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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아래 간증문은 한행철 형제님이 열흘동안 겪은 일을 기록한 감동의 간증문입니다.
형제님이 제게 글의 정리를 요청해와서 아주 조금 정리를 한 후에 혼자 읽기에는 너무
아깝고 감동스런 일들이라 이렇게 올려 봅니다. 한행철 형제님은 막상 글을 올리는
문제에서 많이 쑥스러워 하셨지만 제가 올리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인간적인 고뇌를 겪으면서도 주님을 붙잡고 그분에게 의지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형제님의 일상이 오늘도 눈앞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그 감동의 나날들 속으로 한번 들어와 보십시오.
가평 홍원근
<벽을 문으로 만드신 주님>
한 행철
- 2005. 4. 9(토) -
고민거리가 생겼다. 지난주 2단계 개강예배를 드린 후 첫 번째 순모임을 가지려는 직장선교대학 참석하는 날짜와 작년에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기일이 겹쳐서 다가오고 있었다. 처가 식구들이 추도예배를 드리기 위해 전부 모인다고 하였다. 큰 사위인 나는 다른 동서들 보다 책임감이 더 느껴졌다.
주님의 일과 인간적인 일......
결정하기 힘든 순간이었다. 정보통신부 선교회 기도회 시간에 형제님들에게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이번은 돌아가신 분의 첫 번째 기일이니 만큼 추도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아내와 나의 고향이기도 한 전남 장흥으로 향하는 길은 정말 좋았다. 상큼한 시골 공기는 차속에서 열심히 부르는 찬송가로 은혜가 넘치는 우리부부를 한층 더 반겨 주었다.
그런데 처가댁 보다 먼저 들른 부모님 댁에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한 감기로 병원에 가셨다는 아버님을 기다리며 모처럼 어머님이 차려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아버님께서 검정 봉투를 들고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오셨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시고는 방바닥에 허물어지듯 주저 앉으셨다. 힘없이 짧게 한 말씀을 하신 아버님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해 있었다. 식구들은 순간 할말을 잊고 아버님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기만 할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버님이 들고 오신 봉투에 든 X-ray 사진을 꺼내 살펴보니 폐입구의 기관지는 거의 다 손상되어 검은 점만 보였다. 아버님이 다녀오신 병원의 의사의 말이 폐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 속히 서울의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으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직접적으로 암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위험하다고 급히 서울로 가 보라는 말에 직감으로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벌써 오래전부터 검정색 각혈을 자주 했다고 하셨다. 의사의 말이 그것은 전형적인 폐암 증상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일흔 두해를 살아오신 아버님은 줄곧 담배를 피우셨기 때문에 기침을 심하게 하셨다. 새벽녘에는 잠을 이루시지 못하고 밭은기침을 연신 하시며 고통스러워 하셨다.
아버님께서는 평소에도 폐암에 대해서 많이 알아보셨는지 폐암은 환자 본인의 고통이 너무 심하고 발병하면 얼마 못 가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시며, 벌써부터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절반은 이미 돌아가신 것 같은 표정이셨다. 그토록 당당하시고 엄하시던 아버님도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게 되자 한없이 약해지신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었다. 하긴 살아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누군들 담대한 모습을 쉬 보일 수 있으랴…….
그런 아버님과 절망하는 어머님, 놀라는 아내를 큰방에 남겨두고 작은 방으로 뛰어 들어간 나는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오, 하나님!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부디 저희 아버님을 긍휼히 여기시고 붙들어 주옵소서! 주여 함께 하소서! 아버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 것은 또 다른 하나님의 뜻이 계신 것입니까? 아버님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나타내게 해 주시옵소서......”
땀을 쏟아가며 열심히 기도를 드린 후에 다시 한번 ‘나의 작은 신음소리까지 응답하신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라는 짧은 기도를 드리고 방을 나왔다.
“3년 전에 검사할 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그 사이 이렇게 몸이 안 좋아지시다니…….”
