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육청 조직개편안 부결에 대한 담론
제주도교육청의 조직개편안이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이는 단순한 조례안 하나가 부결된 사건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지난 의회까지만 해도 없었던 사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의원 제도가 폐지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라 충격이 더 크다.
제주도의회의 이번 의사결정은 의회의 판단이 얼마나 일관성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도의원들이 과연 도민의 대표로서 책임 있게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의회의 심의와 의결은 대의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핵심 절차다. 그러나 그 절차가 합리성과 일관성을 상실한다면, 의회가 가진 민주적 정당성마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원칙과 기준을 잃은 의사결정은 결국 도민의 신뢰를 집단적으로 무너뜨릴 뿐이다.
더욱이 소통 부재나 전문위원 파견과 같은 지극히 행정적·기능적인 사안을 두고 소모적인 논란을 벌이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과연 제주도의회 교육의원 제도 폐지로 인한 전문성 부재 탓인지, 아니면 의회 스스로의 책임 의식 부재 때문인지 엄중히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
물론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안건이 본회의에서 반드시 가결되어야 할 의무는 없다. 본회의는 상임위원회의 판단을 다시 점검하고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최종 의결 권한을 가진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결정의 내용이 아닌 과정의 정당성에 있다. 교육행정의 전문성을 기하기 위해 별도의 상임위원회를 두는 이유는 사전 심사를 통해 본회의 안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전문 상임위원회가 심도 있게 심의하여 원안 가결한 안건을 불과 이틀 만에 뒤집었다면, 본회의는 기존 판단을 뒤엎을 만한 중대한 사유가 무엇인지 도민에게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이 구체적인 설명과 논리적 근거 제시야말로 의회가 도민 앞에 입증해야 할 최소한의 몫이자 의무다.
사안의 본질은 부결이라는 결과 그 자체보다 불과 이틀 사이에 판단이 뒤바뀐 경위와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의 충실성에 있다. 만약 합리적인 정책적 검토 대신 정치적 이해관계나 감정적 대립이 우선했다면, 이는 도의원의 자질과 의정활동의 본질을 심각하게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일부 의원들이 정책적 근거 대신 소통 부재와 같은 지극히 지엽적인 핑계를 구실로 삼은 정황이 바로 그 단적인 예다.
도의원은 단순히 안건에 찬표나 반대표를 던지는 거수기가 아니다. 도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기관에서 지역사회의 미래와 직결된 과제를 결정하는 엄중한 책임자다. 따라서 도의원의 자질은 정치적 목소리의 크기나 한시적인 존재감으로 측정될 수 없다. 사안의 본질을 얼마나 깊이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그 결과에 대해 도민 앞에 끝까지 책임지는가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도의원의 진정한 자질은 그들이 가진 권한이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의 무게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행정 조직개편은 단순한 부서 간판 바꾸기가 아니다. 행정력의 배분과 정책 추진 체계, 현장 지원의 효율성을 판가름하는 핵심 과제다. 특히 이번 개편안에는 교육활동 보호 조직 신설과 제주 4·3교육 관련 편제 개편 등 도민사회의 막대한 관심이 쏠린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이는 교육행정의 능률성 제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학생과 교직원의 권익 증진과 제주 고유의 역사교육이라는 공공적 가치를 총체적으로 고려했어야 마땅한 사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회의가 부결을 강행했다면, 도의회는 이 결정이 교육 현장에 어떤 혼란과 악영향을 초래할지 충분히 따져보았는지 명백히 해명해야 한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부결을 택했으며, 그 명분이 조직개편이 품은 공익적 목적보다 앞서는 근거가 무엇인지 도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집행기관과의 소모적 대립이나 감정적 마찰을 이유로 핵심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면, 이는 의회의 정당한 견제 권한 행사가 아니라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거부권 남용에 불과하다.
의회의 견제와 감시는 집행기관을 곤란에 빠뜨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잘못된 정책을 바르게 교정하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함으로써 도민의 공익을 증진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대안 없는 반대는 진정한 의미의 견제가 될 수 없으며, 명분조차 결여된 부결은 무책임한 정치적 몽니에 불과하다.
