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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③ 佛於一切十方中(불어일체시방중)에 부처님은 일체시방 가운데서 寂然不動無來去(적연부동무래거)하사대 적연히 고요해서 움직이지 않아. 寂然不動이야. 그래서 오고 감이 없어. 옴도 없고 감도 없어.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아.
그런데 應化衆生悉令見(응화중생실영견)케하시니 응당히 교화할 중생들이 다 하여금 보게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비가 내리는데요. 작은 컵을 갖다놓으면 컵에 알맞게 비가 담기고 세숫대야를 갖다가 마당에 내놓으면은 세숫대야 크기만치 비가 담기고 그렇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받아들일 자세가 얼마만치 돼있느냐에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항상 존재하는거에요. 뭐 여기 안와도『화엄경』안펼쳐도 사실은 얼마든지 부처님을 만날 수도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도 있고 우리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눈을 뜨고 배울 수가 있습니다. 단 우리의 마음자세가 준비가 돼있지 않죠.
말하자면은 폭우가 쏟아져도요 그릇을 엎어놓으면은 물 한 방울 담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슬비가 와도 그릇을 반듯하게 놔놓으면은 거기에는 물이 고이기 돼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서 우리들 마음의 그릇에 부처님의 가르침, 진리의 가르침이 담기게 돼있다. 이런 뜻입니다. 뭐 부처님이 꼭 와서 무슨 회초리를 들고 하나하나 가르쳐서 넣어주는게 아니에요. 그런다고 어디 들어가나요 어디? 들어가는게 아닙니다. 우리들 자세에 달린거죠.
그 寂然不動無來去여. 적연히~ 부처님은 옴도 없고 감도 없고 뭐 음성도 없고 말씀도 없어. 그런데 교화받을 사람, 중생이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서 전부 거기에 볼 수 있도록 돼있다. 눈을 크게 뜨면 크게 보고 작게 뜨면 작게 보고 큰 그릇을 갖다 놓으면 크게 담기고 작은 그릇을 갖다 놓으면 작게 담기고, 아무리『화엄경』법문이 폭우처럼 쏟아져도 그릇을 엎어놓으면은 한 방울도 담기지가 않고 비록 시원찮은 법문이라도 그릇을 반듯하게 놓고‘어딘가 한 마디는 주워들을게 있겠지? 한 마디는 뭔가 내 마음에 계합되는게 있겠지?’하고 강태공이 낚싯대, 곧은 낚싯대 드리우듯이 드리워놓고 기다리면은 착 내 마음에 와서 계합할 때가 있어. 그런 말씀이 한 마디 딱 드는거야. 한 시간 공부한다고 한 시간 공부하는게 다 들어오면 그거 어떻게 감당하라고? 감당 못해요. 한 두 마디만 딱 마음에 와서 계합돼도 너무나 큰~거 건진거에요.
此是髻輪之所知(차시계륜지소지)로다 이것은 계륜주수신이라고 하는 주수신이 아는 바더라.
그 다음에 ④ 如來境界無邊量(여래경계무변량)하사 여래의 경계는 邊量이 없어. 가가 없고 양이 없다. 무변(無邊)이, 무량무변(無量無邊)이다 이 말이죠. 끝도 없고 한량도 없다. 그렇습니다. 여래의 경계가 어디 끝이 있고 한량이 있겠습니까? 한량도 없고 끝이 없으사. 一切衆生不能了(일체중생불능료)어늘 일체중생이 어떻게 다 아나요? 다 모르는거야. 예를 들어서 하늘에서 비가 막~ 폭우가 쏟아지는데 우리가 그거 비를 큰 그릇을 갖다놓고 담을려고 한들 그 쏟아지는 비에 얼마나 담겠습니까? 능히 알 수가 없어. 일체중생이 능히 알지 못하거늘
妙音演說遍十方(묘음연설변시방)하시니 아름다운 음성으로써, 아름다운 음성이 뭐 음성이 고아서 아름다운게 아니라 진리의 말씀, 참다운 이치에 맞는 말씀, 우리 인생에 정말 당연한 그런 그 어떤 그 삶의 길을 제시하는 그런 말씀이 妙音입니다. 妙音으로 演 설법하는거죠. 연설해서 시방에 가득하시니 此善漩神所行處(차선선신소행처)로다 선선주수신이 행한 바 곳이더라. 그 곳에 그러한 이치를 행했더라 그런 말입니다.
