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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다른 표기 언어
2012년 세계 과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많은 과학자들은 올해의 가장 화려하면서도 중요한 과학적 사건으로 7월 4일, 스위스 제네바 근처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힉스 보손이 거대강입자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 LHC)를 이용해서 발견됐다고 발표한 것을 꼽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힉스 보손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발견되었다는 것일까? 그리고 힉스 보손이 발견돼서 과연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른 과학적 이슈에 비해서 유독 힉스 보손에 대해서는 감이 잘 오질 않을 것이다. 머릿속에 힉스 보손이란 것을 그려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다. 그 이유는 힉스 보손이란 기본입자의 하나이며, 힉스 보손을 발견하는 일은 기본입자 수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 기본입자란 무엇이며, 왜 우리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일까? 먼저 기본입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기본입자라는 개념은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추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어떤 질문의 답이다. 그 질문이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것이다. 아주 옛날에는 불이라든가 물이라든가 하는 특별한 물질이 세상을 이루는 근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근대에 들어오면서 자연과학이 발전하고 각 물질의 근본이 되는 원소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 원자라고 불렀다. 원자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데모크리토스란 철학자가 기본입자라는 개념을 고안하면서 만든 이름이다.
20세기에 들어와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원자가 물질을 이루는 것은 맞지만, 원자가 물질의 기본입자는 아니며 원자도 속에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영국의 러더퍼드가 방사선 중 알파선을 금박에 쏘아 알아낸 바에 의하면, 원자 내부에는 작고 무거우며 (+) 전기를 가진 원자핵이 존재했다. 그러니까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가 태양과 지구처럼 전기력으로 묶여 있는 상태였다. 단 태양-지구와 원자를 완전히 똑같이 생각하면 곤란한데, 그 이유는 원자 크기의 세상은 뉴턴역학이 아니라 양자역학으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제 기본입자는 원자핵과 전자가 됐다.
그러나 연구가 거듭되자 원자핵은 (+) 전기를 가진 양성자와 전기가 0인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원자핵의 종류는 원자핵을 이루고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개수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이제 기본입자로 여겨지는 것은 양성자, 중성자, 전자가 됐다. 그러면 양성자나 중성자는 과연 기본입자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가속기를 이용해 양성자를 깨 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새로운 입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입자들은 좀 이상했다. 양성자를 깨서 나왔으니 양성자 속에 들어 있는 입자라고 생각해야 할 텐데, 아무래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양성자보다 더 무거운 입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양성자와 중성자를 포함해서 만들어진 입자들 모두가 다 기본입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즉, 다른 내부 구조가 없이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입자의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그뿐 아니라 에너지가 높아질수록 자꾸 새로운 입자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런 입자가 기본입자일까? 물리학자들은 혼란스러웠다. 이것이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의 이야기다.
1960년대에 미국의 머리 겔만과 그 외 여러 물리학자들이 당시 알려진 기본입자들의 여러 가지 현상을 자세히 연구하면서 돌파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입자들의 행동에 어떤 패턴이 있고, 따라서 이 입자들도 역시 기본입자가 아니라 무엇인가로 만들어진 입자 같다는 것이었다. 겔만은 알려진 입자들을 만들어내는 더 근본적인 기본입자를 제시했고, 이들을 쿼크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여러 실험에 의해서 양성자와 같은 입자가 쿼크로 이루어졌음이 증명됐고, 지금 우리는 쿼크와 렙톤(전자와 비슷한 성질을 가지는 입자들)을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쿼크와 렙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해서 이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 것일까?
20세기에 걸쳐서 물리학자들은 기본입자를 밝히는 한편, 자연을 이루는 법칙의 근원에 네 가지 힘, 혹은 네 가지 상호작용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우리가 언제나 느끼는 ‘중력’, 우리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인 ‘전자기력’, 그리고 원자핵을 이루는 ‘강한 핵력’과 입자를 바꿀 수 있는 독특한 ‘약한 핵력’이 그 네 가지 힘이다.
