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가 사람 몸에 좋다고? 그건 자살약이야.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 생수를 마시시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생수를 마시지 말라니. 생수의 효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아닌가. 도대체 그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도발적인 말’을 하고 다닐까.
“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두메산골에 산다고? 게다가 그곳에 건강을 지키는 산간학교까지 세웠다고? 혹시 이상한 사람 아냐?”
머릿속을 빙빙 도는 ‘생수를 마시지 마라’는 말과 ‘요즘 세상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산다’는 사실에 마음이 끌려 어디 한 번 만나나 보자고 생각했다.
강원도 정선군 남면 오음실마을. 산으로 둘러싸인 하늘 아래 첫 동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깡촌’. 보이는 것이라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눈 옷을 입은 겨울산. 딱정벌레처럼 나지막한 화전민집 두 채. 그곳이 그 ‘이상한 사람’이 사는 곳이다.
텁수룩한 수염이 얼굴의 반을 덮은 산신령 같은 인상. 쉰을 코앞에 둔 나이.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가족을 끌고 산 속으로 들어간 산꾼. 건강장수법이란 화두를 잡고 평생을 매달린 재야 건강박사….
김종수씨(49)가 살고 있는 오음실마을에 주민이라곤 달랑 5명. 아내 현미정씨(36)와 아들 경태(11) 그리고 네 살배기 쌍둥이 딸 정하, 인하가 주민의 전부다. 그는 이곳에 기림산방(氣林山房)이란 건강수련원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바른 기운이 숲을 이루는 집. 그는 기림산방에서 사람들의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고 예절을 가르친다. 이른바 ‘바른생활 건강법’.
“생수를 육각수라고 좋다고 마시지요? 그것은 죽은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생수는 차갑기 때문에 몸을 차갑게 만들어요. 몸이 차가우면 기(氣)의 소통이 막히고 머리에 열이 나게 됩니다. 몸을 보호하고 건강하게 사는 법은 간단해요. 두한족열(頭寒足熱)! 머리는 차갑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만들면 됩니다. 그게 우리 조상들의 건강법이었지요. 물론 현대에도 유효한 건강법이고요.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른 생활입니다. 등을 쭉 펴고 턱은 적당히 당기고 앉을 땐 아랫배에 힘을 주고…. 등이 굽으면 기(氣)가 막힙니다. 기가 막히면 소화기능에 장애를 불러옵니다.”
믿을까 말까. 의학박사 학위도 없는 사람이 권하는 건강장수법. 그러나 그의 ‘바른 생활 건강법’은 야전의 경험을 통해 입증된 산 지식이다.
그는 지난 95년 전국의 장수노인 3백여 명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들을 밀착 취재한 결과 장수비법은 보약이 아니라 ‘바른 생활’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장수노인들로부터 얻은 건강비법은 의외로 쉽다. 생활 속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
첫째. 예절을 지키라
예절을 행하면 건강한 마음을 키워준다. 물건을 어른에게 드릴 때 반드시 두 손으로 드려라. 두 손으로 드리면 배에 힘이 생긴다. 즉 예절을 행하는 순간 바로 배(단전)의 힘을 키우게 된다. 머리를 앞으로 숙여보라. 저절로 아랫배에 힘이 들어간다.
겸손과 인내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차분한 마음은 여유와 집중력을 길러주고, 생각할 줄 아는 인간, 준비할 줄 아는 인간을 만든다.
둘째. 따뜻한 음식을 먹어라
장수노인들의 식사법은 간단하다. 하루 3식을 하되 부족한 듯이 먹는다. 과식은 절대 금물. 반드시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몸이 차가워지고 머리에 열이 나서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킨다.
음식은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는다. 짠맛 매운맛 신맛 단맛 쓴맛은 모두 우리 몸에 필요한 요소다. 음식은 정성으로 먹는다. 장수노인들의 경우 음식은 정성껏 준비하고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는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한다. 늦은 저녁 따스한 차 한잔은 소화를 돕고 비만도 막는다.
셋째. 발끝을 11자로 유지하라
양발이 벌어지면 기운을 잃고 피곤하게 된다. 특히 한쪽 다리에 체중을 의지하는 습관은 뼈와 근육을 기형으로 만든다. 서 있을 때는 항상 발끝을 11자로 유지하라. 팔자걸음은 건강에 좋지 않다.
넷째. 대가족 생활을 하면 오래 산다
대가족 생활은 예절뿐만 아니라 노인과 아이가 서로 기를 주고받아 건강해질 수 있다. 혼자 살면 음양조화가 깨져 병이 나기 쉽다. 독신을 고집하지 마라. 여럿이 함께 생활을 하면 대화 상대도 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 활력을 갖게 된다.
다섯째.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라
척추가 바로 서면 척추 부위를 통과하는 독맥의 기가 소통된다. 고개를 세우지 않으면 대추혈이 막히고 허리를 굽히면 명문혈이 막힌다. 고개와 허리를 바로세우고 앉음으로써 경락을 뚫어주어야 한다.
여섯째. 장수엔 낮은 베개가 좋다
낮은 베개를 사용하면 굽은 등이 펴지고 기순환이 잘된다. 피로회복에는 침대보다 온돌방이 효과적이다. 가능하면 온돌방에서 자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머리가 맑아진다. 장수노인들 대부분은 낮은 베개를 베고 있으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일곱째. 죽는 날까지 일하라
적당한 일은 소화를 돕고 노화를 막는다. 장수노인들은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마무리까지 깨끗하게 처리한다. 정년퇴직했다고 일을 놓지 마라. 작은 일이라도 찾아서 노동과 보람을 만끽해야 오래 살 수 있다.