하시며 어머님은 장탄식을 하셨다. 곁에서 자주 검사를 하게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어머님을 쳐다보면서 나또한 자식으로서 아버님의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으니 불효막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어서 처가에나 다녀오너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추스르셨는지 아버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처가로 가는 동안 아내와 나는 아무런 대화도 할 수 없었다. 처가에 도착하니 동서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장모님께 아버님 위독함을 말씀드렸더니 무척 걱정해 주셨다. 장인어른의 추도예배를 드리고 잠을 자고…….또다시 아버님에 대한 걱정이 일어 잠을 뒤척이다가 처가 근방 교회의 새벽예배에 참석하였다. 자주 듣는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도 건강할 때에는 아멘이지만 위급한 문제에 직면하니 바람과 희망으로 바뀌었다. 즉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가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소원합니다!’로 저절로 말이 바뀌어 나왔다.
기도는 ‘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님의 병을 고쳐주시옵소서!’ 단 한마디가 전부였고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 2005. 4. 10(주일) -
절박한 심정을 안고 아내를 채근하여 처가를 나선 후에 부모님께 들렀더니 아버님께서는 방에 힘없이 앉아 계셨다. 아마 우셨는지 두 눈이 많이 충혈 되셨고 마음 고생이 심하셨는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더 많이 늙어 보이셨다. 밤새 한잠도 못 이루셨다고 어머님께서 말씀 하셨다. 그런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아버님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아버님 병을 고쳐 주실 겁니다. 아버님 병보다 더 어려운 병도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는 것을 많이 봤어요.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고쳐 주실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과 아내도 함께 통곡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른 다음, 내키지 않는 마음을 안고 부모님을 작별하고 서울로 차를 몰았다. 아아! 끝없을 것 같던 인생길.....우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걸까....잠시 잠깐 왔다 가는 삶을 더 열심히 주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을....더 많이 주님을 찾아야 됨을....많은 생각과 회개와 후회가 뒤범벅되어 차창밖 풍경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서울 집에 도착했는데 다 왔구나 하는 평안함 보다는 앞으로 닥칠 고난이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애타게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그분이 전능하심을 믿으면서도, 역시 부족한 믿음 탓이리라....
- 2005. 4. 11(월) -
아버님이 편찮으심을 알게 된 날로부터 이틀째 날이었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누님과 막내 남동생들과 걱정을 나누기 위해 우리 삼남매는 저녁시간에 누님 댁으로 모였다. 특별히 막내 남동생은 지난달에 결혼을 해서 그야말로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터에 슬픈 소식이 닥쳤으니 두 내외의 걱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으로 짐작이 갔다.
형제들이 모인 단란한 저녁식사 자리였지만 왠지 음식이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 조용히 일어나 누님댁 부근 교회를 향해 갔다. 쉬지 않고 주님께 매달려야만 그분께서 아버님의 병을 고쳐주실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였다. 은혜가 없으면 율법으로라도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어떤 목사님의 설교가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자정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기도에 가기위해 일찍 일어났다. 새벽기도는 여지없이 “주님! 저희 아버님의 병을 고쳐주세요”
라는 단 한마디였다.
기도 중에 문득 성경말씀 세 구절이 생각났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11:1)』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이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15:7)』
반복해서 세 가지 말씀을 되뇌다 보니 지난번 정보통신부 영성수련회때 임명식 선교회장님이 “성경에 자기 생각을 넣지 말고 액면 그대로 믿으십시오.” 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주변 환경을 보면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될 것으로 여겨졌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는 말씀 한마디로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병도 고치시지 않으셨던가....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아멘...주여!
아버님은 시골에서 묏자리를 보아주는 풍수지리 연구원장이시며, 철저한 유교주의자이심에 아울러 대단한 기독교 박해자이시다. 순간, 떠오르는 어떤 생각에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이 방법 밖에는 없으셨을 거야. 이제야 내 기도를 들어주시려고 하시는 거야. 황망중이지만 또 다른 기쁜 기대감에 가슴을 떨었다.