약한 핵력 또는 약한 상호작용은 원자핵의 베타붕괴나 우주선(cosmic ray)을 관찰할 때 보는 파이온과 뮤온의 붕괴 등을 제외하면 지구에서는 보기 어려운 상호작용이다. 그래서 우리 삶과는 거리가 먼 힘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 지구의 생명체가 살아가는 것은 약한 상호작용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태양이 타오르는 과정이 약한 핵력에 의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약한 핵력은 다른 상호작용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힘이다. 첫째로 약한 상호작용을 통하면 중성자가 양성자로, 혹은 뮤온이 전자로 바뀌는 등 입자의 종류가 바뀐다. 둘째로 약한 핵력은 강한 핵력과 함께 원자핵 이하의 아주 작은 크기에서만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이 힘은 아주 약하다. 전자기력의 크기를 1이라고 하면 강한 핵력은 1만 배 이상이고, 약한 핵력은 100만 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물리학이 이론적으로 발전하면서 물리학자들은 자연현상 속에서 더욱더 심오한 수학적 의미를 발견해냈고, 또 그로 인해 자연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현대 이론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대칭성이다. 그러니까 이론물리학자가 보기에 우주의 근본적인 작동 및 존재 원리가 대칭성이라는 것이다. 자연현상은 대칭성의 표현일 뿐이며 사람들이 자연에서 발견해낸 물리 법칙들은 대칭성에서 비롯되는 보손 법칙이다. 네 가지 근본적인 힘 중에서 중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 힘은 게이지 대칭성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정확히 설명된다. 게이지 대칭성을 이용해서 전자기 이론이 올바른 양자역학 이론으로 정립됐고, 이후 게이지 이론으로 다른 힘들까지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우리가 주변을 둘러보면 곧 느낄 수 있듯이, 자연의 대칭성은 늘 정확하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많은 경우 현실에서는 대칭이 깨져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더욱 풍부한 자연현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대칭성이 깨지는 방식 중에서 자발적 대칭성 깨짐(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이라는 과정은 특히 중요하다. 1928년 하이젠베르크는 강자성(ferromagnetism, 철이나 니켈처럼 영구자석이 되는 금속의 자기적 성질)을 설명하면서 이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다.
1947년 구소련의 보골류보프가 낮은 온도에서 유체의 점성이 사라지는 현상인 초유동현상을 설명하면서, 또 역시 구소련의 긴즈버그와 란다우가 1950년 금속의 전기 저항이 낮은 온도에서 0이 되는 현상인 초전도를 설명하면서 이들 과정에서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 일어남을 지적했다. 초전도현상의 이론은 1957년 미국의 존 바딘, 리언 쿠퍼 그리고 바딘의 대학원생 슈리퍼에 의하여 완성되었는데, 이 이론은 그들의 이름을 따서 BCS 이론이라 부른다. BCS 이론은 물성에 관한 이론의 금자탑이다.
자발적 대칭성 깨짐의 아이디어를 간단히 살펴보기 위해서 하이젠베르크의 강자성 이론을 생각해 보자. 강자성 물질은 아주 작은 자석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자성을 갖지 않는 보통의 경우에는 이들 자석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자성이 서로 상쇄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 이 물질에 대해서는 특정한 방향을 정할 수가 없다. 즉 방향에 관해서 대칭적이다. 그런데 온도가 점점 내려가면 작은 자석들은 점점 같은 상태가 돼 한 방향으로 정렬하게 되고, 마침내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가 되면 전체가 모두 같은 방향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 특정한 방향성이 생겼으므로, 원래 가지고 있었던 방향에 대한 대칭성이 깨진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더 낮은 에너지 상태를 택하면서 대칭성이 깨질 때 우리는 대칭성이 자발적(spontaneously)으로 깨졌다고 부른다. 이때 작은 자석들이 어느 방향을 택하는지는 물리적인 이유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방향은 전적으로 우연에 의해 정해진다.