여덟째. 존댓말을 하면 오래 산다
장수노인들은 존댓말을 일상화한다. 부부끼리 식구끼리 존댓말을 사용한다. 반말은 조급함과 객기를 만든다.
‘엄마’라고 부르면 배에 힘이 가지 않지만 ‘어머니’하고 부르면 아랫배에 힘이 가 단전 효과도 있다. 가족끼리 경어 쓰는 습관을 길러라.
아홉째. 목욕을 자주 하지 마라
장수노인들은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다. 도시인들처럼 매일 샤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따뜻한 물에 목욕할 땐 심장과 폐 부위가 물 밖으로 나오게 하라.
열째. 차분한 마음과 여유를 가져라
급한 마음, 방심, 객기 등은 사고와 불행을 부른다. 모든 일에 여유를 가져라.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따뜻한 차를 많이 마셔라.
열한 번째. 집안에 ‘자연’을 심어라
집안에 식물을 심으면 피로를 잊게 한다. 아파트에는 특히 식물을 많이 들여놓아야 한다. 집안에 어항이 있으면 신경질이 사라진다.
열두 번째. 배가 따뜻해야 잔병이 없다
배가 차가우면 배탈과 설사 등을 일으킨다. 찬 음식은 장수의 적이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배꼽티는 배를 차갑게 하여 건강에 좋지 않다.
누구나 알 것 같은 건강상식들이다. 기림산방에서는 거창한 건강비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생활자세 교정, 예절 갖추기, 노동 등 초등학교 <바른 생활> 수준이 전부다. 이런 ‘하찮은’ 건강법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것도 돈까지 내가면서. 그러나 이미 기림산방을 다녀간 사람만 2천5백여 명에 달한다. 직장인, 학생, 주부, 교수, 성직자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왔다갔다.
단골고객은 주위가 산만한 학생들. 그는 정신교육과 육체노동 그리고 자세교정을 통해 인내력과 집중력을 키운다. 전자오락에 미친 학생들, 공부에 취미없는 학생들을 방학동안에 집중 훈련시켜 대학에 입학시킨 경우도 수두룩하다.
기림산방(전화 0398-591-5469)에는 교육프로그램도 강의 시간도 따로 없다. 김씨 가족과 수련생들이 함께 생활하는 것이 교육이다. 대부분 4박5일 머물다 가지만 아예 짐을 싸들고 와서 장기체류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차 마시는 법부터 가르친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하루 10여 잔은 기본. 다음은 앉는 자세, 걸음걸이, 묵언(默言) 그리고 기체조 등으로 심신을 단련한다.
“병이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말과 행동 등 생활습관이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병만 치료하려고 하지요. 하지만 병을 치료하면 무엇합니까. 잘못된 생활습관은 다시 병을 만듭니다. 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려면 생활습관부터 고쳐야 합니다.”
산중만남, 이별, 운명의 재회…
김종수씨는 원래 ‘촌놈’이 아니다. 전형적인 서울 토박이. 대학시절엔 산에 미쳤다.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안 가본 산이 없다. 그래도 그에게 잊지 못할 산이 있다. 설악산.
그는 그곳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났다. 그 여인은 당시 설악산 한 암자에서 수행 중이었다. 그녀의 단아한 모습은 그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적지 않은 나이 차.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안 해본 사랑 고백이 없다. 그러길 수년. 그러나 그녀는 끝내 그를 버리고 인도로 만행(萬行)을 떠났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운명의 만남은 우연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그녀가 인도에서 수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본 TV. 그 속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김종수. 그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재회 그리고 입산. 지금은 기림산방에서 부부강사로 명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왜 산으로 들어갔을까. 그는 ROTC로 군생활을 마친 뒤 한 식품회사에서 예비군 중대장을 맡았다. 직원들을 대상으로는 ‘정신교육’, 방문객들에 회사 목장 홍보가 주임무. 대학 산꾼시절 관심을 가졌던 자연건강법에 뛰어난 화술을 가미해 일장 연설을 하면 장내는 말 그대로 ‘흥분의 도가니’. 그의 연설은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강의를 해달라는 곳이 꼬리를 물었다.
“신났지요. 잘 나갈 때는 1회 강의료 50만원까지 받았으니까요. 그러나 곧 회의가 들었지요. 강의시간에 바른 생활을 연설하면 끄덕끄덕 수긍하지만 그것으로 끝입니다. 강의 끝나면 곧바로 나쁜 생활습관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말더라구요. ‘이게 무슨 짓인가. 녹음테이프와 다른 게 뭔가’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91년 어느 날. 홀연히 짐을 쌌다. 10여 년의 직장생활. 각박한 인정, 빌딩 숲…. 진력이 났다. 자연의 품에서 살며 바른 생활교육을 하기로 했다. 정착한 곳이 지금의 오음골. 당시엔 화전민들이 버리고 간 집들과 그의 키보다 더 큰 쑥대만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묵정밭을 갈고 집수리를 하고 길을 내고….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았다.
그러길 1년여. 마침내 사람사는 집이 완성됐다. 그는 이곳에 가족을 이끌고 뿌리를 박았다. 그동안 가족들이 많이 늘었다. 닭 20여 마리, 백구와 누렁이…. 얼마전 백구는 새끼까지 낳아 대가족이 됐다.
요즘에도 그에게 강의를 요청하는 기업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한달에 3일 이상은 산방을 비우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살자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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