직장을 다니는 나와 아내는 할 수 없이 출근을 하고, 식당을 하시는 누님과 매형이 시골에서 올라오신 아버님을 모시고 서울의 종합병원을 찾았다. 병원, 특히 종합병원은 아무리 급한 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는 곳이라고 한다. 접수를 하고 담당의사와 진료 날짜를 정하고 병실이 나면 입원을 하는 그런, 절차를 치러야만 하는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시가 급한데 환자들의 급한 정도를 선별하지 않는 병원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넘치는 환자들을 일일이 구별하여 진료하기에는 역부족이리라.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하신 듯 말없이 눈만 힘없이 끔벅이시며 하릴없이 기다리시는 아버님이 한층 더 안스럽게 느껴졌다.
- 2005. 4. 12(화)~13(수) -
아버님과 어머님은 입원할 병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3일간의 조바심 나고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집에서 보내셨다. 바쁜 틈틈이 기도문을 작성하여 두 분께 드리고 출근을 했다.
기도 제목을 달라고 할 때 없다고 하는 것은 교만이라고 어떤 분이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 없이도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고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야고보서5:15-16)』라는 말씀을 붙잡고 다시 간구를 드렸다. 그런 다음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께 전화를 걸어 기도를 부탁 드렸다.
주기도문이 정말 좋은 기도인줄 새삼 깨닫게 된 나날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아버님께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 심령을 변화시키고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으니 싫어도 여러 번 읽어 보시라고 권했다. 설교와 간증 테이프도 듣게 해드리면서 아버님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아버님은 죽음의 공포 때문인지 아무것도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런 아버님을 대하면서 나 역시 죽음이 코앞에 현실로 다가오면 지금 이 신앙으로 담대히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사무실의 형편이 바쁘게 진행되고 있는 터라 일찍 퇴근을 못하게 되어 아버님 걱정에 더욱 마음을 졸여야 했던, 희망과 공포와 불안이 뒤범벅된 사흘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아! 너무도 옅은 믿음이여!!
- 2005. 4. 14(목)~4.16(토) -
드디어 목요일에 입원실이 나왔다는 연락이 와서 아버님은 입원을 하시고 늦게 퇴근한 나는 밤늦게 병실에 들렀다. 병원에는 병 고침을 소원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병실은 사흘이나 기다려야 나왔는데 병원에 와서 정작 입원실이 많이 비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가? 간호사에게 문의해보니 보통 주초에 많이 입원하고 목요일부터 퇴원을 시작하여 주말에는 병실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형제자매님들의 주위에 혹시 누군가가 입원하실 일이 있으시면 참고 하시면 좋을 것 같았다)
같은 병실에 폐암말기에 다다른 어떤 분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계셨다. 간병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평소 아주 건강했는데 목에서 검정색 피가 올라와서 진찰을 해보니 폐암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버님과 증상이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난 아버님은 더 많이 실망하셨다. 결과는 보나마나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님께 하나님은 위암이든 폐암이든 모든 병을 다 고치시는 분이시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아버님은 의외에도 단호한 음성으로,
“다른 암은 고칠 수 있어도 폐암은 어려울 거야.”라며 절망스런 표정을 지으셨다.
“아버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폐암은 어렵고 위암이나 다른 암은 쉽다는 말씀이 어디 있어요? 무슨 병이든지 다 고치시는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분이 어떻게 고치시는지 가만히 지켜만 보세요.”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
우리 가족에게 닥친 환난.....
그 환난이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예배시간과 기도 모임이 있으면 급박한 상황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참석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예배하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응답하시기만 모든 문제는 끝난다고 생각했다. 백 번, 천 번, 만 번.....수많은 기도 중에 단 한번만이라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뀜을 확신했다. 매주 목요일에 종교교회에서 드리는 점심예배에 참석했다. 토요일 직선대 순모임과 성경공부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특히 성경공부가 끝나고 순모임 장소를 찾기 위한 노력은 찬바람과 어둠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밤늦게 돌아오곤 했지만 기도할 든든한 믿음의 용사들이 있음이 크나큰 다행으로 다가왔다.
- 2005. 4. 17(주일) -
주일 새벽에 일어나 교회로 달려갔다. 그런데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평소보다 20분정도 기도를 더 드리고 7시쯤 집에 돌아왔다. 아....아버님께 얼른 가봐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일었다.