1960년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남부 요이치로는 자발적으로 깨지는 대칭성이라는 아이디어를 입자물리학에 처음 도입했다. 이듬해 제프리 골드스톤은 남부의 모델처럼 상대론적인 이론에서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질 경우에는 반드시 질량이 없고 스핀이 0인 입자가 하나 나타나야 함을 증명했다. 이를 ‘골드스톤의 정리’라고 하며, 이때 나타나는 질량이 없는 입자를 그의 이름을 따서 ‘골드스톤 보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질량이 없는 입자는 빛을 제외하고는 실험에서 발견된 적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 입자물리학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1963년 응집물질 물리학자인 앤더슨이 초전도현상에서 골드스톤 보손은 전자기장의 일부가 되면서 질량을 가진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는 게이지 이론에서 자발적 대칭성 깨짐을 논한 첫 논문이었고, 사실상 힉스 메커니즘을 이야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앤더슨의 논문은 응집물리학자의 논문답게 비상대론적인 경우에 대한 것이었고, 입자물리학자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1964년 이론은 마침내 결정적으로 진전을 보았다. 영국 에딘버러 대학교의 피터 힉스, 벨기에 브뤼셀 대학교의 프랑수아 앙글레르와 로베르 브라우, 그리고 미국의 구랄니크, 하겐, 키블은 거의 동시에 제각기 게이지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지는 과정에 대한 논문을 내놓았다. 이들의 설명은 스핀이 0인 스칼라 장이 가지는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가 게이지 대칭성이 깨진 상태라면, 이론적으로는 게이지 대칭성이 성립하면서도 드러나는 현상은 게이지 대칭성이 깨진 것처럼 보여서, 게이지 입자도 질량을 가진다는 것이다. 특히 힉스의 논문에는 게이지 이론에서는 질량이 없는 골드스톤 보손이 아니라 질량을 가진 스칼라 입자가 나타난다는 것이 제시됐다. 바로 힉스 입자의 개념이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를 예측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자발적 대칭성 깨짐으로 강한 핵력을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아이디어를 약한 상호작용의 이론에 적용한 사람은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와 파키스탄의 압둘 살람 등이었다. 와인버그는 1967년, 글래쇼가 전자기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을 통합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제안한 SU(2)×U(1) 게이지 모델을 전자와 중성미자에 대해서 적용하면서 힉스 메커니즘을 도입해서 입자의 질량을 설명하는 이론을 발표했다. 이 모델에서는 게이지 대칭성이 깨지면서 약한 핵력을 전달하는 입자인 W와 Z 보손이 질량을 가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W와 Z 보손의 질량 때문에 약한 핵력이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만 작용하는 것과 전자기 상호작용에 비해서 아주 작은 것이 모두 설명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의 구조이며, 여기서 나타나는 전기적으로 중성인 스칼라 입자가 바로 2012년에 물리학자들이 찾아낸 힉스 입자다.
게이지 대칭성이 자발적 대칭성 깨짐을 통하여 게이지 입자의 질량을 만드는 과정을 ‘힉스 메커니즘(Higgs mechanism)’이라고 하고, 이때 나타나는 스칼라 입자를 ‘힉스 보손(Higgs boson)’이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여러 사람이 공헌한 이론에 유독 힉스의 이름이 붙게 됐을까? 그것은 1972년 미국 페르미연구소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당시 페르미연구소 이론물리학 부장이며 대표 발표자였던 한국 출신의 이휘소 박사가 약한 상호작용의 여러 이론을 언급하면서 처음으로 ‘힉스 메손(Higgs meson)’이라는 말을 쓰면서부터였다고 힉스는 기억한다.
