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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흑유자기는 길주요를 대표하는 주요 품종으로 일본에서 “천목” 이라고 불리우며, 송대 길주요의 독창적인 제품으로서 송대에 유행하였던 “투차鬪茶” 풍속 의 산물이다. 종류가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며 품종으로는 목엽천목木葉天目, 대모천목玳瑁天目, 토호천목兎毫天目, 유적천목油滴天目, 호피천목虎皮天目, 흑유채회黑釉彩繪, 흑유쇄채黑釉灑彩, 소천목素天目 등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길주요 천목품종 가운데 가장 예술적인 매력이 풍부한 기물은 아마도 목엽천목일 것이다. 목엽천목은 천연의 나뭇잎을 물에 담가 부식시킨 뒤에 유약을 칠하여 기물의 위에 붙여서 소성한 제품으로, 일반적으로 하나의 이파리가 잔의 중심이나 벽이나 구연부에 붙어있으며, 두개의 이파리가 중첩된 것도 있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장식풍격은 대모나 유적과 같은 화려한 결정무늬도 없고 호피나 자고반처럼 찬란한 색채도 없으며, 실처럼 흘러내린 토호잔과 같은 요변효과窯變效果도 없지만, 화려하지 않으면서 질박한 엽맥葉脈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예술적인 효과로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목엽잔을 자세히 관찰하면 안정감이 들며 반짝이는 흑색 가운데에서 가느다란 엽맥이 선명하게 나타나며, 엽맥 사이의 공간을 통하여 흑색의 유면釉面에 미황색米黃色의 이파리가 춤추듯이 생동하고 있다. 그러나 목엽잔 자체에 얽힌 수많은 수수께끼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 송대에 전국적으로 수많은 흑유산지가 있었으나, 왜 목엽을 장식한 기물은 많이 보이지 않을까? - 왜 길주의 영화요에서만 생산하였을까? - 왜 목엽을 차잔에만 장식하고 병이나 단지와 같은 기물에는 장식하지 않았을까? - 목엽잔에 장식한 이파리는 도대체 어느 식물의 이파리일까? - 또한 목엽잔의 장식은 질박하고 공예기법은 전혀 복잡하지 않으므로, 틀림없이 귀족이나 궁정의 어용자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량이 많지 않았을 터인데, 도대체 누가 사용하였을까?
(2) 일반적으로 한 점의 고대자기가 진귀하게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나는 희소성이며, 다른 하나는 그 당시의 명성이다. 예를 들면 명대 성화시기의 투채자기는 그 당시에 황제가 애호하던 기물로 가치가 극히 높았으며 이에 관한 문헌기록도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사람들이 좋아하는 목엽잔은 이러한 예에 전혀 포함되지 않는 듯하다. 투차가 성행하였던 송대에 황제와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차잔은 공예가 간단한 목엽잔이 아니라 투차에 적합하였던 토호와 자고반 및 유적 등의 요변자기였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차잔에 대하여 찬미한 문헌이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방여승람方輿勝覽>에는 “투차를 시험하는 방법은 물의 흔적이 먼저 사라지는 쪽이 지는 것이며 , 오랫동안 남아있는 쪽이 이기는 것이므로, 승부를 비교하는 것을 일수와 양수라고 하였다. 찻물의 색이 희므로 흑색의 잔에 담기면 물의 흔적을 쉽게 점검할 수 있어 토호잔이 귀한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鬪試之法, 以水痕先退者爲負, 耐久者爲勝, 故較勝負曰一水兩水. 茶色白, 入黑盞, 水痕易驗, 兎毫盞之所以爲貴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宋 徽宗의 <대관차론大觀茶論>이나 소식蘇軾의 시나 <청이록淸異錄> 등에도 토호잔이나 자고반에 관하여 노래한 내용이 나타나지만, 목엽잔에 대한 문헌기록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송대에는 목엽잔이 결코 중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루어 알 수가 있다. 또 송대 천목잔 가운데 조형면에서 중시를 받았던 자고반과 토호 및 대모천목잔의 조형은 비교적 규정하여 유약이 굽의 근처까지 칠해지고 굽의 처리도 비교적 세밀하였으며, 일부 기물의 경우 잔의 구연부를 둥글고 매끄럽게 말은 형태로 처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목엽잔은 조형면에서 두 종류가 있을 뿐이다. 하나는 10-12cm 정도의 보통형태의 둥근 잔이고, 다른 하나는 14-16cm정도의 삿갓형으로, 예외 없이 보통의 흑유(소량은 갈유)를 칠하고 유약을 굽까지 칠하지 않았으며, 굽의 처리가 투박하고 거칠어서 고급제품인 토호나 자고반과 완전히 달랐으므로, 궁중이나 귀족이 사용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독특한 목엽잔은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만들었을까?
길주요는 강서성 길안현吉安縣 영화진永和鎭에 위치해 있다. 일반적으로 길주요의 도자역사는 만당晩唐에 시작되어 남송말년에 중지되었다고 한다. 길주요는 길안시와 인접한 감강의 서안에 자리잡고 있다. 요지의 소재지인 영화진은 강을 따라 뻗어난 작은 고을이다. 영화진에서 발견된 20여개의 요지에서 각종 흑유자기의 파편과 채회자기의 파편이 출토되었으나, 목엽잔의 파편이 출토된 요지는 청원산靑原山 동남향에 있는 하나의 요지로 국한되며, 나머지 요지에서는 목엽잔의 파편이 전혀 출토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목엽잔은 그 당시에 하나의 전문집단을 위하여 주문제작된 기물이라고 추정된다.