이번 사안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교육전문위원실의 인사권 독립성을 둘러싼 도의회와 도교육청 간의 시각차로 보인다. 의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문제 제기 자체를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의회가 집행기관을 실질적으로 감시·견제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정책 분석 역량과 독립된 지원 체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교육청 역시 교육자치의 고유한 특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인력 운용을 주장할 명분이 충분하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점은 인사권 독립이나 기관 간 권한 다툼이라는 원칙을 앞세우는 과정에서 도민 전체의 공익이라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양측의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는 폭주가 아니라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협의와 대안 창출이다. 인력 정원 이관이 과연 의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최선의 방안인지, 기존 교육청 파견 체제가 교육의 전문성을 유지하는 데 어떠한 장단점을 지니는지, 나아가 다른 시·도의 운영 사례는 어떠한지 다각도에서 다각적인 비교·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고의숙 제주도교육감은 정원 이관을 즉시 수용하지 않은 것이 의회의 인사권 독립을 부정하거나 소통을 거부하기 위함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교육전문위원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교육자치가 지닌 헌법적·사회적 의미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학교 현장과 도민사회의 목소리를 겸허히 수렴해 합리적인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이 온전히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교육감 역시 자신의 정책과 인사 운용 방향에 대해 충분히 소명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막중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행기관의 설명이 미흡하다고 판단했다면, 의회는 그 부족한 대목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보완을 요구하는 것이 순리였다. 정원 이관을 둘러싼 이견이 있었다면 쟁점을 분리해 별도로 논의하거나, 점진적인 단계적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등 충분히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인사권 독립이라는 원칙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한들, 그것이 다른 공익적 과제들을 무조건 멈춰 세울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교육의 전문성이라는 가치가 소중하다고 해서 의회의 정당한 견제와 문제 제기를 무작정 외면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양측 모두 각자의 명분과 원칙을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원칙이 결국 도민의 이익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실질적인 가치로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한다.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의 판단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는 결코 민주주의의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관점에서 안건을 다각도로 재검토할 수 있다는 점은 대의 민주주의가 지닌 분명한 장점이다. 그러나 판단이 뒤바뀌었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납득할 만한 설명과 논리적 근거가 수반되어야 한다. 앞선 전문 심사 과정에서 놓친 허점이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낱낱이 밝혀야 하고 새로운 정황이나 의견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 구체적 근거를 제시해야 마땅하다.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의 판단이 상충되었다면 그에 따른 도민 앞에서의 명쾌한 설명은 선택이 아닌 의회의 필수적 의무다.
만약 이러한 최소한의 설명 과정조차 생략된다면 도민은 의회의 결정을 신중한 정책적 판단이 아닌 불투명한 정치적 셈법의 산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상임위원회의 치밀한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 안건이 단 며칠 만에 번복되었다면 그 단기간 동안 어떤 논의가 오갔으며 어떠한 근거로 결론이 달라졌는지 그 전 과정을 도민 앞에 더욱 투명하게 공개해야 마땅하다.
도의원의 자격을 가름하는 기준은 찬반의 표결 결과에 있지 않다. 자신이 내린 결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입증하는지, 반대 의견을 얼마나 깊이 있게 성찰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초래할 파장에 대해 얼마나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하는지가 진정한 도의원의 척도다.
도민이 도의원에게 바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찬성이나 맹목적인 거수가 아니다. 잘못된 정책이라면 과감히 반대하되 그 반대가 무엇을 향한 것인지 도민 앞에 명확히 밝혀달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 반대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이 예상된다면 이를 보완할 현실적 대안까지 한발 앞서 제시해달라는 요청이다. 이것이야말로 도민의 대표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정치적 성숙이자 책무다.
이번 부결로 인해 교육활동보호담당관과 제주 4·3교육과 신설 등 핵심 정책 과제들이 차질을 빚게 되었다면 그 파장은 단지 교육청 내부의 행정 절차 지연에 머물지 않는다. 교육활동 보호는 학교 현장의 안정과 교육공동체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근간이다. 제주 4·3교육은 지역의 역사적 아픔을 미래 세대에 바르게 전승하는 엄중한 교육적 과제다. 아이들의 미래와 지역의 공공적 가치가 걸린 교육정책을 소모적인 정치적 갈등의 볼모로 삼아서는 결코 안 된다.