힉스 메커니즘은 또한 물질을 이루는 쿼크와 렙톤의 질량도 정해준다. 결국 표준모형의 모든 입자는 힉스 메커니즘을 통해서 질량을 가지게 되고 우리가 보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힉스 보손이라는 미지의 입자가 하나 나타나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1988년 노벨상 수상자이며 페르미연구소 소장을 지낸 미국 물리학자 레이더먼이 힉스 보손을, 그리고 자신의 책의 제목을 『신의 입자(God Particle)』라고 지은 이유일 것이다.
1971년 네덜란드의 토프트가 일반적인 게이지 이론이 자발적으로 대칭성이 깨지더라도 양자역학적으로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와인버그의 이론은 날개를 달게 됐다. 곧이어 1973년 CERN에서 전기적으로 중성인 약한 상호작용이 발견되면서 SU(2) 대칭성이 확인됐고, 1974년 네 번째 쿼크가 발견돼 전자뿐 아니라 쿼크까지 모든 기본입자가 와인버그의 이론으로 모두 통합됐다. 진정한 거의 모든 것의 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이를 우리는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와인버그, 글래쇼, 살람은 표준모형의 이론을 만든 공로로 1979년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오늘날까지 표준모형의 여러 이론적 구조는 거대 가속기 실험을 비롯한 수많은 실험을 통해 세부까지 극히 정확히 검증됐다. 특히 약한 핵력을 전달하는 입자인 W와 Z 보손이 1983년 CERN의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장치에서 발견되면서, 약한 핵력의 가장 핵심적인 구조가 힉스 메커니즘을 제외하면 모두 확인됐다. 사실 W와 Z 보손이 질량을 가지고, 다른 쿼크와 렙톤도 모두 질량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힉스 메커니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는 이들 입자가 질량을 가지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힉스 메커니즘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역시 힉스 보손을 실제로 확인하는 일이다.
1.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지면(자석의 예)
2. 자석으로 비유하면
3. 힉스 메커니즘
표준모형에는 모두 17개의 기본 입자가 있다. 이 중 힉스만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다.
1. 표준모형의 17개의 기본 입자를 종류별로 구분한 표로, 화살표는 스핀(1바퀴=1)을 의미한다.
2. 표준모형의 17개의 기본 입자를 질량별로 구분한 표이다.
1970년대까지는 힉스 보손을 직접 찾기보다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기였다. 당시 실험적으로 더 중요한 일은 정체도 불분명한 힉스 보손보다 힉스 메커니즘에 의해서 질량을 얻는 약한 핵력의 게이지 입자인 W와 Z 보손을 찾는 일이었다. 표준모형에 의하면 W와 Z 보손은 그 어떤 입자보다도 훨씬 무거워서 양성자의 50배도 넘을 것으로 예측됐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질량은 에너지와 동등하므로, 이렇게 무거운 입자를 실제로 만들어서 관찰하려면 엄청난 출력의 가속기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유럽의 CERN에서는 거대한 전자-양전자 충돌장치인 LEP 건설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으로 당시 보유하고 있던 양성자 가속기인 SPS를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장치로 개조해서 앞서 말했듯이 1983년 W와 Z 보손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자연현상의 패턴을 보고 추측해낸 추상적인 대칭성이 현실로 존재하는 것을 확인한 현대물리학의 위대한 성공의 순간이었다.
1987년 톱 쿼크를 찾는 것을 목표로 쯔쿠바에 건설된 일본 최초의 거대 가속기인 TRISTAN이 가동됐다. TRISTAN에서 최초로 직접 힉스 보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TRISTAN 가속기를 모태로 일본 입자물리학연구소(KEK)가 설립됐고, TRISTAN 가속기가 설치됐던 터널에는 후일 보텀 쿼크가 들어 있는 B 메손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가속기가 설치돼 2000년대에 크게 활약했다.