그 다음 ⑤ 世尊光明無有盡(세존광명무유진)하사 세존의 광명이 다함이 없으사. 이건 이제 무슨 뭐 세존이라고 해서 어떤 특정인을 상상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보면 돼요. 세존의 광명이 끝이 없으사. 充遍法界不思議(충변법계부사의)라 법계에 가득해가지고 법계에 가득해서 불가사의하다. 이게 이제 불교의 영향력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영향력이 온 우주에 꽉 퍼져가지고 사람사람이 가슴에 영향을 끼친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說法敎化度衆生(설법교화도중생)하시니 설법하고 교화해서 중생을 제도하시니. 그렇습니다. 뭐 불교에는 무슨 뭐 벌을 주거나 회초리를 들거나 벌금을 매기거나 무슨 뭐 그런게 없어요. 그저 오로지 설법하고 교화해서 설득하는 것입니다.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거요. 깨달을 때까지. 깨달을 때까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깨달을 때까지.
그 저기 그 유명한 그 소추비구라고 있죠? 워낙 머리가 둔해가지고 빗자루를 들면은 쓰는걸 잊어버리고 쓰르라고 하면은 빗자루를 잊어버려. 그러니까 이건 빗자루다. 쓴다. 그 빗자루로 쓸고 빗자루로 쓸고, 이걸 가르쳤잖아요. 그래가지고 그 지역에서 아주 도반스님들의 놀림감이 되고 특히 비구니들이 이제 소견좁은 비구니들이“하~ 저 소추비구 그 쓴다는 말도 모르고 빗자루란 말도 모르고”두 개를 한꺼번에 못외운다 이거지. 낱말을 두 개를 한꺼번에 못외워. 우리도 공부해보면 그럴 때 더러 있어요. 그래 부처님이 가르친거야. 부처님은 그 둔한 소추비구를 보고는 너무 반가워했어. 저런 근기라야 비로소 공부가 된다 이렇게 된거요.
옛날에 우리 서당에도 그런 말이 있어요.‘맞백독’이라는 말이 있어.‘맞백독’마주 앉아서 백 번 읽어줘야 돼.“하늘 천, 하늘 천, 하늘 천, 하늘 천, 하늘 천, 하늘 천”이걸 백 번을 마주하고 그 읽어줘야 기어이 하늘 천자 하나 기억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 하나 만나면은 아주 서당에 아주 그 저기 저 훈장이요 아주 뭐 크~게 반가워하고 정말 대환영을 합니다. 아주 큰 근기하나 건졌다고 큰 인물 하나 건졌다고 하는거. 머리, 얄팍한 머리가지고 금방 외우고 그 하는거 그 멀리 못가거든. 미련해야 이게 뭐가 된다구요. 그래 맞백독하는 사람을 만나면은 제일 반가워했다는 것입니다. 서당의 그 선생도
그 부처님도 소추비구 만나고는 그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그래가지고 비구니들이 막 비웃는거라.“저 비구는 말이야. 비구가 돼가지고 두 낱말을 못외운다.”쓸 소(掃)하면, 쓴다는 말 가르치면 빗자루란 말 잊어버리고 빗자루라고 함 가르쳐놓으면 쓴다는 말 잊어버리고, 그런데 나중에 빗자루로 쓴다. 그러니까 도량에 나가서 맨날 먼지만 쓰는거야. 계~속 휴지쓸고 먼지쓸고 뭐 쓸고 쓸고 내~ 도량에“네는 다니면서 그거나 쓸어라.”인도의 그 절 도량이 얼마나 넓습니까? 그 기원정사 같은데는요. 뭐 도량이 해인사 한 열 배나 되거든요. 그런 도량을 돌아다니면서 쓰는거요.