병원에 계신 두 분은 일찍 일어나셨는지 단정한 모습이셨다. 고향 장흥의 아름다운 산야가 문득 떠올랐다. 아버님의 병환만 아니시면 아마도 두 분은 지금쯤 텃밭에서 씨앗 심을 의논들을 하시면서 한담을 나누시고 계실 것을....오늘은 왠지 아버님 보다는 어머님이 더 측은해 보였다.
오늘은 누님이 이사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아버님을 잠시 병원에 홀로 계시게 하고 누님의 새 집을 살펴 보신 어머님은,
“새로 이사 간 집이 넓어 좋구나!”
어머님은 당신 남편의 병에는 관심이 없으신 듯 보였다. 아니, 애써 잠시라도 잊으시려고 하시는 것이리라. 한편으로는 당신 딸자식이 잘사는 모습이 황망 중에도 흐뭇해 보였으리라.
어머님과 같이 참석한 예배시간, 기도하는 도중에 『천하보다 더 귀한 것이 생명』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한 생명이라도 전도하면 우리 아버님의 병을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가슴을 쳤다.
“주일 오후에는 병원에서, 월요일과 화요일 점심시간에는 금식을 하며 전도 하겠습니다.”라는 약속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고 집에 오니 피곤이 엄습해 왔다. 침대에 누우니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모조리 떠올랐다. 시간은 벌써 오후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병원에서 전도하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든가 아니면 집에서 편안히 잠을 자든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 오, 하나님! 가겠습니다!”라고 외치며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섰다.
병원에 들러 아버님을 뵙고 주변을 보니 새로 입원한 환자들로 병실은 만원이었다. 옆 침대에 젊은 학생이 입원했는데, 그를 간병하는 어머님에게 4영리를 전도하려 하자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쉽게 전도하려고 했던 것이 불발이었다. 밖에 나가 보았다.
조용한 곳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전도하려고 병원 주위를 돌아 다녔다. 그러나 밖을 한참동안 찾아 돌아 다녔지만 혼자 나와 있는 환자는 없었다.
“오, 주님! 전도하게 해주세요!”
“주님이 준비한 영혼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없어 다시 병원으로 힘없이 돌아왔다. 낙심이 되었다. 용기가 한풀 꺾이는 듯 했다. 약간의 창피함도 느껴져 왔다. 힘없이 아버님 옆에 앉아 있으려니 갑자기 성령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생명을 구할 수만 있는데 너의 자존심과 체면이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을 정말 믿고 있는가...’
하고 내 자신에게 물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그래.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지금 나를 보고 계신다. 나와 함께 하신다.’였다.
『입술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과,
『네가 사람 앞에서 나를 증거하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너를 인정하겠다』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마음을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라는 말씀도 다가왔다. 그러한 몇 가지 용기를 주는 말씀을 생각해 내고는 아무 주저 없이 옆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장 앞에 누워계신 아주머니를 선택해서 ‘어디가 편찮으시냐?’고 안부를 전한 다음,
“저는 직장선교대학 훈련생인데요.”
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고 선생님의 병을 낫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말씀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대뜸, 무슨 파냐고 물었다. 그래서 저는 장로교회 다니는데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간호하러 왔다가 전도하러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분은 목사님 사모님이라고 했다.
‘아! 맙소사!’ 모처럼 시도한 전도 찬스였는데 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아쉽게 병원 문을 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전도를 하긴 해야 하는데...’
할 수 없이 아버님이 계신 병실로 다시 돌아왔다. 입원실 안을 다시 둘러보니 앞에 계신 호흡이 곤란한 환자 옆에 아주머니 한분이 앉아 계셨다. 그분에게 다가가서 아저씨가 많이 좋아 지셨네요? 하고 말을 건넨 다음,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신들은 불교라며 딱 잘라 거절을 했다. 그래도 들어 보시라고 했는데 아주머니는 단호한 표정으로 두 번째 거절을 했다. 할 수 없이 망설이다가 다시 병실을 나와 다른 병실을 두리번거리다가, 폐암으로 고생하고 있는 병실 앞쪽 중앙에 계신 환자에게로 가서,
‘많이 불편해 보이시는데 곧 좋아지실 것입니다.’