힉스 보손의 질량 역시 힉스 메커니즘에 따라 생기는데, 이는 표준모형의 이론 내에서는 알 수 없고 측정해서 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힉스 보손과 W와 Z 보손의 질량이 모두 같은 메커니즘에 의해 생기므로 힉스 보손의 질량과 W와 Z 보손의 질량이 비슷해서, 100GeV/c2 근처의 값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1989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CERN의 LEP 가속기에서 비로소 힉스 입자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둘레가 26.7km에 이르는 사상 최대 크기의 전자-양전자 충돌장치였던 LEP은 충돌 에너지를 Z 보손의 질량인 약 91GeV/c2에서 시작해서 최대 209GeV/c2까지 올려가면서 12년간 실험을 계속했다.
2000년 10월까지 LEP에서는 힉스 입자가 만들어졌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고, 결국 힉스 입자의 발견은 다음 세대로 넘겨졌다. LEP 실험의 결과로부터 물리학자들은 힉스 입자의 질량이 적어도 114.4GeV/c2보다 크다고 결론지었다. 양성자의 질량이 약 1GeV/c2이므로, 이 값은 힉스 보손이 적어도 양성자보다 약 114배 이상 무겁다는 뜻이다.
LEP 이후 힉스 보손을 찾는 실험이 진행된 곳은 미국 페르미연구소의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장치인 테바트론(Tevatron)이었다.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1.96TeV(=1960GeV)로 충돌시키는 테바트론은 당시까지는 역사상 가장 높은 충돌에너지를 내는 가속기였고, 1994년에 지금까지 발견된 입자 중에서 가장 무거운 톱 쿼크를 발견하는 개가를 올린 가속기이기도 했다. 얼핏 생각하면 충돌에너지가 거의 2000GeV에 달하는 테바트론에서라면 수백 GeV/c2 질량의 힉스 입자는 넉넉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테바트론과 같은 양성자 충돌 실험에서는 충돌에너지가 2000GeV라고 해서 2000GeV/c2의 입자를 곧바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성자는 쿼크와 강한 핵력을 전달하는 글루온으로 이루어진 복합입자이며, 양성자가 충돌할 때 실제로 충돌하는 것은 양성자를 이루는 쿼크나 글루온이기 때문이다.
쿼크나 글루온 하나하나는 양성자가 가진 에너지의 일부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실제 충돌에너지는 기껏해야 양성자의 충돌에너지의 약 10%에 불과하다. 또한 양성자 충돌 실험의 결과는 LEP과 같은 전자-양전자 충돌에 비해서 훨씬 복잡하다. 그래서 힉스 보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 속에서 힉스 보손을 구별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힉스 보손이 만들어져야 한다. 테바트론은 2011년 가을에 영광스러운 일생을 마쳤다. 힉스 입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유용한 정보를 남기기는 했지만, 힉스를 직접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제 LHC를 이야기할 때가 왔다. LHC는 CERN의 과학자들이 20여 년간 준비해 온 야심적인 괴물 가속기다. LHC는 26.7km 둘레의 LEP 가속기가 설치됐었던 터널에 전자-양전자 충돌장치를 뜯어내고 새로 설치한 양성자-양성자 충돌장치다. 양성자는 전자보다 약 2000배나 무겁기 때문에 같은 크기의 가속기로도 훨씬 높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이다. LHC는 테바트론의 7배가 넘는 14TeV의 충돌에너지로 테바트론보다 100배가 넘는 많은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다. LEP이 실험을 마친 2000년 이후 무려 8년간이나 CERN의 과학자들은 LHC를 설치해 왔고, 마침내 2008년 9월 10일에 성공적으로 가동했다. 여러분은 혹시 LHC가 처음 가동됐을 때 블랙홀이 지구를 삼킬지 모른다는 소동이 몇 군데에서 일어났던 것을 해외토픽에서 보았을지도 모른다.