이 쓸다가 마음 쓰는 것을 깨달아버렸어. 마음쓰는 것을, 마음 속에 탐진치 삼독과 팔만사천 번뇌를 쓸어낸다는 도리를 깨달아버린거요. 그래서 어느날 이제 저기 비구니 회상이 있는데 거기에 이제 훌륭한 아난존자나 가섭존자 같은 이들이 가서 법문을 해줬어. 그런데 마침 그 분들이 이제 다른데 법문하러 가느라고 갈 수가 없게 됐어. 그런데 이제 초기 그 비구니들 그 교단에는 비구스님이 가서 법문을 하도록 돼있어. 자기들끼리 못하게 돼있었다고 초기에는, 요즘은 다 잘하죠. 요즘은 더 똑똑해. 비구니스님들이
그래서 이제 부처님한테 부탁을 한거야.“이번 주에는 어떤 스님이 와서 그 우리에게 법문해줄꺼냐?”고“아 저 소추비구를 모셔서 법문해라.”하니까 막 키득거리고 웃고 비웃고, 아이 부처님이 그 비구를 지적했으니까 뭐 안된다고 할 수도 없고, 뭐 안된다고 했으면 좋겠지만 부처님의 명령이니까 안된다고 할 수도 없고 막~ 키득거리고 야단인거라 마.‘아이 저 비구가 저 멍충이가 우리한테 법문해주러 온대. 우리가 차라리 저 사람한테 해주자’하고 이 비구니들이 철딱서니없이 이제 그러고 있는데, 딱 이 비구가 법상에 올라가가지고“빗자루로 마당을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들 마음에 탐진치 삼독과 팔만사천번뇌를 쓸어내는 것이니라. 여러분들이 빨래를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기껏해야 옷에 묻은 때를 빨래하는 것 그거는 속인이 하는 짓이다 이거여. 빨래를 하면서 내 마음의 때를 씻는 것이 그 진정한 빨래의 의미다.”이런 식으로 법문을 하니까 그만 세상에 그 앞에서 왔던 어떤 큰스님들의 법문보다도 너무 감동적이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그 법문을 들었다라고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참 우리가 그 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교화를 받는 길도 인연 따라서 또는 근기 따라서 참 여러 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연을 가능하면은 폭넓게 잘 지으면은 그 가운데서 이제 선별을 해가지고‘아 여기는 이런 공부를 하는 것이고 여기는 뭐 어떤 수행이 그 수행을 하는 곳이고’이런 것들을 이제 눈으로 잘 살펴가지고 어디서 듣는다고 꼭 그거 곧이대로 믿지말고, 그 사람도 어디서 카더라 하는 소리 듣고 와가지고 일러주는건데 그거 뭐 믿을게 있나요? 그거 들고 와가지고 아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이거 어떻습니까? 점검도 안해보고 속에서 생각도 안해보고 한 번 또 반기를 해서 다시 그 사람에게 물어보고 그렇게 해서 이제 점검을 하고 이제 그렇게 해야 할 그런 일들이죠.
說法敎化度衆生이라 그 설법입니다. 불교에는 다른 방법이 없고 설법으로 교화해서 중생을 제도하시니. 이것은 정향주수신이 觀見(관견)한 바더라. 관찰해서 본 바더라.
그 다음에 ⑥ 如來淸淨等虛空(여래청정등허공)하사 여래께서 청정해서 허공과 같으사. 텅~ 비다 이 말이여. 깨끗하고 텅 비어서 허공과 같아서 無相無形遍十方(무상무형변시방)하시니 형상도 없어. 相도 없고 形도 없어. 시방에 두루해.
그렇습니다. 어떤 형상이 있으면 그 형상이 아무리 크게한들 크게한들 뭐 자리를 얼마나 차지하겠습니까? 석굴암 부처님 크지마는 그 뭐 사실은 이 드넓은 우주에다가 견주면은 그 뭐 먼지 하나에 불과하고 저기 저 중국에 그 무석에 대불(大佛)이라고 88m 대불을 모셔놔서 아주 감동적이라 해서 거길 가봤지만 정말 동으로 구리로써 88m나 되는 부처님을 모셔놨어요. 아~주 커요. 중국사람들은 참 큰거는 잘해 하여튼. (하하) 그렇게 해놨는데 그래봤자 그 88m 그래봐야 이 드넓은 지구상에서 먼지 하나에 불과하잖아요. 형상이 있는 것은 그 큰게 아니야.
여기서 如來淸淨等虛空이야 허공이 텅 비었잖아. 텅 빈 허공과 같다. 상도 없고 형도 없어. 그러면서 시방에 두루하다. 이건 무슨 말인가? 그러면은 이걸 가지고 여래라고 보면 되는거라. 상도 없고 형도 없고 시방에 두루한 것이 곧 여래다. 그러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전부 여래다. 이 뜻이에요.
