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특강 가곡을 전승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들 조명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가사 보유자였던 정경태 선생님의 얘기로 시작합니다.
정경태 선생님의 가사 황계사 한곡 듣고 이야기 진행하겠습니다.
정경태 선생님은 1916년 2월 7일에 전북 부안군 주산면 사산 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월간 국악에 나온 명인명창 박물관에 기재된 이야기입니다.
‘정경태보다 한 살 많은 형과 바로 밑 남동생은 작은어머니 소생이고 정경태의 친모가 정실이라 정경태가 가문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았으며 정경태 위의 누나는 친누나라 한다. 정경태의 집안사람들은 모두 전문 직업 국악인이 아니라고 한다. 정경태는 8세부터 15세까지 향리의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면서 15세에 사서삼경을 모두 띄었다고 한다. 11세부터 2년간은 나이봉 문하에서 한문과 서예를 사사했고 13세부터 3년간 향리의 유학자 정도경 한테 시문을 익혔다고 한다. 석암(石菴)이라는 정경태의 호는 바로 이 정도경이 지어 준 것이라 한다.’
9세 때 주산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신학문에 만족하지 못해서 13세 때 졸업을 두 달 남기고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지도 않은 졸업장을 학교에서 주었다고 하네요. 12세 때 부친상을 당했고, 그 탈상 직후 15세 되던 해에 세 살 연상인 진예순과 혼인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선생님의 노래 한 곡 더 듣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정경태 선생님의 노래로 백구사 감상하시겠습니다.
다른 분의 노래에 비해서 속도가 조금 빠르고요, 그 속소리를 구사하는데 있어 조금 더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정경태 선생님이 처가에 가는 길에 합동 시회에서 장원을 했었는데 가장 큰 동서인 김한술이 문장으로는 석암에게 졌지만 시조로는 내가 더 잘할 걸 하면서 시조창을 하여 좌중을 사로잡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일에 자극 받아 석암 정경태는 시조창을 배우게 되었다고 전해지는데요, 16세 무렵부터 전국을 떠돌며 여러 정가를 배우고 체험한 정경태가 이 일을 계기로 훗날 자기 나름의 시조창인 석암제를 창안하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16세 때 정경태는 동네 어른 오성현에게 며칠간 평시조와 사설시조를 사사했는데 이 오성현이 정경태의 첫 스승이고 오성현은 당시 60대의 노인이었으며 고향은 부안이었다고 합니다.
정경태의 두 번째 정가 스승은 고창이 고향인 김춘경이라고 합니다. 이 스승 김춘경은 50세 정도였는데 오성현이 김춘경을 모셔와서 정경태가 며칠간 시조창을 배웠다고 합니다.
현재 정경태 선생님의 이력을 계속 살피다 보면 선생님이 상당히 천재적인 시조창의 천재적인 면모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을 배우지 않아도 빨리 습득을 했다고 하네요.
선생님의 노래 한 곡 더 듣고 계속 진행합니다.
가사 상사별곡, 정경태의 노래와 강락승의 장고로 들으시겠습니다.
이별의 슬픔을 깊게 표현한 가사 상사별곡.
옛날 하규일 선생도 이 상사별곡을 부르다가 몇 번씩 눈물을 보이며 소리가 몇 번씩 끊겼다 불렀다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정말 이 상사별곡이 노랫말도 노랫말 이지만 음의 고저가 상당히 폭이 넓은데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내는 그 음의 느낌은 굉장히 슬픈 선율로 이어져 있습니다.
정경태 선생은 여러 스승을 모셨는데 세 번째 스승은 이도삼이라고 하구요. 고창 사람으로서 당시 60대였다고 합니다. 이도삼 선생은 17세 무렵의 정경태를 찾아와서 몇 주간 사설시조를 가르쳐 주었다 합니다.
다음 네 번째 선생은 고창 사람인 오윤명인데 정경태가 김춘경한테 배우고 있을 때 소문을 들은 오윤명이 정경태 집으로 직접 찾아와서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고 하네요. 당시 정경태의 나이 18세였고 오윤명은 60대였다 합니다. 이 때 정경태는 오윤명한테 며칠간 시조창과 <상사별곡>, <처사가> 등의 가사를 배웠다고 합니다.
후에 정경태는 19세 때 장성 백양사 절에서 몇 달간 서울 사람인 임재희에게 가곡과 가사를 사사했다고 하네요. 임재희의 나이는 당시 60대의 나이로 사진업을 했다고 합니다.
24세 때는 두봉 이병성의 가곡 방송을 듣고 그 즉시 서울로 상경하여 석 달 동안 정가를 배웠다 전해지고 그 후 3년이 지나 재학습을 하였는데 이 때는 이병성 선생이 정경태 집으로 찾아와서 72일간 정가를 지도해 주었다 합니다. 정경태가 이병성한테 배운 것은 <언락>, <편락> 등 가곡과 가사 전 바탕이고 시조창은 이때 배우지 않았다 합니다.
정경태 선생님의 노래 한 곡 더 듣고 얘기 진행하겠습니다.
가사 수양산가 듣겠습니다.
정경태 선생의 스승에 대해서 쭉 열거 했는데요, 정경태는 30여세에 이틀간 전추산의 단소 영산회상을 모두 채보하여서 사사했다고 합니다. 이때 정경태는 전추산한테 단소산조는 안 배웠다고 하네요. 전추산은 정읍 사람으로 정경태보다 20세 연상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석윤한테 거문고 영산회상을 배웠고 거문고 가곡반주는 김용근에게서 배웠다고 합니다. 이 때 정경태는 주우송과 함께 임석윤 한테 거문고를 사사했는데 주우송이라는 사람은 전주 사람으로서 정경태보다 7살 연상이였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가곡 반주를 배운 김용근 선생은 정경태 보다 나이가 많은 을유생으로써 이리 사람인데 김경남한테 거문고를 배웠고 1970년대 중반에 작고했다고 합니다.
지금 이 내용들은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 관장이 기록한 정경태 선생의 회고담을 바탕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정경태 선생의 노래 한 곡 더 듣고 진행하겠습니다.
가사 처사가, 정경태 선생님의 노래입니다.
정경태는 이병성의 가곡, 김용근의 거문고, 김학윤의 가야금, 신달용의 대금, 전추산의 단소 반주 가락으로 하여 가곡 악보를 정리하였다 합니다. 김학윤의 스승은 누군지 모르는데 정경태가 어려서 김학윤에게 가곡 가야금 반주를 배웠다고 합니다. 김학윤은 부안 사람으로써 정경태보다 13살이나 연상이고 오래전에 작고했다고 합니다. 신달용은 정읍 사람으로 정경태보다 한살 연상이고 전계문의 제자인데 오래전에 작고했다 합니다.
정경태는 전라북도 사람 김소란한테 남무를 사사했는데 이때 정경태는 그 대가로 여창 가곡을 김소란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정경태 선생님의 가사 매화가 듣고 이어가겠습니다.
정경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도 계속 됩니다. 여러분 행복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