LHC는 가동 직후 불의의 사고가 나서 다시 약 1년 간 수리를 해야 했다. 마침내 LHC가 다시 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말이며, 2010년 3월부터 드디어 LHC는 본격적으로 양성자-양성자 충돌 데이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단, 에너지는 목표 에너지의 절반인 7TeV로 가동됐다. 2012년에는 에너지를 8TeV로 조금 더 높였다.
양성자와 양성자가 충돌할 때 힉스 보손이 만들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양성자가 충돌할 때 실제로 충돌하는 것은 쿼크나 글루온이다. 그런데 문제는 힉스 보손이 입자들의 질량을 정해주는 힉스 메커니즘에서 나오다 보니 힉스 보손과 다른 입자가 상호작용하는 크기는 입자의 질량에 따른다는 것이다. 쿼크의 질량은 아주 작기 때문에 쿼크와 쿼크가 충돌해서 힉스 보손이 만들어지기는 아주 어렵다. 그럼 글루온은 어떨까? 글루온은 아예 빛처럼 질량이 없다. 그러면 이를 대체 어떻게 할까?
재미있게도 LHC에서는 대부분의 힉스 보손이 글루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바로 양자역학의 효과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효과에 의하면 짧은 시간 동안 가상 입자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가상 입자는 실제 질량을 가진 입자가 아니라 입자의 성질만 가진다. 특히 가장 무거운 입자인 톱 쿼크의 가상 입자가 만들어지면 이 톱 쿼크로부터 힉스 입자가 매우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 톱 쿼크는 힉스 입자와 매우 크게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LHC는 엄청나게 높은 에너지로 입자를 가속하기 때문에 쿼크에서 무거운 W나 Z 보손이 튀어나올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쿼크와 쿼크가 아니라 W 보손이나 Z 보손이 충돌하면서 힉스 입자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들은 매우 무거운 입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LHC에서 힉스 보손이 만들어졌다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질량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략 힉스 보손은 1조 분의 1초 만에 더 가벼운 입자로 붕괴한다. 어떤 입자로 붕괴할 것인가 하는 확률은 힉스 입자의 질량에 따라 달라지며, 따라서 힉스 보손을 찾는 전략은 힉스 보손의 질량에 따라 다르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에 측정한 질량인 약 125GeV의 힉스 보손의 경우, 어느 한 가지 방법으로만 붕괴하지 않고 여러 가지 종류의 붕괴 과정이 모두 꽤 많이 나오게 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여러 가지 붕괴 과정을 측정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힉스 보손의 여러 가지 성질을 탐구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현재까지 힉스 보손을 주로 관찰하는 채널은 힉스 보손이 2개의 광자로 붕괴하는 과정과 2개의 약한 핵력의 게이지 보손으로 붕괴하는 과정이다. 그밖에도 2개의 타우 렙톤으로 붕괴하는 과정, 그리고 2개의 보텀 쿼크로 붕괴하는 과정도 관찰되고 있다.
자, 그럼 이제 힉스 보손을 발견했으니 어떻게 될까? 물리학자들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먼저 물리학자들 이야기를 해 보자. 물리학자들이 심심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실 물리학자들은 이제부터 전례 없이 바빠지게 됐다. 왜냐하면 먼저 우리가 발견한 것이 정말 힉스 보손인지 확인해야 하고, 혹시라도 다르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연구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고도 중요한 작업이다. 이런 예를 들어 보자. 우리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다가 사자처럼 보이는 동물을 발견했다. 그러면 그냥 집에 돌아가면 될까? 아니다. 이제부터 그 동물의 성질, 생활방식, 먹이, 짝짓기 등을 연구해야 하고, 가능하다면 한 마리 잡아서 자세히 살펴보고 유전자도 검사하고 싶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다.
또한 과연 힉스 보손이 이것으로 전부일까? 혹시 다른 성질을 가지는 다른 힉스 보손이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그래왔듯이 인간의 호기심에는 끝이 없고 탐구할 대상도 역시 마찬가지다.