라고 위로의 말씀을 건넨 후, 선생님의 병이 고침을 받도록 기도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4영리를 가지고 복음을 전했더니 순순히 받아드리시고 영접기도까지 같이 드렸다.
<그분의 성함은 김 찬수님이시다.>
한 생명을 주님 앞으로 인도했다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기쁜 마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 2005. 4. 18(월) -
오늘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밖에는 봄비가 오고 있었다. 새벽예배를 드린 후 아버님이 계신 병원으로 달려갔다. 두 분은 입원한 이후 그래왔듯이 어두운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한 듯하였다. 나 역시 마음이 아팠지만 애써 밝은 표정으로,
“힘 내십시오. 아버님! 틀림없이 우리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겁니다”
라고 말씀 드린 후 사무실로 출근을 하였다.
며칠동안 아침을 먹지 않으니 잠깐씩 졸음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 졸음의 중간에 갑자기 성령님께서 ‘간증문을 쓰지 않겠느냐?’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 하나님께서 하루하루 나를 인도하시는 일들을 일기 식으로 매일 적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컴퓨터에 그날그날 일어난 일들을 적어 나가기로 했다.
‘주여! 제가 겪은 이 일들을 간증하게 해주세요. 꼭 간증문이 되길 바랍니다’ 라고 기도했다. 기도 후에 하나님께서 아버님의 병만 고치신다면 간증문으로서는 더 이상 부족함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알 수 있는 결과라고 한다면 그 사건이 더 극적이기를 바란다. 마치 어떤 축구경기가 우리 편이 이길 수만 있다면 역전승을 바라는 것처럼.......
그래서 할 수 만 있다면 병원에서 못 고친다고 포기한 후에 하나님께서 그때 고치신다면 더 기막힌 작품인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고통스러워 하시는 아버님과 어머님을 생각하자,
‘주님 저는 그걸 감당 못합니다. 우선 지금 우리 아버님을 고쳐주시옵소서!’ 라고 조용하지만 간절하게 말했다.
점심시간이 되니 어제 주님과의 약속이 또다시 떠올랐다. 동료 직원들은 모두들 서둘러서 식사를 하러 나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주님을 마음 속으로 외치며 계단을 내려와 지하1층 예배당에 엎드렸다.
‘주님! 오늘 점심 시간에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나갑니다. 주님께서 준비한 영혼을 만나게 하소서!’
라는 간구를 드린 후 문화관광부 옆의 공원으로 나갔다. 아직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느라 많이 없었다.
‘주님! 전도할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전도를 해야 합니까?’라며 절박한 심정으로 서 있는데,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서명을 받기 위해 모인 어떤 단체의 사람들만 나와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혼자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퉁이를 돌아가서 둘러보니 버스 정류장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기회를 놓칠 새라 황급히 달려가 인사를 공손히 하고 4영리를 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4영리 2페이지를 시작하려는 순간, 그분은 버스가 왔다고 훌쩍 떠나 가버렸다. 너무나 아쉬웠다. 맥 빠진 육신을 끌고 패잔병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사무실을 향하였다. 계단을 오르는 사이 문득 몇 달 전에 우리부에 파견 나온 형제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성령님이,
‘그에게 4영리를 전해 보렴!’ 하는 것 같았다. 서둘러 사무실에 와서 그 형제님을 찾아보니 마침 자리에 앉아 있었다. 형제님을 회의실로 불러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4영리를 전했다. 그러자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순순히 영접기도까지 따라했다.
그 형제님의 이름은 전 홍구님이다.
또다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생각에 마음의 평안이 잔잔히 찾아왔다. 시험 준비를 못해 불안해 하던 수험생이 마음을 다잡아 다시 차근 차근 시험준비를 하고, 이윽고 그 시험을 잘 치르고 난 후에 느끼는 성취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일과시간을 마치고 혼자서 사무실 예배당에 내려가 목이 터져라 찬송가를 불러댔다. 큰소리로 기도도 시작했다.