영화진은 길안시와 20여리 떨어져 있으며 청원산과 7-8리 떨어져 있다. 청원산은 당시의 불교성지로 용집사龍集寺(또는 용도사龍度寺)가 당나라 초기에 건립되었다. 현재 영화진에는 본각사탑本覺寺塔이 남아있으며, 그 옆에 본각사라는 절이 있었다. 902년에 영화진에는 또 혜등사慧燈寺라는 절이 건립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청원산 밑의 영화요는 바로 불교가 번성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통해 “본각사本覺寺” 라는 명문의 흑유병이 출토되었으며, 또 “길吉”, “혜慧”, “태평太平”, “본각本覺” 등의 명문이 새겨진 완의 파편이 출토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잔에 “패엽貝葉” 으로 장식한 목엽잔은 이들 사원의 승려들이 전문적으로 주문제작한 차잔이라고 추측해볼 수가 있다. 이러한 추측은 실물자료가 결여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 불교가 번성하고 승려가 운집해있었던 상황으로 볼 때, 승려들이 현재에서 생산되는 이러한 목엽잔을 사용했을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다만 이러한 추정은 아직 하나의 가설일 뿐으로 실물자료의 발굴을 통해 더 확실한 증명이 필요하다.
길주요 목엽잔의 조형은 대부분 송대의 전형적인 삿갓형이다. 이러한 조형의 특징은 구연부가 넓게 벌어지고 굽은 작으며 배부위가 얕은 형태이다. 목엽잔의 제작은 “흑유를 칠한 잔에 이파리를 놓을 위치를 정하여, 이파리를 부식시켜서 나머지 부분은 제거하고 엽경葉莖과 엽맥葉脈만 남아있는 이파리를 잔에 칠한 흑유와 상이한 유약에 적셔 잔 위에 평평하게 붙인 다음에 고온으로 소성하면, 고열에 의하여 두 종류의 상이한 유약이 변화를 발생시켜 엽맥이 선명한 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목엽잔의 진가를 구분하는 방법은 손으로 가볍게 만져보아 목엽문이 붙은 미황색을 띠는 부위와 여타 부위의 흑유가 “하나의 평면” 으로 융화되어 있으면 진품일 가능성이 있으며, 방품의 경우에는 “도드라진 느낌” 이 든다고 한다 . 그러나 아직도 두 가지 의문점이 남게 된다. 첫째 ; 목엽잔의 제작이 이처럼 간단하다면, 왜 무수한 위조자들이 지금까지 성공적인 모조품을 만들어내지 못하였을까? 심지어 길주요와 영화요유적지연구소의 고급 모방품도 사람들에게 진품과 상이하다는 느낌을 주어 근본적으로 진품과 혼동될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 요지에서 출토된 파편을 관찰해 보면, 목엽잔에는 이파리부위가 유면 위로 돌출되어 있으면서 엽경이 선명하여 손톱으로 긁어내면 심지어 떨어져 나올듯한 경우가 있었다. 또한 일부 기물에서는 엽맥이 매우 희미하고 엽경은 사라져버려 이파리의 흔적만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미 발견된 목엽잔 가운데, 강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목엽잔은 삿갓형으로 태토와 유약이 모두 평범하지만, 목엽은 현재까지 발견된 이파리 가운데 가장 커다란 것으로 하늘높이 우뚝 솟은 거대한 나무와 같이 아스라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목엽잔에 사용된 이파리는 도대체 어느 나무의 이파리일까? 이 문제에 대하여 아직 정론은 없으며, 대부분 뽕나무의 잎이라고 여겨져 왔다. 북경 모도자연구소의 학자는 “모든 목엽잔은 뽕나무의 잎으로 뽕나무의 잎이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가짜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단편적이다. 길주요 주위 수목에 대한 현지조사를 거치고, 현지의 농민과 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했으며, 형태가 상이하고 이파리의 형태가 온전한 목엽잔 파편을 수십개 수집하여 검토한 뒤에 얻은 결론은 이파리는 절대로 뽕나무의 잎 한 종류가 아니었다.
이파리의 빛깔을 관찰해 보면, 금황색金黃色, 천황색淺黃色, 담홍색淡紅色, 자흑색紫黑色, 은백색銀白色이 관찰되었다. 이파리의 크기로 볼 경우, 잔의 중심을 덮을 정도로 커다란 잎과 누에콩처럼 작은 이파리도 있었으며, 옆맥이 분명하고 자연스러운 것과 희미하게 엽맥이 나타나고 이파리의 형태가 말린 것도 있었다. 현지에서 채집한 이파리의 종류로는 뽕나무의 잎과 양수엽楊樹葉이 가장 많았지만, 장수엽樟樹葉, 조각엽早角葉, 두협엽豆莢葉, 복숭아잎, 유자나무잎 등도 관찰되므로, 영화요 부근의 모든 식물의 이파리가 임의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도공이 손에 잡히는 대로 나뭇잎을 채취하여 사용하였으며, “패엽” 이라는 의미만을 중시하고 나뭇잎의 형태는 중시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 그러므로 길주요 목엽잔의 탄생은 선종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사원의 승려전용으로 제작한 기물이라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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