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산업혁명이후 결핵이 전 유럽에 만연되고 있던 19세기말 덴마크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성이 착하고 어린이를 좋아하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 직원이었던 아이날 홀벨(Einar Holboell)은 당시 많은 어린이들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수수방관만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 연말에 쌓이는 많은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정리하면서 동전 한닢정도의 “씰”을 우편물에 붙여 보내도록 한다면 판매되는 동전을 모아 많은 결핵기금을 마련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내 1904년 12월 10일 세계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으며, 국왕인 “크리스찬 9세”도 적극 지원에 나서 그의 소박한 착상은 처음부터 많은 덴마크 사람들의 참여로 씰 모금 운동이 빛을 보게 되었다.
*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일제 아래서 캐나다의 선교의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처음으로 씰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1893년 11월 10일 당시 처음으로 평양에 서양의학과 기독교를 전한 감리교 부부 선교사의사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과 로젯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을 부모로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가난한 결핵환자들과 일반 서민들을 돌보고 깨우치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캐나다에서 의학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25년부터 해주구세병원에서 일하다가 1928년 해주 결핵요양원을 설립하였다.
셔우드 홀은 1932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면서 발행동기를 “첫째 한국 사람들에게 결핵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둘째 만인을 항결핵운동에 참여시키는 것, 즉 씰 값을 싸게하여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모두 사도록 하고 셋째는 재정적 뒷받침을 너무나도 필요로 하는 결핵퇴치사업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라고 회상하였다.
1932년 이후 1940년까지 9차례에 걸쳐 씰이 발행되었지만 태평양 전쟁 발발 직전 그는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일본 헌병대에 의하여 강제로 추방되어 씰 발행도 중단되었다.
그후 1953년 11월 6일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본격적인 민간주도의 결핵퇴치 재원 마련을 위하여 매년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되어 금년으로 49년째가 되며, 대통령을 비롯한 삼부요인은 물론 각계 각층인사와 군.경공무원, 공공기관, 외국기관, 학생 등 온 국민이 이 운동에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점차 결핵퇴치 기금모금운동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 나라의 크리스마스 씰은 ‘1988, ’89, ‘90, ’92, ‘95, ’96년에는 세계 크리스마스 씰 콘테스트에서 계속 1위에 입상하였으며, 2000년도에는 2위에 입상하여 한국의 씰 디자인과 인쇄 기술의 뛰어남을 보여 주었다.
이와 같이 국민의 성원으로 모아진 2000년 크리스마스 씰 모금액은 6,076,153천원을 모금하여 우리 나라 국민들에 대한 결핵퇴치와 보건증진 향상을 위하여 소중하게 사용될 것이다.
1904년 덴마크에서 시작한 크리스마스 씰 모금은 오늘날 전 세계 항결핵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국보1호인 남대문을 소재로 한 크리스마스 씰이 발행되었으며, 1953년 협회가 창립된 이후 60여년간 모금운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씰을 통해 조성된 결핵퇴치 기금은 국내외 결핵퇴치 사업의 소중한 재원으로 사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