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보령시의 남포벼루는 우리나라 벼루생산 및 공급량의 70~80%를 차지하며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최고급 벼루에서부터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대중성 있는 벼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산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으며 1987년 김진한님의 남포벼루 제작기능이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6호로 선정되어 남포벼루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남포벼루는 조선시대부터 우월성이 인정되어 추사 김정희 선생이 유배도중 최우선으로 챙길 정도로 남포벼루는 그만큼 품질이 우수하여 보물 547호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의 벼루 세 개중 두 개가 남포벼루로 발표되고 있어 이의 역사성을 더하여 남포오석 및 남포벼루는 보령시의 향토지적재산으로 더욱 빛을 발하여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남포벼루는 박정희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사용하였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에게 선물로 전달하기 위해 남포벼루를 특별 제작하였고 일본 아소다로 총리는 남포벼루를 선물 받고 무척 좋아하였으며 미국 등 외국 각지에서도 남포벼루 구입을 위해 보령시를 찾아오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토록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남포벼루의 역사적인 유래는 올바르게 전달되어 그 명성이 지켜져야 할듯하나 현재 문화재청 사이트와 보령시청 사이트 및 모든 정보검색 자료에서는 남포벼루에 대한 연혁소개에서 남포벼루의 수출시기를 1961년도부터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어떠한 근거로 하여 남포벼루의 국제화시기를 짧게 발표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수출이라 함은 “내국물품을 외국으로 반출함“을 말하는데 비록 일제강점기 시기였지만 남포벼루 및 남포오석은 1915년에 개최된 조선물산공진회에서 부터 홍보하여 수출하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1929년도 우리나라 최초로 개최된 국제적인 조선박람회에서는 박람회장이었던 경복궁내에서 남포벼루 제조판매소를 설치하고 직접 벼루를 제작하여 세계의 관람객을 상대로 판매하였음은 물론 이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홍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문화재청 사이트와 보령시청 사이트는 물론 언론을 통하여 발표되고 있는 남포벼루의 수출 시기는 1961년부터가 아니라 적어도 조선박람회 개최시기인 1929년도부터로 보아야 할 것으로 판단됨으로 남포벼루 연혁의 중요한 항목인 수출시기에 대하여 현재 발표하고 있는 1961년보다 32년 앞선 1929년도로 홍보하시어 남포벼루의 국제화시기를 앞당기는 역사성에 더욱 가치를 두는 홍보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끝.
※ 첨부화일 1929년도 개최된 조선박람회를 계기로 남포벼루 및 남포오석을 홍보하며 경복궁내의 제조판매소에서 세계적인 관람객을 상대로 제작판매 하였음을 나타내는 홍보물.
※ 첨부파일 : 남포돌벼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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