그런데 인연 따라서 내 모습을 가진 경우도 있고 또 딴 모습을 가진 경우도 있고 또 그것도 잠깐이죠. 꽃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사람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뭐 동물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산이나 물이나 강이나 뭐 이런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고 잠깐 그때 그 상황에 맞춘 인연의 힘이 있을 때 그런 모습을 나타낸거여. 우리 모두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러한 인연에 의해서 그러한 모습으로 그 모습의 그 인연의 힘이 있을 때까지만 유효해요. 90년이면 90년, 100년이면 100년 딱 그렇게 그 힘이 있을 때까지만 유효합니다. 그 힘 사라지면요 그 다음부터는 딴 모습으로 나타나요. 그렇게 돼있습니다. 그게 전~부 여래라고 하는 이 세계 속에 포함됩니다.
而令衆會靡不見(이령중회미불견)케하시니 모든 대중의 모임으로 하여금 보지 아니함이 없게 하시니라. 다~ 보게 한다 이 말이여. 눈만 뜨면요 다 보게한다. 그래서 뭐라고? 處處佛像(처처불상) 곳곳이 다 부처님의 모습이고 事事佛供(사사불공)이다. 하는 일마다 전부 그대로 불공이다. 이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게 우리가 열린 마음, 정말 열린 마음을 갖는게 제일 중요하지요.
이것은 복광주수신이 善觀察(선관찰) 잘 관찰했더라. 이러한 이치를 복광주수신이 잘 관찰했더라.
그 다음에 ⑦ 佛昔修習大悲門(불석수습대비문)하사대 부처님께서 옛날에 大悲門을 수습하사대. 큰~ 크게 큰 자비의 문입니다. 큰 자비의 문. 其心廣遍等衆生(기심광변등중생)하실새 그렇죠. 부처님은 자비가 제일 아닙니까? 그 자비심 때문에 중생들 한 사람이라도 깨우쳐줄려고, 한 사람이라도 인생의 눈을 뜨도록 해주기 위해서 그 80노구를 이끌고 인도의 그 뜨거운 땡볕을 무릅쓰면서 중생들을 교화하러 다니신 그 역사를 우리가 생각해야합니다. 그것은 대 자비의 문이에요. 인제 미혹한 중생들을 깨우쳐줄려고 하는 그런 그 마음 其心廣遍等衆生이실새 그 마음이 넓고 넓어서 廣遍 두루두루 넓어 가지고서 중생숫자만치 넓다. 백만 중생이 있으면 백만 중생에게 다 그 마음을 쓰는 그런 정도로 넓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못하지요. 뭐 가족이 뭐 댓 명만 있어도 잊어버릴 때도 있죠. 한두 사람 잊어버리고
是故如雲現於世(시고여운현어세)하시니 그런 까닭에 구름과 같이 세상에 나타나시니. 구름도 우리가 이렇게 보지마는 비행기를 타고 구름 속으로 막 이렇게 투과해도 하나도 걸리지를 안해. 속도도 안떨어져. 구름은 존재하는게 아니야. 구름은 없는거라고, 없는데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여. 잠깐 거기에 어떤 기후변화에 의해서 그거 뭐 물방울일수도 이슬방울일수도 있고 그렇겠죠. 과학적으로 따지면은, 그렇지마는 우리가 육안으로 보듯이 저렇게 꽉 막힌게 아니라구요. 꽉 막힌게 아니야. 마음대로 지나가도 아무 걸림도 없어. 如雲現於世라. 그런 까닭에 구름과 같이 세상에 나타나시니
此解脫門(차해탈문)은 知足了(지족료)로다 이 해탈문은, 이 해탈의 그 문은 지족주수신이 깨달았더라. 지족주수신 그렇죠. 知足自在主水神(지족자재주수신)이에요.
그 다음에 ⑧ 十方所有諸國土(시방소유제국토)에 시방에 있는 모든 국토에 悉見如來坐於座(실견여래좌어좌)하사 다 여래가 자리에 앉아계신 것을 본다. 앞에서도 말씀했지만 處處佛像(처처불상) 事事佛供(사사불공)이라. 꼭 부처의 형상을 만들어서 불상이 아니라. 모든 형상이 그대로 불상이야. 우리 가족 늘 만나는 우리 가족이 전부 불상이여. 그대로 부처님이라. 悉見如來坐於座라 그 자리에 앉아계셔. 十方所有諸國土에 했으니까. 지금 시방에 있는, 모든 국토에 있는 모든 존재는 그대로 여래가 자리에 앉아계신 그 모습이다.
