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가슴속 깊은 곳에는
누구나 빨간 추억이 숨어 있다
어슴푸레 떠오르는 희미한 필름조각에는
정말 깨끗하고 순결한 맑은 영혼이
때 묻지 않은 순백의 자태로 앉아있다
친구라는 달콤한 울타리가 늘 위안이 되었고
꾸밈없이 평온하던 자연은 세상을 멀리 보는 해안을 가르쳤으며
우정이라는 씨앗이 뿌려져 싹을 티우고 곱고 예쁘게 성장하게 했다.
아름답고 푸른 꿈을 꾸며 교복 카라에 새겨진 이야기들
너나 나나 어찌 그 고운 추억 잊을 수 있을까?
오늘의 나를 만든 잔잔한 기억들이
새겨진 오래된 사진 몇 장이
왜 이리 가슴에 전율을 만들고
나를 그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공자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했던가?
참 곱다.
순박하고 어여쁘다.
45년 전 1967년 친구들의 중학시절 모습이다
배경이 모두 고향 흑백의 풍경
아련하게 그리움 몰고 다가온다.
초가집 마당 옆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퍼 올린 차디찬 물을 마시고
냇가에서 미꾸라지, 꾸구락지, 모래사생이.
텅거리 잡던 그런 시절이 눈을 부릅뜨게 한다.
능선을 배경으로 사진의 각도를 균형 있게 잡은 촬영 솜씨도 기특하다
따사한 우정을 이야기라도 하듯이 나름대로 잡은 순간포즈가
사춘기 맑고 깨끗하던 마음들을 잘 표현해 자연스럽고 아기자기 하다.
농부 흉내를 내며 지게도 저보고
땅도 파는 시늉이 우리네 지난 삶의 한 순간을 떠 올려준다.
백옥같이 하얀 교복이
저들의 순진함과 마음을 닮아 눈이 부시다
소한마리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자유로이 움직이는 배경에서
황소의 근면과 땀의 의미를 배워 오늘도 모두들 분주히 열심히 사는가 보다.
손에 손잡고 풋풋한 몸매의 균형을 유감없이 뽐내는 개성이 다채롭다.
자연스레 연결하는 춤추는 듯 한 모습이
기성 사진 작의 표현보다 더 정겨운 감동으로 느껴진다.
이 순간들의 기억을 헤집으며
그 맑고 곱던 마음속으로 들어가
순박하고 깨끗한 향기에 취해 때를 벗긴다.
너희들 앞을 스치는 길이 있을 땐,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몰라
가슴이 콩당 거리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막 달아 오르더라.
왜 그랬을까? 너희들은 참 신선하고 싱그러운 향기가 났었어..
그 야릇한 내음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지..
꿈을 꾸고 사랑을 배우고 우정을 쌓으며
우리는 고향 구석구석에 이런 설레는 이야기를 수없이 만들어 놓았다
그랬던 이들이 할머니가 되었고
미간에 세월의 이력이 얼키설키 잔잔한 금을 잔뜩 그어 놓았네..
단란하던 가족과 학교생활 우정이 전부이었던 소녀들은 이제
회갑을 지난 어르신이 되어 남편과 자식들 손자 손녀들
그리고 한 가정의 주인으로 어떤 이는 사회의 또 다른 일꾼으로 전문가로
세상을 어께에 메고 간다.
이제 황혼의 길 위에 서서 흰 머리카락 날리며
지난 추억 소복이 담고 싱긋 웃어보는 여유로움이 보이는 너희들
나에게 언제나 좋은 친구이고 영원히 함께할 소중한 벗이란다.
물끄러미 손자 손녀의 성장을 자신에 비교해보며
그 시절로 돌아가 꿈 많던 나와 대입시켜
복잡한 수학공식을 풀며 가슴 답답하드라도
세상은 진화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것 아니니?
다 이해하고 포용하며 살아야지?
우리는
지금과 비교되는 참 순박한 시절이 있었고
이렇게 평온하고 꿈 많던 순간이 있었더랬지..
그립지 않는가?
혹여 다시 그 시절로 복귀 할 수 있다면
아마 누구나 더 곱고 향상된 나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중얼거려 보지는 않을까?
가끔은 엄마 아빠가 아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나만의 세계로 들어가 책갈피 속에 사진을 꺼내보고
나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만들어 보자꾸나
곱게 물들어 가는 노을이 눈부시게 아름답듯이
그렇게 멋스러운 빛깔로 쌓인 경륜의 부드러움을
마음껏 발휘하며 더욱 진하고 황홀하게
빨간 추억을 되살리고 심장의 박동을 빠르게 하여
그때를 돌이켜 같은 마음으로 뛰어보자
그래 그렇게 살자
더욱 진한 우정과
넓고 포근한 사랑으로
아름다운 황혼의 멋이 풍겨나는 인생을......
깊어가는 가을밤
사진속의 이름들 하나하나 불러보며
그때와 지금의 너희들 정겨운 얼굴들 내 손위에 꺼내본다
숙, 애, 희, 길, 해, 화
모두 잘자!
안녕...
2012.10.21
시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