표준모형은 20세기에 들어서 인류가 성취한 양자론, 특수 상대론, 양자 장이론, QED, 게이지 이론, 자발적 대칭성 깨짐과 같은 물리학의 주요 성과가 집약된 인간의 이성 활동에 있어서의 금자탑이다. 이 하나의 방정식은 빅뱅 직후와 같은 아주 특별한 경우와 중력 현상을 제외하면, 우리 우주의 거의 모든 물리현상을 설명하는 기본 이론이다.
LHC에서 힉스 입자가 발견된 것은 좁게 말하면 힉스 메커니즘이 게이지 대칭성과 같은 자연의 근본적인 구조에서도 작용하는 원리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이제야 표준모형의 모든 부분을 검증하고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표준모형이 적용되는 범위까지는 올바른 자연의 법칙을 알고 있다고 말해도 좋다. 여기서 올바른 이론이란 엄청나게 복잡한 진짜 이론을 이상화시킨 이론이 아니라, 진짜 옳고 아주 구체적인 부분에까지 옳은 이론이다. 사실, 힉스 메커니즘이라는 원리가 표준모형이 예측한 대로 정확하게 재현된다는 사실은 전율을 일으킬 만큼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직 우주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다. 우리는 우주의 물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물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우주의 에너지의 70%에 이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입자가 전부인지, 우주가 시작될 때는 다른 입자가 더 있었는지도 알 수 없고, 중력이 다른 힘들과 왜 그렇게 다른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우주와 물질에 대한 탐구를 그치지 않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표준모형은 가장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 힉스 입자의 발견은 이제부터 우리가 새로운 탐구를 해나가는 출발점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가르쳐 주는 사건이다.
1. LHC 안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입자 이동 통로가 있다.
2. 양성자 빔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엇갈린 채 움직인다. 마치 다른 트랙을 도는 육상선수처럼, 통로에서는 빔이 서로 만나지 않는다.
3. 빔은 양성자 약 1000억 개로 된 입자 덩어리 ‘양성자 뭉치(bunch)’로 돼 있다. LHC는 이런 양성자 뭉치를 동시에 2808개씩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실제로는 1380개(2012년 4월 기준) 수준으로 운영된다.
4. 트랙이 달라 서로 엇갈리던 양성자 뭉치는 검출기 안에서 서로 만나도록 방향이 바뀐다(충돌).
5. 양성자 뭉치가 서로 만나더라도 양성자는 작고 희박하기 때문에 그 안에 포함된 양성자는 대부분 구름이 지나듯 그대로 통과한다. 1000억 개 중 약 20개 미만의 양성자만이 충돌한다.
6. 양성자는 2개의 업쿼크와 1개의 다운 쿼크, 양자효과에 의해 생성되는 쿼크, 그리고 이들을 묶어주는 ‘글루온’들이 뒤섞여 있는 상태.
7. 양성자 충돌 시, 실제 충돌은 그 안의 입자들 사이의 충돌이다. 생성된 입자들이 밖으로 튀어나간다. 여러 가지 충돌 사건 중, 글루온과 글루온이 만나면 양자효과에 의해 톱 쿼크를 이루다가 힉스 입자를 형성한다.
8. 힉스 입자는 곧바로 광자 쌍, 2쌍의 전자, 2쌍의 뮤온 경입자, 또는 한 쌍의 뮤온 경입자와 한 쌍의 전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붕괴한다. CMS와 아틀라스는 이런 힉스의 붕괴 사건을 검출해 힉스를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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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 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입자 물리학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LHC 현대물리학의 최전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경상대학교 물리....펼쳐보기
1988년 서울 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입자 물리학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LHC 현대물리학의 최전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경상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88년 서울 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입자 물리학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LHC 현대물리학의 최전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경상대학교 물리....과학기술의 성과와 중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과학매체의 편집장들과 과학전문기자, 과학칼럼니스트, 연구자들이 모여 집필하였다. 진화론 논쟁부터 애니....펼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