朗然開悟大菩提(낭연개오대보리)하시니 환하게 깨달아서 대보리를 깨닫게하시니. 큰~ 지혜와 자비 이것이 보리죠. 큰 보리를 개오케하시니. 如是(여시)는 이와 같은 이치는 희음주수신이 들어간 바더라.
그 다음에 ⑨ 如來所行無罣碍(여래소행무가애)라 여래가 행한 바는 걸림이 없음이라. 여기 또 이제 얼른 기억 그 납득이 안되면 아이 우리 마음의 어떤 그 작용을 생각해도 좋습니다. 마음작용은, 如來所行은 마음작용은 걸림이 없다. 罣碍가 없다. 걸림이 없다. 그렇습니다. 뭐 우리가 저 미국을 생각하면 순식간에 뭐 0.1초도 안걸려서 미국가고 아프리카 생각하면 0.1초도 안걸리고 아프리카에 가고, 無罣碍여. 如來所行이 無罣碍라 우리의 마음작용이 걸림이 없다. 그와 같이
遍往十方一切刹(변왕시방일체찰)이라 그랬네요. 시방일체세계에 곧 두루두루 다 간다. 생각만하면 다 가는거여. 이게 어떤 무슨 형상을 가진 존재는 이럴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라 가능한거여. 마음이 곧 사람이여. 사람이 마음이고, 마음없는 사람없고 사람없는 마음 없어요. 마음이 없으면 송장이야. 그래‘사람’할 때는 마음까지 다 포함해서 사람입니다. 그거 아셔야되요. 마음까지 다 포함해서, 그래서 나는“사람 사람”사람이란 말을 잘 씁니다. 사람이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이유가 그 속에는 다 마음이 다 포함돼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遍往十方一切刹 시방일체세계에 두루두루 다 간다 말이여. 시간이 안걸려. 아무 시간도 안걸려. 如來所行이 無罣碍니까. 우리 마음작용은 걸림이 없어. 자유자재니까. 뭐 여기서 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귀 딱막고 딴데 집에 가 있으면 뭐 할 수 없는거여. 친구들하고 오늘 약속했는데 놀러갈 생각만 계속 하고 있으면 거기 가 있는거여 그냥. 어쩔수 없어. 이거는, 아무도 못말려. 몸은 여기에 구속돼있지마는 마음은 구속이란게 없어. 無罣碍라구요.
그~ 無罣碍 無罣碍 無有恐怖(무유공포)아닙니까? 無罣碍 無罣碍故로 無有恐怖야. 공포가 없다고, 그 이치 알면은요. 우리가 방금 외운『반야심경』에 걸림이 없잖아요. 걸림이 없기 때문에 공포가 없어. 근데 그 보물을 우리가 두고 항상 여기 걸리고 저기 걸리고 두렵고 힘들고 짜증나고 근데 그걸 우리가 그 보물을 無罣碍 無罣碍故로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는 까닭에 아~무런 두렵고 공포도 없는데, 그게 우리의 본성인데 그걸 그냥 외면하고 제쳐놓고는 엉뚱한데 가서 매달리는거지. 엉뚱한 경계에 매달려가지고 내~ 그렇게 힘들고 두렵고 어렵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참~ 우리 사람이라는게요. 너무너무 참 값지고 값지고 보물스러운거에요. 너무 위대한 존재인거야. 알고보면은, 전혀 걸릴게 없는 그런 면을 우리가 다 가지고 있어요. 여기 말했네. 如來所行이 無罣碍라 뭐겠어요 如來所行이? 우리 마음작용이야 그냥. 그래서『반야심경』도 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處處示現大神通(처처시현대신통)하시니 곳곳에서 大神通을 示現하시니. 나타내고 있으니. 곳곳에서 어디가나 배고프면 밥먹을 줄 알고 피곤하면 잠잘 줄 알고 뭐 내 마음에 안들면은 신경질낼 줄도 알고 무슨 슬픈 일 있으면 울 줄도 알고 處處에서 상황 따라서 그~ 신통묘용을 나타내는거요. 물이 필요하면 수도꼭지 착 틀 줄 알고 불이 필요하면 불 탁 킬 줄 알고 이 대신통을 어느 곳에서든지 다 나타내는거요. 그래서 옛날 도인스님들이 뭐라고?“생활이 어떠냐? 도통하고 나서 생활이 어떠냐?”“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그거 뿐이라. 그 외에 달리 뭐가 있느냐?”그게 그대로 신통을 나타내는 것이니까.