그러자,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렇게 해서 월요일, 또 하루가 지나갔다.
- 2005. 4. 19(화) -
아아!! 화요일이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사랑하는 온 가족들과 미더운 기도의 용사들이 그 결과를 기다리는 그날이다.
생명이냐! 사망이냐! 하는 너무나 중대한 운명의 순간이다.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동대 김영길 총장님을 인도하신 하나님!
김명호(우리교회 부목사님) 목사님 아드님의 병을 고치시는 하나님!
저에게도 사랑을 베푸소서! 기도를 들어 주소서!!”
라고 목이 터져라 하나님께 외쳤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그렇게 중요한 날이었지만 사무실의 급한 업무로 정신없이 오전을 보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예배당에 기도를 하고 청사 밖을 나와 공원으로 나갔다.
상황은 어제보다 더 안 좋았다. 공원 한가운데는 어디서 놀러 왔는지 스무명 정도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맞은편 중앙에 세명의 젊은이가 있는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네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인정하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너를 인정하겠다.』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그 말씀에 의지하자 용기가 용솟음쳤다. 그래서 세 사람 앞으로 가서 공손히 절을 하고 4영리를 나누어 주고 첫 페이지부터 읽었다. 그런데 그들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는 것 같았다. 4영리를 자기들 마음 내키는 대로 건성으로 훑어보는 것 같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또박또박 정성을 다해 읽었다. 한참을 읽고 있으니 다들 조용했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보니 다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진지하게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영접기도문까지 읽어 주고 기도문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 보니 마음에 든다고 했다.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주님을 영접한 것이다.
그분들의 이름은 김 민훈님, 유 현규님, 허 준석님이다.
한없는 기쁨과 끝없는 은혜로움이 마구 몰려왔다. 이제 하나님의 응답만이 남아 있다.
‘주님! 이제 다 했습니다. 빨리 결과를 말해주시옵소서!’
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휴대폰을 책상 앞에 두고 누구에게선가 전화가 오길 기다렸다. 병원에 전화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침묵을 깨고 1시가 조금 넘어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아내의 음성은 밝고 힘찼다.
“연락 받았어요?”
“아니... 무슨 연락을 ...?”
심장이 터질 듯 하였다.
연이어 아내는,
“좋은 소식일까요? 슬픈 소식일까요?”
하고 물었다.
그 순간.
“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계셨군요....살아계신 우리 하나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하며 책상에 엎드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런 후에 지하1층 예배당에 가서 눈물로 감사 기도를 드렸다.
조직검사결과 아버님의 폐에 자리한 것은 암세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시골에서 장작나무를 태우면 연기가 폐에 들어가 폐를 검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아.....너무나 감사한 일.....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족이 열흘 동안 갇혀 있던 사망의 벽을 생명의 문으로 바꾼 기적을 맛보게 하셨다. 지금까지 세상과 벗하여 주님을 모르고 살아온 우리 가족들에게 생명이신 예수님을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게 해 준 날들이었다. 그리고 그 열흘 동안 우리 가족과 기도의 용사들이 모두 하나님께 합심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해 준 날들이기도 했다.
아버님을 비롯한 동생내외, 작은 어머님이 당장 교회에 나가기로 했다. 주님께서는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다고 하시며 우리더러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라고 하신다. 주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폐암 같은 무서운 병에 걸려 희망도 기쁨도 없이 회색빛 죽음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을 위해 주님은 생명의 밧줄을 던지라고 명령하신다.
살아 숨쉬는 생명이 오늘처럼 아름다운 존재로 다가온 적이 없게 느껴진다.
할렐루야!
날마다 함께 하신 하나님, 앞으로도 함께 하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오! 주님!
죽으나 사나 나는 주님의 것이니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주님 뜻대로 살아 가렵니다.
아 멘!!!
첫댓글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고난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신실하신 한행철 형제님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가족을 구원케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히나님의 크신 축복이 더욱 넘치시길 기도드립니다.
놀라운 믿음을 소유하신 형제님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좋은 간증을 들려 주시어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가문에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