은 길을 막아선 채 열어주지 않을 태세다. 그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다. 멀리서 한 무리의 석교승釋敎僧들이 이곳을 향해 오는 게 보였다.
(다음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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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5. 2. 14. 늦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