處處示現大神通 이 구절 하나만 오늘 우리가 건져도 훌륭합니다. 우리는 평소에 처처에서 대신통을 시현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곳곳에서 신통을 부리고 있는거요. 무슨 뭐 유리겔라같이 그런 사기극 펼치는게 아니고 마술사들이 무슨 눈속임하는게 아니에요. 그런 신통 아닙니다. 우리 삶이 전반적으로 전부 신통이에요. 손 까닥까닥 해보십시오. 하~ 뭐가 들어서 그렇게 손이 까닥거릴 줄 알지? 신기하잖아요 정말. 그야말로 신통방통한거야. 하나하나 우리는 무심코 넘겨서 그렇지 유심~히 깊이있게 한 번 관찰해보면은 내 손이 하나 까닥까닥하는 것도 보통 이게 신기 신통방통한게 아니여. 그게 신통입니다.
普現威光已能悟(보현위광이능오)로다 普現威光 보현위광주수신이 이미 능히 깨달았더라. 이러한 도리를 깨달았더라. 참 그 아홉 번째 게송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그 다음에 ⑩ 修習無邊方便行(수습무변방편행)하사 無邊方便行을 修習하시사. 가없는 방편의 행을 닦고 익히사. 等衆生界悉充滿(등중생계실충만)이라 중생이 워낙 많으니까 중생세계와 동등하게 다 충만하게 한다. 그 방편을, 불교는 끝없는 방편을 가지고 중생들의 수준과 근기에 맞도록, 하~ 산신이 필요한 사람은 산신각 지어주고 칠성이 필요한 사람은 칠성그림 그려주고 용왕당 필요한 사람에게는 용왕당해주고 그래가지고 이제 중생을 이제 섭수해들이는거야. 그래서 결국은 최종적으로『화엄경』으로 회향하게 한다.
어린아이라고 갈데 없나요? 유아원에 가면 되고 유치원에 가면 되고 초등학교 가고 중등학교 가고 이렇게 이제 근기 따라서 가듯이 우리 불자들도 불교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 안에는 무한한 방편이 있어서 중생들의 그 근기에, 중생들의 그 수준에 똑같이 맞도록 충만하게 한다.
神通妙用靡暫停(신통묘용미잠정)이시니 신통과 묘용이 잠깐도 머물지 않으시니. 신통과 묘용이 잠깐도 머물지 않아. 이 불교는 살아있어요. 그대로 살아있는 가르침이야. 현재 우리의 삶을 떠나서 불교이야기 안하니까. 어떻게 불교를 조금 이제 서툴게 설명하면은 우리 생활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처럼, 불교따로 생활따로인 것처럼 그렇게 이제 가르치는 경우도 있는데 절대 그게 아니에요.
특히『화엄경』은 우리 일상생활 그대로가『화엄경』이다. 일상생활 속에서『화엄경』을 깨닫도록 하고『화엄경』속에서 일상생활이『화엄경』임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神通妙用이 靡暫停라 잠깐도 머물지 아니하고 우리 삶 속에서, 우리 일거수일투족 속에서 다 거기에 표현이 된다 하는 것입니다.
후성변해주수신이 斯能入(사능입)이라 후성변해주수신이라고 하는 주수신이 여기에 능히 들어갔더라.