물론 조직개편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정책이 무조건 원안 그대로 추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별 정책의 시급성과 조직 설계의 타당성은 의회의 엄정한 검증을 거쳐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책의 내용적 타당성을 따지는 일과, 기관 사이의 인사 주도권 다툼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특정한 인사권 갈등이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나 역사교육의 추진 여부까지 발목 잡는 사태로 이어진다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것은 결국 도민과 교육 현장의 아이들뿐이다.
제주도의회가 진정으로 교육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부결이라는 단선적인 결론만으로 자신의 책무를 다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조직 구조가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지, 제주 4·3교육을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게 할 최선의 방안은 무엇인지, 나아가 의회의 인사권 독립과 교육의 전문성을 동시에 담보할 대안은 무엇인지 도민 앞에 명확한 해법을 제시해야 마땅하다.
교육청 역시 의회의 지적을 소모적인 발목 잡기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조직개편안의 타당성을 설득력 있게 입증하고, 쟁점이 된 인사 운용 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마땅하다. 의회와 교육청 어느 한쪽이라도 자신의 권한만 쥔 채 소통을 거부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에게 돌아가며 교육자치의 발전은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이번 제주도교육청 조직개편안 부결 사태는 제주도의회가 스스로의 의사결정 과정과 의정활동의 성숙도를 성찰하는 정면 계기가 되어야 한다. 상임위원회의 정밀 심사를 거친 안건이라 할지라도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정을 뒤집었다면 그에 걸맞은 분명한 사유가 수반되어야 하며, 기존 판단을 번복할 만한 흠결 없는 논거가 도민 앞에 제시되어야 마땅하다. 권한을 보유했다는 사실 자체가 권한 행사 방식의 정당성까지 자동으로 보장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금 도민이 묻고 있는 것은 누가 승리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책임질 것인가다.
도의원의 진정한 자질은 정치적 공방 속에서 상대를 얼마나 곤란하게 궁지로 몰아넣느냐에 있지 않다. 첨예한 갈등 속에서도 오직 도민의 공익을 최우선에 두고, 소모적 대립을 넘어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그 역량에서 판가름 난다. 어떤 안건이든 반대할 수 있는 권한 뒤에는 그 이유를 성실히 설명할 의무가 따르고, 안건을 부결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한 뒤에는 그로 인한 결과를 끝까지 감당해야 할 엄중한 책임이 따른다. 만약 이러한 민주적 원칙과 책임감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의회는 집행기관을 향한 정당한 견제기관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게 될 뿐이다.
다만, 이번 부결의 구체적인 표결 사유와 의원 개개인의 판단 근거를 면밀히 확인하지도 않은 채, 도의회 전체나 모든 의원의 자질을 단정적으로 비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건강한 비판은 감정이 아닌 객관적 사실과 명확한 근거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정당성과 설득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주도의회는 이번 결정의 경위와 논의 과정을 도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설명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교육청과의 재협의를 통해 실질적이고 발전적인 대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제주도민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교육감의 승리도, 도의회의 승리도 아니다. 학교 현장에 절실한 정책들이 합리적이고 차질 없이 추진되는 것, 교육자치의 전문성과 의회의 견제·독립성이 서로를 존중하며 선순환하는 것, 그리고 공적 권한을 위임받은 모든 기관이 자신들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도민 앞에 무겁게 책임을 지는 것뿐이다.
상임위원회 통과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이뤄진 부결이 합리적 재검토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소모적인 정치적 대립의 산물이었는지는 이제 제주도의회가 객관적 근거와 현실적 대안으로 직접 답해야 한다. 도의원의 자질과 가치는 화려한 언변이나 막강한 권한 행사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판단의 일관성, 설명의 성실성, 그리고 도민을 향한 무거운 책임감으로 증명될 뿐이다.
지금 제주도의회에 절실한 것은 승패를 가르는 세 겨루기의 정치가 아니라, 부결의 명확한 사유를 소명하고 향후 무엇을 어떻게 개선할지 제시하는 책임정치다. 그것이야말로 무너진 도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단 하나의 첫걸음이다.
2026. 10. 26.
제주미래전략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