(8) 第三行의 主海神
가, 主海神衆의 得法
復次出現寶光主海神은 得以等心으로
施一切衆生福德海衆寶莊嚴身解脫門하고
不可壞金剛幢主海神은 得巧方便으로
守護一切衆生善根解脫門하고
不雜塵垢主海神은 得能竭一切衆生煩惱海解脫門하고
恒住波浪主海神은 得令一切衆生으로 離惡道解脫門하고
吉祥寶月主海神은 得普滅大癡闇解脫門하고
妙華龍髻主海神은 得滅一切諸趣苦하야
與安樂解脫門하고 普持光味主海神은
得淨治一切衆生의 諸見愚癡性解脫門하고
寶焰華光主海神은 得出生一切寶種性菩提心解脫門하고
金剛妙髻主海神은 得不動心功德海解脫門하고
海潮雷音主海神은 得普入法界三昧門解脫門하시니라
자 그 다음에 이제 第三行(제삼행)의 主海神(주해신)이에요. 主海神 바다를 맡은 신. 특히 부산에 사시는 분들은 어떻습니까? 바다하고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죠. 저쪽에 내가 어느 바닷가 절 절에 잠깐 있었는데 거기에 오는 신도님들은 보니까 거의 반 이상이 바다하고 전부 연관이 있더라구요. 반 이상이, 뭐 여기도 부산이니까 이리저리 다 바다하고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바다 그 자체가 신이야. 이 지구상에 바다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겠는가? 상상을 못하잖아요. 바다에서 그 많은 습기를 빨아들여가지고 그것이 비가 돼가지고, 구름이 되고 비가 돼서 육지에 뿌려지는 것 아닙니까? 바다없으면 우리 한 순간도 못 살아요. 바다가 우리를 보호 안해주면은 우리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가 없다. 바다같이 훌륭한 신장은 없다. 그렇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내가 뭐 바다하고 무슨 관계야? 나는 배탈 일도 없고 바다에서 고기잡을 일도 없고 한데 아무관계 없다. 이렇게 좁은 소견 가지면 안된다는거여. 전~혀 바다하고 관계없는 것처럼 살지마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그걸 법계연기(法界緣起)라 그래. 어떤 그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런 관계 속에 이미 그렇게 이제 구성돼있는 조직이야.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 속에서 산다고 하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이거 뭐 우리가 일일이 파고 들어가서 설명하면은 뭐 꼼짝달싹 못하죠. 사실은, 바다하고 관계를. 그렇습니다. 바다도 그대로 우리를 지켜주고 우리 생명을 살게해주는 화엄성중, 나의 보호신 이렇게 생각해야 되죠.
主海神(주해신)의 得法(득법)이라 법을 얻은 내용.
① 復次出現寶光主海神(부차출현보광주해신)은 出現寶光主海神 보배 빛을 출현하는 주해신은 得以等心(득이등심)으로 평등한 마음으로써 施一切衆生(시일체중생)에게 일체중생에게 福德(복덕) 바다의 衆寶莊嚴을 衆寶莊嚴身(중보장엄신)을 보시하는 베풀어주는 解脫門(해탈문)을 얻었다.
그렇죠. 바다는 평등합니다. 평등한 마음이에요. 그리고 모든 중생에게 전부 福德海 衆寶莊嚴 온갖 보배 장엄신을 보시한다. 그렇습니다. 참 아까 설명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공히 바다와 알게 모르게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그런 내용이고 또 아주 그 좁은 안목으로 보더라도 바다를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좁은 안목으로만 보더라도, 어부가 그렇죠. 여객선이 그렇죠. 온갖 뭐 기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기름 전~부 바다를 통해서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쓰는거에요. 여러분들 자동차 타고 오셨는데, 자동차에 쓰는 기름 전부 바다 아니면 우리가 그 기름 한 방울 못씁니다. 바다를 통해서 여기까지 온거여. 보십시오. 그게 그렇게 연관관계가 깊습니다. 우리는
첫댓글 "處處示現大神通하시니"
우리 일상생활 그대로가 '화엄경'이다. 일상생활 속에서'화엄경'을 깨닫도록 하고
'화엄경'속에서 일상생활이'화엄경'임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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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處佛像 事事佛供..._()()()_
주수신,주해신 화엄성중 나무아미타불 고맙습니다.
우리의 마음자세에 따라 진리의 가르침은 우리 그릇에 담기게 된다.
깨달을 때까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소추 비구, 맞백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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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心...반듯한 믿음의 그릇에 충만한 법비를 담아..._()()()_
[世尊光明無有盡하사 充遍法界不思議라 說法敎化度衆生하시니...세존의 광명이 다함이 없으사 법계에 가득해서 불가사의하니라(부처님 가르침이 온 우주에 퍼져서 사람의 가슴에 영향을 끼친다)]설법하고 교화해서 중생을 제도하시니][如來淸淨等虛空하사 無相無形遍十方하사대 而令衆會靡不見케하시니..여래께서 청정하여 허공과 같아서 相도 없고 形도 없어 시방에 두루하사대 모든 대중의 모임으로 하여금 보지 아니함이 없게 하시니(상도 없고 형도 없고 시방에 두루한 것이 곧 여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전부 여래다)]
감사합니다._()_
處處示現大神通.......神通妙用靡暫停....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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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處佛像 事事佛供
處處示現大神通
神通妙用靡暫停.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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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種種修治無懈倦'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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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고맙습니다
南無大方廣佛華嚴經 南無大方廣佛華嚴經 南無大方廣佛華嚴經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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